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독백, 올림픽이 끝난 밤에

기자 / 기사승인 : 2021-08-09 11:02:34
  • -
  • +
  • 인쇄

 

일본과 미국이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결승전을 했다.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일본여자농구는 대단했다. 용감하게 도전하고 있었다. 전반에는 몇 번씩이나 꿈같은 상상을 했다. ‘미국이 강하지만 일본이 꼭 지라는 법은 없잖아?’ 더 부럽고 중요한 것. 일본농구는 경기를 거듭할 때마다 꿈의 지평선을 더 먼 곳까지 확장하고 있었다. 도쿄올림픽을 보면서 또 다른 세대가 새로운 꿈을 꿀 것이다. 마치다 루이 키드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우리는 이런 선수를 금방 만들어내기 어렵다.

올림픽이 끝났다. 또 금은동 몇 개, 종합순위, 벅찬 감동, 아쉬움 얘기 해야지. 안산, 김연경…. 언론과 평론가들은 메달 많이 딴 나라들의 저변과 시스템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근본적 문제를 짚어주실 것이다. 박사님들은 스포츠 제도와 학교 체육을 준엄히 꾸짖고. 그리고 해묵은 엘리트 체육 논쟁. 이야기는 다시 3년 뒤 파리올림픽에 대비하는 쪽으로.

우리 농구가 파리에 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남자대표팀은 가능성이 아주 작고, 여자대표팀은 혹시?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지금부터 방향을 잡고 준비하지 않으면 실낱같은 기대와 희망도 쉽게 사라질 것이다. 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의 경기를 했다.’, ‘1승을 할 수도 있었다.’는 평가는 ‘1승을 했다.’는 결과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좋은 경기를 한 점을 칭찬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해서 약점을,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이 짚어내는 문제들은 정말 문제다. 일본의 여자농구 은메달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인구 1억2천만이 넘는 일본의 스포츠 저변은 넓다. 농구팀과 농구선수의 수는 우리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일본이 인적 자원과 경쟁력은 물론 우리보다 우수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들이 정말 문제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일본여자농구 실업팀마다 한국인 지도자를 감독이나 고문으로 위촉하기 위해 경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농구취재를 막 시작할 무렵 일본은 ‘축구와 여자농구는 한국을 절대 못 이긴다.’고 했다. 그때도 일본의 농구팀과 축구팀은 우리보다 많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저변이 두께와 질을 보장하고 승리할 확률을 높인다.

우리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전의 일이다. 아마추어 시절. 국내 정상급 남자실업 팀이 해외 전지훈련을 나갔다. 미국의 대학 체육관을 빌려 훈련하다 다른 코트에서 농구하던 팀과 경기를 했다. 상대팀 선수들의 기술이 대단했다. ‘덩크슛’, ‘트위스트슛’…. 계속 져나가다가 천만다행으로 막판에 역전승했다. 천만다행인 이유는 우리 팀이 상대한 선수들은 농구부원이 아니고, 그러니까 선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면 점심 먹고 나와 농구하면서 놀던 일반 대학생들이었다. 나는 ‘이게 미국 농구구나.’하고 생각했다.

거칠게 생각을 가다듬어본다. 내 소견으로는, 교육 부문에서 엘리트 체육의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어떤 분야에서든 영재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의 천재가 있듯이 농구와 축구의 천재도 있다. 다만 영재 교육이 사람답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포기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겠다. 체육영재를 일류 교양인으로 키워내야 한다. 선수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100% 옳다. 내가 기자로 일할 때 부모의 함자를 한자로 쓰지 못하는 대표선수가 태반이었다. 물론 한자를 모를 수도 있다. 문제는 선수들이 교과과정은 고사하고 쓰고 읽고 말하는 공부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스포츠와 체육의 사회적 지위가 너무 낮다. ‘자업자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스포츠와 체육을 ‘염려’하는 분들은 대부분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면서 말하고 있다. ‘간단한 이치를 못 알아먹는 몰지각한 집단이라고 개탄하면서. 체육전공자들도 마찬가지다. ‘쟤들 공부 안 하고 운동만 해서 그래.’ 말을 뒤집으면 내심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쟤들은 그냥 운동만 하라고 해.’ 그들은 현재 상태가 지속돼도 크게 피해볼 일이 없다. 오히려 ‘철밥통’이 단단해진다.

서울대 야구부는 훌륭하다. 거기 프로야구에 진출하지 못해 대안으로 진학한 학생이 몇이나 되나. 서울대는 근본적으로 공부영재의 교육기관이다. 공부영재 중에서 엘리트체육인이 나오는 사례가 몇이나 되나. 엘리트체육인이 은퇴 후 뛰어난 학자로 변신하는 사례는 숱하게 본다. 체육영재들은 저지능집단이 아니라는 얘기다. (불행히도) 체육에 재능이 뛰어날 뿐이다. 그 재능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이 아니라 프로에 간다. 많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3, 4년 노력하다 자리를 못 잡으면 퇴출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체육 병역 특례를 비판하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마 대부분) 예술부문에도 특례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모를 것이고. 올림픽 메달 아니면 아시안게임 우승에 모든 게 걸려 있는 데 비해 예술부문의 제도는 유연하고 다채롭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다양하다는 말이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예술의 지위는 체육보다 높다. 엘리트 예술가들은 엄청난 영재교육의 산물들이다. 정경화의 스승 이반 갈라미언은 제자의 결혼을 반대했다. 일류 예술가로서 바이올린만 연주하라는 가혹한 요구다.

나는 체육 병역 특례나 경기력향상연금 같은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와 체육의 목적과 가치를 훼손하고 과정을 왜곡하며 천박한 결과주의에 집착하게 만드니까. 그러나 제도 자체에는 악마성이 없다. 우리의 교육과 사회적 합의(협잡 또는 야합), 가치관, 양심 같은 것들이 제도를 악마의 도구로 삼고 있는 게 문제다. “체육특기생들이 운동을 그만두는 순간 버려진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에서 불볕이 이글거리는 운동장을 내다보며 하는 걱정. 이분들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도쿄올림픽은 개최여부가 불투명했고, 우리에겐 불편한 대회였다. ‘그래도 열리니까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메달을 따니 열광하잖아. 식빵언니 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말 속 깊은 데서 나는 ‘포주의 논리’ 비슷한 심리를 본다. ‘오랫동안 땀흘려온 선수들을 봐서라도…’ 같은 말씀도 이 테두리를 못 벗어난다.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올림픽에 나갔으니까 좋은 경기를 하고 여자농구 이미지도 좋아졌잖아.”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상당수는 여자농구의 선전에 감동하고, 그 다음엔 잊어버릴 것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올림픽이 끝났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교육자들은 열심히 제자를 가르치고, 코치들은 선수들을 열심히 훈련시키고. 프로팀과 선수들은 우승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각자 해야 할 도리를 하는 거다. 다만, 정상적으로, 이치에 맞게, 학교답게 체육답게 스포츠답게 했으면 좋겠다. ‘아이비리그 출신의 금메달리스트’가 부러우면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시켜라. 운동은 오전수업이 끝난 다음이 아니라 방과 후에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을 합숙소에 가두지 말고, 때리지도 욕하지도 말고, 집 밥을 먹여서 키워라.

학교는 학교답게 운동은 운동답게. 그러면 우리도 변호사나 의사, 반도체 전문가나 우주공학자로 일하는 금메달리스트를 볼 수 있다. 운동을 하다 그만둬도 인생에서 낙오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챔피언이 쓴 과학논문을 볼 수도 있다. 그런 학교, 그런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 일을 시작해야 하겠다.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모든 장애와 싸울 준비를. 그 동안 우리 체육과 스포츠를 염려해온 훌륭한 분들의 지혜뿐 아니라 행동을 모으면 좋겠다. 그 염원의 전선(戰線)에 나 또한 참전할 각오가 돼 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사진=MBCSports+ 중계화면 캡처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기자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