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의 농구人터뷰⑧] ‘당랑 슈터’ 김영만 “인기요? 남자들에게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김종수 기자 / 기사승인 : 2021-10-19 00: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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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역대 최고의 스몰포워드는?’

 

이같은 질문을 농구팬, 관계자들에게 던지면 답은 여러 가지로 갈릴 것이 분명하다. 3점슛의 문경은, 커리어의 추승균, 공수겸장 김영만, 혼혈 특급 문태종 등 은퇴한 레전드를 비롯 여전히 현역에서 관록을 과시중인 역대 최고 수비형 3번 양희종에 차세대 주역 송교창까지…, 각자 일장일단이 있는지라 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질문 앞에 ‘전성기 한정’이라는 말을 덧붙이면 답안지는 확 좁혀질 가능성도 크다. 프로 원년부터 농구를 보아온 팬이라면 딱 떠오르는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득점력, 빼어난 속공 거기에 상대를 숨막히게 하는 질식 수비까지…, ‘당랑 슈터’ 김영만(49‧193cm)은 전성기 시절 이견의 여지가 없는 공수 완전체 3번으로 불렸다.

 

김영만은 공격 루트가 매우 다양했다. 기본적으로 슈팅이 되고 속공 센스가 워낙 좋은지라 어느 위치에서도 득점이 가능했고 포스트업, 페이스업에 모두 능해 그가 공을 잡으면 어떤 방식으로 공격을 펼칠지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미드레인지에서 던지던 턴어라운드 슛은 유도탄 같다는 수식어가 붙었을 정도로 수비수 입장에서 공포 그 자체였다.

 

김영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영만의 공격을 막는 것은 어렵지만, 김영만의 수비를 견디는 것은 괴롭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디펜스 능력은 엄청났다. 아무리 흐름이 좋았던 공격수라도 그와 매치업되면 그야말로 락다운 당하고 말았다. 신명호, 양희종처럼 모든 종류의 수비에 다 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1:1 수비만큼은 극강이었던지라 자신이 맡은 상대는 확실하게 잡아줬다. 한창때 김영만이 얼마나 가성비가 좋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고 스몰포워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상이었다.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전성기가 일찍 끝나버린 김영만은 이후 허리부상까지 겹치며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음에도 이후의 모습이 아쉬웠기에 독보적인 3번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실패한다. 너무 빨리 찾아온 부상만 아니었다면 혹은 어느 정도 몸 관리만 제대로 됐더라도 KBL 각종 개인 기록의 상위권에 그의 이름이 고르게 올라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프로 원년부터 커리어를 시작해 2006~2007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간 김영만은 정규리그 통산 451경기를 뛰며 평균 13.6점, 2.3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마지막 3시즌은 완전히 망가져서 기록이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산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는 부분이다.

 

이를 입증하듯 해당 3시즌을 제외한 10시즌에서 모두 두자릿수 득점을 올린 것을 비롯 전성기 5시즌 동안은 평균 20점 이상을 4차례나 해냈다. 수비능력을 겸비한 선수로서 매우 드문 케이스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더욱 강했다. 6시즌 32경기 동안 평균 15.5점, 3.1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모두 두자릿수 득점을 넘기며 큰 경기에서 더 불타오르는 모습을 드러냈다. 

 

지도자 욕심이 많은 남자?

Q_정말 어렵게 연락이 되셨어요. 본래는 2, 3편 정도로 쓸 예정이었거든요. 8편에 이르러서 드디어 쓰게 됐습니다. 전화도 안 받으시고, 문자나 카톡을 남겨도 안 읽으시고 그러시더라구요.

-하핫…, 죄송합니다. 그놈의 광고나 스팸이 문제죠. 어휴, 말도 못해요. 바쁜데 전화 받으면 광고 전화고, 요새는 받으면 돈 나가는 그런 것도 있다면서요. 그래서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면 잘 안 받거나 확인을 안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Q_맞아요. 저도 그래요. 0*0등 번호로 오는 것은 일부로 안받을 때도 많아요.

-그러니까요. 불신의 시대가 왔다니까요. 서로 믿고 살아야 하는데…

 

Q_선수로, 지도자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셨는데 최근 들어서는 못 뵌 것 같아요.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가요?

-계약 기간이 끝나서 LG 이후로 쉬고 있구요. 초등학교 때 농구를 시작해서 한번도 안 쉬고 대학교, 프로선수, 지도자 생활을 쭉 해왔었죠. 지도자로도 대학농구, 여자프로농구, 남자프로농구 고르게 경험했구요.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겨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늘리고 있구요. 그래도 아는게 농구인데, 최근에는 통영시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농구클럽에서 재능기부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봐주고, 사진도 함께 찍고, 홍보도 하고, 뭐 그렇죠. 더불어 곧 있으면 개막할 여자프로농구에서 부산MBC여자프로농구 해설위원으로 팬들과 함께할 예정입니다.

 

Q_지난 남자농구 국가대표 사령탑 공개 모집에 지원하셨더라구요. 창원 LG 수석코치를 그만두신지 얼마 안되셨는데, 나름 강행군(?)이신 것 같아요. 지도자 욕심이 많으신 것도 같구요. 아, 물론 좋은 의미입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그냥 쉬면 뭐합니까. 원체 농구를 좋아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려는 마인드입니다. 모 예능프로그램 이름처럼 놀면 뭐합니까.(웃음) 코트에 선수들하고 함께 뛰고 생활하고 그런 것이 즐겁고 하니까,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신청했었죠.

 

Q_평생 운동 쪽에 있던 분들 중 상당수는 ‘어휴,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면서 휴식의 시간도 가지고 그러는 케이스도 많은데 지치지도 않으시는 것 같아요.

-아유, 그래도 평생 해온게 농구인데, 뭐라도 꾸준히 하는게 낫죠. 오래 떠나있으면 감을 잃기도 해요. 농구와 함께 있는게 마음도 편하고 더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외려 일반 생활을 하는게 더 힘들어요.

 

Q_꾸준하게 지도자 생활을 하셨는데요. 본인만의 지도관이 있으실 것 같아요.

-특별한건 없어요. 일단 농구를 대함에 있어서 애정을 꾸준히 가져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기본기부터 착실히 다져 놓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하니까요. 열심히 해라? 독려는 해줄 수 있지만 성공하고 싶으면 알아서 열심히 해야죠. 억지로 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공수겸장 프로시절

Q_대학 졸업 후 많은 팀에서 욕심을 냈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기아를 선택 했습니다.

- 그때 고민을 좀 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기아가 워낙 명문이기도하고 대학 선배님들도 많으셨잖아요. 비슷한 조건이면 단연 기아 쪽으로 마음이 쏠렸죠. 제가 존경하고 따르던 정봉섭 감독님의 조언도 영향이 있었구요. 들어가서 형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고 확실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Q_기존 선배들이 탄탄했던 기아보다는 타팀으로 가는 것이 출전시간 등에서 유리하지 않았…, 아! 생각해보니 의미 없는 질문이었네요.

-???

 

Q_김영만 아닙니까. 김영만! 어느 팀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3번인데, 가면 주전인거죠.

-아이쿠, 아닙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허재 형도 아닌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구요. 당시 기아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서 그나마 스몰포워드 쪽이 살짝 헐거워 보였어요. 제가 가서 열심히 하면 좋은 경쟁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허재 형, (강)동희형 등 기술이 뛰어난 선배님들에게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성장하는데 좋을 것 같았구요.

 

Q_허재, 강동희 등 쟁쟁한 선배들 속에서 신인 시절 주로 맡았던 역할은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막내고 젊으니까 일단 많이 뛰었죠. 원맨속공 등에 장점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구요. 선배님들은 기술적으로는 노련하셨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셨잖아요. 다들 그때는 30대셨으니까요. 더불어 수비적인 부분에 특히 신경을 썼죠. 상대 주득점원이나 슈터를 전담 마크 할 때가 많았습니다.

 

Q_전성기 시절에는 그야말로 스몰포워드로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셨는데요. 본인이 봐도 그 시절은 내가 최고였다고 생각되시죠?

-(웃음) 제 입으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열심히 하고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하던 시절이기는 하지만 최고라고 하기에는 다른 잘하는 분들도 생각나고, 그렇다고 아닙니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멋있게 말해주셨는데 타이밍상 좀 없어 보이네요. 당시 스몰포워드는 말 그대로 슈터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유명한 3번 중에는 슈터가 많았고 수비에 대한 비중은 적었죠. 시대 전체적으로 수비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선수를 ‘반쪽 선수’라고도 하죠. 저는 혹시나 그런 선수로 평가받는게 싫었어요. 공격 부분에서는 3점도 그렇지만 안쪽에서도 득점이 가능한 내외곽이 가능한 선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제 장점 중의 하나지만 당시에는 골밑에서 하는 포스트 플레이를 잘했었어요. 마산고 시절에 센터를 봤던게 도움이 많이 됐죠. 사실 공격적으로 내외곽을 모두 오가고 수비까지 잘하는 선수는 지금도 드물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없다시피 했어요. 단순히 할 수 있다 없다를 떠나서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거든요. 프로농구 초창기에는 신장제한이 있어서 단신 외국인 선수가 많이 왔어요. 국내 에이스는 물론 직접 단신 외국인 선수를 수비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지만 공수를 모두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Q_정말 멋지고 화려한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남자들이 좋아했죠.

 

Q_갑자기 그런 급발진 답변을…, 웬지 웃프네요. 같이 눈물 닦아보실까요.

-네…, 잠시 닦고 다시 진행하도록 하죠.

 

Q_단순히 슈터라고 단정 짓기에는 공격의 영역이 너무 넓었어요. 이후 후배들 중에서 본인과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가 있다면 꼽아주세요.

-아, 이것 어렵네요. 요즘 선수로 본다면 전주 KCC 송교창 선수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내외곽 득점이 가능하고 수비까지 열심히 하더라구요. 거기에 신장까지 커서 상대팀 입장에서 많이 위협적인 선수 같습니다.

 

Q_함께 뛰어본 외국인 선수 중 인상 깊었던 선수가 있으셨나요?

-두 선수 정도가 생각납니다. 우선 원년에 함께 우승을 일궈냈던 클리프 리드, 그 선수가 신장은 190cm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탄력, 운동능력 등이 정말 좋았어요. 어지간한 장신 선수들하고 붙어도 리바운드, 블록슛 등에서 경합이 되었어요. 단신으로 들어온 선수가 그 정도 위력을 보여버리니까 당연히 골밑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죠. 당시 저희 팀은 허재 형, 동희 형 등 기술자들이 많아서 다른 팀처럼 테크니션 스타일 외국인 선수가 필요 없었거든요. 리드의 그런 스타일로 인해 자연스럽게 ‘트윈타워’가 만들어져버렸죠. 그리고 다음 해에 트레이드를 통해 합류한 제이슨 윌리포드도 기억납니다. 센터 포지션을 보면서도 내외곽을 겸비한 기술자형 빅맨이었죠. 빅맨으로 들어온 선수가 외곽슛을 펑펑 꽂아대는 것은 당시에는 그냥 충격이었죠. 덕분에 옆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아무래도 선진농구를 경험하고 배워온 선수들이기에 옆에서 함께 뛰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많이 됐던 것 같아요.

 

Q_전성기 시절에 KCC(전 현대)에 챔피언결정전에서 2번이나 패하셨어요. 최고 3번으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을 것 같아요.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거에요. 결승까지 올라가서 패하면 많이 아쉽죠. 한번 정도는 더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2번이나 패해버려서 아쉬움이 정말 컸습니다. 근데 뭐, 당시 KCC가 워낙 멤버도 좋았고 선수들이 젊었잖아요.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등을 거치다보면 많이 지칠 수밖에 없는데 전력이 강하면서도 젊기까지한 KCC는 다 갖춘 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조니 맥도웰의 당시 위력은 엄청났잖아요. 소위 다 때려 부수고 다녔죠.

 

Q_기아라는 팀에 애정이 많으셨던 것 같은데, 아쉽게 프랜차이즈로 남지 못하고 예상보다 더 많은 팀을 오가게 되셨어요.

-당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팀이 다른 기업에 인수되기도 했구요. 그런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많았죠. 물론 제가 부상도 없고, 좋은 몸 상태로 여전한 경쟁력을 가져갔다면 끝까지 함께했을 가능성도 있었겠죠. 하지만 프로는 냉정한 세계잖아요. 프로니까 받아들여야죠.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앙대의 에이스

 

Q_원하시는 대학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위치 셨을 것 같은데 최종적으로 중앙대를 택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중앙대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일단 저희 학교에서 중앙대를 간 케이스가 거의 없는지라 인연도 없는 편이었죠. 보통 선배들 가는 곳을 따라가는 분위기였거든요. 당시 잘하던 선배들이 연고대를 많이 갔던지라 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후 연세대는 여러 가지 이유상 어렵게 됐고 고려대로 가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실제로 거의 계약도 마무리되어가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중앙대가 끼어들었죠. 정봉섭 감독님께서 직접 아버지와 저를 설득하셨어요. 특히 제가 큰 키가 아니라 대학에서도 센터를 보기는 쉽지 않으니 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해야 되지 않겠냐는 말도 크게 와 닿았구요. 더불어 당시에는 같이 농구하던 친구들도 많았던지라 최대한 많은 친구들이 함께 갈 수 있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죠. 중앙대에서 이런저런 조건들도 맞춰주었구요.

 

Q_본인은 엄청나게 잘하셨지만 아무래도 연고대에 전력도 조금 밀렸고, 인기 부분에서도 떨어졌는데요. 후회한 적은 없으셨나요?

-후회한 적은 없었어요. 두 팀이 잘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저희도 못하지는 않았구요. 좋은 선후배도 많았죠. 다만, 당시 오빠 부대도 생기고 그랬던 시절인지라 인기가 엄청 많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쪼끔 아주 쪼끔 부러웠습니다.(웃음)

 

Q_양경민 선수와 정말 호흡이 좋았던 것 같아요. 수비는 둘 다 잘하면서 공격방식은 다르고, ‘쌍포’라는 말이 딱 어울렸어요.

-양경민 선수 잘했죠. 저는 스몰포워드, 경민이는 파워포워드 쪽에 치중한 수비를 했던지라 서로간 동선 커버 부분에서도 좋았고 호흡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젊은 시절이라 둘다 수비도 좋았구요. 지금도 그렇지만 슈터가 수비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죠. 정말 잘 맞았던 좋은 선수같아요.

 

Q_선수 김영만의 플레이에 영향을 준 롤모델이 있을까요?

-당시에는 특별한 롤모델보다 그냥 잘하던 선배들을 많이 보고 따라하던 시절같아요. 그때는 허재형 인기가 매우 높았죠. 워낙 기술이 좋잖아요. 중앙대 시절은 물론 프로에 가서도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후배들이 그랬을겁니다. 허재 형의 기술 수준은 정말 남달랐잖아요.

 

여전히 농구에 관심이 많은 사나이

 

Q_농구에 관한 관심이 다방면으로 무척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많이 보는 편이죠. 엄청나게 매니아다 그렇다기보다는 텔레비전 채널을 틀다가 농구가 나오면 다른 것을 보느니 농구를 보는 편입니다. 국내 농구든 해외농구든 여자농구든 가리지않구요. 예전 숙소 생활할 때부터 늘 그랬어요.

 

Q_현재 프로농구가 개막했는데 남녀 우승 후보를 한번 예측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유…,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쟁쟁한 전문가들도 펠레소리 듣는게 시즌 예측인데, 음…, 어쨌든 시즌 윤곽을 알려면 1라운드는 끝나봐야 어느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멤버상으로는 KT나 SK, DB 등이 좋아 보이기는 합니다. 지난해 챔피언결정전에서 겨뤘던 KCC나 KGC도 저력은 있는 팀인지라 언제든지 분위기만 타면 치고 올라갈 것 같습니다. KT가 전력보강이 많이 된 것 같아서 눈에 많이 띄기는 하지만 일단 외국인 선수가 적응을 잘하고, 부상 변수가 없는 팀이 최종적으로 탄력을 받겠죠. 장기레이스인지라 변수가 많은 것 같아요. 여자농구는 아무래도 국민은행이나 우리은행 쪽이 무게감이 높지 않나 생각합니다.

 

Q_NBA에 대한 관심도 높으신 것 같더라구요. 이왕 예측해주신 김에 NBA 우승 후보도 한번 부탁드릴께요.

-아, 저는 NBA만큼은 승패를 아예 안보고 시청해요. 더블팀 등 팀별 전술이나 선수들간 공수패턴을 눈여겨봤어요. 세계 최고의 무대이니만큼 배울 점이 너무 많잖아요. 선수 시절에는 따라해 보고 싶었고 지도자가 되어서는 ‘아, 우리 팀에 접목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그랬던 것이죠. NBA를 보는 가장 큰 이유죠. 누가 우승하고 그런 것은 특별히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Q_NBA팬으로서 어떤 선수들을 좋아하셨나요?

-저희때는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워낙 높았죠. 학생 때는 NBA중계가 거의 없었 시절이었는데요. 그때는 전지훈련 등을 떠나면 비디오 테이프를 많이 챙겨서 갔어요. NBA 스타 브로마이드같은 것 구하면 제방 책상 위에 떡 붙여놓고 그랬던 기억도 납니다.

 

Q_NBA선수 중 감독님과 비슷한 스타일을 생각해보니 케빈 듀란트가 생각나요. 내외곽도 갖추고 수비도 정말 강력한 선수잖아요.

-하하핫…, 저를 어떻게 NBA선수하고 비교를 하겠습니까. 듀란트 엄청난 선수죠. 그 신장에 그렇게 움직이고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정말 엄청난 것 같습니다.

 

Q_감독님 선수 시절 이후 현재가 스윙맨들이 전성기를 보내는 최고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팀별로 좋은 선수들이 참 많죠. 유달리 눈에 띄는 선수가 있으실까요?

-좋은 선수들 많죠. 아까도 언급했던 송교창 거기에 양홍석 그리고 NBA에 도전하는 이현중까지, 일단 저희 때와 달리 잘 먹고 체계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아서 신체조건, 운동능력 등에서 탁월한 선수들이 계속 나오는 것 같습니다. 환경이 좋아진 만큼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죠.

 

Q_농구 외에는 별다른 관심사가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골프 좋아해요. 시간 될 때 지인분들하고 골프도 자주 치러 다니고 낚시도 즐깁니다. 시간될 때는 등산도 하러다니구요.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도 잘 못다니니까 등산을 가는 횟수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Q_축구도 많이 잘했다고 들었습니다.

-축구요? 아 축구는 잘했다기보다는 어릴 때 체육 선생님께서 ‘축구를 할래? 농구를 할래?’하고 선택하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운동 자체를 좋아하던 시절이었는데 저는 농구를 택했던 것이죠. 축구를 했으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잘 선택했던 것 같아요.

 

Q_현재 자녀는 어떻게 되시며, 혹시 농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1남 1녀입니다. 농구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딸이 그림을 잘 그리고, 농구 쪽으로는 안하고 있습니다. 클럽 농구를 경험한 수준에서 그쳤어요. 키도 많이 안컸고, 시기도 놓쳤구요. 제가 농구를 한 것과는 관계없이 다들 각자의 길이 있으니 다른 분야에서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Q_마지막으로 여전히 선수 김영만을 기억해주시는 팬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까지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제 별명이었던 ‘당랑슈터’를 아시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구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 잊지 마시고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배우고 더 성장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니까 다들 건강 잘챙기시구요.

 

Q_아! 맞다. 별명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요. 솔직히 말해서 ‘당랑 슈터’라는 별명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코트의 황태자 막 이런 수준은 아니더라도 더 멋진 닉네임도 있었을텐데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죠.(웃음) 사마귀가 뭡니까 사마귀가, 다른 선수들은 코트의 마법사, 컴퓨터 가드 그러던데… 저는 사마귀잖아요. 지금이야 굳어져서 친근감으로 받아들이지만 살짝 아쉬움은 남습니다. 어떤 언론사 기자님이 신문에 당랑 슈터라고 썼는데 이후에 다른 기자님들도 따라서 쭉 하더라구요. 아참, 좋은 것 좀 주시지(웃음)

 

Q_그럼 진짜로 마무리 지을께요. 항상 건강하세요. 감독님

-감사합니다. 늘 열심히하는 농구인 김영만, 인간 김영만이 되겠습니다.

 

글 / 김종수 기자 

사진/ 점프볼 DB

 

◇ 필자는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농구를 사랑하던 오랜 팬으로 2002-2003년 본지에 농구 무협소설 '해동전설(海東傳說)''을 연재한 바 있으며 데일리안, 홀로스, 올레, 오마이뉴스 등 다양한 인터넷 매체에서 스포츠 객원기자로 활동한바 있다. [김종수의 농구人터뷰]를 통해 전현직 농구인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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