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편집부] ‘처음’이 있었기에 지금도 있다. 처음, 좋은 인상과 좋은 인연이 있었기에 지금도 있다. ‘농구’라는 두 글자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그들도 있다. 아마도 점프볼 독자들이라면 이들 중 누군가의 사연을 보며 ‘아! 나도 그랬는데!’라고 공감할지 모른다. 창간 17주년을 맞은 점프볼은 그들의 첫 만남을 추억해보았다. 모든 독자들과 모든 팬들이 농구를 처음 접했을 때 그 마음이 변치 않고, 잊지 않길 바라는 생각에서 마련한 페이지다. 물론, 점프볼도 초심을 잃지 않고 달릴 것을 약속드린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문상운 (안양 KGC인삼공사 과장)
농구 선수였던 어머니
어머니가 고등학교 때까지 농구를 하셨다. 어머니께 농구를 배웠다. 8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농구대잔치에 열광하고 이충희, 김현준 등에 환호했던 추억이 있다. 농구계에 첫발을 디딘 건 1997년 동양 오리온의 통역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서 갖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 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다 보니 부담감,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다. 현장에 있으면 농구를 즐기면서 보지 못한다. 경기만을 몰입해서 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농구가 곤욕이 됐다(하하).
강이슬 (부천 KEB하나은행 선수)
2점슛 성공률 50%, 농구가 너무 재밌었다
처음엔 농구 어떻게 하는지도, 농구부가 있는지도 몰랐다. 키가 커서 테스트 제안을 받았다. 슛 던지고, 달리기도 하고 했었는데, 처음 슛 5개를 던졌었는데 2~3개가 들어갔다. 너무 신기했고, 재밌었다. 아버지가 야구 선수를 하셔서 ‘운동선수만은 안 된다’라고 반대하셨는데, 계속 부모님을 설득해서 결국 하게 됐다. 당시 일주일 만에 전학을 갔었다. 날짜도 기억한다. 2005년 4월 4일에 농구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재밌었는데, 제대로 배우면서 너무나 힘들었다. 농구는 하는 것만 좋아하고, 잘 보진 않았었는데 (김)정은 언니의 경기 모습이 기억난다. 정은 언니가 신인이었던 시즌으로 기억한다. 우리은행과 신세계의 경기였는데, 정은 언니가 코너에서 슛 훼이크를 쓰더니 드라이브인을 해서 중거리슛을 던지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같은 팀에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유현준 (한양대 농구부)
급식비 면제로 시작하게 된 농구
초등학교 4학년 때 반 대항 농구를 했다. 농구부 감독님이 나를 보고 빵과 우유를 주며 농구부에 오라고해서 가게 됐다. 또 그 당시 농구부 선수에게는 급식비를 안 걷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급식비라도 면제받기 위해서 농구부에 들어갔다. 그때는 멋모르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직업이다. 농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지금이 더 큰 것 같다.
전상용(동호회팀 비온탑 선수)
실력 인정받아 보람 느껴
어릴 때 길거리농구가 유행이었다. 저녁 때 아파트 앞 흙바닥에서 형하고 같이 농구를 하곤 했다. 그러면서 농구에 재미가 붙었다. 농구화도 좋아했다. 프로스펙스 헬리우스, 아디다스 액신 같은 농구화가 생각난다. 좋은 농구화가 있으면 신어보고 싶은 욕심도 많았다. 어릴 때부터 키가 컸다. ‘근처에 농구부가 있는 학교가 있었으면 선수생활을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든다. 아쉽게도 근처에 농구부가 없었다. 보는 건 NBA를 즐겨 본다. 파워풀한 센터들을 좋아하는데, 샤킬 오닐을 좋아하고, 요즘엔 디안드레 조던(LA클리퍼스)이 그렇게 멋있다. 플레이는 단순하지만 화끈하다. 특별히 농구를 배운 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유행하는 스킬트레이닝에 관심이 간다. 동호회농구에서 선수 출신들하고도 많이 해보는데, 기술 좋은 선수들을 상대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농구도 바둑이랑 비슷한 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선수 중에선 함지훈이 멋있는 것 같다. 나와 체격도 비슷한데, 동경의 대상이다. 최근 비온탑으로 3대3대회에서 우승도 많이 하고 세계대회도 나가봤다. 우리 실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보람을 많이 느낀다. 최근 선수 출신들이 많이 나오면서 버거울 때도 있다. 방덕원 같은 선수랑 할 땐 힘들더라. 진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아니면 누가 막나’라는 생각으로 하니까 재밌다. 세계대회에서 말도 안 되는 선수들이랑 해보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자신감으로 쌓인 것 같다. 농구는 내 인생이다. 모든 삶의 중심이 농구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이 들기 전까지 농구를 즐기고 싶다.
강성철(KBS N 아나운서)
농구로 인생이 바뀌었다
우리 때는 농구대잔치, 「마지막 승부」, 「슬램덩크」가 연달아 나오면서 농구 인기가 대단했다. 다슬이가 너무 예뻐서 촬영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나중에 농구를 잘 하면 다슬이 같은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가졌던 적이 있다. 내 우상은 이상민 감독이었다. 예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오셨는데, 경기장에서 만났다. 감독님을 안으면서 “형 때문에 스포츠캐스터가 됐다”고 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좋아했다. 어릴 때 체육을 잘 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 진지하게 농구가 하고 싶다고, 송도고로 전학을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다. 근데 너무 늦었다고 하시더라. 농구를 하려면 유급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마음을 접었다. 체육교육과를 준비하려 했는데, 연세대 시험만 보려고 했다. 이상민을 좋아해서 무조건 연세대만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연세대는 떨어지고 중앙대에 붙었다. 중앙대도 농구 명문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농구를 즐길 수 있었다. 대학 가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미디어에 관심이 생겨 스포츠아나운서를 목표로 하게 됐다. 농구선수의 꿈을 이루진 못 했지만,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이상민 선수의 플레이를 중계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처음으로 한 농구중계가 2010년 대학리그 결승전이었다. 당시 모교인 중앙대가 우승을 했는데, 오세근, 김선형에게 내 명함을 주기도 했다. 지금도 농구하는 걸 즐긴다. 농구 하다가 코뼈도 부러지고, 머리를 2번이나 꿰매기도 했다. 그래도 하게 되더라. 지금은 WKBL 직원들과 농구를 즐긴다. 포지션은 포인트가드다. 내 키가 178cm인데, 아직도 링이 닿는다. 농구하는 스타일도 이상민 형처럼 하려고 한다. 농구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정용검 (MBC스포츠+아나운서)
중계 하면서 더 농구에 빠져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TV를 통해 농구를 즐겨 봤다. 그 때 좋아했던 팀은 연세대인데, 좋아하는 선수는 고려대의 전희철, 현주엽이었다. 연세대가 실업팀들을 이기는 걸 보면서 농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자연스레 고려대 선수들에게도 관심이 갔다. 전희철, 현주엽 선수는 열심히 뛰었고, 남자다운 느낌이 있어 좋았다. 또 당시 만화 「슬램덩크」도 재밌게 봤었다. 친구들끼리 농구를 하면 “내가 송태섭”이라고 하면서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패스를 할 때 고개를 돌리면서 하는 버릇이 있다. 하하. 농구를 업으로 삼게 돼서 정말 기쁘다. 농구경기 중계를 할 때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해설위원님들로부터 농구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 지금은 신영 E&C라는 팀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우리 팀은 프로팀 못지않게 지원이 좋다. 해외로 전지훈련을 가기도 한다. 농구가 너무 좋아져서 직접 하는 것도 즐기게 됐다. 매주 화요일마다 농구를 하는데, 화요일이 가장 즐겁다. 현주엽, 김일두 위원으로부터 농구에 대해 많이 배우는데, 몸은 잘 안 따라주는 것 같다(웃음).
이수진 (KBL 사원)
아버지 손에 끌려간 경기장
바야흐로 2003년이었다. 내가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이사 가서 친구도 없이 지내고 있는데 아빠가 심심해하던 나를 데리고 농구장에 데려가셨다. 참고로 2003년의 전주 KCC엔 ‘이조추’ 트리오와 찰스 민렌드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그렇게 시끄러우면서도 재밌는 건 처음 봤다. 그때부터 농구를 엄청 열심히 보러 다녔다. 전주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나중에 서울로 상경하고 나서도 잠실 농구장에 엄청 자주 다녔다. 시간과 돈이 생기면 무조건 농구장에 갔으니까. 시간이 지나 내가 KBL에 들어가고 무슨 위원회 회의가 있어서 조성원 위원을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의 그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때보다 지금 농구를 더 좋아한다. 직접적으로 선수들과 만날 기회는 많지 않지만 다양한 경로로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니까. 그 선수에게만 있는 이야기 등을 알게 될 때마다 애정이 더 많이 생긴다. 또 이런 점들이 내 일(홍보)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 어떻게 하면 팬들이 농구에 애정을 느끼고 즐거운 경기관람을 할까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니까.
안희욱(스킬트레이너)
그때는 농구에 미쳤었다.
농구를 좋아하게 된 건 마이클 조던을 보면서부터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조던의 영상을 보고 농구를 알게 됐다. 문방구에서 농구공을 사서 열심히 농구를 했다. 조던을 많이 따라했다. 혀도 내밀고, 팔뚝에 아대를 차기도 했다. 처음엔 내가 너무 어리다고 형들이 안 끼어줬다. 그래서 혼자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형들을 제치려고 노력하다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었던 것 같다. 나중엔 형들이랑 하다 보니 또래들하고 하는 건 쉬웠던 것 같다. 우연히 흑인들의 AND1 믹스테이프를 보면서 HIPHOOP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땐 악바리처럼 했다. 하루에 몇 시간씩 농구를 했고, 잘 하는 사람이랑 농구를 하면, 이길 때까지 했다. 농구에 미쳤던 것 같다. 잘 때도 농구공을 안고 잤다. 그땐 나이키 3on3대회가 최고의 등용문이었다. 거기서 문경은, 이상민 감독님과 1대1을 한 영상이 알려지기도 했다. ‘도장깨기’ 식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농구를 했던 게 기억난다. 그 때는 플레이에 빠졌다면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빠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에이전트의 꿈도 있다. 자격증도 따고 에이전시도 만들고 싶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동기부여를 주는 일을 하고 싶다.
김형민 (울산 모비스 대리)
연고전, 고연전으로 내기 많이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봤다. 그때가 농구의 최고 전성기였다. 연세대와 고려대, 허동택이 이끄는 기아자동차 등…. 특히 기아자동차의 팬이었다. 강동희의 리딩과 센스에 감탄하고 허재의 돌파와 득점능력에 환호했다. 그러다 연세대가 갑자기 치고 올라오면서 이상민의 팬이 됐다. 당시 친구와 내기를 했다. 친구는 고려대 팬이었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라이벌이라 경기를 많이 했는데 사실 연세대가 더 많이 이겼다. 어릴 땐 과자나 음료수 내기를 했는데 내가 많이 이겨서 친구 것을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농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때는 팬으로서 농구를 본 거고 지금은 직업으로 농구를 대한다. 아쉬운 점은 예전 내가 농구를 좋아했을 때는 농구에 대한 인기나 열기가 최고조였다. 전국민의 관심사가 농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농구 열기가 많이 식은 것 같아 농구계에 몸담은 관계자로서 안타깝다. 농구 인기를 살리는데 내가 힘을 보탰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민교 (아주경제 기자)
나에게는 농구 유전자가 있다
나는 유전자에 농구가 있다(웃음). 아버지가 농구를 하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농구대잔치 경기를 체육관에서 많이 보면서 컸다. 그러다보니 선수들도 직접 많이 보며 농구를 가까이 하게 됐다. 그때는 농구대잔치 선수들이 우상이었다. 농구대잔치가 있는 날이면 지금의 잠실학생체육관 1층 복도에서 기아자동차의 허재, 김유택, 이충희 같은 선수들이 뛰어다니며 몸을 풀었다. 경기장에서 줄 사인공도 하나 들고 뛰었는데 어린 시절 옆에 있다가 몸 풀던 선수들이 사인공을 나에게 던져줬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 훨씬 더 농구를 좋아했다. 어렸을 땐 바로 집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로 두부를 사러 갈 때조차 농구공을 튀기며 갔다. 집안에서도 농구공으로 하도 레이업 슛 연습을 해 문지방 위가 하얗게 되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때는 농구에 미쳐있었다.
정지욱 (스포츠동아 기자)
누군가를 반하게 하는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가 중학교 때까지 농구를 하신 덕분에 나도 자연스레 농구를 접하게 됐다. 아시안게임도 관전하러 갔다. 처음에는 농구가 뭔지도 몰랐고,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정체성이 생길 때쯤 외갓집에 가서 친척들이 농구대잔치를 본다며 텔레비전 앞에 모인 적이 있었다. 당시 현대랑 기아의 경기였는데, 당시 허재 감독이 41득점을 기록했다. 너무 멋있어 보였고, 그때를 계기로 강동희, 김유택 등을 알게 되었다. 88년경 농구대잔치를 보기 시작했는데, 당시는 농구할 줄 모르면 거의 왕따 수준이었다. 한 반에 58명 정도 됐는데, 농구를 못하면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92년경 NBA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 SBS에서 매주 수요일 밤 12시에 NBA를 방송해줬다. 언제부턴가 농구가 하나의 유행이 되어 나도 좋아하게 되었고, 한때는 농구 선수를 꿈꿨었다. 나도 누군가를 반하게 하고 싶었던 선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키가 작아서 그 꿈은 접었다. 기자가 되어서 농구를 알리고 싶었다. 「정지욱의 용병 닷컴」도 그중 하나다.
박진호 (더 바스켓 편집장)
선수 이름 적어가며 외우던 시절
어렸을 적부터 공놀이를 좋아했다. 공부하라고 그러면 노트에 팀별 선수 이름적어서 외우곤 했다. 어머니에게 공부 안한다고도 혼나기도 했다. 여름에는 야구와 축구를 보고 겨울은 농구, 배구를 봤다. 야구를 먼저 좋아했지만, 기자 생활은 축구를 먼저 했다. 배구는 좋아하는 선수도 있고, 가끔 보긴 하지만 배구는 못한다. 수비를 할 성향이 아닐 뿐더러 스파이크를 시도하는 것이 힘들다. 어렸을 적부터 농구 보는 걸 좋아했다. 그때 당시에는 유소년 농구가 없었고, 농구공이 다른 공보다 무게가 있어서 그런지 우리 초등학교에는 사립 초등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농구 골대가 없었다. 가끔 공원이나 중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 농구 골대가 있으면 축구공으로 던지기도 했었다. 농구 골대가 힘들어서 탱탱공으로 집안 커튼 윗부분에 골인시키며 놀기도 했다. 남자 선수는 김현준 코치, 동방생명(現 삼성생명) 성정아, 채경희, 정은순의 팬이었다. 그래서 당시 유영주, 전주원, 정선민을 싫어했다. 기자를 하면서 팬 마음을 갖는 건 어렵다. 문경은 감독이 삼성에 있을 때와, 박정은이 삼성생명에 있을 때까지가 팬이었다. ‘이겼으면 좋겠다’라고 응원했었다. 만약 기자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경기장을 찾아 그 팀들을 응원했을 것 같다.
김민석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운명 같았던 그 경기
토요일 새벽에 AFKN에서 방영해주는 프로레슬링을 보는데 우연히 농구가 하더라. 새벽 4시쯤이었다. 한 경기, 두 경기 보다가 너무 재밌어서 빠져버렸다. 93년도니까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찰스 바클리와 마이클 조던이 파이널에서 맞붙던 시절이었다. 학창시절 에피소드가 있다면 휴스턴 로케츠가 6번 시드로 올라가서 우승한 적이 있다. 나는 휴스턴 팬이었다. 하킴 올라주원과 로버트 오리의 팬이었다. 그래서 친구와 휴스턴이 우승할 거라고 내기를 했는데 진짜 우승했다. 내기에 이겨서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 뜯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하. 시청하고 즐기기는 지금이 더 좋지만 예전이 더 환상적이었다. 과거엔 정보가 없었고 사진도 귀했다. 그래서 그런지 환상적인 ‘슈퍼히어로’ 같은 미지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유용우 (점프볼 사진팀장)
슬램덩크와 보낸 사춘기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을 틀면 농구대잔치가 방송됐고, 자연스레 접했던 것 같다. 한참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방송했고, 나 역시도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이었다. 초등학교 때 야구 붐이 조성됐다. 그러다 중학교 때부터는 친구들과 농구를 했는데, 당시는 「슬램덩크」가 붐이었다. 사춘기 시절 내내 연재됐다. 「슬램덩크」를 좋아해서 수업 끝나고 틈만 나면 농구공을 잡았다. 흙바닥에서 농구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농구를 했고, 점프력 테스트를 한다며 교탁에 올라가 점프를 뛰기도 했다. 농구를 좋아해 점프볼에 입사하고 싶었지만, 농구 시장이 작다 보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점프볼에 우연히 자리가 나서 입사하게 됐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좋다. 자부심도 있다. ‘어떻게 하면 선수들을 더 돋보이게 찍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며 사진을 찍는 것이 좋다. 예전에는 스포츠 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관중석에서 사진을 찍었던 적도 있었다. 코비 브라이언트가 내한했을 때도 그랬고, 화정체육관에서 손대범 편집장을 찍었던 적도 있다.
BONUS ONE SHOT | 점프볼 기자들이 농구를 처음 만났을 때
곽현(점프볼 기자)
농구로 직업을 선택하다
어릴 때부터 밖에서 뛰어 노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를 더 좋아했다. 아침에 나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뛰어 놀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농구붐이 불었다. 길거리농구가 유행하면서 중·고등학교 형들이 농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농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마침 농구대잔치 인기가 대단했고, 농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멋이 좋았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거의 농구하러 갔다. 쉬는 시간, 체육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에도 늘 농구를 했다. 수업시간에도 온통 농구생각 뿐이었다. 선생님 말씀은 안 듣고 창밖으로 아이들이 농구하는 걸 지켜보곤 했다. 중학교 때 농구선수로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 정도 실력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농구 보는 것도 좋아했다. 농구대잔치부터 프로농구, NBA까지 중계는 꼬박꼬박 챙겨보곤 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 농구기자를 하면 농구를 실컷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점프볼에 입사하게 됐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고,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농구를 현장에서 보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 매력적인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가져온 농구의 열정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맹봉주(점프볼 기자)
잡으면 한 골, 내 편 서로 하려고 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축구를 좋아했다. 체육시간마다 항상 축구를 했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축구를 하는데 그날따라 실수를 너무 많이 했다. 어쩔 수 없이 벤치로 향했다. 운동장 바로 옆에 있는 체육관이 시끄러워서 들어가 봤는데 친구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봉주야 농구 한 판 하자”라는 말에 농구를 하게 됐다. 농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잘할 리 없었다. 하지만 큰 키 덕분에 골밑에서 공을 잡으면 무조건 한 골이었다. 친구들은 환호했고 농구를 할 때면 나와 같은 편이 되길 바랐다. 학창시절 지극히 평범했던 나는 농구를 할 때만큼은 특별함을 느꼈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하하. 그 이후로 농구에 빠져들었다. 그때가 농구를 훨씬 좋아했다. 그때는 농구에 미쳐있을 때였으니까. 물론 지금도 농구를 좋아하지만 지금은 직업으로서 농구를 대하는 성격이 강하다.
강현지(점프볼 기자)
부모님에게 배운 농구, 지금은 내가 알려드려
부모님에 손에 이끌려 ‘첫 농구’를 경험했다. 특히 대전 현대 경기를 많이 보러 다녔다. 당시 어느 선수가 있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선수의 인기가 대단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후 대학 수능을 마치고 모비스의 경기를 자주 보러 갔었는데, 당시 그 시즌에 ‘식스맨들의 반란’이라며 모비스가 우승을 했다. 그렇게 다시 농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나는 kt 농구단에서 시행한 대학생 스포츠마케터를 시작으로 점프볼 인터넷기자를 거치며 점프볼에 입사하게 됐다. 아직 신입이라 그런지 현장에서 당시 좋아했던 선수들을 취재하게 되면 묘한 설렘이 있다. 이상민, 추승균, 조성원 감독을 승장, 패장으로 취재했을 때는 정말 나도 모르게 팬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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