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곽정미라고 합니다. 대한농구협회에서 일을 했었고 2017년 FIBA에 입사해 National Federations Development 부서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BASKETBALL CHAMPIONS LEAGUE Operations manager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곧 퇴사를 하게 됐네요. 하하.
대한농구협회에서도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원래 농구 행정 쪽에 관심이 있던 건가요?
사실 농구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에요. 농구협회 3년, FIBA에서 7년간 농구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농구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저는 한국에서 숙명여대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주변 친구들은 자격증 따고 그럴 때 저는 ‘내가 하고싶은 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가 마음이 가야 무언가에 몰입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다 해외 봉사활동을 갈 기회가 있었어요. 필리핀에서 스포츠 프로그램 일정 관리하는 일이었는데 스포츠는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통하는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봉사활동 하러가서 제가 얻고 온 게 더 많았지요. 마침 런던올림픽 해(2012년)여서 대한체육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을 했고 팀 코리아 하우스에서 일을 했어요. 외국손님들에게 가이드를 하다가 체육회와 연이 닿았죠. 대한농구협회에서 국제업무 전문인력 파견을 보고 지원하면서 일을 하게 됐어요. 문성은 국장님이 당시에는 차장으로 있었죠.
농구협회에서는 어떤 업무를 했나요?
협회에서 국제업무 전문인력으로 일했고 2년간 FIBA로 파견을 갔어요. 파견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농구 행정업무를 농구협회에서 해봤고 영어도 되니까 바로 통과가 돼서 FIBA에서 일했죠. 한국으로 돌아가서 국제업무 담당으로 농구협회에서 1년간 일했습니다. 영어가 들어간 업무는 무조건 제 몫이었죠. 하하.

남편과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제가 농구협회에서 나와서 1년간 영국 러프버러에서 스포츠 경영 공부를 할 때 같이 지내던 친구가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됐어요. 프랑스에 결혼식을 보러 갔는데, 친구 남편의 사촌 형인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친구 결혼식이 끝나고 한주도 안 빼고 계속 만났어요. 기차로 2시간 거리여서 꽤 멀었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남편과 연애하다가 결혼을 했어요. 어디에 살지 고민을 하다가 불어권이고 제가 스포츠 네트워크가 있는 스위스에서 살기로 결정을 했어요. 제가 스위스에 있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FIBA 파견 때 일했던 동료가 다시 조인할 생각 없느냐고 해서 별도의 면접 없이 FIBA에 입사했어요. FIBA에 있을 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했던 걸 많은 분들이 좋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국인들이 어딜가든 열심히 일해서 한국인 싫어하는 곳이 없어요.
남편도 농구관련 일을 하나요?
아니요. 남편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관련 직업이에요. 어디든지 일자리를 구하기 쉬워서 제 위주로 살 곳을 정한 것이죠. 농구는 전혀 관심 없어요.
FIBA는 부서가 어떻게 분리되어 있나요?
부서가 다양합니다. 국제대회 대항전 관할하는 경기부서, 심판 관할 부서, 이벤트 부서, 매 대회마다 브랜드 담당하는 마케팅 부서 있는데 마케팅은 아웃소싱을 하고 있어요. 스폰서십 딜을 만들어내는 부서죠. 그밖에 커뮤니케이션 부서에서는 디지털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국제연합&스포츠 부서에서 일을 했어요. 각국 농구협회 발전을 돕는 프로그램을 했는데 선수부터 에이전트, 코치 만들어내는 교육프로그램이에요. 한국이랑 일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한국은 잘 사는 나라여서…아프리카, 남미나 아시아의 발전이 덜 된 국가가 많으니까 그런 곳이 우선이었어요. 제가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푸시 많이 했는데 안됐어요. 농구협회 규모가 큰 나라가 정말 얼마 없어요. 아프리카는 거의 1명이 일하죠. 그 이상이 있으면 대부분 세컨 잡이죠.

클럽대항 대회는 대개 유로리그만 알려져 있으니까요. 8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어요. FIBA와 유럽 11개 리그가 파트너십을 맺고 출범했어요. 유로리그는 참가 팀이 일정 수준의 참가비를 낼 수 있는 팀이 정해져 있는데 챔피언스리그는 파트너십 리그 모든 팀에 초청장을 보내요. 공정한 경쟁을 모토로 이사회를 거쳐 참가팀을 결정합니다. 유로리그에 나서지 못하는 작은 국가의 리그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죠. 유로리그는 상업적인 색이 강해요. 챔피언스리그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색깔을 내고 있고 주목받는 리그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어떻게 챔피언스리그 일을 하게 됐나요?
사이드 업무로 메디컬 위원회로 있었는데 코로나19 때 코로나 프로토콜 담당하면서 챔피언스리그, 3x3, 국가대항전을 다 맡았어요. 그러다 챔피언스리그 초대로 3번 정도 갔고 그 인연이 닿아 이벤트 업무를 했어요. 스포츠는 이벤트가 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느정도 중압감이 있는 일을 좋아하는데 딱 맞았어요. 이전에 했던 프로젝트는 10년 정도를 내다보고 하던 거라 그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는데 대회 이벤트는 곧바로 결과가 보이니까 매료됐어요. 챔피언스리그 회장님과 가깝게 지냈는데 일에 관심있다고 했더니 제 업무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했고 부서 이동을 하게 됐어요. 현재 챔피언스리그 오퍼레이션(대회운영)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농구협회에서 대표팀 하나가 어떻게 꾸려지고 어떤 일 일어나는지 겪은 것이 도움이 됐고 농구 행정에 있어서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거 같아요. 전문성 있는 행정업무의 필요성을 경험했습니다.
FIBA에서는 한국(대한민국농구협회)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국가로서는 선진국이지만 농구 경기력으로는 국제대회에 나오지 못하는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어요. 행정상 문제 있는 협회로 보지는 않습니다. 월드컵에서 한국을 못 보니까 아쉬워하죠. FIBA에서도 한국에 대한 이해를 더 하고 싶다고 해서 보고서를 쓴 적이 있는데 저변이 부족한 부분을 아쉬워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엘리트 시스템이잖아요. 생활체육, 학교 체육 등 저변이 없으면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가 없어요. 일본이 저변을 넓게 해서 성장하고 있는 케이스죠. 꾸준히 투자하고 있고요. 일본은 스포츠에 투자를 하면 기업에게 세금 혜택을 준다고 해요. 그러니까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질 수 있죠.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으니까… 기업에서 스포츠를 하려고 하는 분위기는 아니죠.

부끄러운 얘기인데…코로나 프로토콜 담당이어서 도쿄올림픽을 갔어요. 제 바로 뒤에 스티브 커 감독(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이 앉아 있는 것이 화면에 잡혀서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왔어요. 그런데 제가 스티브 커라는 사람이 누군지를 몰랐어요. 하하. 루카 돈치치, 케빈 듀란트 같은 슈퍼스타들이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하는걸 보니 제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팬들이 이런 스타들의 경기를 보지 못하는 게 아쉽기도 하더라고요. 아, 그때 한국여자농구 대표팀이 올림픽에 나와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전주원 감독님 뵙고 반갑게 인사했어요.
농구 관련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가 있나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파이널4예요. 리그를 이어온 과정을 거친 팀 중 상위 4개 팀이 경기를 해서 우승팀을 가리는데 그 가운데에서 스토리가 나오잖아요. 지난 시즌에 독일 작은 팀인 텔레콤 바스켓 본이 우승을 했어요. 자국리그(분데스리가)에서도 잘했는데 거기서는 우승을 하지는 못했더라고요. 챔피언스리그에서 독일 팀이 우승을 했는데 몇 달 뒤 월드컵에서도 독일이 우승하는 것을 보고 독일이 상승세에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요. 그 팀에 TJ 쇼트(현 파리 생제르맹)가 기억에 남아요. 키가 엄청 작은 선수(175cm)인데 체공시간도 너무 길고 큰 선수들을 상대로 플레이도 너무 멋지게 했어요. 기본적으로 너무 좋은 사람이기도 했어요. 독실한 크리스천이고 부모님에게도 너무 잘하더라고요. 시상식 때도 거의 분위기를 주도했어요. 그 팀과 쇼트가 기억에 남아요. 제 최애 팀으로 남을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할 때 농구를 미친 듯이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농구를 사랑하게 됐네요.
FIBA와 같은 국제 스포츠단체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대학생들도 많을 텐데 조언을 한다면요?
‘무작정 국제연맹에서 일하고 싶어’ 이런 마음보다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에요. 일을 하면서 뭘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제가 좋아했기 때문에 열심히 했고 허영심 없이 했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 찾는게 중요해요.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아요. 너무 힘든일이 많은데 그 일을 좋아하면 잘 넘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영어는 말 안 해도 중요하고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오픈마인드도 필요해요. 항상 같은 자세로 일을 해서는 안되요. 예를 들면 일을 정확하게 해야 하지만 아프리카 구단이나 협회에 정확성을 원하면 안되는 것이죠. 유럽에서 아프리카 팀과 일을 하다보면 불만이 많은 편인데 그들의 문화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해요.

올해 남편이 피부암 진단을 받아서 충격이었어요. 피부과에 점 빼러갔는데 병원에서 ‘점 뺄때가 아니다’ 하더니 암을 발견했어요. 또 그 주에 제가 차 사고가 크게 났어요. 폐차할 정도로 차가 망가졌어요. 그 때 ‘인생이 계속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는데 무시하고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이 남편은 암 초기여서 2차 수술까지 하고 완치 됐어요. 남편이 스위스에서 행복하지 않은지가 꽤 됐어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 살기 좋아보이겠지만 삶은 그게 다가 아니죠. 물론 스위스에서 잘 살고 있는 분들도 많고 치안도 너무 좋은 나라지만 남편에게는 창살없는 감옥같았던 거 같아요. 둘 다 고민 많이 했어요.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하다가 발리로 가기로 했어요. 6월에 남편이 암 진단 받고 7월에 사표를 냈는데 12월까지 일을 해달라고 해서 지금까지 왔네요. 일적으로는 아쉬워요. 너무 좋은 팀이에요. 팀에서 송별회를 했는데 저를 위해 영상을 만들었어요. 한명 한명의 메시지도 감동이었고 눈물 흘릴 정도였어요. 스포츠 업무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회사 문화라고 할까요. 농구 종목이어서 그런지 팀워크가 더 있었던 것 같아요. 많이 그리울거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FIBA를 그만뒀지만 챔피언그리그를 통해서 이벤트에 매료됐어요. 발리가서도 프라이빗 파티나 웨딩, 스포츠이벤트 일이 많아서 가서 제 에이전시를 차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프리랜서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다른 형태로라도 FIBA와 일을 할 것 같아요. 스포츠를 놓을 생각은 아니에요. 발리가서도 저한테 안 맞으면 스위스로 돌아올 수도 있고요. ‘Life will support you(인생은 당신을 지탱할 것이다)’라고 하잖아요. 저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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