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길고 지루한 이야기

기자 / 기사승인 : 2021-04-15 14: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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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의 뛰어난 재상 안영(晏嬰)의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그의 자는 중(仲)이요 시호는 평(平)이며 제나라의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3대를 섬겼다. 제 환공(桓公)을 보좌한 관중과 더불어 춘추 시대를 대표하는 명재상으로서 내정을 잘 보살피고 외교에도 능했다. 그가 봉직하는 동안 제나라는 환공 시대 다음가는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공자도 제나라 관직을 원했으나 안영이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안영의 행적을 ‘안자춘추’, ‘춘추좌씨전’, ‘사기’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안영은 검소하여 밥상에서 고기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물론 식성과 체질 탓도 있었을 것이다. 사서(史書)는 안영의 키가 ‘여섯 자(尺)에 미치지 못한다.’고 기록하였다. 당시 한 자는 22.5㎝니까 여섯 자는 135㎝다. 제나라의 ‘넘버2’는 140㎝도 되지 않는 단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슬기롭고 용기가 있었다. 언제나 나라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간(諫)하였기에 군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사마천이 ‘사기’에 적기를 “그가 간언할 때는 그 군주의 안색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고칠 것을 생각한다(進思盡忠退思補過)’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양두구육, 안자지어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고사도 그의 직언에서 비롯되었다. 영공은 안영이 처음으로 섬긴 군주인데, 이때에 도성의 여성 사이에 남장 풍습이 유행하였다. 영공이 금하는 영을 내렸으나 풍습은 여전했다. 유행은 영공의 비빈(妃嬪)에게서 시작되었는데, 이들에게는 금령을 적용하지 않았으니 풍습이 사라질 리 없었다. 금령이 듣지 않음을 의아하게 생각한 영공이 안영에게 이유를 물었다. 안영은 “지금 하시는 일은 소의 머리를 내걸고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궁정 안에서부터 금한다면 유행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하고 직언하였다. 영공이 옳다 여기고 그대로 하니 도성 내에서 남장한 여성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 ‘우두마육(牛頭馬肉)’이 세월 따라 변화하여 ‘양두구육’이 되었다.

양두구육만큼 유명한 사자성어가 ‘안자지어(晏子之御)’, 즉 ‘안자의 마부’다. 하찮은 지위에 만족하여 뻐기는 사람의 비유. 윗사람의 위세만 믿고 우쭐대는 사람의 비유다. (조기형 이상억,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허세를 부리는 호가호위(狐假虎威)와 흡사하다. 여우는 호랑이를 이용하여 실제로 고약한 짓을 하지만 안자의 마부는 제가 잘난 줄 알고 의기양양하다가 충고를 받고 깨달음에 이르는 점이 다르다. ‘사기’의 관안열전(管晏列傳)에는 이렇게 전한다.

‘안자가 외출할 때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자기 남편을 엿보았다. 남편은 재상의 마부이므로 큰 일산(日傘)을 받쳐 들고 말 네 마리를 채찍질하며 의기양양했다.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가 헤어지자고 하니 남편이 까닭을 물었다. 아내가 말하였다. “안자는 키가 6척도 되지 않지만 재상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오늘 그가 외출하는 모습을 보니 품은 뜻이 깊고 항상 스스로 낮추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건만 남의 마부 노릇이나 하면서 의기양양하니 제가 헤어지려고 합니다.” 남편은 깨달음을 얻어 겸손해졌다. 안자가 마부의 달라진 모습을 이상히 여겨 물으니 그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안자가 그를 천거해 대부(大夫)로 삼았다.’

천거(薦擧)란 어떤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쓰도록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일이다. (표준국어대사전) ‘행정학사전’에 따르면 천거는 ‘조선 시대에 3품 이상의 고급관리들에게 관리로서 적합한 관원 후보자를 3년마다 3인씩 추천케 하는 임용 제도를 말한다. 천거는 과거(科擧)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유능한 인재를 널리 구하기 위해 실시되었으나 점차 문벌과 파벌 중심으로 변질되어 운영되었다. (이종수)

진정 강해야 하는 자리
실내스포츠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여자프로배구와 여자프로농구는 우승팀을 가려냈다. 남자프로배구와 남자프로농구는 플레이오프를 하고 있다. 두 리그의 우승팀이 가려지면 봄기운도 기울고 여름이 멀지 않다. 곧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시절이며, 올해는 올림픽이 (예정대로라면) 열리기에 스포츠팬들이 즐길 거리가 많다. 대중의 시선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와 올림픽으로 옮겨간 뒤라고 해서 겨울종목 구단들의 일거리가 줄지는 않는다. 프로스포츠의 숙명은 시즌 종료가 곧 새 시즌의 시작을 의미하고 (그런 점에서 지난 시즌 우승팀이 ‘챔피언팀’ 마킹을 부착하고 차기 시즌 리그에 참가하는 행위를 부당하다고 본다.) 만남과 이별의 중단 없는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 있다.

경기가 열리지 않는 동안에 구단 직원들이 해야 할 일 가운데 인사(人事)보다 중요한 일은 달리 없다. 선수를 새로 뽑고, 내보내기도 한다. 구단 차원에서 가장 큰일은 사령탑의 교체가 아닐까. 여객기의 기장, 크루즈의 선장을 바꾸는 일이니까 특정인에게 일정 기간 선수단의 운명을 맡기는 일이다. 잘못된 인선은 상당기간 팀에 후유증을 남긴다. 그러한 후유증은 잘못 뽑은 사령탑이 물러난 뒤에도 오랫동안 팀에 피해를 준다. 그렇기 때문에 구단에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구단이 수집한 각종 정보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괜찮은 대상을 골라 대화해 보기도 한다. 팀을 맡아 일하고 있는 현역 지도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적극적으로 팀을 맡아 일하겠다는 의욕을 보일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미래를 제시하면서 자신을 어필할 것이고.

나에게는 연례행사처럼 거듭해온 일이 몇 가지 있다. 농구 시즌이 끝난 다음 프로농구 구단에서 일하는 분들의 전화나 방문을 받는 일이다. 대개는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거나 ‘차나 한 잔 하자.’는 식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만나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다 보면 아무래도 농구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중에 절반 이상은 ‘사람’ 이야기다. 솔직한 분들은 “이번에 감독을 새로 뽑아야 하는데 좋은 사람을 천거해 달라.”고 말씀한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애매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분도 있지만 골자는 뻔하다. 나도 기자로 30년을 일했는데 그런 눈치 정도야 없겠는가. 다만 나의 대답은 분명하기 어렵다. 솔직히 누군가를 콕 찍어서 천거한 일도 없다. “저는 옛날 기자입니다. 요즘 농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발을 빼기 위해 노력한다. 답답해진 방문객은 방법을 달리 해서 누군가의 이름을 대며 “이 사람은 어떠냐, 저 사람은 어떠냐.”는 식으로 평가를 요구한다. 내 대답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다 ‘좋은 사람’이지. 그러나 그분들의 절박함을 모르지 않으므로, 나도 ‘서비스’를 조금 한다. 그분들이 묻는 대상자의 어떤 점이 좋은지 내가 아는 한 세세하게, 최선을 다해서 나의 견해를 설명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프로농구단이라면 좋은 감독을 뽑기에 앞서 강한 프런트를 구축해야 한다. 그 정점은 물론 (사장이 아니고) 단장이다. 사장이 아무리 농구에 밝아도 (특히 경기인 출신의) 전문가인 단장을 능가하기 어렵다. 단장은 사장의 부하나 보좌역이 아니고 존중받아야 할 전문경영인이다. 구단의 정점은 단장이어야 한다. 뛰어난 안목과 실력, 팀의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과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을 겸비한 단장이 있는 구단이라면 매우 긴 시간 동안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발휘하고 고급스런 구단 문화와 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론과 비판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를 갖춘 팀은 남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팀인 KCC다. 나는 농구명문 용산고등학교와 연세대를 나온 경기인으로서 샐러리맨 생활과 구단 프런트 경험을 겸비한 최형길 단장을 배제하고 KCC가 그 동안 거둬온 성과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는 팀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혜안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농구철학을 관철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함께 갖췄다.

작은 감독, 큰 코치
봄날의 방문객 중에는 농구 지도자도 적지 않다. 특히 새로 팀을 맡은 지도자의 방문을 받으면 그 사람의 에너지와 희망이 나에게도 넘쳐흘러 덩달아 힘이 난다. 이런 분들은 코치와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대개 평소 신뢰하는 후배를 동반자로 선택한다. 나에게 코치로 누가 좋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분도 있다. 나는 이번에도 비슷한 이유를 대면서 천거를 거절한다. 누군가를 추천하는 일은 단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모든 것, 생각과 말과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나에게는 그럴 용기와 확신이 없다. 아주 가끔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에 가까운 코치를 보는데, 그럴 때 매우 행복하다. 다행히 그 코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속된 말로 신나게 ‘입을 턴다.’ 그렇지 않고 감독이 자신이 선택한 코치와 함께 오면, 감독보다는 코치에게 말을 많이 한다. 전형적인 ‘꼰대’가 되어 이것저것 당부와 축복을 버무려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 어떤 상대에게도 빠뜨리지 않고 하는 말은 이것이다.

“B코치님. A감독님을 잘 보좌하세요. 모쪼록 작은 감독이 아니라 큰 코치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최근의 우리 농구에서는 감독과 코치의 역할이 비교적 선명하게 나뉘어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 팀도 적지 않지만 흐름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감독과 코치는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과 악장처럼 해야 할 일이 다르다. 이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반드시 분란이 생긴다. 운이 좋아서 선수들이 경기를 잘 풀어나가고 순위표 높은 곳에 오르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대개는 오래 가지 않는다. 그리고 팀이 어려운 지경에 처하면 감독과 코치가 모두 조바심을 내고 구단에서는 둘을 갈라 쳐서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려 든다. 팀에 문제가 생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독을 물러서게 하고, 코치를 ‘승진’시키는 결정을 한 구단이 좋은 결말을 보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다.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의 6차례에 걸친 챔피언십은 마이클 조던, 스코티 피펜처럼 뛰어난 선수들을 현명하게 지휘한 명장 필 잭슨과 더불어, 트라이앵글 오펜스라는 강력한 팀 전술과 함께 떠오르는 이름, 프레드 텍스 윈터를 기억하지 않고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윈터 코치가 2018년 10월 11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 연합뉴스의 김현 통신원은 “필 잭슨 감독과 함께 ‘불스 왕조’를 이끈 윈터가 캔자스 주 맨해튼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1985년 불스 코치로 영입된 후 ‘트라이앵글 오펜스’ 전략을 NBA에 도입, 14년간 잭슨 감독과 명콤비를 이뤄 불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이어 1999년 잭슨과 함께 레이커스로 자리를 옮겨 2008년까지 활약했다. 조던으로 대변되는 ‘불스 왕조’ 시대를 구가했고, 2000년대 초반 LA 레이커스에서도 전술의 위력을 다시 발휘했다.”고 정리하였다.

나는 프레드 텍스 윈터를 ‘큰 코치’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큰 코치를 찾는다면,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유재학 감독(울산 모비스 피버스)과 함께 일하며 수많은 우승을 함께 일군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을 꼽겠다. 그는 이상적인 코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유재학 감독이 2006년 3월 28일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늘 한마음으로 큰 힘이 되어 준 임근배 코치에게 감사한다.”고 말할 때 나는 코끝이 찡했다. 유재학 감독은 2012년 12월 18일 프로농구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400승을 기록한 뒤에도 임근배 코치에게 “감독 시작할 때부터 늘 뒤에서 묵묵히 힘든 일을 해 줘 고맙다.”고 마음을 전했다. 유 감독의 ‘큰 코치’는 2015년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을 맡은 뒤 줄곧 인상적인 지도력을 발휘해 ‘큰 감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사진= 최형길 단장(오른쪽)과 전창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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