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홍성한 기자] “주변의 많은 보살핌 속에 떠나네요.”
십자인대 파열만 세 차례였다. 힘겨운 재활을 이겨내고 매번 코트로 복귀했지만, 마침내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미루고 미뤘던 숙제를 끝낸 순간이었다.
지난달 31일은 WKBL 2026~2027시즌 선수 등록 결과 발표날이었다. 아산 우리은행에선 유승희(31, 175cm)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은퇴는 하루아침에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유승희는 최근 점프볼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루고 있었던 숙제를 이제 다 하지 않았나 싶다”라며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한 것 같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2013 W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용인 삼성생명에 지명된 그는 인천 신한은행을 거치며 꽃을 피웠다. 2021~2022시즌에는 30경기에서 평균 12.0점 5.5리바운드 3.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작성했다. 국가대표로도 발탁되는 등 리그를 대표하는 가드로 성장했다.
이렇게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으나,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2023~2024시즌 또 한 번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시련이 찾아왔다. 긴 재활 끝에 다시 코트로 돌아왔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와 긴 대화 끝에 은퇴를 결심했다.

유승희는 “좀 후련한 것 같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제가 가졌던 환경이나 실력에 비해 오래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요”라고 이야기했다.
“누구나 다쳐서 은퇴하겠다는 생각으로 운동하는 건 아니잖아요. 세 번이나 크게 다쳤지만, 저 역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느 선수나 다 마찬가지지만, 유승희 역시 ‘욕심 많은 선수’였다. 부상에도 포기하지 않고 돌아왔던 이유도 그 욕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전주원 감독님은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욕심도 많고 자존심도 강한 선수인데…”
“무엇보다 경기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오늘은 운동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선수로서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은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잘 못 볼 것 같아요. 욕심 많던 선수였으니까요. 몸이 안 돼서 은퇴하는 거라고 인정은 하지만, 아직은 좀 그렇네요(웃음).”

그리고 이제는 다른 마음이 생겼다.
유승희는 “더 이상 다치거나 아픈 게 무섭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제는 그만 아프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은퇴를 실패나 좌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선수 생활을 통해 얻은 것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은퇴가 저한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은행에서 운동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이런 것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분간은 쉬어갈 생각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정하지 않았다.
유승희는 “사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런 것들에 쫓기지 않고 운동도 조금씩 하면서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좋은 환경에서 보호받으면서 운동만 했던 사람이라 걱정도 돼요. 그런데 누구나 은퇴는 하는 거니까요.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농구를 향한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냐는 질문에 유승희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태어나면요? 그래도 농구할 것 같아요(웃음).”
이유도 분명했다.
“그래도 농구선수를 했으니까. 어디 가서 이런 사랑을 받고, 이런 응원을 받겠습니까.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정말 복 받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주변의 많은 보살핌 속에 떠나네요. 응원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수 유승희의 시간은 여기서 멈춘다. 하지만 세 번의 십자인대 파열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던 그의 여정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사진_WKBL 제공,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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