[26슬램게임] KBL 유스캠프 MVP가 '드래프트 가드 최대어'로..."모범이 되는 선수" 연세대 이주영(002)

김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6-09-03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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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동환 인터넷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두 번째 주인공은 연세대 4학년 이주영(189cm, G)이다.

#001_Scan: 연세대 이주영


이주영은 스포츠와 농구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밥을 먹을 때나 심심할 때, 이주영은 항상 농구 경기를 TV로 지켜봤다. 벽걸이 농구대를 통해 농구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 이주영은 벌말초 전학 후 홍사붕 코치를 만나 본격적으로 엘리트 농구를 시작했고, 이는 기본기의 토대가 됐다.

"벌말초로 전학을 가면서 엘리트 농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홍사붕 코치님이 기본기를 중심으로 잘 가르쳐주셔서 잘 배웠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진학해서 다른 선수들과 가장 차이가 났던 부분이 기본기였어요."

시작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농구가 좋아 시작한 길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늘지 않는 기량 역시 어린 나이의 이주영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이주영은 늘어나는 걱정과 고민 등 부정적인 생각을 역설적이게도 농구로 극복했다.

"사실 중학교 진학 전에 농구를 그만두려고 했었어요. 저한테 맞지 않은 길이라는 생각을 했고, 기량도 좋지 않은 것 같아서 험난하고 어려운 길이 될 것 같았거든요. 좋지 않은 생각을 연습으로 이겨낸 것 같아요. 부모님이 옥상에 3대3 코트와 정식 골대까지 설치해주셔서 집에 와서도 밤에 드리블과 슈팅을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20분 동안 했어요. 그게 쌓이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힘들었던 시절을 포기가 아닌 연습으로 이겨내고자 한 생각을 한 것이 힘들었지만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빠르게 찾아온 역경을 이겨내자 이주영은 또래 선수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016년 윤덕주배 연맹회장기에서 벌말초의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8년 KBL 유스 엘리트 캠프에서도 중등부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19 KBL 유스 엘리트 캠프에서도 중등부 우수상을 차지, 이주영은 청소년 시절부터 상과 KBL에 인연이 깊었다.

"캠프 같은 것을 갈 때마다 플레이가 잘 나왔던 것 같아요. IMG 아카데미 연수 선수를 뽑을 때도 그렇고, KBL 캠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KBL 캠프는 프로에서 좋은 지도자들이 오셔서 지도를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배워가야겠다고 늘 다짐을 하고 갔어요. 운이 좋게도 플레이도 잘 나와서 좋은 상까지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때 지도자 분들이 공격만 하는 선수가 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각인을 시켜줬어요. 저도 그것을 느껴서 수비를 배우는 마음가짐부터 달랐어요. 그 당시에만 농구를 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수비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캠프를 통해 그런 부분들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삼일중에서 최고의 가드로 성장한 이주영은 삼일상고로 진학 후 2학년을 앞두고 농구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을 경험했다. KBL 유망 유소년 해외 선수 육성 프로젝트에 선발돼 미국 IMG 아카데미 농구부로 연수를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로운 세계인 미국 농구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해외 가드들을 상대하면서 이주영은 더욱 성장했다.

"미국에서 농구를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영광이었죠. IMG에 갔을 때, 사실 높은 등급의 팀에 들어가진 않았어요. 그래도 상대해보면서 밀릴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고, 경기를 뛰면서 스텝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피지컬이 좋고, 빠르고 스킬이 좋은 가드들을 상대하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성장을 거듭한 이주영은 2022년을 가장 특별한 해로 기억하고 있었다. 7월에 열린 제77회 전국종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용산고를 꺾고 삼일상고의 13년 만 우승을 이끈 데 이어 8월에는 FIBA U18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22년 만의 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했다. 이 찬란한 시기의 시작은 김민구 코치와의 만남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김민구 코치님이 오시면서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었고, 코치님이 오시고 나서 우승까지 했거든요. 야간에도 퇴근하지 않고 노하우나 스킬, 상대 수비를 보는 시선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배운 대로 하려고 하면서 많이 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가장 좋았던 순간은 아무래도 FIBA U18 아시아컵 우승인 것 같아요. 존경하는 이세범 코치님께 지도를 받으며 실력이 많이 늘었고, 좋은 선수들도 너무 많았어요. 그 선수들과 경기를 뛰면서 대표팀에서 뛰는 느낌은 다르다고 생각했고, 신났던 것 같아요. 22년 만의 우승이라는 타이틀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한 MVP까지 받아서 너무 좋았어요. 타국에서 중국과 일본을 꺾고 우승했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002_Life in University

국내를 넘어 아시아 무대까지 평정하며 두각을 확실하게 드러낸 이주영의 발걸음은 신촌으로 향했다. 1차 합격이 아닌 예비 번호까지 받으며 어렵게 연세대 유니폼을 입은 이주영이지만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오직 연세대만 생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세대 농구 경기를 많이 챙겨봤는데, 연세대가 하는 농구가 되게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길이 딱딱 정해져 있고, 최고의 장점을 가진 선수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합도 잘 맞는 것이 너무 멋있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연세대와 신촌에서 연습 경기를 할 좋은 기회가 있었어요. 제가 그 경기에서 잘해버렸고, 당시 은희석 감독님이 연세대로 오라고 이야기해주신 말 한 마디가 컸던 것 같아요."

어렵게 신촌 독수리 군단의 일원이 된 이주영은 대학 생활 시작과 동시에 큰 악재를 마주했다. 3월 20일 성균관대와의 맞대결에서 발날 부상을 당한 것이다. 수술대까지 오른 이주영은 3개월 이상의 공백기를 겪어야 했고, 이는 이주영의 농구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의 순간이었다.

"인생 첫 수술이었어요. 너무 많은 기대를 안고 대학에 왔는데 보여준 것 하나 없이 무너졌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고,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는데, 주변에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했어요. 다쳐 있는 동안 동기들이 스텝업을 하는 것을 보며 안절부절하고 조급한 마음이 많았는데, 그것들이 복귀 이후 운동 태도나 마음가짐을 바꿔준 것 같아요. 복귀 이후 부상 재발이 없었던 것은 감사하지만 부상 당시에는 되게 힘들었어요."

꾸준한 재활을 통해 부상을 이겨낸 이주영은 복귀 이후 대학 무대는 고등학교와 다른 수준의 리그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경험을 통해 장점이었던 공격과 약점이었던 수비 모두 발전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이는 이주영의 마인드를 바꿔 놓았다.

"공격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과 수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경기를 뛰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대학교는 준프로라고 생각해서 플레이 하나하나가 제 가치를 바꾸고, 프로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서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상대팀이 분석을 전문적으로 하다 보니까 고등학교 때처럼 플레이하면 많이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또 다른 옵션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공격 옵션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이주영의 선택은 1번(포인트가드)과 2번(슈팅가드)의 병행이었다. 팀 동료였던 이민서와 이채형의 부상으로 1번 포지션의 공백이 생긴 팀 상황과 윤호진 감독의 권유도 이주영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감독님은 최대한 제 장점을 살려주시려고 했어요. 플레이 스타일은 제가 최대한 잘하는 것을 시켜주시면서도 프로에서는 그것만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1번 포지션을 병행하라고 주문하셨어요. 저도 감독님께 1번을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고, 팀 사정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동의했는데 초반에는 쉽지 않더라고요. 원래 잘하던 것까지 잘 되지 않아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던 것 같아요."

1번과 2번 포지션의 병행은 이주영에게 초반 슬럼프를 안겼지만 완성형 가드로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청소년 시절부터 남달랐던 득점력과 슈팅 능력에 경기 조율 능력까지 더하며 대학 리그 최고의 가드 중 한 명이 되었다.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잡은 2024년부터 4학년 최고참이 된 2026년까지 두자릿수 득점을 꾸준히 기록했다. 2025년 18.9점으로 득점 1위까지 차지한 이주영은 2026년 득점력을 더욱 끌어올려 21.5점을 기록, 현재 대학 리그 3위에 위치해 있다. 어시스트는 득점에 비해 아직 부족한 수치지만 2026년 처음으로 평균 4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점차 발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타고난 기량에 그치지 않고 끊임 없는 성장세를 보인 이주영은 청소년 시절부터 태극마크와 인연이 깊었고, 활약도 좋았다. 2022년 이란에서 열린 FIBA U18 아시아컵에서 평균 23.2점 4.6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22년 만의 우승을 이끌었다.

한일 남녀대학대표 농구대회(구 이상백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24년 결정적인 3점슛으로 우승을 안겼고, 2025년에는 장염으로 응급실을 다녀왔음에도 출전을 강행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국가대표팀에 가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난 해 이상백배 대회에서도 시합 당일 응급실에 실려갔지만 경기 출전을 강행했던 것 같아요. 대표팀에 뽑힌 이상 핑계는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국가대표로 뛰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국가를 대표해서 뛰는 것이기에 마인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는 것 같아요."

이주영의 태극마크와의 인연은 3x3 농구까지 이어졌다. 지난 1월 3x3 대표팀에 발탁된 이주영은 4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FIBA 3x3 아시아컵 2026에서 대표팀의 준우승에 기여하며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8월 중국에서 열린 2026 FIBA 3x3 네이션스리그에서도 STOP 1과 2, 6에서 정상에 오르며 아시아컵 우승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줄곧 5대5 농구만 해왔던 이주영에게 3x3 농구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곧 큰 도움으로 다가온 새로운 세계였다. 하드콜과 빠른 공격 템포 등 이주영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농구의 경험은 5대5 농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제 인생에 3x3 농구가 들어오면서 농구에 눈을 더 뜬 것 같아요. 5대5 농구와 병행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는데, 3x3 농구가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하드 콜이다 보니까 수비 적극성과 압박 강도가 좋아진 것 같아요. 5대5 농구는 파울이 불리는 경향이 많지만 잘 조절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3x3 농구는 개인 능력에 의한 득점이 많아서 개인 기술을 많이 습득할 수 있었어요. 여러 해외 선수들의 수비를 경험해보면서 상황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많이 느꼈습니다."

이제 이주영의 시선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으로 향한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다소 낯선 무대지만 나라를 대표해 결과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됐다. 금메달을 위해 지난 1월부터 흘려온 땀방울과 훈련에 매진하며 보낸 시간을 보답받을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003_Application


이주영은 현 시점 대학리그 최고의 가드로 평가받으며 이번 드래프트의 '가드 최대어'로 꼽히고 있다. 189cm로 장신 가드인 이주영은 어릴 때부터 가장 큰 장점으로 평가되던 슈팅과 득점 능력을 3x3를 통해 더욱 끌어올렸다. 약점이던 동료들을 살려주는 플레이와 수비력은 끊임 없는 연구와 노력을 통해 지워가고 있다.

"지금까지 농구를 하면서 언제나 최고를 찍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경기를 뛸 때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같은 포지션이나 또래에 잘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서 그 선수들의 플레이들을 많이 찾아보곤 합니다. 이 선수들의 장점을 제 장점과 섞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영상을 많이 찾아보며 약점을 보완하는 것 같아요."

대학 무대를 넘어 프로에서도 최고 가드를 꿈꾸는 이주영은 롤모델로 KBL 최고 가드 중 한 명인 부산 KCC 허훈을 꼽았다.

"(허)훈이 형과 같은 포지션이라 닮고 싶은 마음이 되게 컸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이 운동을 했던 적이 있는데, 1대1을 하면서 그 마음이 더 커졌던 것 같아요. 공격할 때는 형의 수비를 거의 뚫지 못하고, 수비할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가드는 이렇게 해야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3x3 농구를 하면서 주변에서 플레이가 허훈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기분이 되게 좋았지만 아직 멀었고 부족함이 많아요. 최대한 영상을 많이 찾아보고, 따라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저는 팀이 필요할 때 득점을 해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분위기를 끌어올려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인 것 같습니다. 팀의 득점과 분위기를 책임지면서 승리를 이끌 수 있는 선수입니다.

저를 뽑아주시면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노력하고,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004_My Future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프로에 가면 잘하는 선배님들이 많기 때문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팀과 감독님이 원하시는 방향에 최대한 100%로 따라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는 부상이 힘들다는 것을 느껴서 절대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신인 때부터 부상 없이 팀에 조금씩 녹아들어서 팀이 필요로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이주영' 하면 성실하면서도 농구까지 잘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사진_이주영 제공, 김동환 인터넷기자,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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