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민준구 기자] 시원한 바람이 불던 6월 21일 저녁, 2명의 거구가 서울 가락동에 등장했다. 2m에 가까운 키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이들은 KBL 2호 형제 선수(1호는 조상현·조동현 형제)였던 이흥섭 원주 DB 사무차장과 이규섭 서울 삼성 코치였다. 카페에 앉자마자 과거를 회상하며 지난 추억에 젖었던 두 형제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예전이 더 재밌었어요”라고 입을 모았다. 농구의 전성기 시절, 코트를 누볐던 두 형제는 옛 추억을 잊지 못한 채,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 우리가 형제인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너무 식상하지 않아요? 젊고 잘하는 애들도 많은데….” ‘형제’ 컨셉트로 두 형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던 기자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KBL 2호 형제 선수에 빛나는 이흥섭 사무차장과 이규섭 코치에 대한 멋진 스토리를 쓸 기대감에 넘쳤지만, 시작부터 강력한 태클이 들어온 것이다. 사실 최근에 농구를 보기 시작한 이들은 이흥섭 차장과 이규섭 코치가 형제라는 걸 모를 수 있다. 크게 이슈화 된 적이 없고, 두 형제 모두 선수의 삶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기에 조명 받는 걸 꺼려했다.
이흥섭 차장은 “(이)규섭이와 제가 형제인 걸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한 번은 구단 직원이 ‘차장님은 이규섭 코치랑 친하세요?’라고 묻는 거예요. 어안이 벙벙했죠(웃음). 우리가 형제라는 사실을 알려주니, 그 때서야 ‘정말 닮았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형제 선수라고 알려졌지만,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하고 새 삶을 살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해요”라고 말했다. 이규섭 코치 역시 “다른 형제들 많잖아요. 이동준-이승준이면 그림도 좋을 것 같은데(웃음). 또 젊고 유망한 형제 선수들이 많으니까 우리보다는 더 낫지 않겠어요?”라고 몸을 사렸다.
사실 이흥섭 차장과 이규섭 코치는 같은 코트에서 뛰어본 기억이 많지 않다. 농구를 시작한 시기는 같지만, 5살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 팀은 물론, 한 코트에서 정식 경기를 치러보지 않았다. 연습경기 때 만나는 것 이외에는 같이 뛸 일이 없었다. 프로에서도 마찬가지 이흥섭 차장은 1999-2000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이규섭 코치는 2000-2001시즌에 데뷔하면서 농구 인생에서의 교점이 없다. 많은 고민을 하던 중,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에 대해 찾아냈다. 바로 농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농구대잔치’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 그 때는 농구가 최고였죠
농구대잔치 시절을 이야기하면 끝이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최고의 인기를 구사했고 그만큼 농구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한양대 재학 시절, 2m의 큰 키를 자랑하며 대학선발에도 뽑혔던 이흥섭 차장은 “그 때는 엄청났죠.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김병철 등 엄청난 선수들이 많았어요. 우리 때문에 프로가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우)지원이는 압구정동에 잠깐 서 있으면 모델 같은 여자들이 수십 명씩 사인해달라고 왔었어요. 정말 대단했죠”라고 회상했다. 또 체육관 분위기 역시 지금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이번 챔피언결정전 때 분위기 좋았잖아요. 팬들도 많이 오시고 축제처럼 분위기도 조성했고, 농구대잔치 때는 예선부터 결승까지 매 경기가 그랬어요. 팀 색깔에 맞춰 막대풍선으로 응원했고 고등학생, 대학생 팬들은 이상민, 전희철, 우지원 등 스타 선수들한테 열광했죠. 선물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몰라요.” 이흥섭 차장의 말이다.
고교 시절, 초특급 선수로 불리며 고려대에 진학한 이규섭 코치도 “1996년에 H.O.T가 농구경기 하프타임 공연을 왔어요. 그래도 그 분들이 ‘캔디’로 엄청 유명했을 때잖아요. 그만큼 농구의 위상이 대단 했죠”라며 “그 때는 청소년대표팀도 유럽 전지훈련을 한 달씩 보내줬어요. 1995년에 아시아청소년대회를 우승하고 이탈리아 전지훈련을 갔어요. 또 4개국 초청대회까지 한 다음에 돌아왔죠.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라고 말했다.
사실 농구대잔치에 대한 이야기는 식상할 수도 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조명됐고 특별함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농구대잔치는 아직까지 농구 팬들의 입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흥섭 차장은 “3~40대 농구 팬들이 아직까지 농구대잔치를 추억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요.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에 그 때를 그리워하는 거예요. 물론, 농구대잔치 세대를 뛰어 넘지 못해 농구가 정체됐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재밌었고 좋은 선수들이 많은 시절이었어요”라고 추억했다. 이규섭 코치는 “농구대잔치가 인기였을 때, 「슬램덩크」도 나왔고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도 제작됐잖아요. 시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이상의 효과를 낸 거죠”라며 “그 드라마 1, 2화에 제가 나오기도 해요(웃음). 잘 살펴보시면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웃었다.

▲ 같은 시기에 농구공을 잡은 두 형제
이규섭 코치는 동산초 5학년 때 농구공을 처음 잡았다. 이흥섭 차장이 대경상고에서 선수의 길을 걸었던 때와 같은 시기다. 이규섭 코치는 “형을 따라서 농구하는 걸 보러간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지만, 제 평생 직업이 될 줄은 몰랐죠(웃음). 형이 대학선발 팀에 들면서 흥미가 생겼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는 것에 기뻤고 저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일찍 농구를 시작한 이규섭 코치에 비해 이흥섭 차장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첫 발을 디뎠다. “아버지가 운동을 좋아하셨어요. 테니스를 잘 치셨는데 주말에는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셨죠. 그에 비해, 전 키는 컸지만 몸이 너무 말랐어요. 체중이 70kg대였으니까 엄청 왜소했던 편이죠. 부모님이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시작한 농구가 직업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그때만 해도 농구를 전문적으로 할 줄은 몰랐어요.”
늦은 시작이었지만, 이흥섭 차장은 한 때 고교랭킹 5위에 들 정도로 좋은 실력을 뽐냈다. 서장훈, 전희철, 현주엽과 함께 대학선발팀에 차출되기도 했다. “재능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키가 남들보다 컸기 때문에 농구를 할 수 있었거든요. 프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결국 얼마 있지 못하고 떠나야 했죠.” 이흥섭 차장의 말이다.
이에 반해, 이규섭 코치는 고교 랭킹 1위는 물론, 졸업 시기에 모든 대학 팀이 손을 내밀었던 최고의 선수였다. 결과적으론 고려대에 진학했지만, 이 과정에서 이흥섭 차장이 피해를 본 일도 있었다. “규섭이를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많은 대학 팀들이 뛰어들었어요. 한양대 역시 그 중 하나였는데 형인 제가 있으니 가능할 거라 봤던 거죠. 생각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잠시 팀을 떠났던 일이 있어요. 옛날이야기니까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두 형제는 정식경기에서 만난 적은 없지만, 연습경기 때 종종 맞상대가 되곤 했다. 형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감독, 코치들은 의도적으로 이흥섭 차장과 이규섭 코치를 매치업으로 붙였다. 형제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서로 앞서기 위해 경쟁심도 컸을 터. 이흥섭 차장과 이규섭 코치는 코트에서 만큼은 형, 동생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선수 대 선수로 맞붙었다. “형과 많은 경기를 해보지 않았지만, 같이 코트에 섰을 때는 상대 선수 이상으로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의식하고 싶지도 않았고 제 플레이를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냥 열심히 뛰었던 것 같아요.” 이규섭 코치의 말이다. 이흥섭 차장 역시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코트에선 규섭이가 동생이 아닌 제가 막아야 할 선수잖아요. 그 부분에 집중했을 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어요”라고 동감했다.
▲ 형! 우리 때문에 우승한 줄 알아
2017-2018시즌 DB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흥섭 차장 역시 기쁨을 만끽하던 도중, 이규섭 코치의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형, 축하해! 밥 한 번 사”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메시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이흥섭 차장은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이규섭 코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 3월 11일, DB는 원주종합체육관에서 SK를 맞이했다. 승리하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 체육관은 이미 잔치 분위기였다. 그러나 DB는 시종일관 밀리며 SK에 69-79로 패했다. 선수들은 아쉬움에 고개를 떨궜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같은 날,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CC와 삼성의 경기 결과에 따라 우승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KCC가 패하면 DB의 우승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그 순간, 삼성은 88-83으로 KCC를 꺾고 DB의 우승을 도왔다(?). 이규섭 코치는 이런 이유로 경기 후, 메시지를 보냈고 이흥섭 차장 역시 뒤늦게 이해했던 것이다. 이흥섭 차장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죠(웃음). 그냥 시즌이 다 끝나가니 밥 한 번 먹자는 이야기인줄 알았어요. 근데 삼성이 KCC를 꺾으면서 우리의 우승이 가능했다는 걸 나중에 이해하게 됐어요. 곧바로 답장을 보냈고 고맙다고 전했죠”라고 말했다. 이규섭 코치는 “우리 아니었으면 (DB가)우승 못했을 수도 있어요(웃음). 대단한 시즌을 보낸 형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죠. 워낙 무뚝뚝해서 축하한다는 말보다 우리 때문에 우승했으니 밥 사라는 말이 더 편했어요”라며 웃었다.
당시 원주종합체육관은 경기가 끝났음에도 많은 팬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MBC 스포츠플러스가 KCC와 삼성의 경기를 중계하며 결과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사실 이흥섭 차장은 그 때 당시, 많은 고충이 있었다고 전했다. “우리가 승리해서 우승을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SK에 완패했고 분위기가 좋지 않아 바로 끝내려 했거든요. 근데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KCC와 삼성의 경기를 지켜보자고 했고 (이상범) 감독님에게 동의를 구했어요. 예전 감독님들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웃음). 이상범 감독님이 허락하면서 결과를 지켜봤고 극적인 정규리그 우승의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 팀은 다르지만, 형제애는 영원하다
한때, KBL을 대표하는 형제 선수로 이름을 날린 두 형제는 어느덧 은퇴 후의 인생을 살고 있다. 서로 다른 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형제애는 대단했다.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매해 가족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쌓고 있었다. “1년 내내 바쁜 직업이기 때문에 자주 볼 수는 없어요. 연락은 많이 하지만…. 그래도 매해 한 번은 가족여행을 다녀오려고 해요. 올해는 여행보다 가족 전체가 모여서 밥을 한 번 먹었어요. 특별한 한 해였던 만큼, 럭셔리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겼죠.” 이흥섭 차장의 말이다.
3형제 중 막내인 이규섭 코치는 이흥섭 차장의 패션을 책임지고 있다. 옷에 관심이 많아 여러 벌을 한꺼번에 구입한 뒤, 형에게 나눠주고 있다. 이규섭 코치는 “패션에 항상 신경을 쓰려 해요. 옷에 관심이 많기도 해서 해외 출장을 나가면 엄청나게 사오거든요. 형이 옷에 관심이 없어서 매번 같은 것만 입고 다녀요. 저 없으면 형이 어디서 옷을 사 입을까 싶기도 해요(웃음)”라고 이야기했다. 이흥섭 차장도 웃으며 “아내가 사주는 게 아니면 규섭이가 주는 옷을 입어요. 오늘 입은 것도 규섭이가 전부 다 준거에요. 서로 체격이 비슷하다 보니 옷 사이즈도 맞더라고요.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어 좋아요”라고 고마워했다.
각자의 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두 형제는 부모님의 자랑이기도 하다. 이규섭 코치는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농구선수로서 성공한다는 게 쉽지 않은 길이니까요. 그러나 둘 다 프로무대를 뛰었고 은퇴 후에도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좋은 아들이 될 수 있어 행복해요”라고 전했다. 이흥섭 차장도 “부모님 이야기는 사실 잘 안 하려고 해요. 프로선수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지금도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일 뿐이죠. 그래도 엇나가지 않고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덕담을 전해달라는 질문에 쑥스러워 한 두 형제는 “그런 걸 여기서 어떻게 이야기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르고 달래 겨우 입을 연 이흥섭 차장은 “규섭이도 이제 42살이네요. 얼굴만 보면 아직도 30대 같아요. 이제 나이가 나이인 만큼, 몸 관리도 잘하고 애들도 잘 컸으면 좋겠어요”라고 짧은 덕담을 남겼다. 이에 화답한 이규섭 코치는 “형은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서 걱정이 없어요. 술, 담배도 안하기 때문에 오래 살 거예요. 지금처럼 계속 변함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직업상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잘 이겨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무려 2시간에 가까운 인터뷰 시간 동안 옛 이야기에 흠뻑 취했던 두 형제는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밥이나 먹고 가자”며 자리를 떠났다. 이규섭 코치는 “형 기사 잘 써주세요. 어머니가 좋아하시거든요”라며 마지막까지 형을 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이흥섭 차장은 “규섭이가 말을 잘 안 해서 쓰기 어렵겠네요.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다른 형제애를 보여준 이흥섭 차장과 이규섭 코치였다.
▲ 이흥섭·이규섭 형제는?
1972년생, 198cm의 이흥섭 차장은 대경상고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다. 고교 시절, 전희철 코치, 김병철 코치와 우지원 등에 이어 랭킹 5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양대 진학 후, 추승균 감독과 함께 대학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97년 KBL 출범 이후 전희철, 김병철과 함께 동양(현 오리온)에 입단했지만, 프로무대에선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원주 삼보(현 DB)로 이적해 1999-2000시즌까지 뛴 이흥섭 차장은 최형길 단장(KCC)에 의해 구단 직원의 길을 걷게 됐다. 현재는 DB의 사무차장으로 2017-2018시즌 정규리그 우승 및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1977년생 이규섭 코치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슈터 출신이다. 본래 센터였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포지션 전향에 성공한다. 고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2000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삼성에 입단했고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원 클럽 맨’으로 11시즌을 뛰었고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물론, 국가대표에서도 주전 슈터로 맹활약했다. 현역 시절 통합우승 1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2회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이규섭 코치는 미국 프로농구(NBA) 및 산하리그(G리그)로 코치 연수를 다녀온 후, 2014-2015시즌부터 삼성의 코치로 활약 중이다.
▲ 아름다웠던 두 형제의 비하인드 스토리
때는 바야흐로 2004년, 두 형제에게 나란히 위기가 닥쳤다. 먼저, 이흥섭 차장은 당시 TG삼보의 프런트 직원이었지만,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매각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2005년, 다행히 동부화재가 인수하면서 2005-2006시즌부터 무리 없이 시즌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동생이었던 이규섭 코치는 형이 걱정됐고 만나는 기자들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다. 이규섭 코치는 “선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사는 형이 어려움에 빠졌기 때문에 많이 걱정했어요. 다행히 인수기업이 나타나 실업자는 모면한 것 같아요(웃음)”라고 말했다. 이흥섭 차장은 자신의 처지도 문제지만,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힘들어 할 동생이 걱정이었다. 당시 이규섭 코치는 상무에서 갓 제대한 상황이었고 삼성에는 서장훈이라는 거대한 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흥섭 차장은 “저도 문제였지만, 규섭이가 더 걱정이었어요. 서장훈은 대학농구에서 같이 뛰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선수였고 규섭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어요. 같이 잘 뛰었기 때문에 다행이지만, 그때는 규섭이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이규섭 코치는 “사실 전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서)장훈이 형이랑 포지션이 같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형이 절 생각해줬다는 게 기분 좋네요(웃음)”라며 웃었다. 각자 다른 인생, 다른 위치에 있었음에도 두 형제는 서로를 챙겼다. 무뚝뚝한 말투 속에 숨겨진 형제애는 감동 그 자체였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사진_점프볼 DB(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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