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심판의 시간

기자 / 기사승인 : 2021-03-14 13: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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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이 마침내 5차전으로 치달았다. 2패 뒤 연승을 거둔 KB스타즈는 역시 강자(强者)답다. 여러 면에서 우승에 도전하기는 부족해 보였던 삼성생명이 매 경기 접전을 벌이며 우승의 꿈을 지켜오는 과정도 감동적이다. 한 경기 한 경기가 드라마 같았다. 5차전의 승부가 어느 쪽으로 기울든, 이번 챔피언결정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 생각한다. 두 팀 모두 승리할 자격을 입증했다. 그런 면에서 여자농구 2020-21시즌의 진정한 승자는 두 팀의 경기를 마지막 한 판까지 지켜봐 주시는 농구팬들이라고 생각한다. 농구팬들의 사랑과 성원이 없었다면 여자프로농구가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이번 시즌을 외국인 선수 없이 꾸렸다. 이 결정이 시즌 전반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더 많은 국내 선수들이 코트에 등장할 기회를 얻었고, 팀마다 선수층이 두터워졌다. 달라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기회로 삼은 팀은 삼성생명이다. 특히 임근배 감독의 농구철학이 팀과 구단 전체에 잘 녹아들어 이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는 선수들을 경기력에 따라 차별해서 대하지 않았다. 모든 선수들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들과 인격 대 인격으로 대화했다. 가능하면 많은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나치게 솔직한 그의 태도는 때로 주변사람들을, 선수들을, 심지어는 감독 자신을 불편하게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뜻을 꺾지는 않았다. 그는 남자프로농구 모비스의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유재학 감독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코치가 되었을 때, 그리고 삼성생명의 제안으로 감독이 되었을 때 한 결심을 지켜오고 있다. 임근배 감독의 ‘진정한 등장’은 이번 시즌 여자프로농구의 가장 큰 수확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KB와 삼성생명 선수들은 그들의 힘과 기술과 의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지막 한 판에 쏟아 부을 것이다. 코트에 들어부은 힘과 기술과 의지의 총합이 조금이라도 큰 팀이 승리를 가져갈 것이다. 거기 운이 작용하고 변수(變數)가 개입할 것이며 홈팀의 플러스 요인으로서 관중석의 팬들이 보내는 응원이 힘을 발휘할 것이다. 거듭 주장하지만 나는 운도 실력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생명은 4차전을 아깝게 내주었지만 4쿼터 막판의 행운을 살려낸 덕분에 경기를 연장까지 끌고 갔다. 나는 그 장면에서 KB의 실수보다는 삼성생명 이명관 선수의 의지를 더 높게 보았다. 그 한 장면의 행운으로 삼성생명이 승리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삼성생명 선수들은 쉬운 득점 기회를 자주 놓쳤고, 꼭 넣어야 할 슛은 림을 스쳐갔다. 이미 이야기했지만 나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얻은 자유투 2개의 값이 경기 종료 직전 2 점을 뒤진 채 던지는 자유투의 값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들어간 슛은 2점 아니면 3점이고 빗나간 슛은 1쿼터에든 4쿼터에든 0점이다. 행운이 오직 삼성생명의 편이었다면 마지막 3점슛이 바스켓을 꿰뚫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 장면은 운이 아니라 실력이 문제였다. 승리의 여신은 아주 냉정하다. 슛을 던진 선수는 시즌이 끝난 다음 정말 처절할 정도로 슛을 훈련하기 바란다. 이미 뛰어난 선수임을 증명했지만 지금의 외곽슛 성공률로는 팀의 운명을 결정할 슈퍼스타가 되기 어렵다. 4차전에서 삼성생명의 숨통을 조여 버린 KB의 강아정 선수는 가장 필요한 순간에 득점했고 상대의 파울 작전으로 얻은 자유투를 냉정하게 꽂아 넣었다. 이러한 농구야말로 팀의 주인다운 경기, 슈퍼스타의 경기다. 아무리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다.

챔피언결정전의 열기를 증명하는 사례를 또 하나 짚자면 ‘비디오판독’이다. 잦은 비디오판독은 경기를 관중이나 시청자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선수들의 플레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선수들의 몸이 식으면 다칠 위험도 커진다. 그뿐인가. 심판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경기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에서 비디오판독은 그 자체로 스릴만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특히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시청하는 농구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어 주고 있다. 지친 선수들에게는 숨을 돌릴 기회, 감독들에게는 급히 작전을 전달할 금쪽 같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들은 비디오판독의 횟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우리 심판들을 신뢰한다. 국제대회를 취재하다 보면 경기 운영에 참여한 우리 심판들이 얼마나 우수한지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의 농구심판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뛰어난 실력을 국내무대에서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불행한 시절도 없지는 않았다. 나는 중앙일보에서 일하던 1994년 11월에 농구대잔치에 참가한 심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해 기사를 쓴 일이 있다. 기사는 1)심판 로비 실태 2)심판로비는 총체적 문제 3)모두가 감시자로 같은 제목으로 3회에 걸쳐 게재되었다. 물론 큰 논란거리가 됐다. 심판들의 항의와 농구팬의 격려, 정부 관계부처의 우려를 함께 들었다. 이때만 해도 옛날이고, 저 시절의 문제들은 청산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善意)의 실수’는 가능하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 볼 수 있고 선입견의 지배를 받기도 한다. 심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불가피한 오심이라도 선수와 팀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줄 수 있다. 닿지도 않았는데 퍼스널 파울을 선언당하거나 파울이 분명한 장면에서 그냥 넘어가면 모두의 가슴 속에 의심의 불길이 일 것이다. 그러한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심판들이 어느 때보다 원칙과 기본기에 충실한 판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농구의 매력에 빠져 농구 공부에 몰입하던 시절, 나는 심판 교육에도 많이 참석했다. 선수경험은 없었지만 시험을 보면 상위권에 들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때 내가 배운 심판 지식은 지금 와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나 심판을 하겠다고 대들면 안 되고, 특히 기자가 심판 역할까지 하려 들면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오기 어렵다. 그래도 몇 가지 기억에 남은 지적을 기억한다. “심판은 장면을 추리해서는 안 된다. 각도가 나빠 보지 못했다면 ‘파울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서 휘슬을 불지 말라. 동료 심판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각별히 신중하게 의견을 제시하라.” 등등…. 이중에 요즘 심판들이 쓸 만한 충고가 있을지 모르겠다. 비디오판독은 심판들을 도와주지만, 그들이 예상보다 자주 실수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기도 한다. 이 분명한 사실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최선의 판정을 내리기 위해 착실히 (특히 마음의) 준비해 주기 바란다. KB와 삼성생명의 선수들은 영혼의 밑바닥까지 길어 올려 피와 땀과 눈물의 경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경기의 명암을 심판의 실수가 가르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더구나 5차전은 심판이 신경 쓸 일이 경기 자체 말고는 없는데.

[사진=PIXABAY]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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