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점프볼 2017년 1월호 ‘그들에게 역변이란 없었다, 스타들의 그 모습’ 코너를 기억하는가.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미남선수가 있어 언젠가 이 코너에 꼭 소개해야겠다고 찜해놓은 선수가 있었다. 성남중 꿈나무에서 ‘덩크왕’으로 성장한 창원 LG 김종규(27, 206cm)다. “아들 앨범이에요”하고 김종규의 어머니인 조은자 씨가 공개한 앨범 세 권에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가 자라온 과정 그대로가 담겨 있었다. 비주얼이 최고다. 기대해도 좋다, 지금보다 더 귀엽고 깜찍하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키 크고 승부욕이 남달랐던 아이
김종규는 또래보다 신장이 큰 덕분에 농구공을 잡게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휘경동에서 분당으로 전학을 갔는데 마침 성남초 우정한 코치(현 인천 안남중 코치) 눈에 띄면서 제의를 받았다. “키가 크다 보니 종규에게 운동할 생각 없냐고 물었나보더라고요. 남자아이다 보니 취미 생활로 시켜 볼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재미있다고 해서 계속 시키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학원도 많이 다녔다. 태권도, 피아노 학원에 미술학원까지 다녔지만, 그다지 소질은 없었다고. 조은자 씨는 “운동도 재능이 있었다기보다 못해도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이 강했죠. 초등학교 때 달리기를 하면 1등 도장을 찍어주는데 그걸 지워지기 전에 제게 보여주겠다고 가방도 버려두고 달려오곤 했어요. 그런 욕심은 있더라고요. 달리기도 2등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재능보다는 본인이 열심히 했던 것이 큰 것 같아요.” 김종규는 성남중을 거쳐 낙생고로 진학한다. 그가 선수로서 두각을 드러낸 건 이때부터. 키가 훌쩍 자라면서 주연이 됐고, 그때부터 특급 유망주로 시선을 끌었다.
“고1때 인터뷰를 한 번 했는데, 프로선수로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농구를 보면 너무 잘 하는 선수들이 많았거든요. ‘우리 종규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경희대로 진학한 이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도 충실히 한 덕분에 입학하자마자 주전을 꿰찼다. “대학교 대는 주전으로 뛰다 보니 경기 보는 것이 재밌었어요. 이기는 경기만 했었죠. 경기장도 거의 매일 따라다니곤 했죠. 그런데 프로 농구는 중계를 해주다보니 경기장을 덜 찾게 되더라고요. 신인 때는 창원에 자주 갔었는데, 지금은 보고 싶으면 수도권에서 할 때 가끔 보고 오고 그래요.”
개구리 보양식
선수들 대부분이 몸에 좋다는 특이한 보양식을 먹어본 경험이 있다. ‘어떤 걸 먹으면 키가 더 큰다더라’, ‘이걸 먹으면 힘이 더 좋아지더라’는 풍문에 몸에 좋은 보양식을 찾아 동분서주한 부모님들이 꽤 있다. 김종규와 조은자 씨에게는 ‘개구리’가 그랬다.
“중학교 때였어요. 시골에서 좋다는 건 다 먹였던 것 같아요. 한 번은 개구리를 달여 준적이 있어요. 알이 통통한 개구리를 구해 저녁에 오면 주려고 솥에 끓였는데 뽀~얗게 우려진 물이 나오더라고요. 얼마나 몸에 좋았겠어요. 종규가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 오면서 ‘이게 무슨 냄새야’하면서 솥뚜껑을 열어 본 거죠. 솥에서 배를 다 까고 누워있는 개구리를 보고 기절하더라고요. ‘네 약이야’했는데 한 그릇을 떠서 줬는데, 안 먹는다고 난리였어요. 결국 못 먹는데, 며칠 있다 또 줬는데 안 먹더라고요. 그 정도로 신경을 썼어요. 운동하다 보니 그런 부분에 더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입도 짧았다고 한다. 아무거나 잘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그래서 어머니는 더 안쓰러웠다. ‘센터는 키가 커야 한다는데’라 생각하며 몸에 좋은 음식은 항상 챙겼다. 그래서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김종규는 본인 배를 가르면 약뿐이겠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약을 정말 많이 챙겼어요. 종규가 안 먹으려고 해서 그렇지….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어렸을 때 식성도 까다로웠어요. 그나마 운동이라도 했으니 몸 관리가 되지, 아니면 핼쑥해졌을걸요(웃음)?”
자정에 걸려온 아들의 전화
어릴 적부터 김종규는 부모님 말씀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는 착한 아이였다. 결혼 7년 만에 김종규를 얻었고, 늦둥이였던 만큼 애지중지 키웠다. 힘든 운동선수로서의 길을 걷는다고 했을 땐 흔쾌히 승낙했지만, 힘든 훈련에도 불구하고 내색 한 번 하지 않던 아들이 기특하기만 했다. 2살 어린 김종규의 동생, 김지현 씨는 더 어른스러웠다. 운동선수를 꿈꾸는 오빠 동생으로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덜 받는다고 느낄 법도 했지만, 늘 오빠를 이해하며 잘 자라줬다.
조은자 씨는 농구선수 김종규를 뒷바라지하며 힘들었을 때가 한 번 있었다며 경희대 시절을 회상했다. 자정에 걸려온 아들의 전화 때문이었다. “종규가 울면서 전화 왔는데, 그런 전화를 처음 받았어요. 아파도, 힘들어도 내색 하지 않던 아들이었는데, ‘농구를 그만두면 안 되냐’는 말을 하더라고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운동 말고 다른 거로 보답할게’라면서 울더라고요. ‘일단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자, 내일 전화하자’고 말했죠.”
그렇다면 어머니는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했을까. “다음 날 ‘운동 접어, 하기 싫으면 집에 와서 다른 거 해’라고 문자를 보냈어요. 며칠 있으니 죄송하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날 밤 김종규의 어머니도 밤을 꼴딱 새우며 아들 걱정을 했다고 한다. 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미어졌을까.
좋은 선수 김종규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자니 몇 년 전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김종규를 향해 했던 칭찬의 말이 떠올랐다. 2014-2015시즌 모비스-LG의 4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유 감독은 ‘어떤 지도자가 지도해도 다 쫓아 와 줄 수 있는 좋은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김종규가 그 대표적인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럴 만도 했다. 김종규는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왔다. 대학을 다니다가 대표팀에 가기도 했고, 프로에 입단해서는 프로팀에 있다가 대표팀에 차출되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감독의 지도 방식도 계속 달라져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 계속 찾아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도자의 가르침만큼은 절대 흘려듣는 법이 없었다. “잘하는 걸 떠나서 각기 다른 지도 방식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좋다. 엄청 노력한다.” 당시 유재학 감독의 평가다.
유 감독과 김종규가 처음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건 그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면서부터였다. ‘포스트 김주성’으로 불리며 유망주로 주목받아 대표팀과 함께 훈련했지만, 쟁쟁한 선배들에게 밀려 최종 엔트리에서 낙방했다. 이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김종규는 2011년 FIBA-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 최종으로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조은자 씨는 “당시는 유 감독님이 보고 배우라는 뜻으로 대표팀에 데려간 것 같았는데, 종규가 어리다 보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대표팀에 발탁됐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뭉클했어요. 종규가 노력을 많이 했구나 생각했죠. 국가대표로 뽑히고, 이후 대회에도 출전해서 경력을 쌓아갔죠”라고 말하며 아들을 기특해했다.
그 배경에는 성실함이 밑바탕 되었다. “아빠가 새벽에 운동 가자고 깨우기 전에 먼저 운동 나가려고 준비하고 했어요. 억척스러운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 조은자 씨는 “지금도 시간만 나면 동네 한 바퀴 돌고 오자고 해요. 주말에 집에 오면 피곤할 법 한데, 아침에 잠깐 운동하고 오고 그래요”라며 아들의 성실함을 높이 샀다. 지금의 김종규는 남몰래 흘린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말이다.
BONUS ONE SHOT│남다른 패션 센스는 어렸을 적부터
앨범을 넘기는 동안 김종규의 패션 센스가 필자의 시선을 강탈했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가 않았다. 일명 ‘깔맞춤’도 환상적이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종규 아버지가 돈을 잘 벌 시기였다”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아역 배우 뺨쳤던 패션 센스!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 몇 장 더 챙겨왔다
BONUS ONE SHOT2 │ 서로에게 전하는 메시지
어머니가 아들에게_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씩 다 간다는 ‘소풍’도 한 번 안 다녀온 아들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예쁨을 많이 받았어요. 손을 많이 탔었죠. 보조개가 쏙 들어갔는데, 그래서 그런지 친정어머니가 나중에 종규랑 떨어져서 살겠다는 말을 종종하셨어요. 운동선수를 할 관상이었나 봐요. 어렸을 때부터 숙소 생활을 해왔으니 말이에요. 요즘에는 집에 들어오는 길이면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물어봐요. 자기한테 다 말하라고요. 아빠 닮아서 참 자상해요, 종규가…. 이제는 뒷바라지 잘 해주는 예쁜 여자 친구 만나서 장가보낼 일만 남았네요(웃음).
아들이 어머니에게_잘 낳아주시고, 예쁘게 키워주셔서 프로 선수가 됐어요. 너무 감사드리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할게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 사진_김종규 부모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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