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황혜림 인터넷기자] 수능 점수 대신 오직 농구 실력으로 대학 문을 두드린 신입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간.
바로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루키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네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한양대 정현진(196cm, F)’이다.

#소년로그
정현진이 처음 농구공을 잡은 건 남들보다 조금 늦은 시기였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엘리트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처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던 정현진은 부모님의 권유로 농구공을 잡았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건 축구였지만, 유독 키가 컸기에 부모님이 농구를 권유했던 것이다. 잘하고 싶은 욕심과 함께 잘할 수 있다는 확신도 생겼고, 그는 서울의 중학교로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정현진이라는 원석을 발견해 코트 위에 세운 첫 농구 스승은 박정웅의 작은아버지인 박성훈이었다.

명지중에 입학한 정현진은 당시에도 지금과 거의 차이가 없는 196cm의 신장을 자랑했다. 중학생 중에서는 압도적인 피지컬이었으나, 그는 일찍이 미래를 내다봤다. “지금은 센터를 보지만 여기서 성장이 멈춘다면 나중에는 지금의 플레이를 할 수 없으니, 내외곽에서 모두 플레이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는 꿈을 품었다.
그가 한양대를 선택한 것도 센터가 아닌 포워드로서 뛸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어릴 때부터 그는 내외곽을 넘나드는 포워드를 목표로 삼아왔다.
“처음 농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 어차피 프로에 가면 외국선수가 있고, 2미터 센터도 있으니 굳이 센터를 고집할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포워드로 나와서 득점, 리바운드를 비롯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대단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침을 주셨어요. 중학교 때도 제가 제일 크니 어쩔 수 없이 센터를 보기는 했는데, 그러면서도 포워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어요.”
홍대부고에 입학한 정현진은 2024년, 인생에 남을 경기를 치르게 된다. 박정웅(정관장)이 3학년이었던 홍대부고는 그해 협회장기 결승에 올랐다. 종료 0.8초를 남겨둔 홍대부고의 마지막 공격. 모두가 연장전을 예상하던 순간, 패스를 건네받은 정현진은 주저 없이 3점슛을 던졌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린 공은 백보드를 맞고 림을 통과했다. 정현진의 극적인 버저비터와 함께 홍대부고는 첫 협회장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라인크로스가 돼서 75-75 동점이 됐어요. 0.8초가 남았는데, 제가 너무 떨려서 시간을 못 봤어요. 원래는 제가 위에서 받은 뒤, (손)유찬이 형한테 어라운드를 주고 픽앤롤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공을 잡았는데, 벤치 쪽에서 ‘시간!’을 외치길래 바로 슛 자세로 바꿔서 쐈어요. 근데 진짜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요. 백보드를 조준하고 딱 쐈는데 맞고 들어갔죠. 온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요즘도 가끔 농구가 잘 안되고 힘들 때마다 그때 영상을 봐요. 이런 경기도 있었는데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시 열심히 운동하기도 합니다.”
한 번의 버저비터는 선수에게 짜릿한 손맛을 가르쳐줬고, 선수는 그 기억으로 끊임없이 공을 던진다.

홍대부고는 박정웅의 졸업 이후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2025 춘계에서는 예선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정현진은 당시 "우리는 계단 같은 팀"이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연맹회장기 16강, 종별 8강에 오르더니 추계는 기어코 4강까지 진출했다.
특히 추계대회 상산전자고(현 경북에너지기술고)와의 8강 맞대결은 정현진의 고교농구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기다.
홍대부고는 1쿼터 4-25까지 뒤지며 위기를 맞았으나 리바운드부터 차근차근 잡으며 전반을 39-43까지 추격한 채 마쳤다. 경기가 끝났을 때 리바운드는 41-25로 홍대부고의 우위. 제공권 싸움 승리가 역전승의 발판이 되었음을 스코어가 증명했다. 이날 정현진의 기록은 17점 18리바운드, 정현철의 말은 현실이 됐다.
“당시 코치님이 편찮으셨어요. 힘드신 와중에도 대회에 출전했는데 예선 탈락을 해서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아프신 동안 저희가 열심히 안 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마지막 대회라도 잘 준비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얘기를 많이 했어요. 초반에 뒤졌을 때도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열심히 하자'라고 하면서 에너지도 많이 올리고, 애들도 같이 열심히 해줘서 마지막 대회 4강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건 지금도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이에요."
#대학농구능력시험
고등학교 시절 연습경기를 통해 정현진이 직접 경험했던 한양대는 그에게 배움의 목적지였다. 코치진이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밀착해 세밀하게 지도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고, 이곳에서라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고등학교 때 보니 한양대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정말 붙어서 많이 알려주시더라고요. 나도 한양대에 가면 저렇게 세세하게 하나하나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열심히 할 자신도 있어서 한양대에 오고 싶었어요."
롤모델도 뚜렷했다. 한양대 선배들의 플레이에서 각기 다른 장점을 흡수하려 노력했다.
"신지원(소노) 형에게서는 골밑에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어떻게든 골밑을 지키는 투지를 배우고 싶었어요. 박민재(KT) 형의 어떤 상황에서든 슈팅으로 게임을 풀어주는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도 배우고 싶었어요."
대학에 진학한 후 가장 많이 배운 것으로는 수비를 꼽았다. 수비 시 상대에게 바짝 붙는 법, 확실하게 스크린을 거는 법, 박스아웃 후 리바운드에 참여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소화했다.
그 때문인지 정현진은 스스로의 수비에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다. 정현진이 직접 매긴 대학농구능력시험 등급표에서, 공격과 속공은 2등급인 반면 수비와 농구 센스는 각각 4등급, 5등급으로 낮게 평가했다.
"제 키가 지금 기준으로는 엄청 큰 편이 아니에요. 상황에 따라 센터부터 포워드, 가드까지 모두 막아야 하다 보니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죠. 결국 제가 낮은 등급을 준 가장 큰 이유도 경험 부족 때문이에요. 앞으로는 심리전 능력을 더 키워야 할 것 같아요.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한발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가장 낮은 등급을 준 농구센스 역시 수비와 맥이 닿았다.
"수비에서의 심리전도 사실은 농구 센스에 포함되는 이야기라서, 정말 연구를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공을 잡았을 때 조금 더 여유를 가지면 코트를 넓게 보면서 노마크 찬스를 찾을 수 있는데, 그런 센스도 아직은 많이 모자란다고 느껴요."
약점을 냉정하게 짚어낸 반면, 가장 높은 등급을 매긴 피지컬과 속공에서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큰 키에 기동력과 폭발적인 점프력까지 갖춘 정현진에게 피지컬은 어느 포지션에서든 먼저 꺼내 들 수 있는 무기다.
"제가 그래도 키가 큰 편인데, 잘 달리고 점프도 잘 뛰어요. 힘도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해서 피지컬에 가장 자신 있어요. 웨이트는 아직 조금 부족하지만 코어 힘이나 전체적인 몸 밸런스는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잘 알려주시니까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속공도 좋은 등급을 준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메이드를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뛰어서 림에 붙이고 올라가면 파울이나 앤드원이 나오거든요. 속공도 제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2등급을 줬어요."
그의 확신은 지표로도 증명된다. 정현진은 이번 시즌 경기당 평균 5.44개의 리바운드를 걷어내고, 0.44개의 블록을 기록, 현재 한양대의 골밑을 가장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다.
#대학로그
인터뷰를 진행한 날은 한양대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새내기라면 누구나 품었을 축제의 로망, 그날의 계획을 물었다.
“인터뷰 마치고 (손)유찬이 형과 축제에 가기로 했어요. 에스파의 팬인데, 사실 공연은 못 볼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축제 한번 꼭 가보고 싶었는데… 티켓팅이 너무 어려웠어요. 접속했는데 막 1시간 10분을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안 봐'하고 나왔어요(웃음)”
고등학교 때부터 동고동락한 선배 손유찬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이날도 인터뷰 전에 손유찬과 함께 식사하고 왔다며 단골 맛집을 소개했다.
"정말 배울 점도 많고 잘 챙겨주는 형이에요. 오늘 먹은 뼈해장국도 유찬이 형이 사줬어요. 정말 좋아하고 잘 따르는 형이에요.”

엘리트 스포츠 선수의 특성상 대인관계의 대부분이 운동선수로 한정되기 마련이지만, 한양대에 입학한 정현진은 코트 밖에서 세계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다.
“지금도 당연히 농구부랑 제일 친하긴 한데, 그래도 공강 시간에 과방에 가서 여러 친구들 만나서 어떤 인생 살았는지 들어보면 새롭기도 하고 재밌어요.”
초등학교 이후 농구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정현진은 새로운 학문에도 발을 들였다. 농구 선수이기 이전에 대학생이 된 그는, 코트 밖에서도 배우는 것들이 늘어가고 있다.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다고 형들이 추천해 준 법 수업을 듣고 있어요. 살아가면서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고, 교수님이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셔서 좋은 것 같아요.”
“제일 힘든 수업은 목요일 오전 9시에 육상 수업이 있는데, 심지어 전공이어서 너무 힘들어요(웃음). 아침부터 그렇게 뛰는 게 쉽지가 않아요.”
물론 낭만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다. 그 뒤에는 치열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시즌 한양대 정재훈 감독은 손유찬과 강지훈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포지션에서 무한 경쟁 체제를 예고한 바 있다. 정현진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에이스로서 출전 시간을 보장받던 고등학교 3학년 때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지만, 그는 기죽지 않고 오히려 경쟁을 받아들였다.
"감독님 말씀을 듣고 '무한 경쟁이니까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어요. 지금 감독님께서 저를 많이 기용해 주시는 가장 큰 이유는 리바운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수비만 하는 선수가 아니라 공격에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고, 3점슛이나 골밑 플레이도 가능하다 보니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점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정현진은 상명대와의 대학리그 데뷔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빛나는 잠재력을 내보였다.
1쿼터에만 3개의 3점슛을 꽂아 넣으며 뜨거운 슛 감각을 뽐낸 정현진은 2쿼터 들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골밑에서 몸을 아끼지 않으며 9개의 리바운드를 걷어냈다. 3쿼터 들어 다시 감을 되찾은 그는 3점슛 3개를 추가로 성공시키며 이날 기록한 19점 중 15점을 외곽포로 채웠다. 그가 오랫동안 꿈꿔온 포워드로의 완벽한 안착을 알리는 화려한 데뷔전이었다.
"제 인생 첫 대학 경기라 솔직히 엄청 긴장했어요. 룸메이트인 유찬이 형이 떨지 말고, 3점슛도 자신 있게 던지고 뭐든 자신감을 가지고 하라고 해줬어요. (이)승현이 형도 항상 제 슛폼을 봐주면서 '네 폼이 어떻든 슛은 무조건 자신감이다. 누가 앞에 있든 자신 있게 쏴라'고 해줘서 경기 들어갈 때 부담이 많이 줄었어요. 그래서 그날 어떤 플레이든 정말 자신 있게 했는데, 덕분에 3점슛이 유독 더 잘 들어간 것 같아요."

현재 정현진은 한양대에서 3점슛 성공률 부문 2위(39.3%)에 올라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외곽슛은 그의 약점으로 꼽혔다. 약점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무기로 만들기까지, 과정은 단순했다. 새벽마다 코트로 나가 공을 던졌다.
"2학년 때는 완전히 센터였어요. 외곽을 쏴줄 형들이 많으니까 아무래도 제가 외곽을 던질 일이 없어 리바운드에 더 집중했죠.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큰 선수들이 막더라도 득점을 해야 하니까, 자신 있게 던지거나 어떻게든 돌파를 했어요. 그래서 연습을 더 많이 하고 새벽 운동에서도 계속 슛 연습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묻자, 돌아온 답변은 담담하면서도 단호했다.
"저는 어떤 역할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다재다능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여기서도 애매하고 저기서도 애매한 선수가 아니라, '얘는 여기서도 나쁘지 않고 저기서도 나쁘지 않네'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농구를 하기로 한 만큼, 행동으로 스스로에게 확신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꼭 그렇게 되고 싶어요."

어떤 판에서든 빈틈없이 메우는 완벽한 퍼즐 조각이 되는 것. 이 다짐을 매 경기 행동으로 증명해 나가는 것이 정현진의 목표다. '대학농구능력시험'을 지나, 새로운 무대에서 무궁무진한 성장 기록을 채워 나갈 그의 농구는 이제 기분 좋은 첫발을 내디뎠다.
#사진_점프볼DB, 정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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