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랜 내공으로 만들어진 승부사, 인천 신한은행 정상일 감독

강현지 기자 / 기사승인 : 2020-11-29 1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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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편집부]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정해진 길은 없다. 특히 지도자가 되기 위한 방법은 너무도 많고 또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건 당연한 자격이 아닐까. 인천 신한은행의 정상일 감독은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를 밟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오랜 코치 생활, 또 중국에서의 고된 삶을 극복해낸 그는 여자농구계의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른 지도자와는 차별화된 길을 걸었던 정상일 감독의 인생.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점프볼 취재진이 나섰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배움의 연속에서 다양한 경험 쌓고 지도자로
정상일 감독에게 젊은 시절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화려하지 않았던 선수 시절을 일찍 마무리한 채 평범한 회사원을 꿈꿨던 그는 어느새 한명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매니저, 프런트 등 다양한 직책을 경험한 뒤 찾아온 지도자 인생. 정상일 감독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천천히 자신
의 노하우를 쌓아왔다.  

 

김용호_ 선수 시절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스타일의 선수였나.
농구를 시작한 건 5학년 때부터였다. 신장이 꽤 큰 편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센터였는데 중학교에선 포워드였다. 키가 안 크니까 포지션도 점점 내려왔다. 고등학교 때는 또 스몰포워드에 가까워졌다. 근데 대학에선 가드가 되더라(웃음).

민준구_ 기아에서 보낸 시절이 짧다. 큰 문제가 있었는지?
그때 기아는 우승을 정말 많이 하는 팀이었다. 그중에서 내 키가 가장 작았다. 강동희 선배가 한 해 위 선배였는데 내가 더 작았다. 한 우물만파도 성공할지 말지 모르는 그 시절에 5개 포지션을 전부 해버리니 특색이 없는 선수가 됐다. 90년에 입단해서 94년에 은퇴했었나? 좋은 선수들이 계속 들어오니까 내가 설 자리가 없었다. 일찍 은퇴한 뒤에 다른 곳에 취업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구로중에서 코치 제의가 왔다.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 매니저도 하고 프런트도 하고 코치도 정말 오래 했다. 지금은 감독이 됐는데 과거 인생을 살펴보면 도움은 많이 된다. 각자의 어려움도 알 수 있으니까.

강현지_ 삼성생명에서는 정말 긴 시간 동안 코치 생활을 했다. 내심 감독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어떤 지도자가 감독 욕심이 없겠나. 당연히 마지막 목표는 감독이 아닐까 싶은데. 대신 감독이 되려면 나만의 내공이 어느 정도는 쌓여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내가 스타 플레이어도 아니고 명문대 출신도 아닌 상황에서 감독을 일찍 맡는 게 정말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진 게 없으니 성적이 안 좋으면 일찍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코치 생활을 오래 하는 게 내게는 좋은 일이라고 봤다.

민준구_ 오랜 기다림 끝에 선 감독이란 자리가 어떻게 다가오나.
코치 생활을 아마추어 시절부터 한 18년 정도 한 것 같다. 감독은 중국시절까지 보면 5년 정도? 전체 지도자 생활을 합하면 23년째 되는 것같은데 사실 처음부터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때는 은퇴 후에 대부분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았나. 나도 기아 자동차에 가려고 했다. 근데 감독이란 직업의 매력이 참 대단한 것 같다. 힘은 들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성취감도 있고. 대신 쉬운 직업은 아닌 것 같다.

강현지_ 젊은 시절 정상일에 대한 소문이 많다. 지금보다 언변이 더 찰졌다고 하는데.
첫 제자들이 지금은 30대 후반 정도 된다. 나랑은 13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때 함께했던 선수들 중 한 명이 김도수다. 내가 29살 때 (김)도수가 중학교 1학년이었다. 지금 그때처럼 하라 그러면 못할 것 같은데(웃음). 젊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옛 제자들이 연락 올 때마다 하는 말이 그때가 제일 재밌었다고 한다. 운동량부터 체벌까지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지만 같이 놀 때는 정말 잘 놀았다. 무서웠을 텐데도 참 잘 따라줬다. 지도자 생활이 처음이었던 내게 그 시절은 배운 것 없이 마음가는 대로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정말 단순무식하게 가르쳤다.

민준구_ 그 시절이 있기에 지금의 정상일이 있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된다는 걸 느낀 시절이었다. 예상외로 좋은 성적을 냈고 지금도 예전부터 했던 걸 모아놓은 나만의 프로그램이나 전술을 찾아보기도 한다. 10년이 지난 옛날 것인데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마치 옛날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나만의 재산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것도 많지만 괜찮은 것도 있다. 궁금할 때마다 한 번씩 열어보곤 한다.

민준구_ 유수종, 이옥자는 본인에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이름일 것 같다. 긴 시간을 함께했던 파트너가 아니었나.
2007년에 삼성 코치로 있던 시절, 유수종 감독님과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로 처음 만나게 됐다. 국가대표도 처음이었는데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이기고 우승하기도 했다. 워낙 예전부터 명성이 대단했던 분이지 않나. 지도자 이력도 대단하셨고. 내가 할 건 없었다. 그때 이옥자 감독님이 나랑 같이 코치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 많이 배웠다. 지금도 가끔 연락드릴 정도로 기억에 많이 남는 사람이다.

강현지_ 그 시절 국가대표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최윤아, 하은주, 김정은 등 끼리끼리 몰려다닐 때였다. 나랑도 많이 친했지. 애들한테 별명도 지어줬다. (하)은주는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희망이, (최)윤아는 별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별이(웃음). 태릉선수촌에는 따로 매니저가 없었다. 그래서 음료수도 나르고 여러 가지로 많이 배웠다. 선수 때는 들어가보지도 못한 태릉 선수촌을 코치로 들어가니 마음이 이상하더라. 그래도 코치로서 우승도 해봤고 참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시절이다. 

 

우여곡절 좌충우돌 중국 시절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선 여자농구 대표팀의 코치가 된 정상일 감독. 그는 금메달이라는 최고 영광을 누렸음에도 당장 몸담을 구단이 없다는 현실에 좌절했다. 지도자 인생에서 큰 위기가 찾아온 것. 그 순간, 정상일 감독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놓치지 않았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화려했던 중국 시절. 정상일 감독은 그렇게 한번 더 내공을 쌓았다.

김용호_ 정상일 감독의 커리어에서 중국 시절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어떻게 가게 된 것인가.
2014년에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후 삼성과 계약이 끝나 야인이 됐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백수가 된 시절이었다. 23년 동안 한 번도 논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인천 아시안 게임 이후에는 직업이 없었다. 상당히 막막하더라. 그러다가 중국에 가게 됐는데 어느 정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사실 그때 언론에는 이문규 감독님의 초대로 가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근데 위성우 감독이랑 전주원 코치가 중국농구에 해박한 분에게 추천을 해준 거다. 위성우 감독이 절대 자신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돼서 상해에 있는 여자 청소년 팀에 가게 됐다.

민준구_ 중국농구는 아시아 최고다. 그런 곳에서 굉장히 고생했다는 얘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이문규 감독님께서 “고생할 거다. 드리블부터 패스도 제대로 하지 못해. 감독 한 명이 2주 만에 떠났다”라고 하시더라.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답이 없었다. 국가대표부터 삼성생명에서 했던 훈련 플랜을 많이 가져갔는데 2주 정도가 지나니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 전임 감독도 한국 사람이었는데 왜 떠났는지 알겠더라. 그래서 집에 전화를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그래도 한국에서는 나름 커리어를 쌓아다고 자부했는데 이곳에서의 경력은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강현지_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인가.
아내가 정말 힘들면 돌아오라고 했다. 근데 내가 아들을 늦게 낳아서 36살 띠동갑이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리면서 돈을 벌 게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더라. 중국에 갈 때는 86kg이어는 데 1년 만에 13kg이 빠질 정도로 고생했다. 바지 하나를 세 번이나 수선할 정도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감독이 선수를 장악해야 하는데 말을 안 듣더라. 주변 사람들도 작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 크게 인정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 지도자들이 진짜 세밀하고 열심히 가르친다는 걸 새삼 느끼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가을에 열린 대회에서 8강 진출을 하니 대우가 달라졌다. 코치부터 내가 원하는 사람을 쓸 수 있게 해줬다.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 외로웠다. 아는 사람도 없고 주말에 나갈 데가 없으니까 책상에서 매일 어떻게 애들을 가르쳐야 할까 고민만 했다. 농구용어를 3개월 동안 90% 이상 다외웠다. 통역을 통해서 전달받으면 늦으니까 농구용어라도 어떻게든 외워야 했다. 살이 계속 빠지니까 감기가 한 달에 2~3번씩 오더라.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고 나니 집을 구할 수 있었고 혼자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도 배웠다. 요리도 자주 하니까 코치들이 ‘정장금’이라고 한다(웃음).

김용호_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다. 결국 중국에서도 인정받는 지도자가 됐는데.
이휘걸 코치를 영입하고 성인 팀에 있었던 구나단 코치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 진영수 인스트럭터에게는 중국 전국체전에 나가기 전에 상대 빅맨에 대한 공략을 위해 3개월 정도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하나씩 갖춰졌고 훈련도 잘 됐다. 2017년 3월에 열린 예선에서 4승 1패로 6강에 진출했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지도자 인생에 있어 가장 보람 있고 가슴 뭉클했던 시기였다. 선수들과 기쁨을 나눴고 혼자 화장실에서 30분을 울었던 것 같다. 1%의 가능성도 없다고 평가된 팀을 이끌고 최고의 성적을 냈으니 그보다 더한 기쁨은 이제껏 없었다. 여기서 실패하면 한국에서도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간절했고 따라온 결과에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OK저축은행 때나 여기 신한은행에서 힘든 시간이 오면 중국 시절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에 비해서는 행복하기만 하다. 스스로 혹독하게 채찍질했던 것이 크게 성장하게 된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강현지_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이 대단한 것 같다.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을까.
한국이나 중국이나 다 똑같은 것 같다. 감독이 갖춰야 할 덕목은 실력이다. 그래야 선수들도 믿고 따르게 된다. 실력이 없는데 소통까지 없으면 더 안 된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를 잘해야 하지만 부족한 점을 코치가 채워주기도 해야 한다. 사실 선수들과의 관계는 답이 없는 것 같다. 모두가 한결같을 수는 없다. 내게 서운한 선수가 있을 것이고 또 고마워하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그 차이를 줄여야만 좋은 팀이 될 수 있는데 코치들이 그 부분을 잘 도와줘야 한다. 내가 다혈질이고 성깔도 있지만 근거 없이 혼낸 적은 없다. 개인 감정을 넣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나를 별로 안 좋아했다(웃음).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일이란 사람이 뒤끝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지금처럼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프로답게 사생활도 신경 쓰지 않는다. 비시즌 주말 오후에는 절대 훈련하지 않을 정도로 휴식을 보장해주려고 한다.

민준구_ 이휘걸, 구나단 코치는 본인에게 최고의 참모가 아닌가. 어떤 존재로 다가오나.
두 사람은 모든 부분에서 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더 잘 맞는 것 같다. 나도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두 사람이라서 더 좋다. (이)휘걸이는 체력을 만드는 일에 확실한 신뢰가 있다. 또 선수들과 호흡을 할 줄 안다. 밀당(밀고 당기기)도 잘하고 선수들도 다 좋아한다. 오랜 시간 농구판에 있다 보니 어떤 코치들보다 체력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잘 잡아주기도 한다. (구)나단이는 1년 정도 지나니 적응이 된 것 같다. 원래 내가 추구하는 농구는 공격보다 수비 중심이다. 근데 나단이가 올해 비시즌때부터 프리 오펜스 중심의 공격 농구를 선수들에게 잘 녹인 것 같더라. 단순한 패턴 플레이가 아닌 물 흐르듯 몸이 익힌 대로 움직이는 농구가 가능해진 것이다. 나단이가 5월부터 담당했는데 선수들도 이제는 습관적으로 그런 움직임이 나오는 것 같다. 수비는 아직 조금 모른다(웃음). 근데 그 부분이 또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감독으로서 6년째가 되는 해인데 가장 편안하게 준비한 시기였다. 그동안 고생했던 것들이 완성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휘걸, 나단이가 내 힘을 많이 덜어주니까 큰 도움이 됐다. OK저축은행 때는 나 혼자하려다 보니 힘들었는데 이제는 한결 수월해졌다.

강현지_ 박성근, 진영수 인스트럭터도 큰 도움이 됐다고 들었는데.
(박)성근이나 (진)영수도 내 스타일을 잘 안다. 전력분석부터 연습경기를 하면 그 안에 있는 정보를 잘 뽑아온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걸 잡아낼 때도 많다. 연습경기 때마다 분석했고 셀 수 없을 만큼 비디오 미팅을 했는데 요즘에는 안 그대로 될 정도다. 휘걸이나 나단이부터 성근이, 그리고 영수를 보면 참 든든하다. 

 

다시 찾아온 좌절 그리고 희망의 손길
한국으로 돌아온 뒤 OK저축은행 지휘봉을 잡은 정상일 감독. 만년 꼴찌팀을 중위권 전력으로 끌어올렸지만 다시 야인이 되고 말았다. 절망감이 가득했던 그때, 신한은행이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정상일 감독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김용호_ OK저축은행과 동행은 너무도 짧았다. 예상 외로 좋은 성적을 냈지만 재계약 제의는 없었다. 많이 아쉬웠을 것 같은데.
OK저축은행에서 정말 열심히 했고 또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근데 막상 재계약 제의가 오지 않았을 때 실망감과 좌절감은 쉽게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사회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됐다. 아이는 어리고 일은 더 해야 하는데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나를 압박했다. BNK가 인수하기 전, WKBL에서 위탁 운영할 때 다시 원서를 넣었지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만약 안 되면 중국 2부 프로팀에 갈 예정이었다. 4월 중순 즈음에 비자를 받아놨고 만약 한국에서 내가 설 자리가 없다면 다시 중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다행히 신한은행에서 자리가 생겼고 주어진 기회를 잘 잡으면서 한국에 남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열심히 하면 된다, 아직 내게도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았다.

민준구_ 신한은행과 동행은 본인에게 있어 큰 기회였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을 것 같다.
서류 면접을 한 해에 두 번 한 건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지도자 생활을 오래하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감독 생활은 아직 초짜라고 볼 수 있다. 부족한 게 많고 배워야 할 것도 엄청나게 많다. 내가 능력이 좋으면 코치들을 마음껏 내 사람으로 쓰겠지만 그런 부분도 안 될 수 있으니 걱정도 많았고. 근데 신한은행에서 처음 제의를 받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1, 2차로 나뉘어져 있더라. 내가 아니라도 누가 안 하고 싶겠나. 한 번 무너진 팀이어서 걱정이 크긴 했다. 이게 내 팔자인가 싶기도 했고. 만약 내 운명이라면 그대로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있었고 한국에서 몇개 되지 않는 프로 팀의 감독이 된다는 영광과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민준구_ 가족들도 엄청 기뻐했을 것 같다. 생이별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아내가 엄청 울었다. 내 아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그래도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고등학생 때는 돈이 제법 들어가지 않나. 그래서인지 아내도 마음이 놓이니 펑펑 울었다. 내가 힘든 지도자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만약 집이 부유했다면 이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절실함이 있었고 그래서 노력도 많이 했다. 나도 참 어렵게 자랐다.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매일 배고팠다. 어느 바닥이든 똑같겠지만 여기도 치열하지 않나. 지도자는 많은데 팀은 적으니까. 소중한 기회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됐다. 

 

강현지_ 처음 신한은행에 갔을 때 선수들이 BNK 선수들을 질투했다고 하던데 해명해줄 수 있을까?
왜 그랬을까(웃음). 혼도 많이 나고 이가 갈릴 정도로 훈련량이 많다는 걸 알 텐데. 근데 또 그런 것 같다. OK저축은행이 들어오기 전 위탁운영 시절에는 참 어려운 시기였지 않았나. 선수들도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더 똘똘 뭉쳤던 것 같다. 만약 OK저축은행이 잘못되어 팀이 무너진다면 한국 여자농구도 사라질 수 있다는 책임감이 있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나는 괜찮은데 애들이 먹고 싶은 걸 못 먹은 적이 많았다. 한 번은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식당에서 구워 먹을 수도 없어서 친구에게 부탁했다. 160만원 정도? 술도 조금 먹기는 했는데 선수들이 엄청나게 먹었다. 너무 고마워서 나중에 그 친구에게 소고기를 사기도 했다. OK저축은행이 들어오고 나서 환경이 좋아질 때는 선수들이 덜 먹더라. 배고파야 잘 먹는것 같다. 그래도 이런 시절을 겪다 보니 더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신한은행 선수들이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민준구_ 신한은행에서 초반 상황도 좋지는 않았다. 이적생, 은퇴 선수가 많아 스스로 ‘연합군’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는데.
처음 지도자 생활을 했을 때 일반 학생들을 뽑아서 드리블부터 슈팅을 가르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아예 기본도 모르는 선수들을 데리고 있기도 했다. OK저축은행도 막막했고.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나. 선수 보강부터 (한)채진이, (김)수연이를 만나 이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김)이슬이도 있었고. 채진이랑 수연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기도 하다. 30대 넘어가면서 나쁘게 말하면 퇴물 소리도 들었는데 잘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사실 나는 젊고 빠른 선수들이 좋다. 어떤 색을 선수에게 입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빨라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확실한 색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있었다. 갑자기 OK저축은행 선수들처럼 하라는 건 무리가 있었고 또 노장들이 가지고 있는 노련함이 있으니까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감독들이 원하는 방향은 누구나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선수 구성에 따라 감독이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백날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그대로 다 흘러가겠나.

민준구_ 신한은행에서 1년이 지났고 이제는 2번째 시즌이 찾아왔다. 새롭게 세운 방향이 있을 텐데.
OK저축은행에서 보낸 1년을 가지고 모든 걸 검증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행히 플레이오프 자리가 하나 더 늘어서 전체적으로 동기부여가 많이 된다. 이제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 시즌은 길고 변수가 많으니까. 1차 목표는 플레이오프다. 지난 시즌은 많이 아쉬웠다. 외국선수 때문에 절반 이상을 손해 봤고 또 없는 상황에서 국내선수들끼리 뛴 경기도 많았다. 다행히 이번 시즌은 주위에서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고 선수들도 내 스타일을 아는지 잘 따라준다. 원래 오랜 시간 감독과 선수가 함께했을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다. 그런 부분은 무시할 수 없다. 부상자가 많아 100%는 아니지만 1년 맞춰본 이점을 잘 살려보고 싶다.

김용호_ 조금 넓게 보자. 지도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생각인가.

일단 살아남는 게 현실적인 목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성적을 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선수 육성이다. 기존 멤버로도 성적은 낼 수 있지만 팀은 미래가 필요하고 또 자연스러운 교체도 필요하다. 정상일이라는 사람의 확실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어떤 감독이더라도 공격과 수비가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조금 더 비중을 둘 뿐이다. LG의 조성원 감독은 공격을 내세우지 않나. 그런 확실한 색이 필요하다. 성적이 조금 나온다고 해서 방심하는 순간 끝이다. 그래서 더 채찍질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농구는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빠른 스포츠다. 외국선수가 없는 현시점에선 지난 시즌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져야 한다. 배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아직 갈 길이 먼 병아리 감독이다.

강현지_ 신한은행은 앞으로 정상일 감독의 색이 진하게 물들여질 팀인것 같다. 남다른 애착이 생길 것 같은데.
모든 코치, 그리고 스태프, 더불어 선수들까지 모두 내 사람이다. 눈꼽만큼 더 예쁘거나 미운 선수가 있을 수는 있다. 얼굴이 예쁜 선수보다 농구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선수가 제일 예뻐 보인다. 여자 선수라고 해서 미모가 더 좋다고 예뻐하는 게 아니라 농구를 더 잘하고 배우려고 하는 선수, 거기에 인성이 되면서 만족을 모르는 선수들에게 더 애착이 간다. 훈련할 때나 경기를 할 때 코치들에게도 부족함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왜 안 보이겠나. 하지만 나 역시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노력하는 것이고 또 잘 믿고 따라줘서 고마울뿐이다. 지금 위성우 감독이 바뀌었듯이 나도 세대의 변화에 따라 맞춰가려고 노력 중이다. 한 번에 100%가 바뀌는 건 정상일이 아니다. 선수들에게도 약속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항상 잘 맞춰가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정상일 사단의 4총사 그들이 바라본 정상일 감독
정상일 감독은 인천 신한은행에 부임한 이후 자신만의 사단을 꾸리며 완전체가 됐다. 중국 시절, 오른팔이었던 이휘걸 코치는 물론 해외파 출신 구나단 코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박성근, 진영수 인스트럭터가 그 주인공이다. 오랜 시절부터 함께하기를 바랐던 다섯 남자의 소원은 2020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이뤄졌다. 고됐던 시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성공을 바라는 4총사. 과연 그들이 바라본 정상일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이휘걸 코치_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사이에 정상일 감독님께서 갑자기 연락을 주셨다. 지금 한국으로 오라고 말이다. 막상 가보니 신한은행 은행장님과의 자리였다. 기존 팀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한 채 모든 걸 정리하고 돌아오게 됐다. 사실 너무 꿈만 같았다. (정상일)감독님께서는 중국에 있을 때마다 꿈이라도 꿔보자며 한국에 가서 같이 생활하자고 말씀하셨다. 현실이 되니 어안이 벙벙하더라. 너무 설렜고 이곳에서 꼭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를 계속 생각해주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또 그에 보답하고 싶었다. 평생의 은인이라고 해야 할까.

구나단 코치_ 아이 돌잔치가 있어서 잠깐 한국에 들어온 사이에 감독님께서 같이 하자고 연락을 주셨다. 조금은 믿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기도 했다. 대신 도전이라고도 바라봤다. 감독님은 내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지도자로서 정말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다. 술만 좀 줄이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성적이 좋더라도 건강이 괜찮으셔야 감독 생활도 오래 하시지 않을까. 건강만 챙기셨으면 한다.

박성근 인스트럭터_ 감독님은 농구에 대해 포기했던 한 사람으로서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주신 분이다. 10년 전 지도자들과 비교해봐도 정말 다른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다. 코치님들은 물론 선수들과 우리들의 의견까지 반영해주신다. 내가 아는 감독님들은 가부장적인 성격이 짙었는데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를 가진 분이 계신 줄은 몰랐다.

진영수 인스트럭터_ 우리의 대장님이 아닌가. 우스갯소리로 중국에서부터 도원결의를 했는데 우리은행에 있을 때부터 함께하고 싶었던 분이다. 우리 감독님, 그리고 위성우 감독님께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두 분 다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다. 지금 신한은행에서 감독님, 그리고 코치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 꿈만 같다.

# 인터뷰_ 강현지, 민준구, 김용호 기자 / 정리_ 민준구 기자
# 사진_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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