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곽현 기자] 얼싸 안으며 좋아하던 선수들과 달리 코치들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상대팀 코칭스태프와 악수할 준비를 한다. 선수들과 함께 뒤엉키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며 말이다. 오리온이 우승을 하기까지 뒤에서 남모르게 힘을 보탰던 이들이 있다. 바로 김병철(43), 조상현(40), 임재현(39) 코치다. 선수 시절 코트 위 주역으로 뛰었던 이들이 이제 코치로서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됐다. 선수 때는 절대 이해하지 못 했다는 코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우승 기쁨, 맘껏 즐기고 싶었지만…
세 코치는 모두 오리온에서 선수 마침표를 찍고 코치를 맡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플라잉 피터팬’ 김병철 코치는 오리온에서만 14년을 뛴 프랜차이즈 스타다. 2001-2002시즌 오리온의 창단 첫 우승멤버였고, 2002-2003시즌에는 정규리그 MVP가 되기도 했다. 조상현 코치는 SK, LG 등을 거쳐 오리온에서 선수 경력을 마감하고, 곧바로 코치에 선임됐다. 임재현 코치는 이번 시즌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선수였다. 하지만 시즌 중 은퇴해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고, 우승의 기쁨을 함께 하게 됐다.
세 코치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선수 시절 우승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조상현 코치는 SK 시절, 임재현 코치는 KCC 시절에 타이틀을 품었다. 하지만 모두들 “선수 시절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 혹은 “각별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최고참인 김병철 코치는 “직접 뛰면서 우승한 기분과 코치로서 정장을 입고 우승을 맞는 기분은 참 다르더라고요. 선수들의 비시즌 훈련이 참 힘들었는데, 군소리 없이 잘 따라와 줬던 게 고마웠습니다”라고 돌아봤다. 그는 선수 시절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2002년)는 매 경기가 접전에 긴장감이 이어졌죠. 다 끝나니 몸이 처지더라고요. 이번 우승은 좋긴 좋은데 선수 시절처럼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차이점이 있더라고요. 유니폼과 정장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김병철 코치가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던 그 순간은 임 코치에게 잊고 싶은 기억이기도 했다. 오리온이 챔피언결정전에서 꺾은 팀이 바로 SK였고, 조상현과 임재현 코치가 주전이었기 때문이다. “졌으니 빨리 나가고 싶었어요. 라커룸에서도 바깥 소리가 다 들렸거든요.” 임 코치의 말이다. (김병철 코치는 “선수들 우승 세리머니 하는데, 전 빠지고 싶었거든요. 근데 얘네(두 코치)는 막 같이 하더라고요. 선수야. 선수. 유니폼 주면 같이 놀 분위기야. 하하”라며 장난스런 구박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조상현 코치는 우승현장에서 찬밥 신세였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저희 코치들끼리 트로피를 들고 찍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도 없었어요. 트로피가 어디 갔는지 안 보이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진짜 하소연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김병철 코치였다. 코치들 중 유일하게 헹가래를 받았다. 여기까진 좋았다. “감독님 헹가래를 한 뒤에 저를 데려가더니 떨어트리고 엄청 밟더라고요. 얼굴에 이만하게 신발자국이 났어요. 누군지도 몰라요.” 김병철 코치의 말이다. 그러자 조상현 코치는 “정재홍이란 얘기가 있더라고요”라며 긴급제보를 했다.
“정재홍 선수를 평소에 많이 혼내셨나봐요?”
“전 한 사람만 안 혼내요. 다들 벼르고 있었나보죠. 감독님께서는 허리가 안 돌아간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아프고 쓰려도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 좋은 그날의 우승 기억이었다.
시즌 전 코치들의 예상은?
시즌 전부터 오리온은 우승 후보로 인정을 받았다. 문태종과 애런 헤인즈라는 타짜들을 영입하면서 전력 보강을 확실히 했기 때문. 하지만 정통센터 없는 스몰라인업으로 한계가 있을 거라는 지적도 많았다. 과연 코치들의 예상은 어땠을까?
김 코치는 “저희 순번에서 뽑을 수 있는 선수가 없었어요. 어중간한 빅맨을 뽑느니 한국에서 많이 뛴 헤인즈를 뽑는 게 좋다고 판단했죠. 우리가 장신슈터가 많으니까 커버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라고 전했다. 조 코치는 “결과론이지만 잭슨이 잘 해줬어요. (이)승현이가 외국선수들 수비를 잘 해줬고, 우리가 리바운드가 꼴찌였는데, 외곽슛과 스피드 등 다른 부분에서 잘 커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선수였던 임 코치도 마찬가지. 그는 “헤인즈가 왔을 때 마음이 든든해졌어요. 중국전지훈련 때부터 지난 시즌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반면 포인트가드인 잭슨을 뽑으면서 국내 가드들이 너무 죽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죠. 시즌이 시작됐을 때 생각보다 경기력이 좋았어요. 시즌 내내 불안한 부분도 있었는데, 챔프전 1차전 이후에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경기는 졌지만 우리가 더 낫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라고 말했다.

코치들이 본 추일승 감독
이번 오리온의 우승으로 추일승 감독은 지도자로서 재평가를 받게 됐다. 스타 출신도, 명문대학 출신도 아닌, 속칭 ‘비주류’였던 그가 당당히 중심에 선 이다. 바로 옆에서 보좌했던 코치들이 본 추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KTF와 리온에서 선수 말년을 보낼 때도 감독님과 함께 있었어요. 공부를 많이 하는 감독님이시죠. 코치들이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훈련 시간에도 강압적인 부분보다 자유스럽게 해주시는 편이고요.” 선수 시절 오랫동안 추 감독과 한솥밥을 먹은 조 코치의 얘기다. 심지어 조상현 코치는 군대에서도 추 감독과 함께 했다. 상무 시절 감독이 추일승 감독이었던 것이다. “그때도 편하게 해주셨어요. 외출, 외박도 많이 주시는 편이었고, 같이 축구를 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를 많이 만들어주셨죠.”
김 코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감독님은 코트 위 분위기를 많이 신경 쓰는 분이세요. 늘 화기애애하고, 업 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시죠. 선수들한테 친근감 있게 다가가고, 하나하나 신경을 쓰세요. 오히려 제가 감독님께 ‘강하게 하셔야 합니다’라고 얘기할 정도죠. 감독님은 가족 같은 분위기를 원하시는 것 같아요. 선수들은 좋아하죠.”
조상현 코치와 마찬가지로 상무 시절 추 감독 밑에서 농구를 배웠던 임재현 코치는 그의 철두철미한 면을 소개하기도 했다. “잘못 된 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세요. 경기 때 잘못 된 게 있으면 다시 와서 연습을 하기도 하죠. 그런 부분은 철두철미하세요.”
얼마 전까지 선수였던 임 코치는 선수 시절 몰랐던 부분을 코치가 돼서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 3달 전까지는 선수였잖아요. 그땐 감독, 코치님들이 그냥 와서 가르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코치가 되 보니까 ‘이렇게 준비를 많이 하는구나’하고 깨달았죠. 선수 땐 지루하고 답답한 적도 많았어요. 선수들도 저처럼 느낄 수 있는데, 그런 얘기를 많이 해줘요. 진짜 준비를 많이 하신다고요.” 김 코치도 거들었다. “선수 땐 감독, 코치를 절대 이해 못 해요. 내 몸도 힘드니까 이해를 못 하죠.”

PO, 너만은 터져다오
“플레이오프에서 꼭 잘 해줬으면 했던 선수가 있었나요?” 세 코치에게 공통 질문을 했다.
김병철 코치가 꼽은 선수는 ‘챔프전의 사나이’ 김동욱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매치상 가장 필요했던 선수에요. 수비 센스가 있어서, ‘정규리그보다 플레이오프가 더 낫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기록을 보면 (김)동욱이 슛이 몇 개 터져주면 쉽게 갈 거란 생각을 했거든요. 슛 연습도 많이 시켰어요. 결국 경험 있는 선수가 터질 거라고 봤거든요. 결국 챔프전에서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팀을 끌고 가더라고요.”
그동안 김동욱은 가진 재능에 비해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안드레 에밋 수비의 선봉에 나서고, 결정적일 때 3점슛을 터트린 김동욱은 이번 챔피언결정전을 기점으로 평가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김 코치는 “이제 나이도 있고 놀고 싶을 때는 지났잖아요. 농구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감이 생겼다고 봐요”라고 평가했다. 임 코치도 거들었다. “동욱이가 책임감이 굉장히 강해졌어요. 코트에선 동욱이가, 벤치에선 (김)도수가 분위기를 잘 잡아주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상현 코치는 최고참 문태종을 꼽았다. “그래도 해주던 사람이 해줄 거라고 봤어요. 사실 4강 상대인 모비스가 가장 고민이라고 생각했어요. 4강에서 모비스가 모비스다운 경기를 못 했는데, 태종이가 1, 2차전에서 중요한 득점을 다 해주면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말했다. 임재현 코치는 이승현을 꼽았다. “승현이 같은 경우 지난 시즌보다 오히려 더 슛이 안 들어갔어요. 오픈슛을 잘 넣어주던 선수였는데, 올 시즌은 이상하게 들쭉날쭉 했죠. 챔프전에서 (하)승진이를 유인해서 더 많이 넣어줬으면 했는데, 어쨌든 잘 이행을 해줬죠.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몸이 녹초가 됐는데도 늘 아침 일찍 나와서 훈련을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승현이는 될 거다’라는 생각을 했죠.”
선수와 코치로서 우승의 기쁨을 맛본 세 코치. 앞으로 지도자로서 그들의 목표는 어떻게 될까? 김 코치는 “감독님을 잘 보좌해서 오리온이 명문구단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거죠. 두 코치와 함께 선수들이 부상 없이 끝까지 시즌 잘 마치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일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조 코치는 “임재현 코치한테도 늘 얘기하는 부분인데요. 늘 ‘왜’라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선수들이 패턴을 연습할 때도 ‘이걸 왜 해야 하는가’라고 궁금해 해야 한다는 거죠. 선수들이 생각하는 농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임 코치는 “조 코치님께 하나부터 열까지 묻고 있어요. 귀찮아하실 정도로요. 너무 잘 답해주셔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D리그에서도 감독님이 해보라고 하셔서 덤비고 있는데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죠. 감독님께 배운 게 많기 때문에 감독님 철학대로 지도자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는 코치지만, 또 형으로서 선수들의 힘든 부분을 들어줄 수 있는 코치가 되고 싶어요”라고 목표를 전했다.

BONUS ONE SHOT_ 비하인드 스토리 | 코치님도 수비 안 했잖아요!
오리온 우승 후 가진 축승회 현장. 술을 거나하게 마신 선수들이 코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일명 야자타임. 평소 하지 못 했던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승현이 먼저 폭탄을 터트렸다. “야! 김병철! 슛 가지고 그만 좀 얘기해!”라고 해 좌중을 뒤집어놓기도 했다. 이날 김병철 코치에게 이어진 또 하나의 제보. “(이)현민이가 그러더라. 조상현 코치는 현역 때 수비 열심히 안 했으면서 왜 그렇게 수비 연습을 시키냐고.” 이에 멋쩍어하던 조 코치는 “김 코치님이나 저나 수비를 그렇게 잘 하는 선수는 아니었어요”라며 김 코치까지 엮었다. 그러자 김 코치가 발끈했다.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막냐고. 그래도 난 얘(조상현 코치)보다는 수비 잘 했어.” 결론은 자신은 수비가 그리 약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에 조 코치도 할 말은 있는 듯 했다. “그래도 전 자신 있는 게 조성원, 문경은, 우지원. 이 형들보다는 수비 잘 했어요(웃음).” 나름대로 슈터 계보에서 수비만큼은 이들보다 낫다고 밝힌 조 코치였다.
#사진 - 신승규,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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