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나카지마 감독

기자 / 기사승인 : 2021-08-05 21: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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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카지마(中島) 감독을 1990년에 나고야에서 처음 만났다. 아시아청소년농구선수권대회가 열렸을 때다. 한국은 여자부 우승을 차지했다. 감독은 김재웅, 코치는 황신철이었고 주요 선수는 유영주, 전주원, 한현 등이었다. 정선민이 막내였을 것이다. 남자팀에는 이상민, 김승기, 문경은, 전희철, 우지원, 노기석 등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저녁 늦게 기사를 마감하고 숙소인 센트럴팰리스 호텔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맞은편에 나카지마 일행이 앉아 있었다. 미쓰비시여자농구단의 감독으로 일하던 나카지마는 한국인 고문 임계삼 선생을 모시고 있었다. 그의 친절한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가 뒤범벅된 제3의 언어로 짧게 대화했다. 농구에 대한 사랑, 한국 농구에 대한 존중, 따뜻한 마음을 느껴서 좋았다. 대회 기간 동안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고 대화했다.


나카지마 감독을 두 번째 만난 곳은 스페인이다. 이 사진도 그때 찍었다. 1992년 5월 28일부터 6월 8일까지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농구 예선이 서부도시 비고에서 열렸다. 나카지마는 일본 대표 팀의 코치로서 나카가와 감독을 돕고 있었다. 일본은 이때 매우 훌륭한 경기를 했고, 순위도 우리보다 높았다. 일본은 4승3패, 우리는 3승4패. 그래도 한일전의 승자는 우리였다. 정주현-최경덕 코칭스태프에 조문주, 정은순, 최경희, 유영주, 전주원 등이 우리 팀의 주축이었다. 계속 뒤지다가 후반 막판에 경기를 뒤집었다.


유영주가 역전골을 넣었다. 이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속공 기회에서 유영주가 골밑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스텝을 옮기며 훅슛을 넣었다. 그냥 왼쪽에서 넣어도 됐는데, 블로킹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수비가 따라붙지 못한 상태였다. 이때 발목을 다쳤다. 선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유영주는 초인적인 의지로 수술과 재활을 이겨내고 아시아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포워드가 됐다. 그래도 이 부상은 은퇴할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


일본팀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인지 나카지마의 표정도 늘 밝았다. 나는 그에게서 일본 여자농구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들었다. 카토, 하기와라, 무라카미 같이 뛰어난 선수들에 대해 깊이 알게 되었다. 그가 선수단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던 날, 나는 마드리드를 거쳐 스톡홀름으로 가는 스칸디나비아 항공에 몸을 실었다. 40일에 걸쳐 3개국을 거치는 긴 출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출장은 문학가나 체육기자의 삶 양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때의 경험이 무수한 시와 산문, 신문기사 속에 녹아들었다.


나카지마는 한국에도 자주 왔다. 소속팀의 전지훈련이나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 팀의 일원으로서. 그는 내가 일본음식을 잘 먹고, 특히 우메보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유리병에 질 좋은 우메보시를 담아다 주곤 하였다. 나는 변변찮은 기념품으로 답례했을 뿐이다. 매번 고맙고도 미안했다. 그는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예의바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와 긴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늘 아쉬웠다. 나는 기자였고, 그는 회사나 일본농구협회를 대표하고 있었으므로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의 걸음이 끊어져, 나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물어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나는 한동안 일본 농구기자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들에게서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들 덕에 일본 농구 리그의 사정을 우리의 농구대잔치 순위만큼이나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남녀고등학교부터 대학과 실업에 이르기까지. 친한 농구기자들이 하나 둘 현장을 떠나면서, 나카지마의 소식도 아득히 멀어져갔다. 지금 나는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코로나의 지옥 속에서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 모쪼록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그를 다시 만나면 충무로 골목으로 데려가 삼겹살을 구워 먹이고 싶다. 일본에서 만난다면? 그건 나카지마가 알아서 하겠지.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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