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흐름 바꾸는 '3&D 에너자이저' 고려대 심주언(028)

이연지 기자 / 기사승인 : 2026-11-02 14: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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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연지 인터넷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번 주인공은 고려대 3학년 심주언(191cm, F)이다.

 

#001_Scan: 고려대 심주언

심주언을 농구로 이끈 건 친형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그는 형을 따라 현대모비스 유소년 농구 클럽에 발을 들였다. 이후 취미로 즐기던 농구는 4학년 무렵 출전한 대회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 그의 감각을 눈여겨본 송정초 코치가 엘리트 농구의 길을 제안한 것이다.

"처음 엘리트 제의를 받았을 때 전화로 어머니께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힘들다며 반대하셨어요. '저 진짜 하면 안 되냐'고 엄청 떼쓰고 투정을 부린 끝에야 겨우 허락을 받아냈죠. 그러고는 며칠 농구를 하고 오더니 대뜸 어머니께 '나 고려대 가고 싶어'라고 말했대요. 어릴 때부터 고려대를 진짜 좋아했어요. 그 빨간색 호랑이가 멋있어 보였거든요."

가슴에 품은 순수한 동경은 머지않아 안암골 코트를 누비는 예언이 됐다. 막연했던 목표는 송정초 진학 후 한층 뚜렷해졌다. 같은 학교 출신으로 고려대에 진학했던 전현우(대구 한국가스공사)의 존재도 그 마음을 키웠다.

"전현우 선배님이 울산 송정초 출신이라 진짜 좋아하고 많이 챙겨봤어요. 당시엔 울산 출신 선수가 많지 않았는데, 같은 슈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울산의 자랑이었거든요. 얼굴도 잘생기셔서 더 멋있어 보였고요(웃음). 그래서 코치님께 ‘전화 한 번만 하게 해달라’고 졸라서 통화도 해봤어요. 선배님을 보며 고려대에 가겠다는 큰 목표를 더 확고하게 잡았던 것 같아요."

선배의 발자취를 따르듯, 심주언 역시 일찌감치 슈터의 자질을 뽐냈다. 유소년 클럽 시절부터 뛰어난 감각을 드러내며 최상위 반에 직행했고, 송정초 진학 후에는 코치진의 지도 아래 슈터로서의 방향성을 확고히 했다.

"골 넣는 게 마냥 좋았어요. 송정초 코치님께서 계속 슈터로 키워 주셨어요. 길게 봤을 때도 '너는 슈터를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저를 위한 패턴도 많았고,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슛이 좋았어요."



당시 송정초는 강력한 압박 수비에 이은 아웃 넘버 상황에서의 속공, 그리고 세트 오펜스 상황에서의 세밀한 스크린 플레이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기본기를 중시하면서도 빠르고 자율적인 농구를 추구한 팀 시스템 안에서 심주언의 슈팅도 강점으로 자리 잡았다.

코치진의 맞춤형 지도와 본인의 타고난 슛 감각이 시너지를 낸 6학년 당시, 그는 2019 윤덕주배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초등학교 농구대회 3위라는 쾌거를 이루며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기본기와 슈팅 연습을 꾸준히 신경 써주셨어요. 당시 송정초가 윤덕주배 입상 기록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6학년 때 동기들이랑 열심히 해서 처음으로 입상을 해 좋았어요. 그때 1번(포인트가드)을 보던 김윤세(성균관대)랑 케미가 잘 맞았어요. 드리블도 잘하고 제 찬스를 잘 봐줬거든요."

송정초에서 기틀을 다진 심주언은 농구 인생의 다음 페이지인 화봉중 진학 직후, 고강도 훈련이라는 쓴맛을 제대로 마주해야 했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입에선 혹독했던 담금질의 기억이 먼저 흘러나왔다.

"완전 힘들었어요. 다시 돌아가라고 해도 중학교는 진짜 못 돌아갈 것 같아요. 수요일 하루 빼고는 새벽 운동과 야간 운동을 매일 했어요. 하루에 운동 세 번을 하고 수업도 들어야 했고요. 수요일에는 무룡고 형들이랑 연습 경기를 했어요. 동계훈련 때는 항상 울산 바다 앞을 뛰었는데, 발도 아프고 너무 추워서 '차라리 저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어요(웃음). 하지만 그 고강도 훈련 덕분에 힘든 만큼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고된 땀방울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슈팅에 특화돼 있던 그는 화봉중 특유의 수비 훈련을 거치며 공수 밸런스를 갖춘 선수로 거듭났다. 이때 소화한 수비 훈련량은 지금의 심주언을 지탱하는 기반이 됐다.

"수비 스텝이랑 속공 타이밍, 노하우를 많이 배웠어요. 화봉중 때 배웠던 수비 기본기가 지금 제 플레이의 뼈대가 된 것 같아요. 새해나 스승의 날에 (김)현수 코치님께 연락드릴 때마다 '그때 배운 게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항상 말씀드려요."

성장의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나간 심주언은 2학년 중반부터 주전으로 도약했다. 특히 양구에서 열린 주말리그 왕중왕전 안남중과의 경기는 그가 팀의 완벽한 주축으로 우뚝 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전까지는 우승을 해도 제가 주역이 아니어서 좋은 경험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러다 양구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주축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3점슛 3개에 17점을 넣었는데, 슛을 하나씩 넣을 때마다 (문)유현이 형이 계속 머리를 토닥여줬어요. 너무 따뜻하고 좋았던 기억이에요."

주전으로 도약하며 날개를 다는 듯했지만, 최고참이 된 이듬해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대회가 잇따라 취소된 데다 가장 자신 있던 무기인 슛마저 무너지며 깊은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는 단체 운동을 못 하니까 감각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혼자 마스크 끼고 스킬 트레이닝을 다녔거든요. 그런데 막상 코로나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운동할 때 보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슛폼이 확 바뀌어 있었어요. 신기할 정도로 어색해져서 슬럼프에 빠졌었죠. 망설였던 그 시기에 코치님께서 엄하게 혼내시면서 끝까지 연습시켜 주시고 '슛은 네가 최고다'라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요."



영점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 심주언은 중학교 3학년 후반기,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익숙한 고향 울산을 떠나 서울 양정고로의 전학을 택했다.

"울산에서 계속 보던 친구들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큰 환경에서 못 보던 친구들과 부딪혀보며 경쟁해 보고 싶었어요. 마침 양정고 (故) 표명일 코치님께서 '너를 슈터로 키워주겠다'며 부르셔서 확고하게 마음을 먹었어요."

양정고에 진학한 뒤, 고(故) 표명일 코치의 열정적인 지도는 길을 잃은 슈터에게 한 줄기 빛이 됐다. 무너진 슛 밸런스를 되찾기 위한 밤낮없는 특별 훈련이 이어졌다.

"표명일 코치님께서 세세하게 봐주시고 잘 알려주셨어요. 힘드셨을 텐데 주말에도 따로 나와서 신경 써주시고, 새벽에도 슛을 잡아주셨어요. 망가져 있던 제 슛폼을 지금처럼 완성해 주신 분이세요. 이민서(서울 SK), 임정현(창원 LG) 형들과 무빙슛 연습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렇게 무빙슛 쏘면서 밸런스를 잡다 보니 어떻게 쏴야 할지 스스로 터득하고 깨닫게 됐어요. 연습 경기 때 제가 슛 쏘기를 한 번이라도 망설이면 코치님이 바로 벤치로 빼버리셨어요. 스스로 밖에서 생각하며 자신감을 찾을 수 있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주신 거죠."

지독한 반복 끝에 그는 고교 무대서 무빙슛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표 코치가 세상을 떠난 뒤 양정고 지휘봉을 넘겨받은 김창모, 김수찬 코치 역시 그가 흔들림 없이 전진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프로에서 은퇴하신 지 얼마 안 된 코치님들이라 현실적인 조언과 노하우를 많이 알려주셨어요. 항상 자신감을 심어 주셔서 자신감 있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꾸준하게 연락하고 있는데 언제나 저를 믿는다고 해주시거든요. 저를 오래 보셨고 제 성향을 아시니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김창모 코치님께서도 저를 진짜 많이 신경 써주셨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주변에 늘 좋은 스승님밖에 안 계셨던 것 같아요."



중학교 시절부터 꽤 괜찮은 재목으로 꼽혔던 심주언은 양정고에서 기량을 더욱 갈고닦으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 덕분에 고교 2학년 시절, U16 국가대표에 선발돼 세계 대회 무대도 밟았다. 하지만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국제무대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연습 경기에서는 주로 수비를 맡으며 간간이 3점슛을 터뜨렸지만, 정작 본 대회에서는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벤치에서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느낀 아쉬움은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겠다는 단단한 동기부여로 바뀌었다.

"제가 대표팀에 가긴 했지만 거기서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어요. 벤치에서 동기들 뛰는 거 지켜보면서 자극도 많이 받고, 솔직히 부럽기도 했어요. 원래 성격이 여린 편이었는데 국가대표 때 못 뛰면서 마인드가 확실히 강해졌어요. 그때 마음에 품고 있던 한을 돌아와서 다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 대표팀 갔다 오자마자 열린 게 주말 리그였는데 2학년인데도 3점슛을 엄청 넣으면서 평균 30점 가까이 기록했어요."

대표팀 경험 이후 심주언의 득점력은 눈에 띄게 살아났다. 그는 2학년 주말리그 홍대부고와의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3점슛 5개 포함 33점을 올렸고, 이어진 휘문고전에서는 3점슛 4개를 곁들여 30점 12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작성했다.

팀 공격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선 3학년 연맹회장기에선 4경기 평균 30.8점 7.5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주말리그 왕중왕전 충주고와의 맞대결에서는 3점슛 8개를 터트리며 30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까지 달성했다.


#002_Life in University

마침내 꿈에 그리던 고려대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대학 무대의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두려울 것 없던 심주언조차 대학 최강 고려대의 높은 벽 앞에서는 스스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쟁쟁한 선배들의 그늘과 처음 겪어보는 압박감 속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맸다.

"고려대는 1등 팀이고 최고의 형들만 모이는 곳이잖아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와보니 적응하기가 훨씬 힘들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는 연습 경기를 하면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저도 모르게 눈치를 많이 봤어요.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저 혼자 바보처럼 주눅이 든 거죠. 플레이에서도 그게 드러나다 보니 자신감이 확 떨어졌고, 제 진짜 모습을 잃어버렸던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1학년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심주언의 활약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코트 위에서 적극성이 떨어졌고, 자신의 가장 큰 장기인 슈팅마저 흔들렸다.

"형들이 '우리도 신입생 때 다 그랬다, 눈치 보지 말고 해라'라며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몸으로 실현이 잘 안되더라고요. 감독님, 코치님도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스타일이어서 처음엔 마냥 무서웠어요. 그래도 유현이 형이 그럴 때마다 괜찮다며 연락을 주셔서 울산의 정이 느껴지고 고마웠어요."

하지만 방황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심주언은 슛이 림을 외면하는 날에도 코트 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았다. 정답은 수비와 궂은일이었다. 득점이 많지 않은 날에도 수비와 허슬 플레이로 팀에 보탬이 됐고, 기록지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공헌도를 인정받아 신입생 때부터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었다. 1학년 시즌에는 전 경기에 출전해 평균 15분 23초를 소화하며 4.7점 2.1리바운드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아 힘들 때마다 유현이 형이 같이 운동을 나가자고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너는 수비가 좋으니까 수비로도 기회를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셨죠. 그때부터 마인드를 또 바꿨어요. 연습할 때 슛이 안 들어가면 공격 잘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저는 궂은일이나 수비로 에너지를 끌어올리려고 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뛰고 눈에 들려고 노력한 모습을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신 덕분에 리그 때 출전 기회를 많이 얻은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화봉중 시절 익힌 기본기의 가치를 체감했다.

"중학교 때 '기본기를 잘 배워놨구나'를 현실적으로 느꼈어요. 대학에 와서 다른 팀 선수들이나 동기들을 보면, 수비 길을 잘 모르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 수비 기본기를 배워놓은 게 정말 큰 자산이라는 걸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신입생 시절의 혹독한 적응기를 이겨낸 그는 그해 8월 일본에서 열린 월드 대학농구 시리즈 2025(World University Basketball Series 2025, WUBS) 무대를 밟으며 한 뼘 더 성장했다.

앞선 MBC배에서 3점슛 5개를 터뜨리며 연세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해 자신감이 한껏 올라온 시기였다. 세계 무대를 실감함과 동시에 자신의 기량을 점검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기해도 자신 있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승 가서 케빈 켐바오 팀(당시 드라살레대, 필리핀)을 만났는데 진짜 다르더라고요. 수비 로테이션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춰서 가도 한 박자, 반 박자 빠르게 패스하고 슛도 좋았어요. 플로터도 잘 쏴서 똑똑하다고 생각했죠. 다른 선수한테서는 느끼지 못했던 걸 느낄 수 있었어요."



2학년 시즌 초반, 다시 흔들리는 슛 밸런스를 다잡기 위해 그는 2개월간 새벽 6시 기상이라는 루틴을 자처했다. 오롯이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외로운 싸움이었다.

"김태홍 코치님께서 저희랑 숙소 생활을 같이 하셔서 잠도 같이 주무시거든요. 그래서 슛 밸런스가 안 잡히길래 '새벽 운동 같이 해주실 수 있냐'고 부탁을 드렸어요. 흔쾌히 나와주시고 잘 알려주셔서 2개월 동안 같이 6시에 기상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했어요. 그러면서 슛이 딱 잡혔는데 그 밸런스가 중앙대 경기 할 때 느껴졌어요."

새벽 공기를 가르며 림을 갈랐던 땀방울은 보상으로 돌아왔다. 중앙대 원정에서 3점슛 3개 포함 15점 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펄펄 난 그는 그해 고려대의 '대학리그 전승 우승'이라는 금자탑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우승 속에서도 안주하지 않았다. 슈터의 숙명과도 같은 기복을 줄이는 것은 그가 늘 가슴에 품고 있는 과제였다. 슛밸런스가 흔들릴 때면 "슛은 퍼센티지가 무조건 올라가게 돼 있다. 안 들어가도 기죽지 않고 계속 쏘는 게 슈터다. 그래야 중요할 때 넣을 수 있다"라고 마인드셋을 하며 멘탈을 다잡았다.

어느덧 3학년이 된 심주언은 고려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실히 찾아갔다. 후배들이 "최고의 3&D"라며 엄지를 치켜세울 만큼 슈팅과 수비를 겸비한 선수로 자리 잡았다.



출전 시간이 늘어나며 심주언의 코트 위 존재감도 덩달아 커졌다. 3점슛 성공률(30.8%→28.2%→34.8%)과 평균 득점(4.7점→5.3점→9.5점) 모두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특히 지난 9월 경희대전에서는 3쿼터에 연속 3점슛으로 역전의 발판을 놨고, 팽팽한 접전이 이어진 4쿼터 승부처에서도 결정적인 외곽포를 터뜨리며 승기를 가져왔다. 이날 그는 3점슛 5개를 포함해 19점 7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쏟아내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그의 진가는 올해 7월에 열린 MBC배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심주언의 몸 상태는 온전치 않았다. 연습 도중 발바닥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안고 있었지만, 준결승 경희대전(26점, 3점슛 6개)과 결승 중앙대전(23점 8리바운드, 3점슛 4개)에서 폭발적인 득점력을 가동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연습하다가 발바닥 안에 근육이 찢어졌어요. 계속 너무 아팠는데 상대한테 아픈 거를 약점 잡히면 안 되니까 참았어요. 예선은 조절해 주셔서 살살 뛰었어요. 그러다가 본선부터는 상대가 강팀들이니까 아픈 거 참고 제대로 뛰었던 거 같아요. 무조건 우승하고 싶었거든요." 



MBC배 우승 이후 출전한 AUBL(아시아 대학농구 리그)에서는 피지컬 좋은 해외 선수들과 부딪히며 다른 학교는 경험하지 못하는 뜻깊은 경험도 더했다. 경기 후 상대 선수에게 '슈터다'라는 말을 들은 일은 자신의 슈팅 경쟁력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대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올해 정기전을 꼽았다.

"마지막 고려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정기전이잖아요. 1, 2학년 때는 뛰긴 했지만,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거든요. 그저 열심히 하는 선수였는데 이번엔 골을 넣을 때마다 학우분들이 다 같이 제 이름 '심주언!'을 외쳐주셨어요. 그 뜨거운 열기가 너무 느껴졌고, 압승할 수 있어서 제일 기억에 남아요."

길었던 대학 생활을 돌아보며 그가 적어 낸 좌우명은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였다.

"매년 힘든 시기는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마다 항상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 계속하려고 했어요. 그 어려운 순간을 넘으면 늘 좋은 순간이 오더라고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는 선수가 강한 선수인 것 같아요."


#003_Application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온 심주언은 이제 얼리 엔트리를 선언하고 프로 무대에 도전한다.

일찍 프로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한층 단단해진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반기 막바지부터 슛 감각을 끌어올렸고, AUBL과 일본 전지훈련에서 해외 선수들과 맞붙으며 확신을 얻었다. 결정적 계기는 프로팀과의 연습 경기였다.

"프로 형들이랑 연습 경기를 했는데 앞선 가드 형도 막아보고 큰형도 막아봤는데 크게 밀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프로는 수비 하나가 큰 것 같은데 제가 동포지션에 비해서는 잘한다고 생각해요. 슛 쏘는 것만 잘하면 3&D로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형들이랑 부딪혀 보면서 느낀 점이 많다 보니, 동기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나가서 배우는 게 다를 것 같아 도전을 결심했어요."

결심을 굳히는 과정에는 선배들의 지지도 힘이 됐다. 인터뷰 내내 과거의 기억을 꺼낼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빠짐없이 등장한 선배 문유현(안양 정관장)은 이번에도 확신을 심어주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연락을 주고받는 문유현은 "지금 잘하고 있는 거 그대로 이어서 오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확신을 심어주었다.

대학 코치진 역시 처음에는 아쉬워했지만, 그의 굳은 의사를 확인한 뒤 "수비 너처럼 하는 애는 없다. 준비만 잘 돼 있다면 가도 좋을 것 같다"며 기꺼이 도전을 응원해 줬다.

프로행을 앞둔 그에게 유일한 아쉬움은 캠퍼스의 낭만이다. 과거 문정현(수원 KT)이 "대학에 있을 때 많이 즐기고 나와라. 프로 오면 생각난다"고 조언했던 것처럼, 일반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대학 생활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얼리를 택한 그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코트 위에서의 목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심주언이 자신 있게 내세운 무기는 단연 '3&D'다.

"상대 에이스를 잘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지금까지 항상 해왔던 역할이라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1대1 수비나 수비 로테이션 센스도 좋다고 생각해요. 볼 없는 움직임이나 적재적소에 3점슛을 잘 넣어줄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장점이에요."



실제로 심주언은 2학년 때부터 팀 내 에이스 전담 수비를 도맡았다. '에이스 스토퍼'로 상대 팀의 핵심 스코어러의 발을 묶은 뒤, 수비 성공 시 누구보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트랜지션 가담 능력을 뽐내며 공수 양면에서 굵직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매 경기 상대 에이스를 막아내야 하는 역할이 체력적으로 벅찰 법도 하지만, 그는 주저 없이 수비에 대한 투지를 드러냈다.

"엄청 힘들어요. 제가 힘든 만큼 상대도 힘들다고 생각해서 웬만해서는 참고 뛰려고 하는 것 같아요. 팀원들도 수비적인 부분에서 ‘잘하는 사람은 네가 막아’라면서 저를 전적으로 믿어줘요. 허슬 플레이나 궂은일은 진짜 볼에 대한 집념이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쭉 농구 생활해 오면서 그런 부분은 항상 자신 있어서 악착같이 해내려고 해요. 언제나 슬라이딩을 할 수 있고, 공을 가져올 조그만 틈만 보인다면 몸을 던지는 데 망설임이 없어요. 그게 장점이에요. 그걸로 인해서 팀 에너지도 올릴 수 있으니까요."

더 높은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한 3&D를 넘어, 투맨 게임을 파생하거나 틈틈이 보조 핸들러 역할까지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를 위해 고교 시절 곧잘 선보였던 핸들링 능력을 프로 무대에 맞게 다시 다듬고자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핸들링이 좋다는 얘기를 항상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핸들링을 많이 했는데 대학교 와서는 많이 못 보여줬어요. 연습할 때는 핸들링도 많이 해요. 슈터로서 2대2 슛찬스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찔러주는 패스도 있어야 하잖아요. 남은 기간 동안 이 부분을 보완하고 싶어요."


#004_My Future

드래프트 컴바인까지 마친 심주언은 이제 대학 무대에서의 마지막 플레이오프만을 남겨두고 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심주언 역시 그 장면의 끝에 한 가지 목표를 분명하게 적어 뒀다.

"화려하진 않아도 팀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묵묵하게 해내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한 번씩 확실하게 터져줄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게 제 목표예요."

자신의 청사진을 그려가던 그의 시선은 이내 가장 가까운 곳, 지금까지 자신의 농구 인생을 묵묵히 지탱해 준 가족을 향했다.

"항상 뒷바라지해 주시는 어머니, 아버지, 형. 제가 앞에서는 표현을 잘 못해서 항상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고 꼭 말하고 싶어요. 제가 프로에 간다면 돈을 벌기 시작하는 거니까 제대로 효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팬들을 향한 약속과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팬분들께도 정말 감사해요. 제가 뭐라고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늘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선물도 챙겨주시거든요. 프로에 가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꼭 끝까지 살아남는 선수가 될 테니까 앞으로도 변함없이 저를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대학 생활을 돌아보며 적어 낸 좌우명은 프로 무대를 앞둔 심주언의 각오이기도 하다. 수비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기회가 왔을 때는 3점슛으로 답했던 시간. 이제 그는 고려대에서 증명한 자신의 가치를 프로 무대에서도 이어가려 한다.

#사진_점프볼DB, 이연지 인터넷기자, 심주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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