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끝내 갑옷을 벗은 사나이, 고양 오리온 이대성

민준구 기자 / 기사승인 : 2020-11-28 20: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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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한때 무거운 갑옷을 입었던 남자가 있다. 그가 속한 팀은 KBL 정상에 올랐다. 그 또한 코트에선 특출한 재능으로, 코트 밖에선 선명한 말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맛본 영광은 짧았다. 오히려 자신과 맞지 않은 곳을 전전하며 번뇌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봄 자유의 몸이 되자 그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을 찾았다. 지금 갑옷을 벗고 코트 위를 활보할 수 있게 됐으니 그가 바로 이대성이다. 자신의 농구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자신한 이대성. 고양 오리온의 야전사령관으로서 선보일 그의 농구는 과연 무엇일까(본 인터뷰는 10월 14일 진행되었습니다).

 

※ 본 인터뷰 기사는 점프볼 11월 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여름
올해 여름은 이대성이란 세 글자만으로도 후끈 달아올랐다. 생애 첫 FA의 순간, 장재석과 함께 최대어로 꼽힌 그는 우여곡절 끝에 오리온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예상치 못한 저평가 속에서 잠시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이대성은 이를 더 악물었다.

Q. 매해 여름마다 큰 관심을 받는 것 같다. 올해는 FA가 가장 큰 이슈였는데 특별하게 느껴졌나.

FA는 아니었지만 예전부터 연봉 조정 신청, 또 보상 선수 제외 등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 G리그 진출 역시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일이 아니었나. 매해 오프 시즌은 비슷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FA라고 해도 크게 다른 느낌은 없었다. KCC에서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잔류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라건아라는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친구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도 소중했다. 사실 (라)건아는 KCC에서 1년 더 뛰어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그래서 아예 고려를 안 한 건 아니다. 처음 KCC에 합류했을 때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시즌을 소화하면서 조금씩 느껴지는 게 있었다. 농구에는 여러 정답이 있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나는 흘린 땀이 곧 또 다른 정답이라고 보는 사람이다. 커리어의 정점에 있어야 할 시기에 팀이 원하는 농구와 내가 추구하는 농구는 서로 다른 길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FA로 나올 때도 KCC에 미리 말씀을 드렸다. 개인 감정은 없다. 농구선수로서 욕심이 많은 만큼 지금까지의 신념, 그리고 흘린 땀을 생각하면 나를 더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Q. FA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선수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처음 FA가 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모든 게 새로웠다. 다만 나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것도 조금 알게 됐다. 어쩌면 KCC에서 보낸 짧은 생활이 내게는 많은 약점이 드러난 때였던 것 같다. KCC에서의 이대성은 진짜 이대성이 아니었다. 사실 농구를 하면서 인정할 수 없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부상도 있었지만 내가 가진 걸 전혀 보이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속상했다. 그러다 보니 외부 평가도 썩 좋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었다. 이로 인해 이기면 좋고 지더라도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항상 부족한 사람이었고 매번 발전해왔다. 남들은 정체된다고 하는 상무에서도 발전했다. 그런 나인데 그때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니 참 비참했던 것 같다. 이대성이란 사람이 좋게 쓰일 팀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그때 찾아온 어려움은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잠깐의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버텨왔다. 해외 진출에 대한 계획도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무산됐다고 하던데. 2018-2019시즌이 끝난 후 보수 문제로 시끌시끌했던 그때, 내가 내린 선택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해외 진출이었다. 사실 그걸 가장 우선시했다. 실제로 일본, 호주 프로팀과 여러 번 미팅을 하기도 했고 미국에서 5월에 열릴 서머리그 미니 캠프 이야기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실 30대에 접어든 지금 상황에선 미국 진출이 조금은 늦은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전에 대한 의지가 컸다. 미국에서 보더라도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내가 적합하기도 했고.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게 무너졌다. 나는 특별해지고 싶은 게 아니다.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다. 다만 농구 선수로서 더 발전하기 위해 기회를 만들고 또 경쟁하려 하는 것이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라면 인정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19라는 예상 못한 변수로 인해 많은 게 꼬였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갈 팀은 두 글자라고 이야기했다. 파장이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듣는 분들이 재밌으라고 이야기한 거였는데 기사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실 FA 시장에서 선수들이 어떤 매체에 출연해 “어디로 가고싶다”, “어떤 팀을 원한다”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다.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팬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Q. FA 협상 과정이 예상외로 많은 부분이 노출됐다. 당사자 입장에선 조금 난처했을 수도 있을 텐데.

한 명의 프로스포츠 선수로서 나에 대한 일이 누군가에게 평가되는 것은 공인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다. 사실이 아닌 부분들까지 이슈화되는 경우가 있었다. 최근 들어 여러 플랫폼을 통해 농구를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사실인데 그런 부분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마치 언급된 부분이 무조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다는 점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Q. 오리온은 FA 시장이 끝나가기 직전에 참전한 팀이었다. 협상 과정은 어땠나.

이전에 KT와 여러 대화를 나눈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리온은 처음부터 긴밀하게 대화를 나눈 팀은 아니었다. (장)재석이와 재계약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재석이가 현대모비스로 가게 되면서 그때 기회가 주어졌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가정이 생기면 금전적인 부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중요했던 건 바로 내가 하는 농구의 발전이었다. 현대모비스에선 그게 가능했다. 내가 생각하는 농구, 승리로 빨리 갈 수 있는 농구, 팀에 보탬이 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포지션, 그리고 감독님이 내게 원하는 포지션이 일치해야 한다. 팀 문화, 방향, 분위기 등에 대한 궁합이 잘 맞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금전적인 부분보다 가치 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오리온은 새로운 감독님이 오셨고 또 강을준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 않나. 언론에서 언급하는 부분만 봤는데 그때까지 함께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한 번의 만남으로 인해 내가 이곳으로 향할 줄은 몰랐다. KT와 협상이 지지부진해진 그 상황에서 오리온과 대화는 또 하나의 기회였다. 오리온은 재석이를 놓친 상황이었다. 차선책으로 나와 대화를 원했는데 강을준 감독님께서 직접 나와주시더라. 여러가지 대화를 나눴고 그중 하나가 바로 갑옷 이야기였다.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당시에는 감동을 받았다. 알게 모르게 나라는 사람이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코트 안은 물론 밖에서도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발목 부상이 있어 코트 밖에서는 편히 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인 코트에서도 쉽게 웃을 수 없었다. 현대모비스에 있었을 때는 항상 코트 안이 내 인생에 있어 돌파구가 되었다. 힘들고 지친 일이 있을 때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는 공간. 내게는 그런 곳이 필요했다. 

 

Q. 갑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는 말도 이때 나오지 않았나.

 

강을준 감독님을 처음 뵙는 자리는 조금 신기했다. 보통 FA 협상 과정에서 나눴던 대화들과는 성격이 달랐다. 특히 (강을준)감독님은 “네가 지금 어떤 선수로 평가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중요한 게 있어. 어렸을 때부터 봐왔는데 넌 무거운 갑옷을 입고 농구 하는 것 같아. 그냥 한번 신나게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줄게. 갑옷 말고 유니폼을 입고 뛰어야 해”라고 하시더라(웃음). 농구 선수가 유니폼을 입고 신나게 뛰어야 한다는 말에 큰 신뢰가 갔다. 이후 KT와 협상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고 미아가 된 나를 받아준 것 역시 오리온과 감독님이었다. 앞으로 어떤 성적, 어떤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막연한 목표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의심했던 이대성이라는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준 이들을 위해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뛰려 한다.

Q. 결혼기념일에 일어난 깜짝 파티는 또 어떤 이야기인가.

아! 사실 오리온과 협상하는 시기에 아내와 결혼 기념일이 있었다. 나도 잊고 있었던 일이었는데 감독님과 김태훈 사무국장님이 술과 케이크를 선물해주시더라. 아내는 남편도 챙겨주지 않는 결혼 기념일 선물을 주신다며 기뻐했다. 물론 나는 혼났지만. 하하.  

 

고양에서의 첫 비시즌 

이대성의 새 보금자리가 된 오리온. 2019-2020시즌 최하위에 머문 그들은 노장들의 연이은 은퇴 및 이적으로 전력누수가 극심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대성은 희망을 봤다. 주장 허일영을 중심으로 최진수, 이승현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했고 강을준 감독이 약속한 자신만의 농구를 펼칠 수 있다는 것에 기대했다. 그리고 그렇게 오리온에서 첫 비시즌을 보냈다.

Q. FA 협상 과정에서 오간 대화가 비시즌 때부터 현실로 이어졌는지 궁금하다.

나는 어린 선수가 아니다. FA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감독님이 해주시는 말들이 모두 지켜질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 전부 다 지켜주고 계신다. 특별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닌데 마음 편히 농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고 해야 할까. 내가 FA 이적생이라 할지라도 편애하거나 특혜를 주는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고 신나게 할 수 있는 농구, 눈치 안 보고 내가 결정지을 수 있는 농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Q. 오리온 선수들과 관계는 괜찮은 편인가? 국가대표에서 한솥밥을 먹은 선수들이 있어 큰 걱정은 없었을 것 같다.

새로운 팀, 새로운 선수들과 시즌을 준비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사실 비시즌을 제대로 소화한 게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매해 부상, 국가대표 차출, 상무, G리그 도전 등 여러 이슈가 있어 언제 여름 운동을 제대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오리온에서는 크게 어색한 부분도 없었고 오히려 편했다. 국가대표 동료들도 많고 나 역시 새로운 마음으로 힘을 내려고 했더니 금세 적응하더라. 특별할 것 없이 지내던 어느 날은 문득 ‘내가 오리온 유니폼을 입고 뛰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오리온에서 과연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그리고 어떤 농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끔 하는 계기였다. 오로지 농구만 할 수 있다는 사실, 다른 부분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있어 행복했다. 

Q. 가장 반겨주는 이는 누구였나.

(이)승현이와 (최)진수 형이 가장 반겨줬던 것 같다. (박)재현이는 임호중 시절부터 알던 형, 동생하는 사이다. 상무에선 1년 동안 같은 방을 쓸 정도로 친했는데 오리온에서 다시 만나게 돼 기뻤다. 이외에도 주장 (허)일영이 형부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반겨줬다. 강을준 감독의 지도 스타일에 대해 익숙해지고 있나. 함께한 지 3~4개월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웃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감독님은 도인인 것 같다. 신선이라고 해야할까.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겼거나 패했을 때 모두 항상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자신감을 높이고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확실히 심어주시기도 한다. KBL 컵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는 오히려 더 크게 혼나기도 했다. 절대 방심하면 안된다면서 말이다. 근데 개막 후 KT 전, KCC 전에서 모두 패했을 때는 웃으며 분위기를 살려주셨다. 전체적으로 모든 예측이 빗나가는 분인 것같다. 도인이다.

Q. 오리온은 그동안 확실한 포인트가드가 없었던 팀이다. 어쩌면 이대성과 오리온의 인연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런 부분은 잘 모르겠다. 다만 오리온은 매번 기대가 되는 팀이다. 제프 위디가 아픈 상황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건 솔직히 아쉬운 점이다. 공격에 대해선 의심이 필요 없다. KT와 벌인 3차 연장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경기였다. 수비가 조금 아쉬운데 위디가 돌아온다면 우리의 약점은 사라진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것 같다. 지금이 완전체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라도 말이다.

Q. 강을준 감독이 본인의 새벽 훈련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굉장히 드문 일인데 어떻게 된 것인가.

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이 생각한 대로 흘러갔으면 하는 사람 중 하나다. 새벽 훈련도 마찬가지다. 남들보다 조금 덜 자고 그 시간에 몸을 단련하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하게 됐다. 예전에는 새벽훈련을 안 하면 절대 안 됐다. 내가 정해놓은 루틴을 지키지 못하게 하거나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인 사람이 있으면 다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올해에는 감독님께서 새벽 훈련은 자제했으면 한다는 말씀을 주시고 나선 안 하고 있다(웃음). 대신 선수들이 잠깐 휴식을 취하는 낮에 안 자고 운동을 하고 있다. 그만큼 내가 생각하는 틀을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갑옷을 벗고 MVP가 되다
이대성과 오리온이 새로워진 자신들의 모습을 처음 보여준 무대는 KBL 컵대회였다. 외국선수들까지 출전할 수 있었던 이 대회에서 오리온은 전승 우승을 차지하며 초대 챔피언이 됐다. 갑옷을 벗고 자신의 기량을 당당히 MVP가 된 이대성. 환상적인 시작이었다.

Q. 초반을 제외하면 굉장히 쉽게 흘러간 대회가 아니었나 싶다. 또 KT, KCC 등 본인과 얽혀 있는 팀들과 경기는 더욱 특별했을 것 같다.

상무와의 첫 경기에선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3쿼터부터 점점 제 컨디션을 찾는 느낌이 있었다. KT, KCC 전 모두 개인 감정은 없었고 오로지 팀 승리만을 위해 뛰었다. 대신 KT 전은 (허)훈이와 맞대결이었던 만큼 기대가 컸다. 지난 시즌 MVP이지 않나. 이외에도 (허)웅이, (두)경민이 등 (양)동근이 형이 은퇴한 지금 나와 경쟁해야 할 선수들과 만나고 싶었는데 훈이와 맞대결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재밌었던 대회였던 것 같다.

Q. KCC에서 이대성과 오리온에서 이대성은 분명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KCC에 있을 때 나는 모든 상대가 두려웠고 무서웠다. 버거웠다는 표현이 가장 잘 맞아떨어지지 않을까. 부상부터 내부적인 요인이 쌓이면서 상대 선수와 경쟁에 온 힘을 다 쏟을 수 없었다. 훈이가 그 대표적인 선수였다. KCC에 있을 때 맞붙으면 항상 힘들었다. 하지만 오리온에서는 훈이가 전혀 버겁지 않더라. 오히려 더 재밌게 경기했다. 물론 훈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컵대회인 만큼 전력을 다하지 않았겠지만 어느 정도 의미를 찾지 않았나 싶다. 우승, 그리고 MVP라는 결과도 좋지만 무엇보다 오리온이라는 팀에서 현대모비스 시절 느꼈던 감정을 다시 가지고 싶었다. 누구를 만나든 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말이다.

Q. 본인과 최악의 궁합을 보인 KCC와 4강전, 누구의 농구가 옳은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승부였다.

굉장히 재밌었다. FA 이후 KCC와 처음 만난 경기였다. 나의 농구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신념을 믿을 뿐이다. 내가 속한 집단은 팀 스포츠를 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옳은 사람이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다를 수 있다. 다만 틀린 것은 아니다. KCC에서 아쉬웠던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특별한 의미부여는 하지 않으려 했지만 조금은 나의 농구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나라는 사람이 포인트가드를 한다고 했을 때 그 누구도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중앙대 3학년 때 처음으로 포인트가드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후로 지금까지 말이다. 대한민국은 항상 맞고 틀린 것으로 나뉜다. 이분법적인 사고가 조금은 더 유연해졌으면 한다. 옛날에 데니스 에드워즈라는 선수가 막슛으로 유명하지 않았나. 지금 보면 그의 슛은 플로터로 설명된다. 고급 기술인데 그때는 이상한 슛을 던지는 이상한 선수에 불과했다. 지금의 내가 에드워즈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먼 미래에는 나의 농구도 우리가 아는 농구의 하나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2018-2019시즌 플레이오프 MVP에 이어 또 한 번 최고의 선수가 됐다.

솔직히 다른 선수들이 받았으면 했다. 승현이나 일영이 형이 정말 잘해주지 않았나. 진수 형도 그렇고. 그래도 나라는 사람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에 기분은 정말 좋았다. 또 팀원들이 주는 큰 선물인 것 같기도 했고. 아내도 많이 좋아하더라. 주변 분들도 축하한다고 한 번씩 연락을 주셨다. 내가 하는 농구가 모두 틀렸다고 하니 꼭 증명하고 싶었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가 필요했다. MVP라는 결과로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2연패에도 이대성이 웃는 이유
부푼 마음을 안고 시작한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아쉽게도 오리온은 인터뷰 시점까지 개막 2연패 수모를 겪고 있었다. KT와의 3차 연장 접전 후유증이 다음 경기였던 KCC 전까지 이어진 것. 그런데도 이대성은 웃었다.

Q. 개막 2연패의 아픔은 상당히 컸을 것 같다. 예상하기 힘든 결과이기도 했을 것 같은데.

KT 전 연장 접전이 꽤 크게 다가왔다. 차라리 연장을 가지 않고 패했다면 KCC 전은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것 같은데…. 주말 연전에 부산-고양을 오가야 하는 일정이라서 너무 힘들었다. 3차 연장 접전인 만큼 승리하면 다음 경기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겠지만 패하는 순간 연패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기운도 있었다. 개막 2연패를 하면 대부분 울상을 짓기 마련이다. 근데 팀 분위기나 감독님, 그리고 선수들의 얼굴을 보면 우리가 2연패를 한 팀 같지가 않다. 결과는 최악이었지만 다시 올라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Q. 오리온의 아킬레스건은 얇은 선수층이다. 팀의 에이스로서도 분명 느끼는 문제일 것 같은데.

우리 선수층이 얇은 건 언제나 터질 수 있는 문제였는데 하필 개막 2경기에서 나와버렸다. 만약 초반에 4~5연승을 했더라도. 똑같은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위디가 돌아오면 해결될 부분이기도 하다. 승현이의 백업 문제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좋은 빅맨이 들어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주전 선수들이 40분을 뛸 수는 없다. 그 부분은 감독님도 잘 알고 계신 만큼 좋은 답을 주실 거라고 믿는다.

Q. 단기전에서 강점을 살리기 위해선 6강 플레이오프에 올라야 한다. 노림수가 있지 않을까.

플레이오프는 분명 다르다. 아니 단기전 자체가 시즌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우승 경험, 그리고 반지를 가지고 있지 않나. 그래서인지 감독님도 1차 목표를 플레이오프에 두신 것 같다. 만약 단기전까지만 끌고 갈 수 있다면 누구든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있다.

Q. 위디와는 손발을 맞춰본 적이 있나? 그에 대한 기대감도 클 것 같다.

대화를 나눠보면 정말 똑똑한 선수라는 걸 알 수 있다. 자신도 대단하지만 코트 위에 설 때 동료들을 더 스탭 업하게 만들어주는 선수다. 2대2 플레이부터 다양한 부분에서 내게 이야기를 많이 건넨다. 앤서니 데이비스와 NCAA 토너먼트 결승에서 자웅을 겨룬 센터이지 않나. 수비 하나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지금 (디드릭)로슨이 홀로 힘겨워하고 있는데 어서 돌아와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시작은 좋지 않지만 이제 시즌 초반일 뿐이다.

Q. 오리온은 이번 시즌 강력한 다크호스로 꼽히고 있다. 그들과 함께 어떤 목표를 두고 달려갈 생각인가.

당장 앞에 놓인 일들이 아닌 이상 먼 미래를 미리 생각하는 성격은 아니다. 지난 시즌도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미리 무언가를 정해두지 않으려고 한다. MVP, 우승 등 이런 것보다 그냥 “이대성과 뛰면 재밌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라건아와 함께 최고의 영광을 누렸을 때는 나머지 세 선수가 많이 희생했다. 오리온에서도 빛나는 선수가 있으면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도 나와 함께 뛰면 정말 재밌었다는 생각을 가져줬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도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

BONUS ONE SHOT I | 이대성이 치열하게 사는 이유
이대성은 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강을준 감독의 권유로 새벽 운동은 안 하고 있지만 대신 낮잠을 줄여 그 시간을 따로 활용하고 있다. KBL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그가 여전히 혹독할 정도의 자기관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위한 노력일까.이대성은 “농구 선수로서 나는 믿을 수 있는 구석이 없다. 삼일상고 때부터 중앙대, 브리검영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절박함 없이 지내온 날이 없다. 절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가진 걸 지키려고 하는 게 아니다. 독한 마음, 간절함을 통해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증명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평가, 부상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1시간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걸 10시간은 해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혹독했던 이대성.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건 아닐까. 끝으로 이대성은 “집에서도 걱정할 정도로 내 신념이 모두 옳은 건 아니다.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다시 고쳐서 나아가야 한다. 다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을 때는 간절함이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며 자신했다.

BONUS ONE SHOT II | 양동근 떠나보낸 이대성의 진심
“대단했던 선수, 그리고 형” 

 

2020년 10월 11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는 KBL 역대 최고의 커리어를 자랑하는한 남자가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6개의 우승 반지를 얻으며 KBL의 새 역사를 쓴 남자 양동근이 은퇴식을 치른 것이다. 비록 현장에서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옆을 든든히 지켰던 이대성 역시 위대한 선수의 마지막을 마음속으로나마 함께했다. 이대성은 “사실 나는 (양)동근이 형보다 김승현, 전태풍 선배의 플레이를 더 좋아했다. 화려하게 농구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 하지만 세월이 지나 미국 농구를 경험해보면서 동근이 형의 농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기본에 충실하며 어떤 순간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라며 “동근이 형은 내게 있어 최고의 형이자 선수였다. 그 누구보다 화려한 마지막 인사를 했어야 할 동근이 형이 쓸쓸하게 떠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양동근이 떠난 현재 KBL은 난세에 돌입했다. 이대성을 비롯해 김선형, 두경민, 허훈, 김낙현 등 수많은 선수들이 최고의 가드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대성은 “언젠가 유재학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강동희, 이상민 다음이 양동근이라면 그 다음은 너가 될 수있다’라고 말이다. 지금도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있다. 난 10년 뒤 받을 평가에서 반드시 동근이 형 다음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사진_점프볼DB(홍기웅, 박상혁 기자)

 

점프볼 /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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