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반박불가 LG 에이스 김시래, 프랜차이즈를 꿈꾸는 SUPER DADDY

김용호 / 기사승인 : 2019-08-28 17:53: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점프볼=김용호 기자] 아직 5개월 남았지만 김시래에게 2019년은 다사다난(多事多難), 그 자체였다. 4년 만에 봄 농구 무대를 밟았지만 불의의 부상으로 가슴을 졸이기도 했고, 자유계약선수(이하 FA)가 되어 팀 내 최고 연봉자가 되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검색어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2019년 하반기에도 이러한 ‘다사다난’ 시리즈는 계속될 전망이다. 올 연말이면 둘째 딸이 세상에 나와 ‘딸 바보’ 김시래를 더욱 더 웃음 짓게 할 예정이기 때문. 가장으로서 강한 책임을 갖게 된다는 그는 동시에 코트 위에서도 그 책임감을 발휘해야 한다. 김종규가 떠난 LG의 ‘THE MAN(더 맨)’으로서 팀의 봄 농구 진출을 이끌어야하니 말이다. 큰 기대 속에서 찬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김시래를 이천에서 만나보았다. 아참, 이번 인터뷰에는 특별한 손님도 동행했다! 심쿵 주의!

※ 본 기사는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인터뷰는 7월 17일에 진행됐습니다).

4월부터 9월은 프로농구 비수기다. 어지간해서는 프로농구 선수들 소식 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LG는 예외다. 현주엽 감독을 비롯, LG 선수들과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하면서 매주 팬들에게 얼굴을 비추고 있다. 매주 즐겁게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중 뜻밖의 출연자에게 시선이 꽂혔다. 바로 김시래의 첫째 딸 채빈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딸을 바라보는 김시래의 눈빛은 코트 위와 180도 달랐다. 어지간한 충돌에는 아랑곳 않고 일어섰던 ‘선수’의 눈빛이 아닌, 금방이라도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아빠’의 눈빛이었던 것. 그래서 인터뷰 요청 과정에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해보았다. 표지로 나서게 된 만큼, 딸과 좋은 추억을 남겨보면 어떻겠냐고. ‘딸 바보’ 김시래는 망설임 없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무더웠던 7월 중순의 어느 날, 화보 촬영을 먼저 마친 김시래는 “너무 행복한 일이죠. 제가 언제 채빈이와 같이 이렇게 잡지에 실려 보겠어요.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 이제는 ‘진짜’ 에이스
2012-2013시즌 신인이었던 김시래는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함께하고 곧장 LG로 이적했다. 이후 김시래는 김종규와 ‘원투 펀치’를 이루어 LG의 역사를 이끌었다. 2013-2014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에도 진출했고, 그 다음 시즌에도 외국선수 데이본 제퍼슨의 공백에도 불구, 마지막까지 그 시즌 우승팀 모비스를 괴롭혔다. 한동안 플레이오프 공백이 있었지만, 지난 시즌에는 모처럼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존재감을 뽐냈다.

그랬던 그에게 올 여름, 신변의 변화가 찾아왔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김종규가 FA 자격으로 원주 DB로 이적했다. 잔류를 택한 김시래는 계약기간 5년, 보수총액 6억원(연봉 4억 8천만원, 인센티브 1억 2천만원)에 재계약을 체결하며 LG의 최고연봉자가 됐다. 이제는 팀을 홀로 이끌게 된 것이다. 그만큼 책임감이 막중해졌기 때문일까. 딸 이야기에 연신 함박웃음을 짓던 김시래도 선수로서의 질문을 받기 시작하자 사뭇 진지해졌다.

먼저 한 팀의 최고연봉자가 된 기분이 궁금했다. 그는 “아무래도 팀에서 최고 연봉자가 된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자리에 오른 만큼 앞으로 더 책임감을 가지고 팀을 잘 이끌어야 할 것 같아요”라며 지난 FA 시장을 돌아봤다. 위치가 달라진 만큼 비시즌에 돌입한 감정도 남달랐다. “마음가짐을 더 독하게 먹게 됐죠”라며 힘줘 말한 김시래는 “아직은 몸을 조금 더 만들어야하는 상태이지만, 빨리 정상궤도에 올라서 팀원들과 손발을 맞추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이번 비시즌을 통해 선수 구성도 꽤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 선수들하고도 하루빨리 호흡을 맞춰야죠. 저희가 지난 시즌에 정말 오랜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는데, 팬들에게 또 한 번 봄 농구를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또,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별을 달고 싶거든요”라며 우승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그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건 LG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잘 알고 있다. “(현주엽) 감독님께서도 이제 팀을 잘 이끌어야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모든 선수를 이끌어야한다고요. 그런 말을 들으니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팀원들과도 더 소통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 제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요.”

김시래가 LG에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는 이미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입증됐다. 부산 KT와의 6강 플레이오프의 메인 이슈는 바로 김시래의 햄스트링이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결장한 2경기에서 LG는 모두 패했다. 그가 돌아온 5차전에서 LG는 비로소 길고 긴 시리즈를 끝낼 수 있었다.

“부상을 당했을 때는 정말 절망적이었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이었어요. 6강을 3-0으로 끝내고 인천으로 가고 싶었는데 속상했죠. 5차전에서는 정말 조금만 뛰더라도 팀에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 하나로 5차전을 뛰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4강에 올랐는데 스윕을 당하는 바람에 더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아요. 제 몸 상태가 좋았다면 팀이 더 잘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제는 그런 순간이 오지 않게 더 열심히 준비해서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요.”


● 7년차 중고참이 된 ‘작지만 근성 있는 선수’
파릇파릇했던 데뷔 시절, 김시래는 모비스에 입단하며 양동근의 뒤를 이를 포인트가드로 주목받았다. 그런 주목을 받으면서 어느새 6번의 시즌을 치렀고, 이제는 7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스스로는 얼마나 달라졌다고 생각할까.

신인 시절을 돌아본 그는 “데뷔 시절부터 꿈꿨던 방향으로는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신인 때 잘해서 연봉도 많이 받고 싶고, 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우승도 이끌고 싶었거든요. 우승은 신인 때 어떻게 하게 됐지만, 제 기준은 LG에 와서 주전 가드로 뛰기 시작한 때로 둔 것 같아요. 팀의 중심이 되었을 때 우승을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LG에서 아직 우승을 못해봤어요. 지금은 그게 제 농구 인생 최고의 목표입니다.”

플레이도 변화가 있었다. “데뷔 시즌에는 진짜 멋모르는 신인이었죠. 플레이도 급했고, 시야도 좁았어요. 수비할 때도 정신이 없었죠(웃음). 그렇게 한 시즌, 한 시즌을 보내면서 뛰다보니 조금씩 길이 보이더라고요.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신인 때보다는 침착해진 것 같아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김시래의 말이다.

그렇게 달라지고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대선배였던 양동근이었다. 그는 “이적한 후에도 힘들 때마다 많은 조언을 구했어요. 함께 했던 1시즌도 제게는 큰 발판과 같았는데 이후에도 조언을 구할 때면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던 대로 자신 있게 해라’라고 힘을 주셨어요. 정말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마다 해결을 해주셨어요. 지금 LG에서는 (조)성민이 형, (강)병현이 형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죠”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김시래는 스스로를 ‘키는 작지만 근성 있는 선수’라고 소개했다.

“경기를 뛰면 정말 이기고 싶고, 지면 너무 분하더라고요. 어떻게든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오면 더 부딪혀서 해보려하고요. 그럴 때 제가 근성이 있다는 걸 실감해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도 정말 오랜만에 진출한 거여서 그대로 떨어지기가 싫었는데…. 벼랑 끝에 몰리니까 ‘통증을 참을 수 있다면 뛰어서 이기고 싶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더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육체를 지배했었던 것 같아요.”


● 내 치료제는 가족
모든 선수들이 그렇듯, 김시래가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가족의 힘이 컸다. 2014년 5월 이동주 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3년이 지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딸 채빈이를 얻었다. 이 모두가 김시래에게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이들은 지난 시즌 그가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을 때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김시래는 아내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아내가 고생했다고, 수고했다며 몸도 아프니 쉬면서 잘 치료하자고 어깨를 토닥여줬어요. 시즌이 끝났을 때 뿐 아니라 시즌 중에도 힘들 때가 많았는데, 그때 마다 좋은 얘기를 해주고 ‘오빠는 잘 할 수 있다’라며 자신감을 잃지 않게 해줬죠. 항상 힘이 되는 존재죠.”

딸 채빈이의 얘기가 나오자 그는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보고만 있어도 힘이 된다”며 말이다. “채빈이가 ‘아빠, 아빠’하면서 웃어주면 정말 날아갈 것 같아요. 채빈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동기부여가 되고요. 확실히 아이가 생기고 식구가 늘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농구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정말 농구를 열심히 해서 가족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걸 다 사게 해주고 싶거든요. 가장의 책임감이죠.”


그렇다면 김시래는 집에서 어떤 남편일까.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인 것 같아요”라며 멋쩍게 웃어 보인 그는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해요.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항상 잘해주는 것 같은데요. 하하. 아내가 시즌 때 얼굴도 잘 못보고, 딸 키우느라 고생도 많잖아요. 그래서 기념일도 꼬박 잘 챙기려 하고, 선물도 자주 해주려고 해요.”

그는 가족을 ‘치료제’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기쁜 소식도 전했다. 올해 12월 말, 둘째 딸을 맞이하게 됐다는 것. 딸부자가 되겠다는 질문에 미소 지은 김시래는 “둘째 태명이 ‘대박이’에요. 저희가 임신 사실을 이번 휴가 첫 주에 알았는데, 임신 테스트를 하고 서로 처음 했던 말이 ‘어, 대박!’이었거든요(웃음). 그때가 FA 협상 기간이기도 해서 대박날 수 있게 해달라는 마음에 대박이로 지었죠”라며 둘째의 탄생을 기대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떳떳해지고 싶은 마음 또한 커질 터. 그는 “채빈이도 그렇고, 둘째 대박이도 그렇고, 언젠가는 제가 프로농구 선수라는 걸 알게 되겠죠. 그때가 오면 아빠를 ‘탑 클래스’였던 선수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그렇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요. 그렇게 꼭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요”라며 기분 좋은 미래를 상상했다.


● 가장 원하는 닉네임은 ‘프랜차이즈 스타’
한동안 흐뭇한 가족 얘기를 나누고는 다시 LG의 김시래로 돌아왔다. 명지대 졸업반 시절의 ‘시래대잔치’부터 시작해 팬들로부터 수많은 기분 좋은 별명을 들어온 그였지만, 정작 그가 가장 원했던 닉네임은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가장 원하는 건 창원 LG 했을 때, 제 이름이 꼬리표처럼 이어 나오는 거예요. ‘창원 LG는 김시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죠.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고 싶어요.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KBL 선배들도 그렇고 NBA도 그렇고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잖아요. 저도 한 번 이적을 했으니 완벽한 프랜차이즈 스타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대단한 일을 꼭 해내고 싶어요.”

그의 말대로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하게 오래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간동안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해야 한다. 이에 김시래는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다시 한 번 곱씹었다.

결국 가장 큰 과제는 챔피언결정전 우승이었다. “정말 큰 과제가 남아있죠. LG에 와서 정규리그 1위는 해봤지만, 챔피언결정전은 준우승에 머물렀잖아요. 그때 이후로는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가보지도 못하고 있고요. 유니폼에도, 체육관에도 별을 달고, 우승 깃발을 걸 수 있도록 해야죠. 제가 정말 LG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으려면요. 모비스에서 우승을 할 때는 형들의 비중이 워낙 커서 어린 마음에 우승이 쉽다고 느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창원에 와서 보니 정말 힘든 거였어요. 진짜 우승을 하게 된다면 농구인생에 있어서 역대급으로 기쁘지 않을까요.”

프랜차이즈 이야기를 이어가던 도중 다시금 닉네임으로 시선을 돌려봤다. 스스로 정한 목표점이 있지만, 지금도 팬들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있는 만큼 맘에 드는 닉네임이 있단다. 바로 킹.시.래. “킹시래라는 닉네임이 정말 듣기 좋더라고요(웃음). 팬들이 그만큼 절 인정해주시는 거잖아요. 앞으로도 그런 말을 계속 들을 수 있도록, 더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잘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2019-2020시즌 이야기를 다시 나눴다. LG는 올 시즌 10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외국선수 라인업을 공개했다. 2017-2018시즌 고양 오리온에서 뛰었던 버논 맥클린(32, 202.7cm)과 유럽에서 활약했던 캐디 라렌(27, 208cm)이 그 주인공. 두 선수 모두 달릴 수 있는 빅맨이기에 스피드가 강점인 야전사령관 김시래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대가 될 터.

얼마 남지 않은 시즌을 바라본 김시래는 “맥클린은 제공권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 골밑 경쟁력이 있는 선수였어요. 맥클린의 최고 강점은 팀원들 모두와 농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정말 기대가 되요. 라렌은 영상을 봤는데 슛도 좋고, 골밑에서 터프하더라고요. 수비 높이도 좋은 것 같고요. 우리 팀의 약점일 수 있는 높이를 두 선수가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새 식구와의 만남을 기대했다.

“기대가 되는 만큼 준비도 잘 해야 해요”라며 말을 이어간 그는 “지금 외부에서는 저희가 약체라고 평가하지만, 결과도 그러란 법도 없죠. 오히려 부담 없이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이지 않나 싶어요. 약체라는 평가를 한 번 뒤집어 봐야죠”라고 결연한 의지까지 함께했다.


개인적인 목표도 공개했다. 바로 전 경기 출전이다. 그는 데뷔 시즌인 2012-2013시즌, LG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2013-2014시즌 이후 정규리그 54경기를 모두 뛴 적이 없다. 김시래는 “한 경기라도 빠지면 팀원들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요. 부상으로 고생을 해봤기 때문에, 건강히 모든 경기를 뛰는 게 중요해요. FA 계약 이후 첫 시즌이라 정말 잘하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팀이 높은 곳에 올라야 저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잖아요. 정말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즌이에요”라며 시선을 2019-2020시즌에 맞췄다.

상에 대한 욕심도 전했다. 그 중 첫째 목표는 BEST 5. “항상 상을 못 받았는데, 상에 대한 욕심은 늘 있어요. 일단은 다가오는 시즌에 BEST 5에 꼭 이름을 올리고 싶어요. 정말 받아보고 싶은 상이에요. 그 시즌 포인트가드 중에서는 최고라는 의미잖아요. 1등을 해야 그런 상도 따라오겠죠?”

마지막으로 그는 온 진심을 담아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항상 근성 있게 뛸 테니 이길 때나 질 때나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도 그 힘을 받아 매 경기 열심히 뛰어 꼭 보답해드릴게요. 팀원들에게는 우리는 분명 우승까지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니 비시즌 잘 이겨내서 마지막에 꼭 웃자고 말하고 싶네요. 끝으로 가족들에게는 항상 너무 많은 힘을 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또, 항상 사랑한다고요. 이들 모두에게 보답할 수 있는 건 제가 농구를 잘해서 정상에 우뚝 서는 것뿐인 것 같아요.”

LG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거듭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맞이한 김시래. 그가 2019-2020시즌을 시래대잔치로 만들고, 킹시래 그 이상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LG의 에이스의 발걸음에 모두 주목해보자.

● 김시래 프로필
1989년 3월 22일생, 178cm/73kg, 가드, 명지중-명지고-명지대

# 사진_ 홍기웅 기자, 점프볼 DB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용호 김용호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