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용호 기자] 고교 최고 가드. 2019년 그를 줄기차게 따라다니고 있는 수식어다. 동기들보다 시작은 늦어 구력은 짧지만,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부지런히 성장해왔다. 부모님의 농구 사랑을 이어받아 코트에 들어선 그의 열정은 1분 1초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올해 아마추어 시즌 1호 트리플더블까지 달성한 홍대부고 박무빈(G, 187cm)은 공격력을 갖춘 정통 포인트가드가 되겠다며 당당하게 외쳤다. 말 뿐만이 아니다. 춘계연맹전, 왕중왕전 MVP까지 차지하며 팀 3관왕(춘계연맹전, 종별선수권, 왕중왕전)을 이끌었다. 그리고 반년도 남지 않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서의 시간 동안 모든 걸 다 보여주겠다고 외쳤다.
※ 본 인터뷰는 점프볼 8월호에 제개된 글입니다. (인터뷰는 종별선수권, 왕중왕전이 열리기 전인 7월 15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원주에서 키운 농구선수의 꿈
서울 태생의 박무빈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족들과 원주에 보금자리를 폈다. 덕분에 농구를 좋아하는 부모님을 따라 연고지 팀이었던 원주 TG(현 DB)의 홈경기를 일상같이 접할 수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도 농구가 됐다. 그는 “아버지가 동호회 농구를 하셔서 어릴 적부터 함께 볼을 튀기곤 했어요. 걸음마를 떼고 가장 먼저 흥미를 가진 게 농구가 됐죠. 정말 아기일 때부터 농구공을 만지다보니 친구들과 농구를 하면 드리블도 더 잘 쳤거든요. 그래서 흥미가 더 커졌던 것 같아요. 축구도 못하지는 않는데,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거에 관심이 크게 갔어요”라며 유년 시절을 추억했다.
농구공이 자연스러워진 그는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원주 동부 주니어프로미 유소년 팀에 들어갔다. 프로선수들과 같은 초록빛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자연스럽게 선수의 꿈도 커지기 시작했다. “치악체육관에서의 2011-2012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동부가 산성을 앞세워서 최다연승도 했었잖아요. 잘하는 팀의 경기를 보다보니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던 것 같아요.”
엘리트 농구 입문은 늦었지만, 그 전까지도 박무빈은 농구와 꾸준히 함께했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이어간 그는 “원주 단관초에 여자농구부가 있잖아요. 동부 유소년클럽에서 농구를 하면서 단관초에서 하는 스포츠클럽에서도 농구를 했거든요. 그러다보니 단관초가 대회를 분비할 때면 같이 운동을 하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다 농구부 입단 제의를 받은 건 중학교 입학 직전. “중학교 입학 전에 (원)종훈이 형(DB)이 청소년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유소년 클럽을 찾아왔었어요. 처음 보고 ‘저 형 뭐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광신중 코치님이 농구할 생각이 없냐며 보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같이 농구를 하던 친구가 김재현(광신정산고)인데, 재현이는 애초에 농구부 입단을 위해 춘천중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고요. 그래서 재현이는 바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는데, 저는 부모님께서 ‘선수는 힘드니까 취미로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도 하셔서 시작이 늦어졌어요. 일단 부모님 말을 들었던 거죠(웃음).”
하지만, 아무래도 박무빈은 선수가 될 운명이었던 것 같다. 어디서든 공을 잡으면 가장 빛났기 때문이다. 단구중에서도 그랬다. 유소년클럽 대회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스카우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동부 유소년클럽에 중등부가 생기면서 대회도 우승하고 MVP로도 선정됐죠”라며 웃어 보인 박무빈은 “그래서 부모님께 다시 선수를 하면 안 되냐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부모님이 ‘선수는 멍청하면 안 된다. 공부도 잘해야 하니 평균 90점을 넘겨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중학교 2학년 1학기까지 계속 평균 90점 이상을 유지했어요. 덕분에 그해 여름방학에 농구부가 있는 학교를 알아볼 수 있었죠. 배재중, 휘문중에도 갈 수 있었는데 홍대부중을 택했어요. 당시 정병호 코치님이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유급 없이 바로 와도 좋다고 하셨거든요”라고 돌아봤다. 농구선수 박무빈의 힘찬 점프볼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부지런한 노력으로 작은 결실을 맺은 그는 도전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제가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영어랑 사회 과목은 생각보다 잘했거든요. 하하. 잘하는 게 또 있었지만, 그러면서 좋아하기까지 한 건 농구밖에 없더라고요. 농구를 잘해서 좋은 건 줄 알았는데, 그냥 농구 자체가 좋았던 거예요.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든 도전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상보다 힘들었지만… 포기란 없다!
당차게 발을 들인 홍대부중 농구부. 역시나 클럽 농구와 엘리트 농구의 차이는 컸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합숙 생활도 그를 당황케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박무빈을 포기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공격은 유소년클럽 시절에도 자유롭게 했고, 홍대부중에서도 정병호 코치님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셔서 큰 문제는 없었어요. 다만 수비가 문제였죠. 유소년클럽에서는 맨투맨 수비만 하지만, 엘리트 농구는 그렇지 않잖아요. 조직적인 수비에 대한 개념이 없다보니 중2 겨울방학에는 맨날 혼나기만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러면서 정말 많이 배웠죠.”
배움은 박무빈을 더 강하고, 곧게 만들었다. 연계 학교인 홍대부고로 진학하고 나서도 많은 시련이 겹쳤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포기’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힘들 거라고 예상하고 농구부에 들어갔으니까요. 제 예상보다도 힘든 적은 많았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었어요. 시련은 있었죠. 고등학교 1학년 때 양쪽 햄스트링을 모두 다쳐서 반 년 동안 재활을 했었거든요. 힘들었죠. 중학교 때는 전관왕을 하는 동안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렇게 돼버렸으니까요. 제가 재활하는 동안 친구들은 실력도 늘면서 뛰고 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내가 다시 돌아가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를 생각한 적은 절대 없었어요.”
남다른 의지로 위기까지 이겨낸 박무빈. 대개 중, 고등학교 아마추어 선수들은 자신의 실력이 올라간다고 생각이 들 때 쯤 마음 속 롤모델을 정하곤 한다. 기자들이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던지는 단골 질문이기도 하다. U16, U18 청소년대표팀을 거쳤던 박무빈 역시 일찍이 많은 선배들을 바라보며 ‘저 선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해봤을 터. 그렇다면 그는 언제쯤 자신의 포지션, 그리고 이상향을 설정했을까.
다시금 생각에 잠긴 박무빈은 “누구를 닮아야겠다는 생각은 잘 안했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포지션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중학교 때는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오갔지만 고등학교 입학이 다가오는 만큼 제 길을 확실하게 정해야했죠. 중학교 때 정병호 코치님도 그렇고, 지금 이무진 코치님도 그렇고 제 키가 슈팅가드보다는 포인트가드로서 메리트가 있다고 해주셨어요. 저도 그 쪽이 더 끌렸고요. 그렇게 포인트가드를 제 포지션으로 정하게 됐죠. 근데 사실 고2때까지는 (김)승협이 형(동국대)이 있어서 여전히 저는 공격 비중을 많이 가져갔고, 올해가 돼서야 제대로 팀을 이끌어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방향성을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박무빈은 진정한 야전사령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한 번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지난 겨울방학도 힘들었어요”라며 미소 지은 그는 “포인트가드가 되려면 속공 상황에서 제가 제일 먼저 볼을 받아야하고, 받기 전에는 앞을 보며 팀원들의 찬스도 미리 살펴야 하잖아요. 예전에는 볼을 잡으면 직접 드리블을 치고 돌파를 했는데, 이제는 모든 선수들을 봐야하니까 쉽지가 않았죠. 역시나 예상대로 혼이 많이 났고요(웃음). 지금은 많이 괜찮아진 것 같은데, 그래도 많이 부족해요”라고 말했다.
확실하게 포지션을 정한 이후로는 롤모델도 생겼다고. 그가 지향하는 롤모델은 바로 두경민(상무)이다. 공격에 치중하다가 포인트가드까지 맞게 된 과정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게 그 이유. 박무빈은 “두경민 선수도 경희대 시절까지는 공격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잖아요. 그러다 프로에 가서 팀 사정상 포인트가드도 보기 시작했고요. 저도 ‘누가 뭐래도 박무빈은 1번(포인트가드)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개인 공격도 잘한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라며 다부진 모습을 보였다.
모든 걸 보여주리라!
한국 나이로 고작 19살인 청소년.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이미 박무빈은 농구선수로서 꽤나 성숙해져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부지런하게 뛰어온 덕분일 터. 그가 홍대부고의 야전사령관으로 거듭나면서 얻은 큰 수확물은 목표 달성을 위한 추진력이란다. “목표를 한 번에 크게 잡지는 않는 편이에요. 조금씩 달성해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자신 있어요. 그렇게 목표를 달성해 나가면서 인간관계 같은 사회적인 능력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진취적인 성향 덕분일까. 그는 운동선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긴장감에서도 자유롭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코트에서 정말 많이 긴장했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달라진 것 같아요. 당시 유소년클럽 대회에 나갈 때마다 한 번도 지지 않고 전부 우승을 했거든요.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그때부터는 긴장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성격도 전투적으로 많이 바뀌었죠. 이제 코트에서는 ‘상대를 이기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해보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주자’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인지 몸이 얼어버리는 일은 없어요. 오히려 큰 경기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플레이하죠.”
전투력까지 탑재한 그에게 2019년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자신의 성장세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올 시즌 첫 대회였던 춘계연맹전에서는 트리플더블 활약을 동반,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MVP에도 선정됐지만, 그 이후가 녹록치 않았다. 협회장기에서는 16강에서 안양고에게 1점차로 패배(81-82)했고, 연맹회장기에서도 준결승까지 올랐지만 또다시 안양고에 88-90로 연달아 석패를 떠안았다.
“홍대부중 전관왕 시절 멤버에 (인)승찬이라는 좋은 골밑 자원까지 들어온 상태거든요. 덕분에 춘계연맹전에서는 좋은 호흡으로 저희만의 장점을 내세워서 우승을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계속 우승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지니까 계속 지더라고요. 이후 두 번의 대회에서 안양고에게 연달아 1점, 2점차로 지니까 단체로 멘붕이 왔어요. 그래서 이무진 코치님과 많은 고민을 했었어요. 결론은 수비였어요. 90~100점을 넣어도 수비가 안 되니까 졌던 거였죠. 그래서 주말리그를 앞두고는 수비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절치부심한 박무빈과 홍대부고는 빠른 시간 안에 달라졌다. 주말리그 예선에서 3승 1패, 남고부 B조에서 1위를 차지하며 왕중왕전에 오른 것이다. 당시 4경기 팀 평균 득점은 83.8점, 실점은 74점이었다. 이후, 이들은 다시 상승세를 끌어올려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100회 전국체전에 29년 만에 서울 대표로 출전하는 기쁨까지 누리게 됐다. 29년 전, 홍대부고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갔던 선수가 지금 홍대부고를 이끄는 이무진 코치라고. 때문에 대표 자격을 따낸 기쁨이 몇 배로 더 했다는 게 박무빈의 말이다.
박무빈은 2019년 후반기에 다시 자신의 상승곡선을 더 높게 끌어올릴 준비를 마쳤다. 그는 “많은 분들이 포인트가드로의 변신은 잘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세요. 하지만, 제가 스스로 보기엔 아직 듀얼가드의 느낌이 강해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빨리 정통 포인트가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아직 제 목표에 절반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을 잡고 직접 해결하기 보다는 팀원들이 제 경기운영 덕분에 더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때 진짜 포인트가드가 됐다는 걸 실감할 것 같아요”라며 시선의 끝을 멀리 뒀다.
끝으로 그는 반년도 채 남지 않은 ‘고등학교 3학년’의 목표까지 전했다. “남은 대회 준비를 잘 해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주고 싶어요. 전국체전도 서울 대표로 나가게 돼서 더 의미 있잖아요. 대학에 가서도 농구는 계속 배우겠지만, 그 전에 준비를 더 잘해서 대학 입학과 동시에 바로 뛸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당찬 포부와 함께 인터뷰를 마치려는 찰나, 박무빈은 환하게 웃으며 목표 하나를 덧붙였다.
“제 농구는 앞으로 더 화려해질 거예요. 화려한 선수가 되겠습니다!”
박무빈 프로필 |
2001년 2월 22일생, 187cm, 가드, 단관초-홍대부중-홍대부고
# 사진_ 문복주,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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