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시련 이겨낸 라울 로페즈, 코트를 떠나다

이민욱 기자 / 기사승인 : 2016-05-31 10:43: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점프볼=이민욱 칼럼니스트] 2016년 5월 22일(현지 시간) 도미니언 빌바오 바스켓(Dominian Bilbao Basket)과 CAI 사라고사(CAI Zaragoza)의 스페인리그 정규리그 마지막 라운드(34라운드) 경기. 리그 10위 빌바오(당시 16승 17패)는 8팀이 출전할 수 있는 플레이오프 막차 티켓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기였다. 하지만 빌바오 팀의 염원에도 불구, 마지막에 웃은 팀은 사라고사였다. 요한 사스트레(201cm, 가드 겸 포워드)의 버저비터 3점슛이 들어가면서 73-72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 빌바오 vs CAI 사라고사 34라운드 하이라이트 +
https://www.youtube.com/watch?v=4AtFzi7xgP4

모든 스포츠에는 명과 암, 승자와 패자가 있는 법. 사스트레는 이 날 23점을 기록하며 사라고사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반대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빌바오는 ‘전설’과의 원치 않는 이별의 순간을 맞아야 했다. 만 36세의 포인트가드, 라울 로페즈(183cm)의 마지막 경기가 됐기 때문이다.

로페즈는 이 날 19분간 출장하며 5점 9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며 기량을 과시했다. 승부처에 자유투 1개를 놓치긴 했지만 이 정도 기량이라면, ‘오늘이 은퇴 경기’라는 표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중했다. 빌바오는 경기가 끝난 뒤 로페즈의 기념식을 열어줬다. 그것도 아주 성대하게. 청소년대표시절부터 프로에 와서도 한솥밥을 먹은 알렉스 뭄부루(201cm, 포워드)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라울 로페즈는 누구?

로페즈는 1980년생 동갑내기들인 파우 가솔(216cm, 센터), 후안 까를로스 나바로 등과 함께 스페인이 농구 강국으로 도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일명 스페인의 ‘골든 보이즈’ (Golden Boys)라 불리는 황금세대가 본격적으로 ‘판’을 크게 벌리기 시작한 건 1998년 유럽 U18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 그리고 그 이듬해(1999년) 이 황금세대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 U19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미국을 꺾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또 로페즈는 스무 살에 나바로와 함께 시드니올림픽에 선발됐고, 이후 국가대표로서 2009년 유로바스켓 우승,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은메달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프로에서는 DKV 호벤투트(1998-1999시즌)에서 데뷔해 2000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커리어의 꽃을 피웠다. 이 시기부터 로페즈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재주꾼’ 1번(포인트가드)이었다. 나이가 어려 ‘경기력 기복’ 은 있었지만 스페인 특유의 창의성 넘치는 농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템포 조절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수비에서는 작은 신장 때문에 미스 매치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기민한 움직임을 이용하여 상대를 바싹 압박하는 능력은 꽤 좋았다.

로페즈가 NBA 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4순위로 유타 재즈에 지명되었을 때였다. 당시 전문가 중에서는 그가 제2의 존 스탁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로페즈에게 큰 시련이 다가온다. 발목 부상이었다. 2001년 11월 4일이었다. 당시 레알 소속이던 로페즈는 바야돌리드와의 스페인리그 7라운드 경기(64-62 레알 승리)에서 경기 종료 5분을 남겨두고 수비 중에 우측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다.

결국 로페즈는 2001-2002시즌 스페인리그에서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경기를 합해 고작 14경기(정규시즌 9경기 플레이오프 5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컴백한 로페즈는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 대표팀에 선발되며 재기를 노린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상 악령이 다시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2002년 8월 17일, 러시아와 친선경기 중 같은 부위를 또 다치게 된 것이다.

두 번이나 전방십자인대 파열을 경험했으니 로페즈의 운동능력(스피드 순발력)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페즈의 우선협상권을 가지고 있던 재즈는 포기하지 않고 차분하게 로페즈를 기다렸다. 그리고 2002년 9월 26일 로페즈는 재즈의 3년 계약 제안에 동의하며 NBA 생활을 준비한다.

로페즈는 재활 때문에 2002-2003시즌에는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로페즈가 NBA 무대를 처음으로 밟게 된 건 2003-2004시즌이었다.

처음 맡은 역할은 백업가드였다. 주전 까를로스 아로요(185cm, 가드)의 백업 가드로 코트에 주로 나섰다. 많은 이들은 부상 사실 때문에 82경기를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로페즈는 82경기를 모두 출전하며 그 걱정을 모두 씻어주었다. 주전출전 11경기를 포함, 전 경기에서 19.7분씩을 뛰며 7.0득점 3.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당시 재즈는 42승 40패로 서부 컨퍼런스 9위를 차지하며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미래에 대한 ‘희망’ 은 충만한 팀이었다. 1980년생 안드레이 키릴렌코(206cm, 포워드)와 1979년생인 아로요 같은 비교적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돋보였다. 로페즈 역시 루키치고 괜찮은 활약을 펼쳤다. 사실 약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2번의 큰 부상으로 인해 손상된 상태라 움직임이 잘 나갈 때에 비해서는 둔해졌고 또한 NBA 선수들의 피지컬에 밀려 수비에서 문제점이 많이 드러나면서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공격에서는 백업가드로서의 경쟁력을 잘 보여주었다. 코트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2대2를 무척 잘 이용했다. 기복은 있었지만 득점도 쏠쏠하게 올려주었다.

+ 재즈 시절 로페즈 하이라이트 +
https://www.youtube.com/watch?v=xoCzEY2_XsM

하지만 NBA에서 맞는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04-2005시즌 로페즈에게 ‘부상의 악령’ 이 다시 찾아온다. 2005년 2월 15일 LA 레이커스 전이었다. 그날 로페즈는 득점 컨디션이 꽤 좋아 보였다. 12분간 7득점(3점슛 1개, 자유투 4/4)을 기록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충돌이 심상치 않은 통증을 불러왔다. 로페즈도 지속적으로 통증을 호소했고, MRI 검사결과 왼쪽 무릎에 이상이 생겼음을 발견했다. 결국 로페즈의 2004-2005시즌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재즈는 로페즈를 기다려줄 수 없었다. 결국 로페즈는 2005년 8월 새크라멘토 킹스,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포함된 3각 트레이드를 통해 멤피스로 팀을 옮겼다.

부상 때문에... 유럽으로 돌아가다

이때 로페즈는 NBA가 아닌 스페인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부상에 대한 부담 탓이었다. 이미 무릎 수술을 수차례 받은 그의 입장에서는 82경기를 치르는 NBA보다는 경기수가 적고 출전시간이 일정한 유럽 리그가 더 맞았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스페인에서의 새 소속팀(아카시바유 히로나)에서 그는 2005-2006시즌에 평균 24.2분을 뛰며 10.1득점 2.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컴백을 알렸다. 그의 합류 덕분에 히로나는 전 시즌(16위)보다 더 나은 7위에 오르며 7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로페즈의 클래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1회전(8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팀은 한때 로페즈가 몸담았던 레알 마드리드. 히로나는 레알에게 시리즈 스코어 1-3으로 지며 탈락하게 됐지만 로페즈는 분전했다. 그는 4경기 동안 평균 28.5분을 뛰면서 12.8점(3점 슛 성공률 41%) 2.5어시스트로 코트를 종횡무진 누볐다.

이후 로페즈는 다시 레알(2006-2009)로 이적하였으며 러시아 모스크바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힘키 모스크바(2009-2011)에서도 뛰었다. 이 시기 로페즈는 ‘팀 우승’ 에 있어서만큼은 복이 있는 편이었다. 레알에서는 2006-2007시즌 ULEB(현 유로컵)컵과 스페인리그에서 우승했고, 힘키에서는 2010-2011시즌 VTB 유나이티드 리그 결승에서 CSKA 모스크바를 66-64로 꺾고 우승을 차지할 때 기쁨을 함께 했다. 러시아 무대에서 CSKA를 꺾는다는 것은 1년에 몇 안 되는 ‘대사건’이기도 했다.

2011년 로페즈는 힘키를 떠나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빌바오와 계약을 맺었고 여기에서 5시즌을 보냈다. (※ 바스크 혈통 선수들로만 팀을 꾸리는 성인 축구팀과 달리, 빌바오 농구팀은 그런 영입 장벽이 전혀 없다.)

로페즈가 머무는 5시즌 동안 빌바오는 괜찮은 성적을 냈다. 스페인리그에서 플레이오프에 3번(2012년, 2013년, 2015년)이나 올랐고, 2011-2012시즌에는 유로리그 8강에도 올랐다.

빌바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던 로페즈는 올해 3월 3일, 2015-2016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혔으며 결국 사라고사 전을 마지막으로 파란만장했던 현역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사실 ‘NBA 선수’ 로페즈를 기억하고 있는 국내 농구팬들에게는 ‘결국은 실패해서 유럽으로 돌아간 NBA 리거’ ‘베이징올림픽 결승에서 미국 대표팀의 압박 수비에 허둥거리며 무너져버린 스페인 대표팀의 불안요소’ 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페즈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며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젊은 시절 큰 부상을 계속 당해 양 쪽 무릎이 성치 않은 상황에서도 10년 넘게 선수생활을 해왔다. 그것도 높은 레벨에서 말이다.

농구 선수로서 견디기 힘든 큰 부상을 연이어 당했음에도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유종의 미’ 를 거둔 로페즈. 그의 강인함은 스페인 농구를 기억하는 농구팬들에게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 사진= FIBA, 유로리그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민욱 기자 이민욱 기자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