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아버지의 선물

기자 / 기사승인 : 2022-05-04 08: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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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의 『갈채와의 밀어』 다시 읽기㉔
▲김영기와 아버지 김귀봉 선생.

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김영기는 그 날도 훈련장에서 모든 것을 불살랐다. 가슴이 뜨거운 소년이었다. 결과는 뻔하다. 기진맥진해 기다시피 하여 집에 돌아갔다. 씻기도 싫고 밥을 먹기도 귀찮았다. 그냥 쓰러져서 자고 싶을 뿐. 터벅터벅 이층으로 올라가는 그를 어머니가 불렀다. 언제나처럼 “영기야.”하고. 김영기는 귀찮은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아버지 방에 좀 가 보렴.”
“?…”
“아까부터 기다리셨다.”
“…….”
하는 수 없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버지는 아랫목에 앉아 있었다.


“저 이제 왔습니다. 부르셨어요?”
“오냐, 거기 앉아라.”
문가에 앉았다. 드문 일이었으므로 김영기는 내심 불안했다.
“피곤해 보이는구나.”
“오늘도 많이 뛰었거든요.”

아버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아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얼른 해주었으면 좋겠건만. 김영기는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옜다! 네 거다.”
김영기는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손에 든 것은 농구공이었다. 김영기는 자신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아버지!”
그리고는 얼른 일어나 받아 들었다. 한 번도 흙이 묻어보지 않은, 깨끗하고 탄탄한 새 공이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웃음을 띤 채 아들을 바라보았다. 김영기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인자한 웃음이었다. 그는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벽에 대고 공을 던져 보았다. 공은 ‘탕-!’ 소리를 내며 벽을 때리고 돌아왔다. 터질 것만 같은 탄력이었다. ‘그렇게 반대하시던 아버지께서, 야단만 치시던 아버지께서, 아버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꾸만 공을 던지고 받고 던지고 받았다.

지금은 농구공이 흔하다. 운동용품을 파는 곳이면 대개 농구공을 진열하고 있다. 공을 만드는 회사도 여러 곳이다. 실내 코트에서 사용하는 공과 밖에서 사용하는 공이 따로 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명품이라기보다 인기가 있는 상표가 붙은 공은 매우 비싸다. 요즘은 공의 성능, 기능이 아니라 공을 만든 회사의 명성과 가치, ‘브랜드 파워’가 소비자의 지갑을 연다. 하지만 소년 김영기의 시대에는 공이 귀했다. 학교에서나 운동용품 가게에서나 그렇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겨우 미군부대 주변에 굴러다니는 것을 비싸게 사서 팀에서나 사용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려 준 농구공은 지금의 감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김영기는 『갈채와의 밀어』에 이렇게 썼다.

“내가 후에 드리블의 명수라는 말을 듣게 되고 외국에 나가서까지 나의 드리블에 격찬(激讚)이 따라다닌 것은 아버지가 사다 주신 이 공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김영기는 새벽 훈련을 할 때 이 공을 반드시 가지고 나갔다. 남산 순환도로에 들어서면 거기서부터 공을 튀기며 달렸다. 그때만 해도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길바닥은 고르지 않았다. 몹시 울퉁불퉁했다. 게다가 가팔랐다. 이 길에서 드리블을 하며 달리기란 쉽지 않았다. 김영기는 이 훈련을 통해 드리블 실력과 감각을 빠르게 향상시켰다. 다시 그의 기록을 읽어보자.

“이 훈련에서-물론 하루 이틀에 터득한 것은 아니었지만-공의 바운드에 맞추어 손의 스냅(공을 다룰 때 손목을 쓰는 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기초적인 손힘의 안배(按配)를 익혔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공이 손에 붙어 다니는 귀신같은 김영기의 드리블’은, 이 남산가도에서 아버지가 사다 주신 공으로 그 정지공사(整地工事)를 한 셈이다.”

김영기가 했다는 거리 드리블은 매우 효과적인 훈련 방법이다. 김영기보다 두 세대쯤 뒤에 등장하는 김동광, 김동광 다음으로 등장하는 테크니션 (필자는 ‘올라운더’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스타 계보를 김영기-김동광-신선우-허재로 이해한다.) 허재도 성장기에 이런 아웃도어 드리블을 많이 했다. 고르지 않은 길바닥에서 공을 튀기면 바운스에 변화가 심하다. 불규칙한 바운스에 대응하며 드리블 훈련을 하다 보면 손목과 손바닥, 손가락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미세한 근육들에 힘이 붙는다. 그래서 낮고 빠르고 강하며 정확한 드리블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훈련은 어릴 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여전히 프로농구 현역 감독인 뛰어난 지도자 유재학은 대우 제우스에서 일할 때 선수들에게 아웃도어 드리블을 많이 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프로선수가 되었을 때는 몸의 본능이 제어되거나 습관이 업데이트되기는 어렵다. 이 시기는 경험이 쌓이고 안목이 트여 관중과 팬에게 품질이 뛰어난 경기상품을 제공해야 할 시기다. 필자가 보기에는 유소년이나 청소년기에 하면 좋을 기본기 관련 훈련이다.

아버지가 선물한 공의 영향일 것이다. 김영기의 농구에 대한 몰입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무렵 김영기의 방은 온통 농구와 관련한 그림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는 ‘점쟁이 집 벽에 붙는 부적처럼 해괴망측한 그림들’이라고 적었다. 대부분 이희주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으면서 김영기 나름대로 정리해 그린 작전도(作戰圖)였다. 이 무렵 그는 이 코치로부터 경기 운영 방법을 한창 배울 때였다. 그러므로 김영기의 방을 뒤덮은 그림들은 이희주 코치가 가르친 작전의 약도인 셈이다. 엔드라인에서 투입되는 공에서부터 마지막 슛이 성공할 때까지 선수 다섯 명의 움직임과 그 변화, 패스의 길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김영기는 천장과 네 벽이 모두 작전도로 둘러싸인 방에서 자신만의 농구를 키워 나갔다. 낮에 한 훈련은 실기 공부요, 밤에는 방안을 가득 메운 ‘교과서’를 교재로 삼아 이론 공부를 했다.

잠을 자면서도 농구를 내려놓지 못했다. 잠자리에 들면 농구장이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그런데 뿌연 안개 같은 것이 선수들의 얼굴과 공과 바스켓과 백보드를 가렸다. 오직 선명하고 자신 있는 것은 김영기 자신의 플레이 뿐이었다. 어디서인지, 누군가로부터 공이 패스되어 왔다. 그는 공을 받자마자 비호처럼 드리블해 나갔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상대팀 선수가 푸트워크를 몇 번 하다가 떨어져 나갔다. 정말 날쌔게 한 선수를 해치우고, 다음 수비도 참새처럼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공은 여전히 김영기의 손 안에 있다. 슛 기회다. 점프슛!

웬일일까? 점프가 되지 않는다. 공은 아직 그의 손에 있다. 바스켓 바로 아래에 있는 그가 3초 제한시간에 걸리면 공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어서 슛을 쏘아야 한다. 점프슛! 어찌 된 일일까. 점프가 조금도 되지 않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머리가 어질해졌다. 웬일일까. 불끈 힘을 쓰는 서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꿈을 꾼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상했다. 김영기는 이부자리 속에 누워 있지 않았다. 일어나 서서 슛 동작을 일으키기 직전의 자세로 서 있었던 것이다. 김영기는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정말 공을 잡고 있는 것처럼 잔뜩 허공을 붙잡고 선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김영기는 속으로 은근히 겁이 났다. 정말 이상해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그를 정말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시니컬하게 한 줄 적었다.

“몽유병 환자도 이쯤 되면 고급이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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