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박효진 인터넷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번 주인공은 경희대 4학년 김수오(200cm, F)이다.

중학교 3학년. 김수오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농구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수가 초등학교 때 농구를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꽤 늦은 출발이었다.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공을 튀기던 소년은 호기심에 찾아간 클럽 팀에서 처음 선수의 길을 제안받았다.
"친구들이랑 길거리에서 농구를 하다가 클럽 팀에 한번 가보고 싶어서 갔어요. 거기서 홍대부중 감독님이 농구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주셨어요. 그렇게 시작했다가 휘문중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옮기게 됐어요."
공부도 곧잘 했던 아들의 선택에 어머니는 반대했다. 하지만 김수오의 마음은 이미 연필을 쥐는 것보다 농구공을 튀기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농구가 공부보다 재미있었어요.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엄마는 반대하셨는데, 저는 키도 크고 운동 신경도 있다고 생각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어요."

"처음 갔을 때는 농구를 아예 할 줄 몰랐잖아요. 그래서 팀 훈련은 빼고 체력 운동만 같이 했어요. 같이 운동할 수 있는 게 기분이 좋으니까 겉으로는 '오늘 왜 뛰어' 하면서도 속으로는 '오늘은 나도 운동 같이 한다' 생각했어요(웃음). 체력 운동을 진짜 열심히 해서 항상 1등으로 들어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정작 코트에 서는 날은 순탄치 않게 찾아왔다. 공식 데뷔전을 앞두고 주로 쓰는 왼손 엄지를 다쳐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깁스를 한 채 나선 단대부중과의 첫 경기. 왼손잡이가 왼손을 쓸 수 없다는 건 무기를 내려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볼을 잡았는데 왼손을 못 쓰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런데 감독님이 웃으시면서 반대 손으로 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오른손으로 던졌는데 그게 들어갔어요."
왼손잡이 농구선수의 첫 오른손 슛이었다.
김수오는 늦게 시작한 만큼 부족한 것도 많았다. 공을 늦게 잡은 탓에 경기 운영이나 여유는 또래보다 뒤처졌다. 대신 장신 선수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빨리 뛰었다. 농구를 갓 시작한 그에게 휘문중 최종훈 감독은 기본기를 꼼꼼히 가르치면서도 코트 위에서 자유롭게 뛰도록 길을 열어줬다.
김수오가 흘린 땀은 금세 결실로 돌아왔다. 2019년, 김수오는 제49회 추계 전국 남녀 중고농구대회에서 미기상을 받으며 선수로서 첫 상을 품에 안았다. 이 대회 8강 전주남중과의 맞대결에서 김수오는 8강 전주남중과의 18점 17리바운드 2스틸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선수를 해서 상을 받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어요. 스스로 아직 부족한 걸 아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는데, 상을 한 번 받으니까 '지금도 받았는데 나중에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오히려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초반에 코로나가 터져서 3개월 정도 체육관을 아예 못 썼어요. 그래서 각자 집에서 운동하고 혼자 러닝하면서 운동했던 것 같아요."
2학년이 되자 주전으로 코트를 밟았다. 팀에 큰 선배들이 많았던 덕분에 김수오는 골밑보다 외곽에서 더 많이 뛰었고, 그 시간들은 지금의 김수오의 기동력을 만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김수오는 주장으로 치른 마지막 대회인 제52회 추계 전국 남녀 중고농구대회에 나섰다. 그러나 첫 경기 명지고전에서 리바운드를 다투다 팔이 꺾이며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다. 병원에서는 뛰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한 경기만 쉬고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마산고와의 결선에서 붕대를 감은 채 25분 넘게 뛰며(4점 8리바운드 3어시스트) 8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8강에서 안양고에 패하며 동기들과의 마지막 대회는 아쉽게 막을 내렸지만 이 순간은 김수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애들하고 정말 가족같이 지냈거든요. 안양고한테 져서 8강에서 떨어졌는데, '이게 우리끼리 뛰는 마지막이다' 생각하니까 너무 아쉽고 더 같이 지내고 싶었어요. 그게 제일 많이 기억이 나요."

경희대 유니폼을 입은 김수오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여수의 산이었다. 입학하자마자 떠난 전지훈련은 무려 44박 45일, 한 달 반 남짓 이어졌다. 오전에는 산을 뛰고 오후에는 연습경기, 밤에는 웨이트나 야간 훈련. 혹독한 훈련에 금세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들어오자마자 44박 45일 전지훈련을 갔는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동기들이랑 '이게 끝나긴 하는 거냐'라고 했어요. 마지막 2주는 너무 힘들어서 서로 하루에 다섯 마디도 안 했어요. 연습경기를 하는데 레이업이 안 날아가더라고요(웃음)."
혹독한 겨울을 버틴 대가는 코트 위에서 돌아왔다. 신입생 김수오는 12경기에 나서 평균 23분 55초 동안 11.1점 7.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학년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
“감사하게도 1학년부터 많은 기회를 받았어요. 주전으로 뛰면서 웨이트적인 부분에서 엄청 부족하다고 느꼈고 이게 체력이 안 되더라고요. 처음으로 체력이 안 되는 걸 느낀 거예요. 또 인사이드에서 힘센 선수들하고 부딪히니까 피지컬적인 부분에서 좀 더 보강했어요.”
부족함을 채우는 데 집중한 1년이 지나고 맞은 2학년. 순조롭게 성장 곡선을 그리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2학년 훈련 때 무릎이 꺾인 거예요. 좀 크게 다쳤어서 스스로도 ‘아, 이건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병원에서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반반이라고 하셨어요.”
진단명은 십자인대 파열.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고, 기약 없는 재활이 시작됐다. 매일 땀 흘리던 코트 대신 병실 천장을 바라보는 날이 이어졌다.
“3개월은 아예 걷지도 못했어요. 그때는 진짜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밖에 없던 것 같아요. 근데 걷기 시작을 하니까 먼 미래를 안 보고 그냥 다음 날 운동할 것만 생각하면서 했더니 복귀 날이 다가온 것 같아요.”
긴 재활의 시간 동안 그를 붙잡아준 건 웃음이었다. 지금 김수오의 긍정적인 모습은 이때 80%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 진짜 많이 울기도 했고 많이 웃기도 했어요. 친구들을 만나면서 확실히 웃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재활도 웃으면서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10개월을 손꼽아 기다려온 복귀 경기, 김수오는 교체 선수로 출전해 농구 선수로서 발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경희대 홈 경기는 선수 소개 노래를 틀어줘요. 제가 교체로 들어가서 그 노래가 들리는데 눈물이 날 것 같은 거예요.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데 고생한 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진짜 자신감이 좀 생겼던 것 같아요. 전처럼 잘 뛰어지고 또 처음에 코트에 복귀해서 적응 훈련을 할 때는 다리도 잘 안 움직이고 겁났는데 막상 시합 들어가니까 그런 게 없어졌던 것 같아요”
두려움을 걷어낸 복귀 무대는 오히려 도약의 발판이 됐다. 코트 위에서 다시 자신감을 얻은 김수오는 출전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며 팀 내 입지를 넓혀갔다. 3학년 시즌 16경기에 나서 평균 18분 35초 동안 7.8점 3.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다시 코트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상명대전에서는 18점 4리바운드 2블록슛을 몰아치며 덩크슛도 두 방 꽂아 넣었다. ‘멀쩡하다는 걸 증명하겠다’라는 그때의 심정을 그대로 증명해 낸 경기였다.
"농구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다치고 처음 복귀했을 때예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도 다쳤을 때고요. 그만큼 파도가 컸죠.”
4학년이 된 김수오는 휘문고 때에 이어 주장 완장을 팔에 찼다. 지난 시즌 9위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아쉬움은 오히려 팀을 하나로 묶었다. 1학년 때부터 함께 코트를 지켜온 4학년들은 '올해는 한번 해보자'라며 뜻을 모았고, 동계 훈련부터 디테일을 더한 김민구 코치의 지도도 힘을 보탰다. 경희대는 한때 2위까지 오른 끝에 정규리그를 3위로 마무리했다.
"작년에 플레이오프를 못 간 게 오히려 저희를 몰아세워 줬던 것 같아요. 4학년끼리 '올해는 한번 뭘 해봐야 하지 않겠냐, 최소 3, 4등은 해보자'라고 했는데 그게 잘돼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욕심 버리고 각자 할 거 하다 보니까 된 것 같아요."
주장의 마지막 시즌, 김수오의 기록도 한 단계 올라섰다. 20 경기에 나서 평균 12.1점을 올리며 팀 내 득점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더 눈에 띄는 건 리바운드다. 지난 시즌 3.8개에 그쳤던 리바운드를 8.2개로 두 배 넘게 끌어올리며 팀 내 1위를 차지했다. 화려한 득점보다 골밑에서 몸을 부딪치는 일을 먼저 택하며 성장했다.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경기도 있었다. 리그 1위 중앙대를 상대로 2차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92-90) 김수오는 이날 24분 14초를 뛰며 6점 8리바운드로 궂은일을 도맡으며 승리의 숨은 공신 역할을 했다. 1위 팀을 무너뜨린 그 승리는 주장 김수오에게, 그리고 경희대 전체에 ‘원팀’으로서의 저력을 증명한 경기로 남았다.
“20점이나 지고 있었는데 그걸 열심히 따라잡아서 이긴 게 정말 대단하고 잘했다고 생각해요. 코치님이 '지는 것도 습관이 된다'라는 말을 항상 하시는데, 이기는 것도 습관이 되더라고요.”
시즌 중 또 하나의 기회가 찾아왔다. 김수오가 이상백배 한일 대학농구대회 대표팀에 선발된 것이다. 지난 대표팀보다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도 심심치 않게 들렸지만, 결국 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김수오의 시선은 자신의 부족함을 향해 있었다.
“일본팀에 오다테 슈타라는 선수가 키가 정말 큰데 슛이 정말 좋고 막 잘하더라고요. 매치업도 몇 번 해봤어요. 그래서 ‘키는 비슷한데 저 선수는 저렇게 하고 있는데 나는 좀 부족하지 않은가?’ 싶어서 거기서 좀 부족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한 번 입어본 국가대표 유니폼은 김수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이자 자극제가 되었다.
“아무래도 이제 한 번 대표팀 옷을 입어보니까 나중에도 잘해서 또 입어보고 싶고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김수오는 농구로 보면 다재다능한 매력을 겸비했다. 2m의 큰 키에도 기동력이 좋아 가드 못지않게 코트를 누빈다. 스스로 '장신 중 가장 빠르고 수비가 좋다'고 자부할 정도다. 여기에 3점 슛도 심심치 않게 던지며 슛 감각도 갖췄다. 그야말로 육각형 포워드인 셈이다.
이런 김수오가 코트 위에서 그리는 청사진의 끝에는 롤모델 창원 LG 의 양홍석이 있다. 공수 양면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양홍석처럼 팀의 활약을 불어넣는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다.
"원래부터 양홍석 선수가 롤모델이었어요. 제가 정말 바라는 플레이를 하시거든요. 잘 뛰어다니고, 슛도 쏘고, 안에서도 잘하시고. 너무 다재다능하시잖아요."
롤모델과 같은 코트에 설 기회는 거의 없었다. 대신 프로팀과 연습경기를 할 때면 자신과 비슷한 체격의 선배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답을 찾았다. 코트 밖에서도 준비는 이어졌다. 훈련 시작 1시간 전에 먼저 체육관에 나와 보강 운동으로 땀을 빼 두는 것은 김수오의 루틴이기도 했다.
"프로랑 할 때는 저랑 비슷한 사이즈인 선배들이 하는 걸 보고 배웠어요. 제가 잘 뛰어다니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더 보고 배우려고 했고요. 평소에는 훈련 1시간 전에 먼저 나가서 보강 운동을 다 해놓고, 땀을 빼놓은 다음에 운동해요."
몸만 단련한 것은 아니었다. 큰 부상이라는 뼈아픈 시련을 겪은 뒤로 김수오는 훈련 중 지적을 많이 받은 날이나 중요한 경기를 앞둔 밤이면 어김없이 펜을 들고 일지를 펼쳤다. 그날 놓친 수비 위치, 감독의 한마디, 다음 날 고쳐야 할 습관까지. 글로 되짚는 이 습관은 코트 위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만드는 또 하나의 훈련이 됐다.
"멘탈이 원래 센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다치고 나서 세진 것 같아요. 혼난 날이나 지적을 많이 받은 날, 시합 전날에는 항상 일지를 써요. 경기 영상도 풀로 다 보고요."
김수오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꺼내 보는 영상은 따로 있었다. 자신이 가장 빛났던 순간인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1학년 시절 가장 아프게 졌던 경기다.
“1학년 MBC배 한양대전이었는데 그 경기를 지면 예선 탈락이었어요. 1초를 남기고 수비 실수로 버저비터를 맞고 졌어요. 너무 속상해서 이틀 동안 잠을 못 잤어요. 그 경기만 한 열 번은 본 것 같아요. 지금도 중요한 경기 전날이면 가끔 그 경기를 다시 봐요.”
김수오는 보완해야 할 점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왼손잡이인 그는 오른손 사용을 숙제로 꼽았다. 올 시즌 유독 림을 외면한 3점 슛도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다시 다듬고 있다.
"오른손은 진짜 안 써요. 또 올해는 이상하게 3점이 잘 안 들어가서 그것도 더 연습하고 있어요."

#004_My future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김수오 역시 그 미래를 생각하며 코트 위에서 한 발자국 더 뛰었다. 그의 뜀박질이 향하는 최종 목표는 어느 곳에서나 자연스럽게 팀에 녹아드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팀에는 에이스가 있고 자기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들이 전부 있잖아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고 어느 팀에 가도 그냥 던져놓아도 자기 할 몫을 하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처음에는 그냥 바닥을 기어다니며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할 것 같아요(웃음).”
튀지 않아도 빠지면 티가 나는 선수. 김수오가 그리는 모습은 퍼즐의 마지막 조각에 가깝다. 악착같은 수비와 리바운드 가담으로 빈틈을 메우고, 공이 없는 곳에서도 쉼 없이 움직이는 김수오의 농구는 어느 팀에서든 제자리를 찾을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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