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생인터뷰 에필로그 ‘미생인터뷰…그 못 다한 이야기’

맹봉주 / 기사승인 : 2016-12-29 0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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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맹봉주 기자] 총 21명.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약 6개월간 ‘미생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미생’들의 숫자다. 미생인터뷰는 점프볼 입사 후 필자가 맡은 첫 코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기사 보다 많은 애정을 담았다. 당연히 인터뷰 시간도 다른 기사에 비해 몇 배는 길었다. 미생들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싶었지만 페이지 수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아쉽게도 기사에는 미처 다 싣지 못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얘기할까 한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미생이 미생을 인터뷰하다


점프볼은 매달 초가 되면 잡지 기획안을 작성한다. 이번 달에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것이다. 미생인터뷰는 필자가 점프볼에 입사해 처음으로 작성한 잡지 기획안에서도 맨 첫 번째로 쓴 기획 코너였다. 말주변은 없었지만 상대방 얘기를 들어 주는 건 자신 있었기에 인터뷰 코너를 생각했다.


인터뷰 앞에 미생이 붙은 건 필자가 미생이기 때문이다. 회사 내 별명도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이름인 ‘장그래’였다.


오랜 취업 준비 끝에 자신만만하게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건만, 어른들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기자가 되기 전과 후, 농구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특히 필자와 같이 이제 막 프로에 입단한 사회초년생들이나 드래프트를 앞둔 대학졸업예정자들에게 더 관심이 갔다. 그들을 보면 괜스레 감정이입이 됐다. 야심차게 내놓은 잡지 기획안은 물 먹었지만(?) 인터넷으로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미생인터뷰 1호, 박지훈


미생인터뷰를 한 21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를 한 명 뽑으라면 중앙대 박지훈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미생인터뷰의 첫 번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박지훈이 대학 3학년이던 시절, 2015 프로-아마최강전에서 고양 오리온을 상대로 25득점을 올리는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언젠가 인터뷰 한 번 해야겠다’고 찜해 둔 그때의 기억이 미생인터뷰까지 이어졌다.


박지훈은 ‘신사’라는 표현이 제일 잘 맞는 선수가 아닐까 싶다. 중앙대 안성캠퍼스가 처음인 필자를 위해 빨리 올 수 있는 교통편을 알아봐주기도 하고 “캠퍼스 정문에 도착하면 숙소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요. 걸어오면 힘드니까 버스타고 오세요”라던지 “출발하기 전에 연락주시면 미리 나가 있을 게요”라며 인터뷰 전부터 필자를 배려하는 친절함이 뚝뚝 묻어났다. 단독 인터뷰 진행은 처음이라 긴장했던 필자도 박지훈 앞에선 금세 풀어졌다. 대학교 3학년 이전까진 철저히 무명선수였기에 할 얘기도 많았다. 결국 오전 11시에 만나 2시간 넘게 대화하고 점심까지 같이 먹어서야 인터뷰는 끝이 났다.



무뚝뚝? 알고 보면 츤데레


인터뷰하기 전과 후, 느낌이 제일 달랐던 선수는 상명대 안정훈이었다. 안정훈의 인터뷰 섭외를 위해 전화통화를 할 때가 생각난다. 감정이 안 느껴지는 딱딱한 목소리로 답변을 해 ‘이 인터뷰 쉽지 않겠군’이라고 지레 겁을 먹었었다. 인터뷰를 위해 상명대체육관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피곤하네요. 지금 낮 잠 잘 시간이에요. 제가 잠이 많은 편이거든요”라며 졸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180도 바뀌었다. 민감한 질문에도 “아 이건 말하기 좀 그런데”라면서 결국 다 말해줬다. 안정훈은 인터뷰 중 필자에게 질문을 제일 많이 한 선수이기도 했다. 부상 당시 기분을 묻는 질문엔 “기자님이시라면 어떠셨을 것 같아요?”, 본인의 장단점을 설명해달라는 물음엔 “기자님 제 장단점이 뭐에요? 단점은 많은데 장점이 생각 안 나서”라 답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대처하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졸립다는 말과 달리 제일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한 안정훈의 인터뷰 역시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 기다리다 지친 사진기자가 결국 “사진 촬영해야 하는데 인터뷰 언제 끝나니?”라 말해 겨우 끝날 수 있었다. 안정훈은 사진촬영을 하러 가면서도 “인터뷰 좀 더하면 안 될까요?”라며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겉과 속이 다르기는 연세대 천기범도 마찬가지. 경상도 남자답게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엔 서툴렀지만 인터뷰 도중 “목마르지 않으세요? 덥지는 않죠?”라며 따뜻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또 천기범은 가장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얘기 해준 선수 중 하나였다.



영혼의 단짝


보통 미생인터뷰는 한 명의 선수를 중심으로 단독 인터뷰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동반 인터뷰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건국대 김진유와 장문호였다. 기사는 따로 나갔지만 인터뷰는 건국대연습체육관에서 같이 이뤄졌다. 김진유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다. 인터뷰 내내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제가 원래 인터뷰를 잘 못해서”였다. 반면 장문호는 쾌활한 성격에 말솜씨가 뛰어났다. 옆에 있는 김진유의 답변이 시원치 않을 때는 필자 옆에서 보조 MC역할도 자처했다. 김진유와 장문호는 같은 학년이지만 나이는 장문호가 1살 더 많다.


하지만 둘은 대학입학 때부터 형, 동생에서 서로 의지하는 친구사이로 바뀌었다고 한다. 김진유는 “중, 고등학교 때 전지훈련을 같이 가거나 경기에서 만나면 제가 졸졸졸 따라다녔어요. 그때는 물론 형, 동생이었죠.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그러다 대학에 오자마자 말을 놨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 얘길 들은 장문호는 “대학에 와서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하자마자 놓더라고요. 건국대가 학번제거든요. 이제는 형, 동생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라며 단념한 표정이었다.


티격태격하던 두 선수가 가장 흥분하며 얘기를 주고받을 때가 있었다. 지난 2015 대학농구리그에서 무패행진 중인 고려대를 2점 차로 꺾었을 당시를 회상할 때였다. “농구를 십 몇 년 했지만 역전슛이란 걸 처음 해봤어요. 또 초중고 모두 약팀이었기에 잘하는 팀한테 매번 졌고 예선전을 통과한 적도 거의 없었어요. 고려대라는 대어를 낚은 거잖아요.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죠.”


이날 김진유는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짜릿한 역전 위닝슛을 성공시키며 63-61, 팀에 승리를 안겼다. 옆에 있던 장문호도 거든다. “저도 엄청 좋았죠. 건국대와 고려대가 붙는다고 하면 다들 고려대가 이긴다고 하잖아요. 고려대는 이미 자기들끼리 잔치할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와의 경기에는 관심이 없고. (옆에 있는 김진유를 보며) 그런데 우리가 한방 먹인거지(김진유도 고개를 끄덕인다).”



미생인터뷰 예습자들


미생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사전에 준비를 해오는 선수들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선수가 조선대 이승규. 이승규는 필자의 섭외전화가 오기만을 오래 전부터 기다렸단다. “(장)문호 형 때부터 ‘왜 나한테는 안 오지?’란 생각을 했죠. (안)정훈이 형, (정)희원이, (이)헌이 것 까지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했어요(웃음). 이제는 제 차례일 거라 기대를 했죠”라며 “다른 선수들의 미생인터뷰를 보며 준비했어요. 메모장을 켜놓고 메모를 하면서요(웃음)”라고 말했다.


준비성하면 단국대 하도현도 빠지지 않았다. 미생인터뷰 마지막에 하는 고정 질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를 물을 땐 다른 선수가 했던 답은 하기 싫다며 오랫동안 고민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목표나 롤모델 등을 물을 때도 가급적이면 자기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대답을 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언더독의 반란? “한국의 르브론이 되겠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기사 제목이 탄생하게 됐다.



“대학과 프로는 다르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직도 미생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프로 진출을 간절히 꿈꾸던 그들이었지만 이제는 당당한 프로 선수다. 미생인터뷰를 거쳐 간 21명의 선수 중 대학교 4학년은 15명. 다행히 한 명도 빠짐없이 프로에 진출했다. 인터뷰 당시만 해도 프로 진출에 대해 회의적인 답변을 내놓으며 필자를 안타깝게 했던 명지대 주긴완도 드래프트 맨 마지막에 울산 모비스의 지명을 받았다. 주긴완은 “마지막에 불리기 전까지만 해도 지명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홍콩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해야하나 생각했죠. 올해 단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거든요. 정말 후회 없이 했는데 이렇게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시키는 건 무조건 할 거에요. 1초를 뛰든 10초를 뛰든 최선을 다할 겁니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프로생활은 역시 녹록치 않다. 최준용처럼 단번에 감독의 눈에 띄어 주전자리를 꿰찬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벤치에서 출전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대학과는 다른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1라운드 6순위로 부산 kt에 간 박지훈에게 프로 생활이 어떠냐 묻자 한숨부터 쉰다. “하아. 왜 이렇게 슛이 안 들어갈까요? 슛만 들어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 대학 때가 좋았어요(웃음). 그때가 그립네요.”


대학 4년간 정상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 없는 고려대 정희원은 계속되는 패배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고려대가 최근 4년간 대학농구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61승 3패. 하지만 정희원이 속한 kt는 시즌 초반 2승 11패로 최하위에 위치해 있다(11월 26일 기준). 지난 11월 22일 경기에선 울산 모비스에 55-99, 40점 차 대패를 당하기도 했다. 정희원은 “저 태어나서 처음으로 40점 차로 져봤어요(웃음)”라고 허탈하게 웃으며 “아직 팀 스타일과 제가 팀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못 잡고 있어요. 또 외국선수가 있고 없고도 큰 것 같고요”라며 프로에서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1라운드 9순위로 전주 KCC로 간 한준영은 프로에서는 적응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패기 넘치고 항상 자신감에 가득 찼던 미생인터뷰 당시와 상반된 모습이다. “대학은 이미 지나간 거고 이제 새롭게 다시 해야 하는데 아직 적응 단계에요. 대학에선 힘으로만 해도 됐는데 여기는 그게 아니니까요. 차근차근 올라가야죠. 프로는 대학과 다른 점이 많아요. 대학은 학년이 올라가면 조금 설렁설렁 뛰어도 이해해주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프로는 다르죠. 마치 ‘너 아니어도 여기 뛸 사람은 많아’라고 하는 거 같아요.”


프로만 가면 끝인 줄 알았건만, 이제 시작이다. 배울 것 투성이다. 4순위로 자신이 가고 싶던 서울 삼성의 지명을 받은 천기범은 “우리 팀엔 좋은 가드들이 많잖아요. 지금 당장은 못 뛰더라도 2, 3년 뒤나 더 미래를 보고 배우려고 해요. 지금 (최)준용이처럼 처음부터 잘하면 좋겠지만요(웃음). 일단은 배울 수 있는 만큼 배우고 그 다음 적응해야죠. 외국선수를 활용하는 법도 더 배우고요”라며 서두르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미생의 끝은 어디일까. 완생이 있긴 한 걸까? 5, 6년 후 21명의 미생은 어떤 모습으로 코트 위에 서있을까?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그래가 한 말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들은 모두 미생이다. 살아있지 않은 상태지만 완생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


사진_점프볼 자료사진(문복주, 유용우, 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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