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노경용 객원기자] KBL 코치로부터 “지금 벤치에 있는 선수들도 초·중·고·대학교 시절에 나름 방귀 좀 뀌어봤다는 선수들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얼핏 비아냥거림으로 들릴 수 있지만 코치의 진심은 그렇게 화려했던 선수들이 기회가 없어서, 부상 때문에 혹은 지도자와 맞지 않아 농구를 그만두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한 말이었다.
적게는 10년, 길게는 15년~20년 동안 농구공 하나만 보고 살아온 선수들에게 제2의 인생이란 어떤 의미일지 은퇴선수들을 만나 그 들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전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첫 번째 주인공으로 서울 SK 2군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 한재규를 만났다. 사실 농구팬들에게 한재규라는 이름은 낯설 수도 있다. 중학교 1학년 시절 190cm가 넘는 장신으로 한국 농구의 미래로 촉망받았고, 앤퍼니 하더웨이를 꿈꾸던 소년이었지만 농구 선수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일본리그부터 KBL 도전을 지나 현재 유니폼 회사를 공동 운영하고 있는 그를 만나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일본농구리그와 프로2군까지 농구공 하나만 보고 살던 그는 현재 농구유니폼을 제작하며 제 2의 농구인생을 살고 있다.
Q. 농구선수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A. 대방초등학교 4학년 때 또래에 비해 큰 키가 눈에 띄어 농구선수를 하자는 제의가 왔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도 있고 특별하게 농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 본 농구대잔치, 슬램덩크만화, 마지막 승부를 보고 농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했다.
Q. 학창 시절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A. 구로중학교, 구로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진학하면서 프로에 대한 꿈을 꿨지만 대학교 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훈련도 제대로 못해서 보여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드래프트에서 지명될 거라는 자신도 없었다.
Q. 모교는 자주 찾아가는가?
A. 구로중학교, 구로고등학교 모두 없어진 상태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경희대는 자주 가지 못하고 동기들은 가끔 연락하는 편이다. 동기였던 김종훈(동부, KCC에서 선수생활)은 동호회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Q. KBL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지 않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A. 대학교 때 나약한 마음에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1학년 여름에 아킬레스건을 다쳐서 재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느라 정식으로 운동을 한 게 2년이 채 안됐던 것 같다. 최선을 다했다는 자신이 없었기에 지명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혹시나 될 수는 있을까 하는 마음도 없었다.
Q. 동기들은 지명이 됐나?
A. 지금 KCC에서 뛰는 이현민과 동부(현 DB)와 KCC에서 뛰다가 은퇴한 김종훈이 동기였다.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기에 당연히 갈 것이라 믿었다. 사실 조금은 부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Q. 일본 진출을 생각한 이유는?
2006년 농구부를 도와주던 유학생이 일본 농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직 농구를 포기하기엔 이르고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일본 진출을 알아보게 됐다. 스스로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결정에 망설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준비하지 못했던 부분을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도 강했다.
Q. 일본리그는 어땠나?
A. 2006년 6월에 BJ리그 니가타 알비렉스 BB에 입단했지만 많이 뛰지 못했다. 오사카 에베사로 이적한 이후 주전센터의 부상으로 꽤 많은 시간을 코트에 설 수 있었다. 당시 팀의 우승을 함께 했고 한일 챔피언십에서 울산 현대모비스와 경기에도 출전했다.
Q. 2시즌의 일본 생활은 짧지 않았나?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A. 당시 3천만원의 연봉에 대한 의견차가 있었던 부분도 한몫했지만 결정적으로 군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돌아왔다.
Q. KBL 2군 드래프트에 도전했는데?
A. 2009년 5월부터 서울 마포구 공영주차장에서 주차관리요원으로 공익근무를 시작했다. 코트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기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지낸 동안 틈틈이 농구공을 놓지 않았다. DOOM이라는 농구팀에서 꾸준히 운동하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했다.
주위에서 농구 선수를 계속 도전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농구에 대한 미련인지 무모함인지 아직 도전을 멈추기엔 이르다고 판단했다. 공익근무를 마칠(당시 196cm이상은 공익근무였다.) 즈음 2군 드래프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휘문고등학교 농구부에 함께 훈련을 했다. 열심히 준비했기에 자신이 있었지만 내심 불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행스럽게 서울 SK에 지명을 받아 꿈에 그리던 KBL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고 처음엔 꿈이 아닐까 어리둥절했다. 어렸을 때부터 목표로 했던 프로선수가 됐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1군 출전은 창원 LG와 경기에서 1분이 채 안됐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였다. 어렵게 선물 받은 기회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프로농구선수로 여정은 여기까지라고 느꼈다.
Q. 은퇴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A. 유아체육 강사와 방과 후 교실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같은 동호회에서 운동하는 형님이 유니폼 관련 사업을 시작하신다는 이야기에 함께 일하게 됐다. 작은 업체다보니 사무와 디자인의 1인 2역을 담당하고 있다. 사무는 그럭저럭 할 수 있었지만 디자인은 전문영역이 아니어서 실수가 많았다. 한 글자를 빼먹어 유니폼 전체를 다시 만들었던 경우도 있다. 지금은 적응이 됐는지 큰 실수는 없는 편이고 대표형님과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주문도 있는 편이다.
Q. 3X3 선수로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A. 현재 연예인 농구팀 앤드원에서 활동을 하고 3X3 남일건설 팀의 선수로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올코트 농구와 다르게 상당히 빠른 스피드를 요하는 곳이라 또 다른 묘미가 있다. 3X3 선수의 수입이 상당히 적은 편이라 농구 유니폼 회사 일이 본업이고 시간을 조율해 활동하고 있다.
Q. 앞으로 계획은?
A. 현재 하고 있는 유니폼 회사에 집중을 하면서 여건이 된다면 3X3 선수 활동도 꾸준히 하려고 생각 중이다. 결혼 이야기도 있는데 생각만큼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웃음) 유명하지 않은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농구 선수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에게 농구가 가진 매력들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또 최종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농구 꿈나무들을 후원하는 일을 계획 중이다.
한재규가 들려준 인생이야기에 “농구가 가진 어떤 점들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일까?”하는 깊은 고민이 생겼다. 아직은 결론을 내리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은퇴 선수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기회를 마련해보려고 한다.
KBL, WKBL이 시즌 막바지를 향하고 있지만 아마추어 농구는 경남 사천에서 열리는 제55회 춘계남녀중고농구연맹전(3월 20일~3월 27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즌에 돌입한다. 농구 꿈나무들이 보여주는 이야기에도 농구팬들의 많은 관심을 보내주시길 바란다.
# 사진 - 노경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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