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농구선수 이창수(50, 196cm)는 KBL에서 ‘식스맨’과 ‘꾸준함’을 말할 때 빠지지 않던 인물이다. 훅슛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꾸준한 자기 관리로 40살이 되도록 후배들과 겨루었다. 그 DNA는 아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유망주’ 이원석(19, 205.3cm) 역시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학년을 거듭할 때마다 평가를 끌어올렸다. 2018년에는 U18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그 노력의 결실을 맺기도 했다. 이런 그의 롤모델은 아버지 이창수. 그러나 아버지보다 한 단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다부진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등번호도 아버지가 현역시절 사용한 등번호보다 하나 더 많은 23번으로 정했다. 이처럼 6월의 하늘보다 더 쾌청한 미래를 꿈꾸는 이창수, 이원석 부자를 주말리그가 펼쳐지던 서울 경복고 체육관에서 만났다.

이창수, 원석이 아빠로 코트 복귀
41살까지 코트를 누빈 이창수 전 경희대 코치. 군산고 1학년 때 뒤늦게 농구를 시작해 2011년 3월 27일 원주 동부(현 원주 DB)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1992년 경희대를 졸업, 삼성전자에 입단한 그는 농구대잔치 세대이자 프로농구 원년 멤버다. 1996년 간염으로 잠시 쉬어가긴 했지만, 그는 1997-1998시즌 서울 삼성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해 2010년까지 정규경기 통산 527경기, 플레이오프 통산 42경기를 뛰었다. 아이라 클라크, 문태종이 2018-2019시즌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면서 ‘현역 최고령’ 기록을 물려주긴 했지만 그 역시 40살이 넘도록 조카뻘 후배들과 몸을 부대끼고 외국선수 수비를 위해 투입될 정도로 꾸준함을 보였다.
은퇴 후 현재 이창수는 코치, 스킬 트레이너로 변신해 후배들의 실력 향상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는 경희대, 군산고 후배들의 선생님이었고, 올해도 KBL이 개최한 유소년 엘리트 캠프에서 함께했다. “대치동에서 체대입시학원을 빌려서 센터들 스킬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요. 요즘 선수들을 보면 피벗이라든지 기초적인 것이 약하더라고요. 그런 걸 중점적으로 알려주면서 슛도 알려주고 있어요. 주로 1대1 아니면 2대2 트레이닝이에요. 그룹으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내가 힘들어서 못하겠더라고(웃음). 인원이 많으면 설명만 하다 끝나서 효율성이 떨어지고요”라고 근황을 전한 이 코치.
그가 기술을 전수하는 제자 중에는 경복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이원석도 있었다. 이창수 코치의 현역시절 장기였고, 현대모비스 시절 신인이었던 함지훈에게도 전수했던 ‘주무기’ 훅슛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원석은 205.3cm의 큰 신장에 내외곽을 오갈 수 있는 기동력이 장점인 선수다. 2018년, 태국에서 열린 FIBA U18 아시아남자농구대회에 출전해 식스맨으로서 이름을 알렸다.
대화가 필요해 농구를 시작하다
이원석이 농구공을 잡은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이원석은 이창수가 간염에서 완쾌한 뒤 얻은 밀레니엄 베이비다. 하지만 프로선수이다 보니 숙소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다보니 아들과 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대화가 필요했던 이 코치는 아들을 수원의 한 농구교실로 데려갔다.
“집에 들어가면 아들은 공부하다가 잤어요. ‘아빠 왔어?’, ‘잘자’ 이런 대화가 끝이라 아내랑 상의를 해 운동을 시켜보자고 이야기를 했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습니다(웃음). 축구를 먼저 하다가 고학년이 되면 보통 농구를 하는데, 원석이는 축구를 할 때면 축구장이 안방인 줄 알았어요. 넘어지면 안 일어나더라고요(웃음). ‘우리 아들이 어딨나’ 싶을 땐 땅을 보면 됐죠. 그 정도로 운동 신경은 없었는데, 농구는 재밌어 하더군요.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코치의 말이다.
농구공을 잡기 전 아들이 가진 ‘농구’에 대한 기억도 좋았다. LG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아빠의 모습을 기억한다는 이원석은 “사실 어렸을 때는 경기장에 맛있는 걸 먹으러 갔어요. 경기장 분위기도 좋았는데, 제가 10살쯤 아빠가 은퇴를 하셨어요. 그땐 내가 농구를 하기 전이었는데, 팬들이 22번(은퇴 당시 이 코치의 등번호)이 적힌 풍선을 들고, 환호했던 것이 기억나요”라고 아빠의 현역 시절을 회상했다.
또래보다 신장이 크긴 했어도,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서는 21cm나 자랐다. 그리고 올해 초 신장을 쟀더니 205.3cm를 찍었다. “어렸을 때 성장판 검사를 했는데, 내 키와 비슷하게 클 것이라 하더군요. 그럼 195cm 정도가 될 테니 포워드로 키우면 메리트가 있겠다고 했는데, 이미 중3 때 198cm까지 자라 있었어요.” 이창수 코치의 말이다.
이원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성장판이 열려 있어 5cm 정도 더 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밸런스 운동이랑 힘을 키우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이 코치는 본격적으로 아들의 실력 향상을 도왔다. 센터로서 기본이 되어야 하는 스텝을 알려준 것. “2m가 넘으면 골밑에서도 플레이를 해야 할 텐데, 포스트업을 못 한다면 반쪽짜리 선수가 되는 거잖아요. 외곽을 주로 보더라도 미스매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고1이 되면서부터 주말마다 포스트업을 시키고 있어요. 골밑에서 발을 빼는 방법을 알려줬고, 훅슛도 가르쳤죠. 2m에 내외곽이 가능하면 강점이지 않을까요?”
“아빠와 한규현 선생님이 잘 알려주신다”며 고개를 끄덕인 이원석. 그는 “외곽 수비, 공격 상황에서의 속임 동작 등을 알려주셨어요. 중학생 때는 큰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고등학교 와서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죠. 그래서 아빠와 새벽 훈련을 많이 가졌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애초 이창수 코치가 원했던 ‘대화’와 ‘가정의 평화’는 찾아온 것일까? 이 코치는 “내가 농구선수 출신 아빠다 보니 칭찬보다는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더군요”라고 씁쓸히 웃었다. 하지만 아들은 오히려 아빠가 롤모델이라며 엄지를 세웠다. “중학교 때는 잔소리 같기도 했지만, 지금은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제가 더 노력하려고 하죠. 포지션이 같다 보니 배울 점도 많고, 좋은 것 같아요. 아빠랑 하는 새벽 훈련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 입장에서 이보다 흐뭇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많은 의미가 있었던 U18 대표팀
U18 대표팀은 이원석에게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당시 이현중(데이비슨대 진학 예정), 여준석(NBA 아카데미/용산고), 김형빈(안양고) 등 2m 신장의 동기들과 실력을 겨루며 성장했고, 자신감도 얻었다. 사실, 이창수 코치는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걱정이 더 많았다고 한다.
“대표팀 경험도 없었고, 용산고에서 경복고로 전학을 가면서 전학징계를 받은 상황이었어요.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어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기특하게 잘 이겨내더군요. 사실 원석이가 어렸을 때 특목고 진학 이야기가 나왔을 만큼 영특했는데, 그런 아이에게 농구를 시켰으니 책임감이 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경기를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해냈어요. 개인적으로 큰 자산이 될 테고, 또 그 경험을 계기로 성장한 것 같습니다.”
이원석 역시 “많은 것을 느꼈다”며 지난 대회를 회상했다. “팀에서는 출전 시간을 많이 부여받았지만, 정작 대표팀에서는 그렇지 못했어요. 그래서 몇 분을 뛰던 감독님 주문을 최대한 잘 이행하려고 노력했죠. 공격은 잘하는 선수들이 많잖아요. 저는 수비와 스크린, 리바운드 가담에 신경 쓰면서 찬스가 나면 골밑슛을 시도했습니다.”
“특별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윙스팬을 정확히 모른다는 이원석을 위해 인터뷰 중 줄자를 구해왔다. 이 코치는 203cm, 아들은 비공식적으로 208cm였다. 큰 신장에 기동력, 그리고 긴 팔은 농구선수라면 모두가 꿈꾸는,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크나큰 ‘재산’이다. 이제 이 코치의 바람처럼 이원석이 내외곽 플레이라는 ‘소프트웨어’만 업그레이드한다면 부자가 꿈꾸는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다.

이원석이 “내외곽을 모두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골밑에서는 아빠의 플레이를 본 받고 싶지만, 최준용과 안영준 선수처럼 외곽에서도 플레이를 하는 장신 포워드가 되고 싶습니다. 3점슛 향상을 위해 야간에 슛 연습도 부지런히 하고 있어요”라고 발전 의지를 드러내자 이 코치도 힘을 실어줬다. “농구선수로 대학이나 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지금까지는 잘해준 것 같아요. 노력으로 올라선 게 기특합니다. 다치고, 힘들어하는 걸 볼 때마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이제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걸음마를 뗐다고 생각해요. 안주하지 말고, 본인이 노력해야합니다. 지금부터가 진짜 진검승부 입니다”라고 이원석을 격려했다.
‘코치’ 혹은 ‘농구 선배’가 아니라 ‘아빠’로서 아들 자랑도 부탁했다. “성격이 모나지 않아요. 예민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온순한 편이라 주변에 친구들이 많죠. 일반 학교 친구들도 많은 것 같아요. 나와는 달리 사교적인 것 같습니다(웃음)”라고 말한 이 코치. 내친김에 이원석이란 선수를 맞대결 상대로 만나면 어떨 것 같냐고도 물어봤다. “수비가 외곽까지 쫓아나오지 않는다면 슛을 던질 것이고, 포스트업도 할 줄 아는 선수이니 까다롭겠죠.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지만, 담금질을 한다면 막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서)장훈이가 그랬어요. 외곽에서 슛을 던지고, 중거리슛도 좋았다. 그러다 보니 막기 쉽지 않았는데, 아들도 그런 선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밑그림을 그리며 웃어보였다.
이원석의 현재 등번호는 23번이다. 왜 23번을 달았는지를 묻자 이원석은 “용산고에 있을 때 박인웅 형(현 중앙대)이랑 친했는데, 그 형의 번호여서 달고 뛰고 있어요. 그리고 아빠보다 조금 더 잘하고 싶어 1을 더했습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아빠 이창수’에 대해 묻자, “좋은 아빠! 항상 잘 챙겨주시고, 저를 위해 주세요”라는 말로 아빠를 설명한 이원석은 ‘사랑해요’라는 살가운 말 대신 “지금처럼만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라며 진심어린 말로 그간의 감사함을 대신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아빠와 아들 사이지만, 코트에서는 대선배와 후배, 혹은 코치와 선수인 두 사람. 쨍쨍했던 푸른 하늘 아래 환히 웃으며 밝은 미래를 약속한 두 부자의 농구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BONUS ONE SHOT │ 길거리 캐스팅으로 예능 출연한 사연
지난 6월 14일, ‘KBS JOY’의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는 반갑고도 생소한 얼굴들이 대거 출연했다. 바로 이원석을 포함해 유기상(용산고), 김형빈(안양고), 양준석(울산 무룡고), 박무빈(홍대부고) 등 현재 고교무대를 꽉 잡고 있는 유망주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호스트는 다름 아닌 서장훈. 예능인이기 전에 농구선수로서 시대를 풍미했던 ‘국보 센터’였다. 서장훈은 이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이수근과 함께 패널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방법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원석은 “(양)준석이가 서울에 올라온 김에 다 같이 모인 자리였어요. 점심을 먹으러 강남역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PD님이 저희가 큰 것을 보고 섭외를 하셨죠. 당시 출연료가 5만원이라고 하길래 밥값에 보태자라고 해서 나가게 됐죠”라고 출연 동기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원석이 내놓은 고민은 무엇일까. 이원석의 고민은 ‘키가 계속 자란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서장훈은 “키 크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잘 먹어서 체격을 키워라”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207cm인 나도 잘 살고 있지 않나. 키가 크는 건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좀 더 커도 괜찮다”라고 진심어린 말도 덧붙였다.

서장훈은 점심을 먹고 오라며 개인 카드를 내주기도 했다. 당시 점심 값은 27만 6천원이 나왔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이창수는 후배이자 아들의 대선배인 서장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나중에 장훈이를 보면 고맙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작은 거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고맙더라”라고 말한 뒤 방송을 지켜본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서장훈처럼 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내가 현역 때 가장 힘들었던 상대가 장훈이였다. 외곽슛까지 있다보니 매치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 방송을 하는 것을 보면 말도 참 잘하지 않나. 책도 많이 읽었다. 장훈이처럼 해보자”라고 아들을 다독였다.
프로필
이창수 1969년 7월 20일 196cm/102kg, 군산고-경희대-2011.3 창원 LG 은퇴
이원석 2000년 1월 30일 205.3cm/89kg, 삼선중-경복고
※ 본 인터뷰는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 사진_ 유용우, 문복주 기자, 본인제공,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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