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앤드 원, 운명의 또 다른 이름

기자 / 기사승인 : 2021-03-12 15: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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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쉬운 슛이 림을 외면할까. 체력이 떨어져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체력이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의 여러 변수 가운데 비교적 아래쪽에 있다고 생각한다. 골밑에서 던지는 점프슛이든 레이업슛이든 선수들에게는 평생 해온 일들이다. 그 모든 동작들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근육 속에 저장된 에너지가 0에 이르지 않는 한 그들의 두 팔은 그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런데 왜 골밑슛이 림을 넘고 레이업슛이 그물 아래쪽을 때리고 말았는가?

3차전을 앞두고 삼성생명의 김보미 선수와 KB의 안덕수 감독이 ‘정신’ 또는 ‘정신력’을 입에 담았다. 그래서 3차전은 정신의 힘을 다투는, 제법 철학적인 경기가 될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온전한 정신 만의 경기는 있을 수 없다. 오직 피지컬 만이 지배하는 경기가 불가능하듯이. 운동 경기에서 선수나 감독이 말하는 정신력이 그냥 끈기나 인내력, 참을성, 독기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여기에는 지성과 지혜가 포함된다.

참된 용기는 폭력과 다르다. 누군가 실패를 딛고 일어설 때 우리는 용기를 본다. 실패의 원인을 알아내고, 그것을 바로잡고, 그럼으로써 성공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선수가 용기 있는 선수다. 이런 선수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이다. 선수의 정신력은 그 자체로서 드러나지 않고 경기의 일부분이 되어 관중의 뇌리에 각인된다. 11일 청주 경기에서 KB의 심성영 선수가 보여준 농구가 그랬다고 본다. 심 선수는 2차전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눈부신 경기를 했다.

운명이란 늘상 우주의 나그네와 같다. 누가 뭐라든 제 길을 간다. 영원에서 출발하여 영원을 향해 가는 운명은 주위를 살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운명의 주인이 위대한 순간은 운명에 굴복하지 않을 때, 자신의 운명과 처절하게 싸워낼 때이다. 운명은 결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 뒷모습 만을 보고 이해하고 기억할 뿐이다. 운명의 진심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아침 해를 맞은 성경 속의 야곱처럼.

-어떤 분이 나타나 동이 트기까지 야곱과 씨름을 했다. 그분은 야곱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를 다치게 되었다. 그분은 동이 밝아오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했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놓아드릴 수 없다고 떼를 썼다. 일이 이쯤 되자 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이 말을 듣고 야곱이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십시오.” 그분은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창세기 32,25-30)

운명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 또한 사정을 봐주지도 않는다. 저 야곱보다 고통스런 투쟁을 거치지 않고는 그 무엇도 얻지 못한다. 지친 선수의 슛이라고 해서 들어다 바스켓에 넣어 주지 않는다. 지친 선수의 골이라고 해서 한 점이나 두 점을 더 셈해 주지도 않는다. 삼성생명의 선수든, KB의 선수든 자신이 지쳤다고 생각되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것은 운명을 향한 물음이기도 하다.

운동선수의 경기를 퍼포먼스라고 한다. 직업연주자의 공연도 퍼포먼스다. 그 둘이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안다. 그래도 감정은 두 퍼포먼스를 다스리는 중요한 본질 가운데 하나다. 원인도 결과도 퍼포먼스라는 실제의 행위를 통해 행로를 찾아낸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그 자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선수가 힘겨워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관중은 동정할 것이다. 그러나 관중은 선수의 슛이 들어가거나 어느 한 팀이 이기게 해줄 수 없다.

챔피언결정전을 둘러싼 분위기는 매우 들떠 있다. 그리고 숱한 서사가 삼성생명과 KB가 승부를 겨루는 코트 주변을 어지럽히고 있다. 베테랑 선수의 라이프 스토리, 부상을 딛고 일어선 선수의 부활과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에이스의 숙명에 이르기까지. 관중들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어느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챔피언으로 가는 길, 끝간 데를 알기 어려운 벼랑 끝의 행로를 걷는 선수들이라면 오직 자신들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진짜 승부사라면 팬들의 동정심이 아니라 고귀한 승리의 가치를 더 탐할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강한 전사라도 숨기고 싶은 약점이 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지쳤음을 상대가 확신할 때, 상대는 그만큼 더 강해지고 높아지고 빨라진다. 4차전의 결과는 누가 더 간절한지, 누가 더 집중하고 있는지 말해줄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누가 더 지혜로운지, 누가 더 솔직한지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체력은 승부의 가장 큰 변수가 아니다. 나중의 이야깃거리일 뿐이다. 변명이나 해명 같은. 소소하다고 느끼거나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경기의 일부분이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다. ‘앤드 원’ 같은. 간절함 때문이겠지만 선수들은 가끔 무모한 플레이를 한다. ‘악착같이 한다’거나 ‘끝까지 한다’는 마음가짐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빼앗긴 2점이 아니라 ‘공연히’ 내준 앤드 원 하나가 평생 후회로 남을 수 있다.

요즘은 ‘앤드 원’이라고 하지만 전에는 흔히 ‘보너스 원 샷’이라고 불렀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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