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국대 데뷔전, 첫 득점은 3점슛” 최고 슈터 꿈꾸는 ‘순수청년’ 벌드수흐

김용호 / 기사승인 : 2019-06-06 15:15: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점프볼=김용호 기자]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이 선수가 농구를 얼마나 사랑하고, 스포츠맨으로서 승리를 얼마나 갈망하는지를. 어릴 적 잡았던 농구공 하나로 선수라는 꿈을 키웠고, 단 한 번도 그 꿈을 바라보지 않은 적이 없는 농구바라기. 아마추어의 최종 관문인 대학리그에 등장해 전반기 가장 많은 시선을 끌어 모은 선수 중 하나. 국가대표 하나 만을 바라보며 오늘도 슛을 던지고 있는 한양대 벌드수흐를 5월의 어느 봄날, 그의 캠퍼스에서 만나봤다.

※ 본 인터뷰는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2009년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벌드수흐는 집안사정으로 인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당시 학교 규정상 체육 특기생이 되어야했던 그는 가장 좋아했던 농구공을 잡는다. 순수하게 좋아했던 만큼 농구 자체를 힘들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사화초, 팔룡중, 마산고의 슈터로 성장한 그는 마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J. 모두가 궁금해 할 거예요. 농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제가 몽골에서 태어났는데 2009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사화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됐어요. 일반 외국인은 비자 문제 때문에 학교에 입학하려면 체육 특기생으로 시험을 봐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농구로 시험을 보고 입학을 하게 됐어요. 원래 한국에 오자마자 밀양에 아시는 분을 통해서 축구부를 들어갈 뻔 했는데, 400m 트랙을 한 바퀴 뛰는 테스트에서 반도 못가 걸어 다녔거든요(웃음). 그랬더니 골키퍼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골키퍼는 절대 하기 싫어서 원래 좋아했던 농구를 택했죠.

J. 어릴 때 한국에 와서 적응이 쉽지는 않았겠어요.
농구는 너무 쉬웠어요. 하하. 어릴 때부터 슛이 엄청 좋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다만 단체생활이 쉽지 않았죠. 일단 소통이 안 되니 불편했죠. 그래도 농구할 때만큼은 좋았어요. 한국말은 세 달 정도 배우고 나니 소통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더라고요.

J. 그렇게 출발을 알린 사화초 시절은 어땠나요.
사화초에 다닐 때 팀 성적이 굉장히 좋았어요. 하지만, 저는 공식 경기에 한 경기도 뛰지 못했죠. 규정 때문에 출전을 못했거든요. 6학년이 돼서는 팀의 에이스가 됐지만, 여전히 연습 경기만 뛰었고 항상 팀원들의 대회 출전을 지켜보기만 했어요. 속상했죠. 한 경기라도 뛰어봤으면 했는데…. 그래도 그때 코치님이 따로 농구도 가르쳐주시면서 정말 잘 챙겨주셨어요.


J. 공식 경기를 처음 뛴 건 중학교 때라고요.
네, 팔룡중에서요. 역시나 규정 때문에 전국체전 평가전을 빼고는 모든 대회를 다 나갔어요. 1학년 때는 평균 10분 정도 뛰었던 것 같아요. 역시나 제 강점은 슛이었고, 2학년 때부터 시간이 30분대로 확 늘어났어요. 그때부터 제 이름을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죠. 많이 뛰기 시작하니까 자연스럽게 성장한 거 같아요.

J. 그럼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스카우트도 많이 받았겠네요?
네. 스카우트 제의가 정말 많이 왔어요. 서울의 좋은 학교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결국 마산고를 택했죠. 마산이 가장 편한 동네였고, 부모님과도 가까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다른 지역으로 갔으면 적응을 못했을 것 같아요. 마산고가 제가 있는 동안 가장 높이 올라갔던 게 전국체전 8강일거에요. 우승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팀이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나씩 올라가보자는 마음으로 농구를 했죠. 우승을 못했다고 마산고를 간 걸 후회하진 않아요. 친구들도 정말 좋았고, 감독님도 정말 잘해주셨거든요.

J. 이 정도면 마산의 아들이네요. 하하. 그럼 초·중·고 BEST 경기를 뽑아볼까요?
고등학교 1,2학년 때 주말리그에서 모두 부산중앙고를 이겼었어요. 양홍석(KT) 선수가 있을 때에요. 같이 매치업이 됐었는데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이기겠지’라면서요. 제가 30점씩 넣으면서 승리했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렇게 경기를 뛰지 못했던 시절까지 버텨내며 존재감을 키워간 그는 아마추어의 최종 관문인 대학으로 향한다. 그가 택한 학교는 한양대. 하지만, 이마저도 과정이 녹록치 못했다. 서류 문제 때문. 이로 인해 그는 곧바로 대학리그에 투입되진 못했다. 그럼에도 벌드수흐는 자신이 코트에 들어설 날을 묵묵하게 기다렸고, 2019년 정규리그 9경기 평균 35분 15초를 뛰며 20.8득점(3P 4.2개, 성공률 39.2%) 3.8리바운드 2.3어시스트 1.8스틸로 맹활약 중이다. 개인상 시상 시 누적 수치를 적용하는 대학리그 규정상 현재 득점 4위(평균 득점 2위), 3점슛 1위, 스틸 11위에 랭크되어 있다(6월 6일 기준).

J. 한양대에 입학했지만 바로 경기 출전을 하지는 못했어요.
한양대에는 작년 9월에 입학을 했는데, 귀화와 관련해 서류 문제가 잘못되면서 경기 출전이 늦어졌어요. 농구부와 훈련은 더 일찍 함께했어요. 2018년 2월 동계훈련 때부터였죠. 힘 있고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보니 확실히 대학은 또 한 단계 위라는 걸 느꼈었어요. 그러다 작년 10월 8일에 최종적으로 귀화가 확정됐어요. 주민등록증을 받는데 기분 최고였죠. 그날 이마에 주민등록증을 붙이고 ‘나 한국 사람이다’라며 사람들 앞에서 자랑했던 기억이 나요. 하하.

J. 정재훈 감독님은 어떤 주문을 하셨나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세요. 항상 성실하고 근성과 끈기를 잃지 말라고, 또 대학생답게 뛰라고 주문하시죠. 저도 거기에 맞춰서 열심히 노력 중이에요. 한양대가 전통적으로 육상농구를 하는데, 그래서 동계훈련이 정말 힘들어요. 가끔씩 ‘어우,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할 정도거든요(웃음). 그래도 전 농구밖에 없고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버텨요. 그렇게 훈련을 소화하고 나면 그 뒤가 재밌고 좋은 것 같아요.

J. 대학에도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럼 현재까지의 경기를 돌아볼까요?
팀 성적이 좀 많이 아쉽죠. 다 이길 수 있었던 경기였던 것 같은데, 후반에 집중력을 지키지 못해 아깝게 졌으니까요. 제가 승부욕이 강해서 경기를 지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해요. 그래도 빨리 팀원들이랑 얘기를 나누면서 잊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려고 하죠. 그래도 얼마 전 20점을 뒤집혔던 경희대 전(4월 24일, 한양대 83-84 패)은 잊히지가 않네요.

J. 팀 성적은 아쉽지만, 개인적으로 주목은 정말 많이 받았잖아요.
한편으로는 좋죠. 제가 잘하고 팀도 잘해서 승리를 했다면 상관이 없는데, 제가 못하는 날에는 너무 부담이 되고 팀에 미안해요. 휴식기 전에 성균관대랑 마지막 경기를 했던 날도 워밍업 때까지는 컨디션이 정말 좋았는데, 경기에 들어가니 순간 멍해지면서 몸도 이상하고 말리더라고요. 정말 준비를 잘 하고 나갔었는데, 그런 아쉬운 경기를 하니까 스스로 화가 나기도 했죠.

J. 슈터로서의 고민도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슛을 하나라도 집중해서 성공해야 팀도, 저도 사는 거니까요. 안 들어가면 팀도 흔들리고, 저도 흔들리죠. 그래도 그럴 때마다 감독님도 팀원들도 ‘괜찮다. 그래도 넌 자신 있게 던져야 한다’고 격려해주는데 그게 너무 고마워요. 슛이 안 들어갈 때를 대비해 최근에는 변화도 주고 있어요. 성균관대 전에서 침묵한 이후로 결심이 선 것 같아요. 감독님과도 따로 미팅을 하면서 돌파나 패스 등 다른 무기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죠.


J. 이제는 ‘한양대 학생’ 벌드수흐의 이야기도 들어볼까요?
너무 재밌어요. 엉뚱할 수도 있는데 수업 시간에 커피를 들고 들어갈 수 있는 것 마저 좋아요(웃음). 또, 학교가 서울이다 보니 다양하게 가볼 수 있는 데도 많더라고요. (J. 공부는 잘 하는 편인가요?) 초등학교 때는 몽골에서 공부를 잘해서 전교 1, 2등을 했었어요. 한국에 와서는 한국말부터 배운다고 공부할 시간도 없었죠, 그래서 부모님이 영어라도 잘 하라고 하셔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이제 회화는 능숙한 수준이에요. 작년 2학기 때 처음 받은 대학 학점이 4.5점 만점에 3.2점인데 제가 아마 농구부에서는 5등 안에 들 걸요?

J. 팀원들과 체육관 밖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해요.
엄청 몰려다니지는 않는데, 몇 명씩 모여서 옷도 사러가고, 카페도 가고, 팀원들이 저한테 서울 구경을 시켜주려고 데려가기도 해요. 워낙 다들 잘 챙겨줘요. (박)민상이 형이랑은 1년 동안 방도 같이 쓰면서 붙어있었고, (진)승원이는 제 인생 친구에요. 제 생각도 너무 잘 이해해주고, 똑똑한 친구거든요. (송)수현이 형은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같은 학교를 다니는 중이에요. 그 어릴 적부터 저를 도와준 거죠. 지금은 룸메이트이기도 하고요.

그의 캠퍼스 라이프까지 듣고 나니 아직 귀화 후 한국 이름만 짓지 않았을 뿐, 정말 한국사람 다 됐다는 느낌이 물씬 다가왔다. 사진 촬영 후 인터뷰 장소를 이동할 때 캠퍼스를 거닐던 모습만 봐도. 영락없는 한양대에 다니는 한국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결국 최종적으로 꾸는 꿈은 ‘KOREA’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 것이다. 국가대표.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그런 선수들이 모이는 국가대표라는 꿈은 당연했단다.


J. 꿈이 큰 만큼 롤모델로 삼아온 선수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 선수가 돼야 하잖아요. KBL에서는 저와 포지션이 비슷한 조성민(LG) 선배가 롤모델이에요. NBA에서는 스테픈 커리가 좋고요. LG랑 연습 경기도 했었는데, 제가 무조건 조성민 선배를 맡겠다고 했었어요. 슈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 배우고 싶었거든요. 막상 매치업이 되고 나니 정말 설레고 신기했어요. 차마 말은 개인적으로 걸지 못했는데, 또 한양대 선배라서 정말 잘 챙겨주세요. 커리는 제가 고등학교 때 3점슛을 라인 두, 세발 뒤에서 던지는 연습을 많이 했던지라 자연스럽게 더 따라했던 것 같아요.

J. 그럼 프로 얘기를 잠깐 먼저 해보죠. 프로에 가는 상상도 많이 했겠네요.
당연하죠. 가끔씩 자기 전에 생각을 해보곤 해요. 자려고 누워서 눈을 감고 상상하죠. 어떤 구단이든 상관없으니 ‘1라운드 1순위로 한양대학교 벌드수흐’라고 불리는 그림을 그려봐요. 그러면서 부모님은 물론이고 구단 관계자 분들, 감독님에게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지 대사도 한 번씩 연습해보고요(웃음). 1순위에 대한 자신감은 언제나 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정말 미래에 1순위로 프로에 지명이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J. 국가대표를 상상하면 어때요?
일단 국가대표를 꿈꾸면서 가장 선망했던 무대는 올림픽이었어요.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자리인데 제가 그 자리에 꼭 있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죠. 그래서 한국 국가대표팀 경기도 거의 다 챙겨봤었어요. 당연히 제가 그 곳에 있는 상상도 해봤고요.

J. 혹시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있나요?
인천 아시안게임때 한국이 몽골이랑 붙었을 때요. 어디를 응원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하하. 그때 몽골이 전력 열세에도 생각보다 정말 잘해서 3쿼터까지 이기고 있었거든요. 그런대 4쿼터에 문태종 선수가 3점슛 세 방을 터뜨리면서 승부가 뒤집어졌죠. 또, 한국이 이란이랑 결승에서 맞붙어서 이기고 금메달을 땄을 때는 소름이 돋기도 했어요. 그때가 고등학생이었는데 연습 경기를 하고 다같이 TV로 밥을 먹으면서 봤는데 아직도 너무 생생해요.

J. 그러면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르는 날도 한번 상상해보죠.
일단 경기장에 도착하면 한 바퀴를 쭉 둘러보면서 ‘진짜 멋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할 것 같아요. 소름이 엄청 돋지 않을까요. 정말 국가대표가 돼서 ‘KOREA’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게 된다면 제 첫 공격은 무조건 3점슛일 거예요. 경기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아마 3점슛이지 않을까요? 하하.

J. 국가대표가 될 정도면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을 텐데, 원하는 애칭이 있나요?
예전에는 슛이 많이 들어간다고 ‘공격의 핵’이라고 불러주시기도 했었는데…. 폭발적인 슛이 강점이라는 게 들어났으면 좋겠어서 람보나 스나이퍼가 좋을 것 같아요. 아, 람보는 문경은 감독님이 가지고 계시니까, 저는 스나이퍼로 하겠습니다!


J. 이제 다시 한양대 농구 선수로 돌아가서, 올해 목표가 있다면요.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격 조건이 된다면 대학리그 신인상도 받고 싶어요. 3점슛 상은 가장 받고 싶은 개인상이고요. 듣고 싶은 평가가 있다면 ‘슛은 아무도 못 따라 간다.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노력할거에요.

J.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농구 인생에 고마운 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저를 지금까지 가르쳐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특히 팔룡중 때 박기동 코치님은 지금까지도 연락을 자주 해주시고, 귀화에도 많은 신경을 써주셨어요. 마산고 때 이영준 코치님도 그렇고요.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거든요. 지금 정재훈 감독님도 늘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려 하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많은 힘을 받고 있습니다. 어머니한테도 한 마디 하고 싶어요. 어머님이 아직도 하루에 한 번씩 연락하시면서 ‘몸은 어떠냐. 잘 하고 있냐’라며 챙겨주세요. 초등학교 때부터 제 뒷바라지를 하면서 정말 고생 많으셨거든요. 다른 가족들도 그렇고 저를 챙겨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요.

프로필 |
1998년 6월 9일생, 189cm, 포워드, 사화초-팔룡중-마산고-한양대 체육학과 2학년

# 사진_ 홍기웅 기자, 점프볼 DB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용호 김용호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