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의 농구人터뷰⑤] 中 지린 청소년팀 총감독 김용식 “한국 출신 지도자의 선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점프볼 기자 / 기사승인 : 2021-09-28 00: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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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저는 그다지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는데”

중국 지린성 청소년대표팀, CBA(중국 프로농구) 지린 노스이스트 타이거즈 감독을 거쳐 현재는 해당 구단의 청소년팀 총감독을 맡고 있는 9년차 중국통 김용식(48‧187cm) 감독.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쑥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돌아온 답변이다. 이에 기자는 현역 시절부터 선수 김용식의 플레이를 많이 봤고, 은근히 팬도 많았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김용식은 스타 플레이어와는 살짝 거리가 있었다. 그는 1996년 농구대잔치 시절 기업은행에 입단했고 이후 프로농구가 시작되면서 이를 이어받은 광주 나산 플라망스에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모기업의 재정이 탄탄하지 못했던 관계로 광주-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부산 KTF 매직윙스 등 팀명은 물론 연고지까지 바뀌는 과정을 겪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계보가 이어진 한팀이라는 점을 감안 했을 때 김용식 역시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라 할 수 있다.

 

팀이 KTF로 매각된 직후 바로 은퇴했으며 선수 생활의 전부를 광주, 여수팀에서 보냈다. 해당 지역 농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명으로 오래전부터 나산을 응원했던 팬들이라면 잊을 수가 없는 선수다.

 

정규리그 통산 214경기에서 평균 4.9득점, 1.5리바운드, 1.4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김용식은 주로 슈팅가드 포지션을 맡아 커리어의 대부분을 식스맨으로 뛰었다. 악착같은 수비력과 더불어 중요한 순간 한방을 터트릴 수 있는 슈팅능력을 갖춘 팀에 꼭 필요한 유형의 선수였다.

 

그는 현역 시절부터 리더십이 뛰어난 인물로 꼽혔다. 소속팀이 재정난으로 훈련장소도 없는 상황에서도 팀의 최고참으로서 후배 선수들을 이끌었고, 2002-2003 시즌에는 플레잉코치로 코리아텐더의 플레이오프 4강 진출에 공헌했다. 선수로서 이름값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지도자와 동료들의 신뢰가 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소금같은 식스맨으로서의 현역 시절을 거쳐 현재는 중국에서 지도자로 활약 중인 농구인 김용식, 그의 파란만장한 농구 인생 속으로 [농구人터뷰]가 함께 들어가 보았다.

 

 

낯선 땅 중국에서 제2의 농구 인생을 살다

 

안녕하세요. 근황을 궁금해하는 올드팬들도 많을 듯 싶은데요. 중국리그에서 감독님을 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덧 9년차니까, 시간이 빨리 흘렀네요. 2012년도에 우연치 않게 6개월 정도 지린성 청소년대표팀을 지도할 기회가 있었어요. 급작스럽게 맡기도 했고 기간도 짧았던지라 별다른 성적은 올리지 못했지만, 과정이 좋았다고 인정을 받았고 이후 정식 감독이 되어서 수년 동안 꾸준히 지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10년 동안 프로에 보낸 선수가 1명이었는데, 제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는 8명을 프로에 보냈습니다. 나름 결과가 좋았던 것 같아서 보람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2017~2019년까지 CBA 지린 노스이스트 타이거즈에서 코치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U10세~U19세를 아우르는 지린 청소년팀에서 총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CBA는 세계 농구 시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일까요? NBA에서 이름이 알려졌던 선수들이 뛰기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시장이 크고 막대한 자본력이 함께하는 만큼 아시아에서는 압도적인 넘버1이 아닐까 싶습니다. 샐러리 등은 어지간한 유럽리그와 비교해도 더 높을 정도입니다. 높은 연봉이 오가다보니 NBA팬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빅네임급들이 많이 오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NBA에서 한물간 선수만이 아닌 한창 나이의 식스맨급 이나 아직 기량이 남아있는 베테랑들도 꾸준하게 찾고 있는 모습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때문에 난리죠. CBA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여기도 지금 장난 아닙니다. 아직 확실히 결정 난 것은 아니지만 다가올 시즌에는 CBA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선수를 쓰지 않고 리그가 개막될지도 모릅니다. 코로나로 인해 방역지침이 강화되었고, 각 구단 외국인 선수들이 입국해서 격리 기간까지 감안 했을 때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지린 노스이스트 타이거즈는 어떤 팀인가요?

-지린 노스이스트 타이거즈를 우리식으로 풀어보면 ‘길림 동북 호랑이’ 정도 되겠네요. 흔히 말하는 빅마켓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대도시권 팀들에게 자본력 등 여러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겠죠. 단 농구에 대한 열기는 높은 편입니다. 특히 야오밍, 멩크 바테르, 후웨이동 등 과 함께 중국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쑨준 구단사장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당장은 선수층이 두껍고 전력이 강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청소년 팀의 기반이 좋은 편인지라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강해질 팀이다는 평가가 많은 편이죠.

 

낯선 곳에서 지도자로 자리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낯선 땅, 경험 부족 등 가진 패가 거의 없는 상태서 맨땅에 헤딩하면서 배워나간 부분도 많습니다. KBL이라 해도 어려웠을 신입 입장에서 해외 무대는 막막하기 그지없었죠.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생각도 많아지고 정리조차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거기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희 구단이 재정도 넉넉한 편은 아니에요. 타 도시까지 가서 발품을 팔아가며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찾았죠. 그렇게 몸으로 뛰다가 찾은 선수 중 한명이 장 웨이즈입니다. 연변에 경기를 보러 갔다가 빠른 발에 센스가 돋보여 스카웃하게 되었는데, 프로에서 뛴지 2시즌 만에 CBA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180cm 안팎의 단신 슈팅가드지만 사이즈의 약점을 커버할 만큼 슈팅력이 매우 좋습니다. 지난 시즌에 3점슛 개수 1위, 3점슛 성공률 1위(42%)를 기록하며 굉장한 슈터로 자리매김한 상태입니다.

 

지도자로서 나름의 철학 등이 있으실까요?

-거창하게 철학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술만 가르쳐주는 역할보다는 인성도 함께 갖출 수 있게 도와주는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중국은 현재 1자녀 가정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상당히 귀하게 크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귀하게 크는 것까지는 좋은데 자칫 이기적인 성향이 강해지기도 하죠. 농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팀워크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서로간 양보하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나보다 팀원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마음도 있어야 이후 프로에 가서도 인정받는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세나 생각까지도 두루 갖출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어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 중 한분이 추일승 감독님이십니다. 그분 밑에서 코치 생활도 하면서 기술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지도자가 갖춰야 될 자세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아직도 많이 멀었지만 추감독님같은 지도자로 성장하고 싶어요. 더불어 비록 여기는 중국이지만 한국인의 이름을 걸고 지도자 생활을 하는 만큼 보다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필요도 있겠죠. 한국의 이미지도 달려있으니까요.

더불어 지도자는 제자의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자리이니만큼 끊임없이 배우고 또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요소들 외에 시대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새로운 것을 계속 받아들이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현재 저는 청소년팀을 맡고 있는 관계로 프로팀에서도 자문이 들어오고 선수들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더욱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 중이에요. 1년전부터는 통역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라 쉽지 않네요. 중국어가 많이 늘기는 했어도 실시간으로 훈련하고 소통하는 부분은 다른 영역같아요.(웃음)

 

CBA는 언제부터 시작하나요? 더불어 몇팀이 리그에서 경쟁중인지 등 KBL과의 차이점이 전반적으로 궁금합니다.

-기본적인 틀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11월 초순 정도부터 리그가 시작되며 동부, 서부 등으로 나뉘어서 현재 20개팀이 경쟁 중입니다. 아무래도 여기도 이런저런 부분에서 변화가 많은 편이에요. 현재 야오밍이 중국농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매해 규정을 바꾸는 등 계속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상황이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노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CBA에서는 어떤 선수들이 유명한지 알려주세요.

-우선 장신가드 궈 아이룬 선수가 떠오릅니다. 에어조던 스폰서를 받고 있을 정도로 현재 핫한 스타인데 기량과 상품성을 함께 갖춘 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플레이 스타일, 포지션 등을 따져봤을 때 KBL 김선형 선수와 오버랩되는 부분도 있네요. 음…, 그리고 휴스턴 로케즈에 지명되기도 했었던 216cm 빅맨 저우치 선수 같은 경우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워낙 유명하죠. 신장에 비해 말랐다보니 NBA무대서는 별반 활약을 못한 것 같은데 CBA에서는 상당한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현재는 연봉 등 금전적인 문제로 호주리그로 갔다고 알고있는데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죠. CBA는 워낙 선수층이 넓고 칼 랜드리, 자레드 설린저 등 거물급 외국인선수도 쉼없이 오가는 리그다보니 계속해서 화제성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편입니다.

 

 

성실하고 늘 한결같았던 선수 시절

 

농구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 집에서 막내였는데, 형들과 어울려서 뛰어 놀다보니 자연스레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졌던 것 같습니다.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센스도 좋고 몸놀림도 나쁘지않아 자연스레 농구부 코치님 눈에 띄어서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성동초등학교 4학년때네요.

 

건국대 재학시절, 나름 장신(?)이라고 골밑 수비까지 맡았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팀내에 장신자가 드물었습니다. 특히 골밑자원이 적다보니 센터가 파울트러블에 걸리거나 5반칙 퇴장당하면, 뭐 별 수 있나요. 그나마 그중에서 신장이 있는 편인 제가 들어가서 골밑수비에 힘을 보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대학 시절에는 주로 포워드 역할을 맡았는데, 선수층이 얇다 보니 서장훈 선수를 맡게 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어떻게 수비를 했나 싶네요.(웃음)

 

나산, 골드뱅크, 코리아텐더로 이어지는 동안 팀은 늘 재정난에 허덕였던 것 같습니다. 선수로서 체감했을 때 어느 정도까지 어려웠나요?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것 이상으로 어려웠습니다. 하루는 경기를 앞두고 점심때 식당에 나와보니 텅 비어 있는거에요. 어찌된 일인가 봤더니, 월급이 밀려서 주방 아주머니가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리셨더라구요. 어쩔 수 없이 선수단 전체가 라면을 끓여 먹고 경기에 나갔죠. 숙소 역시 아파트 2채를 빌려서 한꺼번에 생활을 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 해도 굉장히 불편했을 텐데 그 큰 선수들이 오죽했겠습니까. 잘 곳이 없어 거실 구석에서 포개듯 자고 막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함께 고생을 해서인지 선수들간의 정은 정말 끈끈 했습니다. 과거 프로야구 쌍방울 소속 박경완이 돈 많은 타팀에 트레이드 되었을 때 가기 싫어서 울었다던데, 저희도 비슷했어요. 저희보다 훨씬 사정이 나은 팀으로 가게 될 일이 생겨도 서운해하고, 가기 싫어하고 그랬어요.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했어도 서로간의 관계에는 만족했던 것 같아요.

 

어려웠지만, 팀분위기는 정말 좋았군요?

-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그런 분위기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위로는 (이)민형이형, (김)상식이형, (김)현국이형 아래로는 (김)병천이, (변)청운이, (정)락영이, (전)형수, (황)진원이 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으쌰 으쌰했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당시 이상윤 감독님은 아버지처럼, 큰형처럼 함께 고생하며 모두를 잘 지도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그런 상황에서 4강 신화도 가능했다고 봅니다.

 

동고동락했던 이상윤 감독이 SK로 간다고 했을 때 서운하지는 않으셨나요?

-딱히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할만큼 하셨죠. 정말 많은 고생을 하셨고 한사람이라도 더 빨리 잘 풀렸으면 하는게 모두의 마음이었으니까요. 당시 코치로 함께 가자고 권유하셨는데 그냥 팀에 남겠다고 거절했습니다. 저까지 가면 후배들은 어쩔까 싶더라구요. 주장겸 플레잉코치로 뛰며 월급도 잘 받지 못했지만 당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프로에서 선수 김용식은 어떤 플레이를 했고, 어떤 역할을 주로 맡았는지, 당사자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만년 식스맨인데 딱히 플레이 스타일을 말하기도 쑥스럽습니다.(웃음) 대학 때부터 골밑수비, 외곽수비, 슈터 등 이것저것 다했던 편인지라 감독님께서 호출하시면 원하시는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했죠.

 

함께 뛰었던 선수 중 ‘와! 정말 잘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잘 몰라주는 것 같다’는 선수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이)민형이형은 골밑에서 플레이하면서도 슛까지 좋았던지라 지금으로 따지면 스트레치 빅맨으로 가치가 높았던 것 같습니다. (김)현국이형도 수비는 정말 알짜였죠. 특히 (김)상식이형은 정말 과소평가된 선수가 아닐까 싶어요. 슈팅, 드리블, 패싱능력, 시야 등 부족한게 없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고 기억됩니다. 주로 스몰마켓, 약팀에서 전성기를 보내다 보니 기량만큼 이름을 쌓지 못한 케이스죠. 선수로서 김상식은 많은 팬들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함께 뛰었던 외국 선수 중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으신가요?

- 에릭 탤리, 워렌 로즈그린, 아도니스 조던, 브라이언 브루소, 아킬리 잭슨, 키이스 그레이, 숀 뱅크헤드, 마이클 매덕스, 말린 킴브루, 칼 보이드 등 다양한 색깔의 외국인 선수들이 함께했습니다. 하나같이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던 선수들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4강 신화를 함께했던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입니다. 팬들 사이에서 프랜차이즈 급으로 인정을 받았던 이버츠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선수죠. 페리 또한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탄력과 투지를 앞세워 골밑을 든든하게 지켜주었습니다. 광주, 여수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선수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모두 중국에 들어와서 살고 계신가요?

-아내와 중학생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함께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아내와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지내고 있어요. 예전에는 휴가를 받으면 1년에 한 두번이라도 만나고는 했는데, 최근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안본지가 1년이 훌쩍 넘어간 것 같아요. 하도 오래있다 보니 중국 생활은 나름 적응했는데, 무엇보다 가족을 못 보고 있는 점이 가장 힘드네요.

 

혹시 아드님도 운동 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나요?

- 체격도 좋고, 운동신경도 있는 것 같아서 그렇지않아도 농구를 시켜보려고 했습니다. 코로나 전까지는 농구를 했었는데 현재는 쉬고 있어요. 그 바람에 살도 좀 찐 것 같구요. 사실 농구와 야구를 같이 하고 있었는데 현재는 야구 쪽으로 좀 더 기울어진 것 같습니다. 녀석이 야구를 더 좋아하거든요. 뭐, 미국은 모든 스포츠를 즐기면서 하다가 이후 가장 잘 맞는 쪽을 선택하잖아요. 어떤 쪽으로 가든지 본인이 진짜로 좋아한다면 도와줘야죠.

 

마지막으로 선수 김용식을 응원했고 여전히 기억해 주시는 팬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꾸준히 농구를 하기는 했지만 주로 식스맨으로 뛰며 크게 눈에 띄지 않았음에도 기억해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현재는 타국에 있지만 늘 고국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실수하면 한국 지도자들이 욕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성심을 다해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출신 지도자들에 대한 좋은 선례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시기지만 다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사진 /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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