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니, 그게 아니라…” ‘ 국보 센터’의 예능 정복기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4-12-01 06: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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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쫄쫄이를 입고 성치도 않은 무릎으로 쭈그려서 줄넘기하는 그의 모습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지만, 단발성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능 공룡’의 모습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다양한 장르까지 영역이 확대됐다. “아니, 그게 아니라…”부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까지. 유행어도 많다. 압도적인 농구선수였던 그를 ‘빌런’처럼 대했던 시선도 하나둘 따뜻해졌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도 힘든데 그는 서로 다른 두 영역에서 탑을 찍었다. ‘한국 농구 1옵션’, ‘국보 센터’를 넘어 예능에서도 국보가 된 서장훈의 인생 2막이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2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은퇴 후 본격적으로 방송에 출연하기 전까지 어떻게 지냈나?
6개월 정도는 푹 쉬었다. 못 만난 사람들 만나서 놀고, 술도 한잔하면서 지냈다. 계속 그렇게 노니까 너무 힘들더라.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가 6개월을 놀기만 하니 몸이 더 힘들다는 게 느껴졌다.

골프도 했는데 그다지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고 하던데?
6개월 정도 골프를 해봤는데 못 쳤다. 물론 처음이니까 못 쳤겠지만…. 그 와중에 시간이 너무 길다. 하루 종일 해야 하는데 그건 너무 지겹고 나랑 안 맞는다. 아침부터 나가야 할 때도 있고, 술도 한잔하면서 칠 때도 있어서 그냥 내려놓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남들에게 내가 못 하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게임이든 뭐든 내가 못 하는 건 그냥 안 했다.

원래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나?
승부욕 하면 미친다. 그거 없으면 농구를 그 정도까지 했겠나. ‘키 크면 싱겁다’라는 게 어릴 때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었다. 장신 가운데 승부욕 강한 사람은 많지 않은데 나는 승부욕의 화신 같은 DNA를 갖고 태어났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승부를 가리는 걸 안 한다. 승부욕은 농구에서 그만. 다른 걸로 승부욕 부리고 싶지 않다. 시청률이 갈리지만, 방송은 이기고 지고를 가리는 승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방송에 본격적으로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한도전’에 처음 나갔을 때 뭔지도 모르고 쫄쫄이를 입었는데 반응이 크지 않았다. ‘4남 1녀’라는 프로그램에서 어쩌다 고정을 하게 됐다. 그때도 별 반응이 없었다. ‘방송이랑 안 맞는 것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몇 개월 후 우연히 ‘유혹의 거인(무한도전)’에 나가게 됐다. 그냥 불러서 나갔던 건데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타이밍이라는 게 참 재밌다. ‘유혹의 거인’에 나가기 전 (김)구라 형과의 인연 때문에 ‘라디오스타’ 촬영을 했다. ‘유혹의 거인’이 토요일, ‘라디오스타’가 다음 주 수요일에 방영됐는데 연달아 좋은 반응이 나왔다. 이후 여러 군데에서 엄청나게 섭외가 들어왔다. 하지만 다 나가진 않았다. 선수 시절의 자존심이 거기서 발동된 건지 모르지만, 섭외를 받았다고 다 나가고 싶진 않았다. 기획이 괜찮거나 제대로 대우해주는 프로그램만 출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좋은 선택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정 제의가 늘어났고, MC까지 하게 됐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방송이 선수 서장훈에 대한 오해를 줄이며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
초창기에는 그 마음이 제일 컸다. 선수 서장훈을 모르는 사람들은 편견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방송을 재밌어한다. 선수 서장훈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칠고 무뚝뚝하다는 편견이 있지 않나. 그런데 방송 출연 이후 그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어? 서장훈이다’ 정도였는데 이후에는 아주 따뜻했다. 대중들이 나를 반기는 게 느껴졌다. 그때 이렇게 방송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돈도 벌지만…. 사실 방송인으로 이렇게 잘 풀리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생각보다 훨씬 잘 풀린 걸 보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다.
서장훈이라는 사람은 당연히 농구선수다. 농구에 내 인생을 바쳤다. 농구할 때 늘 아쉬웠던 게 팬들의 지지, 응원이었는데 전혀 다른 분야에서 받고 있다. 선수 시절보다 몇십 배, 몇백 배 이상. 나도 이런 걸 보며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는 걸 느낀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체육인, 방송인으로 모두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다.

어쨌든 최초로 수상했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방금 얘기했듯 운이 좋았던 건 확실하다. 이렇게 방송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농구다. 좋은 놈이든 나쁜 놈이든 오랜 기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선수로 뛰었다. 그 힘이 컸다. 인지도만큼은 어느 누구보다도 밀리지 않았다는 게 방송할 때 굉장히 도움이 됐다. 예를 들어 연예계에서는 신인이 얼굴을 알리는 데에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반면, 나는 아주 어린 친구들을 제외하면 아는 얼굴이다. 그 힘으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현역 시절에는 선수가 방송에 나오는 걸 싫어한 선수 중 1명이었다.
진짜 싫어했다. 이 얘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학 시절에 별별 프로그램에 다 나갔는데 어릴 때였는데도 ‘꿔다놓은 보릿자루’라는 느낌을 받았다. 연예인들 옆에 멀뚱멀뚱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동안 안 나갔다. 삼성으로 이적한 후 팀에서 홍보 차원으로 몇 번 하자고 해서 2003년 오프시즌에 지상파 3사에 한 번씩만 나갔다. 쟁반노래방(KBS), 야심만만(SBS), 전파견문록(MBC)에 같은 시기에 나갔는데 예전이랑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현역 선수, 그러니까 이걸 업으로 삼지 않고 있는 사람이 방송인들과 융화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유명했으니까 그 이후에도 섭외는 계속 들어왔지만, 은퇴할 때까지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도 지금 방송 활동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대중 입장에서 아직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허웅-허훈 형제, 이관희는 방송 활동을 하며 인지도가 높아졌다. 농구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까?
그렇게 해서 농구 인기가 올라갈 수 있다면야…. 물론 예전에 비하면 팬이 늘어난 게 사실이다. 분명 긍정적인 면도 있다. 문제는 출연한 것만으로 방송에서 꾸준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시간은 한정됐고, 자칫 방송 나온 이후 성적이 안 좋으면 바로 그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오프시즌에는 할 수 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더 현명했으면 좋겠다. 운동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병행한다? 이거는 내가 봤을 때 더 불가능한 일이다. 오프시즌에 방송하고, 시즌 개막하면 운동만 하는 게 우리나라 환경상 쉽지 않다. 방송계는 새로운 사람을 늘 환영한다. 핫한 사람을 환영하지만, 여기저기 쭉쭉 다 나가며 소모가 되면 궁금한 게 끝난다. 끝날 때까지 본인만의 특별함을 못 보여주면 안 찾는다. 그걸 선수들도 잘 알아야 한다. 방송에서는 핫한 인물이 계속 나오는데 그 벽을 뚫고 넘어가려면 계속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현역 선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시즌 치르는 도중에 나갈 순 없지 않겠나. 그리고 방송은 더 예민한 분야다. ‘그냥 섭외가 들어왔다고 나가서 즐기다가 출연료만 챙기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요즘 은퇴한 선수들이 방송에 많이 나오려고 한다. 그냥은 힘들다. 평소 책도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준비가 되어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그런 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 금방 끝난다.

프로그램을 고르는 기준이 있는가?
초창기에는 아무래도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 같이 하자고 하면 나갔다. 그래서 결과가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있었다. 10년 넘게 방송 활동하며 고정으로 출연했던 프로그램이 엄청 많았고, 일찍 종영된 프로그램도 적지 않았다. 방송도 늘 도전이다. 어디서 비가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우선이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이해관계를 따르는 것도 있다. ‘내가 하는 게 맞나?’ 싶어도 이해관계에 따라 출연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핸섬타이거즈’만큼은 진지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슷비슷한 소재로 만든 농구 예능 프로그램이 종종 있었지만, 그걸로는 승부가 안 난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웃고, 까불고, 대충하다 마는 걸로는 어려울 것 같았다. 기왕이면 선수 출신이 없는 연예인들이 똑같이 선수 출신 없는 최고 수준의 동호회 팀과 맞붙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 농구를 알려주고, 되든 안 되든 이 팀으로 진짜 붙어보자는 게 기획 의도였다. 내가 방송사에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기획해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방송에서 어떻게 비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출연했던 모든 이들이 열심히 임해줘 고마웠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벽은 있었다. 선수가 아닌 데다 매일 모여서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짜내다 보니 패턴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시국이었다는 건 아쉽다. 관중이 많이 입장한 가운데 진행됐다면 훨씬 보기 좋았을 것이다. 어쨌든 웃기는 예능이 아닌 리얼 농구를 지상파에서 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이티마우스의 쇼리가 패턴 연습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고 한다.
연예인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감성이 충만한 예술가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 규칙으로 뭉쳐서 하나로 움직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연습할 시간 자체도 적었다. 차은우 동생도 외국을 그렇게 다니는 와중에도 열심히 임해줬다. 실력이 좋은 연예인이 몇 명 더 있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5명 정도 보강이 됐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MBC 스포츠플러스나 스포티비에서 객원 해설위원으로 중계한 적이 있는데 정식 해설위원 제안은 없었나?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 활동을 시작해서인지 없었다. 아니면 현역 때 연봉을 많이 받아서 그랬나(웃음). 나 말고도 하실 선후배들이 많다. 어차피 지금 할 수도 없다.

수많은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을 꼽는다면?
내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또 있다. 300회 이상 된 프로그램을 5개 이상 하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300회를 찍으려면 약 6년이 필요하다. ‘아는 형님’이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미우새’는 9년, ‘동상이몽’ 8년, ‘연애의 참견’도 6년이 넘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살’도 300회를 앞두고 있다. 모두 내 덕분은 아니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함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늘 방송을 많이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5개 프로그램에 거기에 2, 3개 더하면 일주일에 7, 8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출신이라는 걸 방송의 소재로 삼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솔직한 마음을 얘기하자면, 예전에는 연세대 얘기하는 걸 즐기지 않았다. 연세대를 좋아하고 졸업까지 했지만, 나는 특기자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까지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다(웃음). 그런데 최근 연세대로부터 백종원 대표님, 오은영 선생님과 함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 이후 책임감이 생겨 방송에서 부쩍 연세대 얘기를 하게 됐다. 진심도 있지만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선에서 소재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려대 얘기하면 괜히 뭐라하고, 연세대 출신이라고 하면 악수 한 번 더 하는 게 그런 거다.

꼭 감독, 코치가 아니어도 언젠가 농구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는데?
뭐가 됐든,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서장훈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당연히 농구가 첫 번째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기여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늘 고민하고 있다. ‘핸섬타이거즈’도 그 일환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농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이거라고 생각했다. 방송국에 제의하고, 여러 가지를 설득했다. 그런데 의아했던 점이 있다. KBL 입장에서 지상파에 나오는 굉장히 좋은 기회였는데 너무 관심이 없어서 놀랐다. 맥이 빠졌다고 할까. 결국 ‘뭐 그런가 보다’ 싶었다. 어쨌든 무엇으로든 농구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다.

서장훈에게 점프볼이란?
참 오래됐다. 2000년에 창간해 오랜 기간 농구계 소식을 전해줬는데 이 잡지에 나도 많이 나왔다. 좋은 얘기부터 나쁜 얘기까지 별별 얘기 다 나오는 사이 정이 많이 들었다. 요새도 가끔 시간 날 때 인터넷으로 농구 기사를 보는데 출처가 점프볼이면 더 반갑다. 최근 10년 정도는 없었겠지만, 그 이전 약 200권에 선수 서장훈의 역사가 담겨있어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초등학교 친구 있지 않나. 10년 만에 만났는데도 어제 본 것 같다.

점프볼을 향한 응원의 한마디를 남긴다면?
글쎄…. 이건 꼭 점프볼이라기보단 넓은 의미에서 얘기하겠다. 시대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서 같이 변했으면 좋겠다. 남들이 변하니까 우리도 막연하게 변해야 한다고 하면 안 된다. 우리만의 농구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누구도 그런 생각을 잘 안하는 것 같다. 단순히 올 시즌에 누가 우승하고, 누구를 영입하는 걸로 될까. B.리그가 이렇게 발전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바뀌었다. 최근 치바에 생긴 NBA식 체육관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같은 선진국에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치를 수 있는 체육관이 하나도 없다는 건 코미디다. 잠실학생체육관은 내가 중학교 때부터 뛰었던 체육관이다. 지은 지 오만 년 됐다. 물론 여러 사정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오래 농구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잘 알고 있지만…. 이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지만 은유적으로 표현하겠다. (잠시 뜸을 들인 후)내용물이 특별하지 않다면 포장이라도 예쁘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훌륭한 시설, 좋은 먹거리, 사고싶어지는 유니폼 등등 폼나는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 B.리그가 그렇다. 한 팀에 외국선수(혼혈 포함) 4명이 뛰는 게 일본 팬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었다. 지역 팬들과 끈끈하게 밀착해서 관중석을 가득 채우지 않나. 그건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린이들이 ‘나도 저 팀에서 뛰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농구를 시작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좋은 선수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오래 했는데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인기 안 올라간다고 고민만 하고 바꾸지 않으면 점점 더 밀려날 것이다. 물론 경기력도 중요하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농구가 그런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에 점프볼이 앞장섰으면 한다.

‘무엇이든 물어보살’ 팬들이 서장훈에게 물었다
20대의 몸이 됐다. 그렇다면 그 당시로 돌아갈 것인가, 지금 시대에서 뛸 것인가? 당연히 지금 시대에서 뛴다. (외국선수가)1명이지 않나. 상상에 맡긴다(웃음).

최고의 보양식은? 집밥이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워낙 잘 먹여주셨다. 그 어떤 부잣집보다도 잘 먹으면서 자랐다.

본인이 귀여운 거 알고 있나? 글쎄…. 모르겠다.

서장훈 5명이면 올림픽 금메달 가능? 에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어.

농구계로 돌아올 확률은 몇 %인가? 돌아온다면 그 시기는? 농구도 30년 동안 했지만, 방송 활동도 내가 10년 동안 노력해서 이룬 것이다. 방송은 지금 나의 인생이다. 여기서 앞으로도 도전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너무 시간이 흐르면 ‘그때 내가 농구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란 고민도 드는 건 사실이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서 내 철학대로 팀을 만들고 싶은 꿈은 있다. 그게 몇 살쯤이나 될까(웃음).

감독, 코치, 선수, 지원스태프 등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과 함께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최희암 감독님을 시작으로 해서 너무 많다. 유재학 경기본부장님도 대학 시절 코치님이었다. 동료 중 누구 하나를 꼽기 힘들 정도로 다 소중하고 정도 많이 든 인연들이다.

#사진_유용우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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