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홍성한 기자] “정말 다시 생각해도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코트는 때로 전쟁터보다 더한 긴장감을 주는 곳이다. 특히 소중한 두 딸이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최고의 무대에서 맞붙는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5월 8일 어버이날을 기념해 점프볼이 부모의 마음을 들어봤다.
용인 삼성생명의 이주연, 청주 KB스타즈 이채은. WKBL을 대표하는 가드 자매를 키워낸 어머니는 인터뷰 내내 본인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했지만, 들려준 이야기 속에는 두 선수를 만든 ‘신의 한 수’ 같은 사랑과 헌신이 가득했다.
*해당 기사는 요청에 따라 인터뷰이의 성함을 익명 처리했음을 알립니다.

“카메라에 잡힌 찌푸린 얼굴, 사실은 울고 있었던 겁니다.”
지난 4월 막을 내린 WKBL 챔피언결정전. 1차전 중계 화면에는 관중석에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어머니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일생에서 가장 길고도 떨렸던 시간을 지켜보는 마음은 상상보다 더 힘들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있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울고 있었던 거예요. 울고 눈물을 닦고 있는데 하필 그 찰나에 카메라에 딱 찍혔네요. 정말 다시 생각해도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 중 하나가 큰딸 주연이가 몸살이 심했거든요. 경기 내내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는데, 엄마인 제 눈에는 기침 소리만 들리는 거예요. 엄마 마음에는 ‘그만 뛰게 했으면’ 싶을 정도로 가슴이 미어졌죠.”
어머니의 시선은 늘 ‘더 아픈 손가락’을 향했다. 우승을 향해 달리는 팀의 승리보다도,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코트를 누비는 딸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엄마 입장이 원래 그렇잖아요. 채은이가 경기를 잘 못 뛰거나 힘들어할 때는 자연스럽게 채은이한테 더 눈길이 갔거든요. 그런데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주연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많이 힘들어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꾸 그쪽만 보게 되더라고요.”
“오죽하면 주연이가 팀 언니들한테 그런 이야기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계속 우리 쪽만 쳐다보신다. 우리 응원하시는 거 아니냐’고요(웃음).”

사실 자매가 서로를 상대하는 풍경은 어느덧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한쪽을 응원하기 어려운 부모의 마음만큼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항상 걱정이죠. 한 아이 경기를 보러 가면 다른 아이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이쪽도 한 번 가고, 저쪽도 한 번 가고 그랬죠.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막상 가면 너무 떨려서 경기를 제대로 보기가 힘들어요. 주변에서는 이제 익숙해지지 않았냐고 하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어머니에게도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단순한 우승 경쟁 이상의 의미로 남았다.
“두 아이가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지금도 가족 단체 톡방에서 했던 이야기가 기억나요. 제가 애들한테 그랬거든요. ‘너희가 선수 생활하면서 이렇게 챔피언결정전에 같이 오르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겠니. 엄마는 앞으로도 더 있었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다시 없을 수도 있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후회 없이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 엄마도 같이 즐길게’라고요.”
“그런데 내가 울어버렸어(웃음).”

딸들이 농구공을 잡기까지
사실 어머니도 과거 높이뛰기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엘리트 체육인’ 출신이다. 전국체전 3연패를 달성했을 만큼 뛰어난 선수였다. 그만큼 운동의 고단함 역시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딸들에게만큼은 절대로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주연이는 세 돌도 되기 전에 한글을 뗐어요. 지나가는 간판을 다 읽고 다녀서 시어머니께 ‘어머니 저 천재 낳았어요!’라고 자랑할 정도였죠. 당연히 공부로 성공할 줄 알았는데, 웬걸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엉덩이가 너무 가벼운 거예요(웃음).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는 아이를 보며 ‘차라리 내가 했던 밖에서의 운동 말고, 실내에서 하는 운동이라도 시키자’ 싶어 농구 코치님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언니가 하면 뭐든 따라 하고 싶었던 막내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농구의 길로 접어들었다.
“채은이는 언니가 공 가지고 노는 게 그렇게 부러웠나 봐요. 자기도 언니 따라 농구하겠다고 매일 졸랐죠. 지금 생각하면 두 딸에게 농구를 시킨 건 제 인생 최고의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엄마, 나 농구 그만두면 빵집 차릴까?”
화려한 프로 선수의 삶 뒤에는 부모만이 기억하는 긴 시간의 아픔도 있었다. 이채은이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어깨 부상으로 코트 밖에 실려 나가던 날, 어머니는 관중석에서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쏟았다.
프로에 온 뒤에도 마음 편한 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언니와 달리 이채은은 지난 시즌까지 좀처럼 자신의 꽃을 피우지 못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더라고요. 주연이도 예전에 무릎을 다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었거든요. 그런 장면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정말 말로 다 못 할 만큼 힘들어요.”
“채은이가 어느 날 ‘엄마, 나 내년에 계약 안 되면 빵집 차릴까? 아니면 실업팀에 가야 할까?’라고 묻더라고요. 구체적인 계획까지 이야기하는 딸을 보며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죠.”
“하지만 주연이도 그렇고 채은이도 누구보다 농구를 사랑하는 아이였어요.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라고 믿어줬죠. 그랬던 아이가 올 시즌을 마친 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라며 웃는데, 그제야 저도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들었습니다.”

“애교쟁이 주연이, 어른스러운 채은이… 나의 영원한 애기들”
집으로 돌아온 자매는 코트 위 모습과 전혀 다르다. 카리스마 넘치는 선수 대신, 여전히 엄마 곁을 맴도는 ‘엄마 껌딱지’들이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의 팀 기밀이나 내부 이야기는 엄마에게조차 절대 털어놓지 않는 철저한 프로 의식을 공유한다.
“어느 때는 서운할 정도로 팀 이야기는 안 해요. 기사가 나야 ‘아, 그런 일이 있었어?’ 할 정도니까요. 둘만의 원칙이 있나 봐요. 그래도 집에 오면 주연이는 엄마한테 비비고 스킨십하는 애교쟁이가 되고, 막내 채은이는 의외로 속이 깊고 어른스러워요. 저에게는 여전히 ‘큰 애기’, ‘작은 애기’일 뿐입니다.”
두 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운동선수 이전에 너희는 가장 예쁜 청춘이잖니. 연애도 열심히 하고,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어. 힘든 시간을 견뎌낸 채은아, 너는 이제 마음껏 누려도 돼. 그리고 주연아, 아프지만 않으면 너는 언제든 다시 날아오를 아이라는 걸 믿어.”
무엇보다 강조한 건 실력보다 ‘인성’이 먼저인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항상 이야기하는 거지만, 궂은일 하는 선수, 선후배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운동만 잘하는 건 안 돼요(웃음). 사람이 돼야 오래갈 수 있고 인정받는 선수가 될 수 있잖아요. 사람이 안 되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코트 위 두 딸의 승부보다 더 뜨거웠던 건, 그 모든 시간을 묵묵히 버텨내고 지켜온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사진_WKBL, 이주연·이채은 어머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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