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농시] '리바운드 잘 잡는 가드' 건국대 이창현 "이제 3점슛도 많이 시도하려고요"

이연지 기자 / 기사승인 : 2026-06-13 11: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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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연지 인터넷기자] 수능 점수 대신 오직 농구 실력으로 대학 문을 두드린 신입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간.

바로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루키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여섯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황소군단의 앞선을 책임질 '건국대 이창현(178cm, G)'이다. 

 


#소년로그
이창현이 처음부터 농구공을 잡았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만 해도 축구 선수를 꿈꿨다. 전환점은 이듬해 찾아왔다. 아버지(이준호)가 코치로 지휘봉을 잡고 있던 상산초로 전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코트와 인연을 맺었다.

타고난 감각을 바탕으로 5학년 때부터 형들과 실전 경기를 치르며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의 농구 인생은 어쩌면 필연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남동생 이승현 역시 화봉중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을 정도로 집안 전체에 진한 농구 DNA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는 아버지가 코치다 보니 많이 혼나서 힘들었어요. 중·고등학생이 된 뒤부터는 고칠 것만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셔서 그 부분에 집중해서 운동할 수 있었죠."

상산초에서 기본기를 다진 이창현은 상주중으로 진학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은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암초와 슈팅 기복으로 인한 성장통이 겹친 시기였다.

"중학생이 됐을 때는 코로나19로 대회가 잇달아 취소되던 시기였어요. 1학년 때는 주말리그 하나밖에 치르지 못했죠. 적응도 더뎌서 농구 자체가 힘들게 느껴졌어요. 2학년 때는 슈팅이 약점이었는데, 아버지께서 계속 지적해 주셔도 마음처럼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스트레스가 컸고요. 그래도 동계훈련을 열심히 하면서 3학년 때는 화봉중, 용산중도 이겨보며 '이제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런데 막상 본 대회에 들어가니 생각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았고 성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그래도 소년체전에서 결승 무대를 밟을 수 있어서 기분 좋게 마무리했던 것 같아요."


 

이후 이창현은 더 큰 도약을 위해 울산 화봉중으로 둥지를 옮겼다. 고교 진학 연계와 전국체전 출전 요건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이적에 따른 출전 제한 규정 탓에 무룡고 진학 후 1학년 시절에는 종별선수권과 전국체전, 단 두 개 대회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코트 위에서 활약하는 친구들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던 만큼 속앓이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전자고에 진학할 예정이었는데 아버지 권유로 무룡고에 가게 됐어요. 1학년 때는 이적에 따른 패널티 때문에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죠. 저는 못 뛰는데 친구들은 코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해서 힘들었어요. 그래도 2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농구를 해서 좋은 기억이 정말 많아요."
 

오랜 기다림 끝에 본격적으로 코트를 누비기 시작한 이창현은 고교 무대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수비를 기조로 하는 전통의 가드 명문 무룡고에서 그는 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팀 사정상 스몰포워드까지 소화했던 다재다능함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빛을 발했다. 그는 김건하, 소지호와 함께 강력한 에너지 레벨을 자랑하는 백코트 트리오를 구축했다.

수많은 기억 중 이창현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경기는 3학년 때 치른 제50회 협회장기 4강전이다. 그는 해당 대회 평균 11.1점 9.3리바운드 7.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4강에서 경복고를 꺾었던 기억이 가장 생생해요. 상대가 예선에서 용산고와 2차 연장까지 가서 올라왔거든요. 저희는 직전 대회에서 용산고에 패했던 터라, 솔직히 경복고는 '넘기 힘들겠다' 싶었죠. 하지만 시합 전 김진호 코치님이 전술을 워낙 잘 짜주셨고, 저희끼리도 비디오 미팅을 많이 하면서 독기를 품었어요. 그날은 웜업 때부터 슛감이 좋았는데, 코트 위에서 모든 삼박자가 다 맞아떨어지며 승리할 수 있었어요."



#대학농구능력시험
고등학교 시절의 알찬 성적표를 들고 대학에 입학한 이창현. 하지만 정작 새로운 출발선에서 스스로에게 매긴 등급표는 꽤 냉정했다. 가장 자신 있는 수비와 경기 운영 항목에는 2등급을 매겼지만, 공격과 외곽슛에는 4등급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 엄격한 성적표는 앞으로 그가 보여줄 활약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특히 그가 수비에서 자신감을 보인 배경에는 고교 시절의 밀도 높은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무룡고 시절 앞선을 책임지며 온몸으로 부딪혀 얻은 감각은 그의 수비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킨 자양분이 됐다.

"원래 수비가 제 장점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농구를 계속하다 보니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어느 정도 예측이 되더라고요. 저보다 키가 크고 힘이 좋은 선수들도 미리 길목을 차단하거나 드라이브를 들어올 때 첫 스텝에 맞춰 몸을 부딪히면 쉽게 뚫리지 않아요."

경기 운영 능력 역시 고교 시절에 다질 수 있었다. "경기 보는 눈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았는데, 동생도 눈이 좋은 걸 보면 아버지의 영향이 확실히 큰 것 같아요. 그리고 무룡고 때 (김)건하가 워낙 똑똑하니까 상대방이 존디펜스 설 때 깨는 거를 많이 배웠어요. 건하가 말하면 말하는 대로 다 되니까 신기하더라고요. 그때 체득한 게 있어서 대학교 와서도 존은 확실히 잘 깰 수 있어요."



하지만 이창현의 플레이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무기는 따로 있다. 바로 '리바운드' 본능이다. 178cm의 가드임에도 골밑을 파고드는 집요함은 기록이 고스란히 증명한다.

그는 2024년 제54회 추계연맹전 상주대회에서 팀을 공동 3위로 이끄는 동시에, 가드로서는 이례적으로 리바운드상을 수상했다. 고교 2학년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두 차례 트리플더블을 기록했고, 전국체전에서도 트리플더블을 작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악착같은 리바운드였다. 이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습관의 결과였다.
 

"초등학교 때는 6학년 선수가 저밖에 없어서 센터도 맡아야 했어요. 그때 키가 155cm 정도였는데도 리바운드를 잘 잡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중학교에 가서는 키도 더 크고 힘과 스피드도 붙다 보니 리바운드를 잡자마자 드리블로 치고 나가 바로 레이업까지 연결하는 코스트 투 코스트 플레이도 자주 했어요. 그때부터 리바운드를 잡는 게 몸에 익었고,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듯 수비와 리바운드에서 확실한 강점을 가졌음에도, 이창현은 공격에서만큼은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았다. 외곽슛 항목에 '4등급'을 매긴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공격력은 학창 시절 코치진의 가르침 속에서 다듬어진 날카로운 원석에 가까웠다. 특히 중학교 시절의 한 일화는 이창현의 내면을 한층 더 견고하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

"중학교 때 박종덕 코치님이 제가 공격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마련해 주셨어요. 하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제가 경기를 잘 못하니까 코치님이 크게 호통을 치셨어요. 그때 제가 너무 어리다 보니까 서러워서 울어버린 거예요. 그랬더니 코치님이 '너 집 가'라고 하셔서 진짜 많이 무서웠어요(웃음). 하지만 엄하게 가르치시면서도 농구 외적으로는 전혀 터치를 안 하셔서, 오히려 운동에만 더 미친 듯이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때의 굳은살이 남아 있기에 이창현은 여전히 공격에 대한 갈증과 잠재력을 동시에 품고 있다. 실제로 대학 리그 9경기에 나서 50%(12/24)라는 팀 내 가장 높은 3점슛 성공률을 기록 중이다. 그럼에도, 그는 "리그 초반에 잘 들어갔다고 잘하는 게 아니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재의 기록보다 끊임없는 성장을 갈망하는 신입생 이창현의 단단한 내면이 와 닿는 대목이다.


#대학로그
이창현은 자신의 무기를 들고 건국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건국대는 김준영의 졸업으로 포인트가드 자리가 공백인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 이창현이 가세해 올 시즌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상대의 볼 흐름을 읽어내는 스틸과 전광석화 같은 속공 전개, 그리고 동료의 타이밍을 살려주는 센스 있는 패스는 왜 그가 루키 시즌부터 꾸준히 출전 기회를 받으며 코트를 밟고 있는지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학 무대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초반에 마주한 신고식은 유독 시렸다.

"건국대 와서 제주도 동계훈련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제가 햄스트링이 아파서 잠시 쉬었어요. 복귀했는데 바로 발목을 다쳤고, 다시 복귀하려니까 독감에 걸려서 일주일 조금 넘게 쉬었죠. 그때 쉰 게 많이 크더라고요. 더 잘할 수 있는데, 아직인 것 같아요."

훈련 공백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주한 대학 리그 데뷔전(3월 26일 vs 고려대)은 그에게 진한 잔상을 남겼다. 새로운 무대가 안겨준 낯선 긴장감 속에서, 이창현은 첫 경기를 돌아보며 신입생다운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원래 경기 들어가기 전에 긴장을 잘 안 해요. 근데 빨간색 유니폼 보이고 형들 키도 다 커서 그때 처음으로 경기 들어가자마자 긴장하고 몸에 힘도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빨리 나왔어요(웃음). 이제는 긴장 안 해요. 그렇다고 많이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아요. 제가 아직 공격에서 소극적이에요. 코치님께서 '능력 있으니까 믿고 자신 있게 하라'고 말씀 많이 해주세요.
"

여기에 건국대의 시즌 초반 4연패가 겹쳤다. 늘 이기는 농구에 익숙했던 그였기에, 대학 입학 후 마주한 팀의 패배와 짧은 출전 시간은 농구공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크게 다가왔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의 따뜻한 품과 코치진의 한결같은 신뢰였다.

"고등학교 때는 맨날 4강에 가고 경복고, 용산고한테만 졌는데 건국대에서 계속 아깝게 지고 경기도 많이 못 뛰어서 '농구하지 말까' 생각도 했어요. 뭔가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농구가 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힘들어서 아버지께 속마음을 털어놓았어요. 아버지는 '아직 1학년이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심을 기르며 천천히 하라'고 다독여 주셨죠. 코치님께서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은 안 했는데 '열심히 하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마음을 다잡고 다시 훈련에 매진했더니, 중앙대전 때 선발로 뛰었어요."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 이창현은 이제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았다. 1학년답지 않은 넓은 시야로 코트를 읽으며 화려한 스핀무브에 이은 과감한 슛을 시도하는가 하면, 때로는 노련한 파울로 상대 공격 흐름을 뚝뚝 끊어내기도 했다. 한때 "농구를 그만둘까" 고민했던 초반의 흔들림이 무색하게도, 그는 어느새 대학 무대에 완벽히 녹아들어 건국대에 꼭 필요한 조각이 돼 있었다.

특히 단국대전은 이창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대학 농구 팬들에게 각인시킨 경기였다. 강점인 강한 수비는 물론, 외곽에서 무려 4개의 3점슛을 꽂아 넣으며 12점을 올렸다. 그중에서도 승부의 분수령이었던 3쿼터에만 3점슛 3개와 짜릿한 버저비터까지 성공시키며 경기의 흐름을 건국대로 완벽히 가져왔다.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터진 알짜배기 활약이었다.

연세대전에서도 감각은 이어졌다. 3쿼터 종료 직전 코너에서 성공시킨 3점슛으로 팀의 분위기를 살렸고, 치열했던 연장전 승부처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 있게 슛을 시도하며 제 역할을 다해냈다. 이 기세는 명지대전(3점슛 3개)까지 연결됐다. 깜짝 활약이 아닌 완연한 상승세 속에, 어느새 외곽에 대한 두려움마저 지워낸 가드로 거듭나고 있었다.

"원래 3점슛이 좋은 편은 아닌데, 단국대전에 다 들어가서 저도 솔직히 놀랐어요. '안 들어가도 무조건 쏴보자' 하고 던진 게 들어가면서 팀 분위기도 살아났죠. 코치님께서 대학교는 슛 타이밍이 느리면 한 개도 못 던진다며 잡자마자 빠르게 쏘라고 강조하셨거든요. 그래서 동계 훈련 때부터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이)주석이 형이랑 (백)경이 형이 잘 알려준 덕분에 그때부터 슛이 좋아진 것 같아요. 자신감 있게 던지면 들어간다는 믿음을 갖고, 앞으로도 더 과감하게 시도해 보려고요."


이창현은 이내 진지한 눈빛을 되찾았다. 누군가의 뒤를 쫓는 롤모델에 갇히기보다, 코트 위 모든 에이스의 장점을 흡수해 '무결점 선수'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다. 그의 시선은 이제 개인의 성장을 넘어, 대학 무대에서 반드시 도달하고자 하는 '우승'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최정상에 있는 팀을 꺾고 올라가서 우승하는 게 훨씬 더 멋있잖아요. 건국대에는 뭉구도 있고, 모든 형들이 다 같이 열심히 하고 있어요. 리그 1위 팀을 이기고 우승하는 게 제 확실한 목표예요."

시즌 초반의 시행착오를 담담히 지나온 이창현은 이제 코트 위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새겨가고 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 진하고 선명해지는 그의 색깔처럼, 이창현의 농구도 조금씩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제 그의 여정은 막 첫 발을 뗐을 뿐이다.

 

▲이창현과 동생 이승현


#BONUS | 일상로그
유니폼을 벗고 코트 밖으로 나오면 그 역시 풋풋한 캠퍼스 새내기다. 대학 생활의 로망을 묻자, 이창현은 영락없는 스무 살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특별한 로망이 없었어요. 축제도 해봤자 얼마나 재밌겠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더라고요(웃음). 축제 첫날에 츄가 왔는데 정말 예뻤어요. 그때 '이게 바로 대학교 축제구나' 싶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한 것도 잠시, 동생과의 일화를 묻자 툭툭거리면서도 은근히 챙기는 끈끈한 '현실 형제 케미'가 묻어났다.

"고등학교 때, 동생도 울산에 와서 같이 자취를 했어요. 같이 있을 때는 제가 맨날 빨래시켜서 동생이 저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웃음). 근데 제가 대학교 와서 지금 동생이 혼자 사니까 심심한지 연락이 자주 와요. 보고 싶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게 좋아요."



가족만큼이나 그를 지탱하는 안식처는 고교 시절 최고의 영혼의 단짝 김건하다. 이제는 각자 다른 무대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지만, 이들의 우정만큼은 여전했다. 이창현이 그의 첫 경기를 직접 찾아가 응원하기도 하고, 그 역시 이창현의 경기가 있는 날 충주까지 발걸음을 아끼지 않았다.

"건하랑은 이틀에 한 번은 연락하는 사이에요. 같은 중학교 출신은 아닌데, 그 시절엔 원체 말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올라와서 저를 만나 그런 건지는 몰라도 확실히 말수가 많아졌대요(웃음). 그래서 왠지 더 애정이 가요. 건하뿐만 아니라 울산 친구들이랑은 초·중학교 때부터 연습 경기를 많이 치른 사이라,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사진_이창현 제공,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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