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진광불휘

기자 / 기사승인 : 2021-03-16 10:44:11
  • -
  • +
  • 인쇄

 

 

아름다운 밤, 삼성생명의 밤이었다.

언제나 무표정하던 윤예빈 선수가 눈물을 흘렸다.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었다. 2차전이 끝났을 때 엉엉 울던 신이슬 선수는 꽃술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영롱한 웃음으로 코트 한구석을 밝혔다. 김보미 선수는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 “농구를 쳐다보기도 싫다.”는 예쁜 거짓말과 함께.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경기를 거듭 보여준 김한별 선수는 최우수선수(MVP)가 되어 합당한 상을 받았다. 주장 배혜윤 선수가 그물을 자르는 모습을 보면서 전성기의 삼성생명 농구와 그 주인공들을 추억했다. 김화순, 성정아, 최경희, 박정은, 정은순…. 문득, 누구보다 가슴이 벅찼을 이미선 코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아쉽다. 임근배 감독은 선수단을 향해 큰절을 했다. 존중과 신뢰, 감사의 극한 표현이다.

KB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결코 삼성생명보다 못한 팀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강한 팀으로 군림할 것이다. 패배는 누구에게나 쓰라린 체험이다. 패배에서 무엇을 배울지는 구성원의 자질과 깊이에 따라 결정된다. KB는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명예롭게 물러섰다. 무엇보다 승리한 팀을 존중했고 축하를 잊지 않았다. 박지수 선수는 김한별 선수와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뭉클한 장면이었다. 다섯 경기를 하는 동안 두 선수의 접촉은 모두 충돌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몸을 맞댈 때는 위로와 축하가 있었다. 박 선수는 지난 시즌을 치르는 동안 엄청나게 성장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 센터인지 증명했다. 다음 시즌에는 그를 막아내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KB는 더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다.

나는 15일 밤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 본관 2층에 있는 연구실에서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보았다. 연구실에는 텔레비전이 없기에 포털 사이트를 열어서 보아야 했다. 4쿼터 5분34초, 삼성생명이 김한별 선수의 슛으로 68-51까지 점수 차를 벌렸을 때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지금은 사라진 옛 현대남자농구단에서 임근배 감독과 함께 운동한 농구인이었다. 그는 대뜸 “17점차, 끝났네요. 임근배 감독이 우승했네요.” 흥분한 그에게 “나도 지금 경기를 보고 있다. 나중에 통화하자.”고 양해를 구한 다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73-57로 앞선 가운데 배혜윤 선수가 자유투를 얻었을 때 임근배 감독은 벤치로 돌아가 기도를 드렸다. 경기는 40.7초 뒤에 끝났다.

마침내 챔피언을 가려낸 코트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즈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물었다. “왜 아까 나에게 그런 전화를 했느냐.”고. 그는 내가 처음부터 삼성생명의 우승을 확신하는 것 같았고, 지금쯤 흡족해 하겠다 싶어서 전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과거에 함께 땀 흘린 동료의 승리를 축하하는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친근감이 느껴지는 누군가와 공유하고픈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30년 세월을 체육기자라는 의식을 간직한 채 살아온 나는 특정 팀이나 선수를 응원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전문성 있는 개인의 견해는 곧잘 지지나 반대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나는 임근배 감독을 신뢰하지만 KB의 안덕수 감독과도 오랜 인연을 공유하고 있다. 안 감독도 훌륭한 경기를 했다.

나는 임근배, 안덕수 감독과 그들의 팀에 감사한다. 내가 농구경기를 몰입해서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가 시작된 이후 전 경기를 관전했고 매번 집중했다. 그 결과 당초에는 한 달에 두세 번 쓰기로 작정했던 ‘농담’을 더 자주 쓰게 되었다. 삼성생명-우리은행, KB-신한은행으로 시작한 포스트시즌 경기들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잠들었던 농구에 대한 열의를 (잠시라도) 깨웠다. 나는 2003년 이후 국내에서 벌어지는 농구 경기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농구 공부를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경기를 교재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의 자이언츠 레버쿠젠(지금은 2부 리그에 속해 있다)에서 일한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은 언젠가 “우리나라 프로농구 팀들이 결국은 똑같은 농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유 감독에게는 책상 모서리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한국농구’의 현실을 개탄하던 40대 초반의 가슴 뜨거운 한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외국인 선수가 ‘로또’로 통하던 시절이다. 유 감독은 실업팀 기아의 동료인 정덕화, 추일승 씨와 자주 만나 잔을 기울이거나 낚시를 하면서 정열적으로 농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로리그가 출범한 뒤 농구팀과 지도자의 농구철학이나 개성이 사라지고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단조롭게 이어지는 경기 방식에 대한 정직한 고민이 그 자리를 메웠다. 질풍 같던 그 시간들은 아득한 과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유재학 감독의 성공은 젊은 날 그의 고뇌가 베푸는 보상일 것이다.

나는 자이언츠에서 토마스 도이스터 단장을 통해 바이엘 소속 스포츠클럽의 행정을, 아힘 쿠츠만 감독을 통해 농구팀의 훈련과 경기방식을 배웠다. 쿠츠만 감독은 3부 리그(레기오날리가)에 속한 자이언츠의 2군 팀을 지도했다. 분데스리가(1부 리그) 소속팀의 2군은 2부 리그에서 뛸 수 없기에 3부 리그에 머물러야 했다. 자이언츠의 분데스리가 팀은 하이모 푀어스터 감독이 이끌었다. 나는 처음에 분데스리가 팀에서 일했지만 경쟁이 심한 리그에 속한 클럽에 짐이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2군 팀으로 옮기기를 요청해 쿠츠만 감독을 보좌하게 되었다. 자이언츠의 레전드이자 독일 국가대표 가드였으며 2006년 농구월드컵에서 독일대표팀 코치를 맡은 쿠츠만 감독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다. 선수들과 매일 땀 흘리고 벤치에서 일할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쾰른에서 공부하면서 매일 오후 낡은 골프를 운전해 레버쿠젠으로 넘어가던 시절의 독일은 2002년 미국월드컵에서 거둔 성과에 들떠 있었다. 독일은 뉴질랜드를 이기고 동메달을 따냈다. 미국은 4강에도 들지 못했다. 내가 레버쿠젠에 있는 독일식당 하우스 암 파르크(Haus am Park)에서 도이스터 단장을 처음 만나 예거슈니첼을 먹으며 “UCLA와 바이엘을 놓고 고민했다. 공부 때문에 독일을 선택했다.”고 하자 그는 “탁월한 선택이다. 독일이 미국보다 농구를 훨씬 잘하잖아?”라며 농담을 했다. 이때 분데스리가에서는 스베티슬라프 페지치(쾰른), 딕 바우어만(밤베르크), 에밀 무탑치치(베를린) 등 뛰어난 감독들이 경쟁하고 있었다. 나는 중계되는 경기가 있으면 그때마다 녹화를 해서 그들의 농구를 공부했다.

그 무렵 독일의 클럽 팀들은 (슬라브계) 백인 센터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선수는 포워드 아니면 가드였다. 자이언츠는 독일대표팀 센터 위르겐 말벡에게 골밑을, 대표 팀 가드 데니스 부허러에게 경기 운영을 맡기고 흑인 포워드 존 베스트(미국)에게 3, 4번을 커버하게 했다. 독일 감독들은 코트 밸런스와 패스의 흐름, 스크린(공격)과 스위치(수비) 같은 구성요소를 중시하면서 연출가처럼 팀을 지휘했다. 관중들은 골대가 부서질 것 같은 슬램덩크에 즐거워했지만 유려한 패스의 흐름이 아름다운 득점으로 이어질 때 더 많은 박수를 보냈다. 감독의 역량이 우열을 가리는 분데스리가의 경기방식은 관념과 지식으로 농구를 배운 나를 매혹했다. 그래서 독일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했다. 그때 내가 나를 독일에 보내준 회사(중앙일보)로 복귀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진광불휘(眞光不輝)라고 했다. 원래 어설프게 배운 돌팔이가 더 유난을 떨게 마련이다. 본질에서 멀어진 진리일수록 유연함을 잃고 원리주의가 되어 광신도를 낳는다. 거기 매몰되면 분별력을 잃거나 무지한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내가 ‘기호로 읽는 농구, 그 괴로움에 대하여’에서 고백했듯이 나는 지난겨울을 맞을 때 우리 농구의 완전한 방관자로 전락한 처지였다. 농구는 나를 전혀 흥분시키지 않았다. 여자프로농구,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삼성생명의 농구(=임근배 농구)를 지켜보면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낸 농구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다시 체감하게 되었다. 관념과 이상, 그리고 현장이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농구. 나는 그래서 임근배 감독과 안덕수 감독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다.

여자프로농구 시즌이 끝났다. 이제 남자농구를 자주 볼 생각이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기자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