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동부 이흥섭 차장, 가치 그 이상을 만들다

김선아 / 기사승인 : 2016-04-24 22: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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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선아 기자] 원주는 프로농구 출범이후 프로농구단의 역사가 끊이지 않은 몇 안 되는 도시다. 나래, TG를 거쳐 동부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치악체육관 시절부터 원주종합체육관까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체육관 구석구석까지 누비는 이흥섭 차장은 그 빛나는 원주 프로농구 역사를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선수 시절의 경험을 살려 농구단과 선수들을 더 조명 받고 빛나게 하고 있다. <편집자 주>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그 프런트에 그 선수
2015년 12월 31일, 김주성이 KBL 역대 1호로 1,000블록 기록을 달성했다. 이를 기념해 언론에서는 김주성의 블록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100단위 블록 달성 현황. 시즌별, 쿼터별 블록 성공 횟수별 경기 기록, 블록 상대 등 여간해서는 찾아내기 힘든 기록이 양질의 기사를 만들었다. 이때 동부 이흥섭 차장의 힘이 컸다. 다시 말하지만 앞서 말한 자료는 KBL 기록 프로그램을 활용한다고 해도 여간해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자료다. 앞서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이흥섭 차장이 했다.


이 차장은 “갑자기 생각한 부분은 아니다. 기자분들과 현장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이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재미도 있고 누구나 궁금해 할만한 것을 찾아봤다. 블록이라는 부분이 특이한 것은 상대선수가 있어야 기록이 나온다”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 “잘못 건드렸다. 공교롭게 주말과 함께 월요일까지 3일 정도 쉬게 되어서 했는데, 손을 댄 뒤 멈추지 못했다. 한 시즌에 3~4시간씩을 투자했는데, 그 시간이 아까워서 찾아 나갔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상대 선수를 모르게끔 나와 있는 기록도 있었다. 하지만 기록을 찾은 뒤 대충 이 정도 수준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확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KBL 이혁준 대리도 밤늦게까지 비디오를 보며 확인해줬다. 뒤에 데이터의 합계가 정확히 맞는지 확인한 뒤에야 그 자료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흥섭 차장의 노력은 수치 그 이상의 결과를 냈다. 김주성에게 가장 많은 블록슛을 허용한 선수가 국보센터 서장훈(은퇴, 방송인)이라는 스토리텔링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 영영 묻혔을 기록이기도 하다.


“데이터 작업을 하고 선수 관리를 하면서 신경 쓰는 것이 하나 있다. 어떤 이벤트를 욕심내다가 선수한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주성이가 자료를 내는 것을 꺼렸다면 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성이는 그런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없다. 농구적인 이슈가 많이 나오고, 후배들이 본인의 기록을 깨주길 바라고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흥섭 차장은 김주성에 관한 일화 하나를 더 들려줬다. 지난 1월 발표된 김주성의 아시안게임 연금 기부가 그것. “선수들이 경기 중 기록으로 기부하는 등 모범이 되는 것을 이야기해주지만, 선수들에게 ‘구단이 이렇게 할 테니까 돈을 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의미도 없다. 그런데 주성이는 금액을 떠나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연금 기부도 본인이 제시했다. 이때 연금은 원주 사회복지과와 이야기해 원주 시민에게 지정 기부를 하게 됐다. 원주시에는 책, 연탄, 연금 등으로 꾸준히 기부한 김주성에게 감사패를 전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궁금해서 시작한 일, 평생의 업이 되다


“190cm 이상 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지금과는 다르다. 학생 때 명동을 거닐면 100명이면 100명이 다시 나를 쳐다봤다. 큰 키에 깜짝 놀랐다. 결국 운동하는 것을 반대하던 어머니께서 ‘학교를 잘 나와도 상대가 위압감을 느낄 수 있다. 나중에 넥타이를 매고 일할 수 있겠는가’하고 걱정하셨다. 그런 생각에서 고등학교 때 운동을 하게 됐다.”


이렇게 접한 농구는 코트에서 사무국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무국 일은 어느새 16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흥섭 차장은 “7월이 되면 사무국에서 일한 지 16년이 된다. 농구단에서 이렇게 오래 일할지는 몰랐다”라고 말한다. 시작 당시 뚜렷한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흥섭 차장은 2000년 나래에서 은퇴한 뒤 사무국에 출근했지만, 정식 발령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나를 포함해 식스맨 3명이 그만두게 됐다. 팀에서 ‘더는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계약 기간이 1년 남아있었다. 최형길 단장(현 KCC 단장)님이 ‘사무실에 나오던지’라고 이야기했는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1년 동안 회사에 나온다고 해도 사무국 직원 채용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주변에 농구를 그만둔 선수들은 대부분 요식업에 뛰어든 때다. 하지만 이흥섭 차장은 일반인의 삶이 궁금했다고 한다. “도대체 일반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며 뭐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무국 업무가 벌써 16년이 흘렀다. 궁금해서 발을 들인 일터의 베테랑이 됐다. 이 사이 수많은 희로애락이 있었을 터. 그런 그가 농구 프런트로 자리를 잡는데 든든한 뿌리가 됐을 힘들고 고됐던 이야기를 물어봤다.


때는 2003-2004시즌 챔피언결정전 7차전으로 흘러간다. 당시 선수로 뛰던 허재 전 감독의 은퇴 경기가 열린 날이기도 하다. 이흥섭 차장은 “많은 농구팬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티켓을 좌석 수 이상으로 판매하게 됐다. 티켓 업체에서 판매 한도를 걸어둬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구단 사무실 앞에 새벽부터 300여 명의 팬이 줄서 있었고, 인터넷 예매가 폭주했다. 울산에서도 팬이 올라왔고. 원정팀과 TG삼보 직원까지 요청한 티켓이 엄청났다. 이 일을 안 원주시에서는 ‘튼튼한 건물이지만 그렇게 사람이 들어가면 건물이 무너진다’라며 비상에 걸렸다. 결국 티켓 업체가 티켓을 구매한 관중에게 1.5배의 금액을 물어주며 환불조치에 나섰다. 그런데 그렇게 정리해도 4,200장이 나갔다. 현장에서 암표까지 수거해서 찢어버린 뒤에야 간신히 그날 경기가 진행됐다”라고 아찔했던 순간을 돌아봤다.



매년 반복적으로 이흥섭 차장을 힘들게 하는 업무도 있다. 바로 선수단과의 연봉협상이다. 선수와 구단이 합의점을 쉽게 찾으면 좋지만, 서로의 기준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차장이 힘든 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가 정한 원리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 감언이설로 당장 피로를 덜려 하진 않는 것이다.



이 차장은 “연봉협상에서 (선수들에게)왜 그러게 연봉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한다. 내가 선수 출신이고 동생도 선수생활을 길게 하고 했지만. ‘연봉을 잘해주겠다’라는 이야기는 안한다. 절대 속이지도 않는다. ‘올 해 이만큼만 받으면 내년에는 잘해주겠다’하고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일반 회사와 달리 운동선수들의 연봉은 ‘올해 3% 상승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선수들이 경기를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당락이 갈린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게 맞다. 다만 내가 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설명을 많이 하고 방법을 찾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000만 부럽지 않은 33만 원주의 힘


원주는 KBL 10개 구단 연고지 중 인구수가 가장 적은 도시다. 서울은 인구수가 천만을 넘고, 전주(65만)를 제외한 모든 연고지가 100만이 넘는 인구가 사는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원주시 인구는 33만 정도로 추정된다. 전주 인구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원주의 농구 열기는 그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


2002-2003시즌에는 이 열기가 지금보다도 훨씬 컸다고 한다. 김주성이 신인으로 데뷔해 농구 대통령 허재 전 감독과 함께 뛴 시기다. 6시즌 만에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동부는 대구 동양과의 6차전을 치르기 위해 대구로 원정경기를 가게 된다. 이때 구단은 원주시에 “(원주팬들의)티켓과 간식을 우리가 지원하는 대신에 시에서 버스를 부탁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 몰려도 너무 놀렸다. “버스 17대가 대구실내체육관으로 갔다. 널찍하게 버스를 이용했다고 해도 500명 이상이 탔다. 간식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당시 김밥나라 이런 것도 없던 때다. 근처 김밥 집을 결국 찾긴 했는데 먹고 탈이 나면 안 된다. 그래서 새벽 4시부터 김밥 싸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라고 기억했다. TG에서 동부로 넘어갈 때도 원주 팬들의 응원이 대단했다. 선수단은 2004-2005시즌 통합 우승을 달성하고 싱가폴 빈탄에 우승 여행을 갔다. 그런데 선수단은 그곳에서 갑작스러운 팀 부도 소식을 듣는다.


다행히 10월 동부가 인수 기업으로 나선다. 그러나 연고지 이전 소문이 돌아 원주 팬들을 혼란에 몰아넣었다. 이 차장은 “원주에서 연고지 이전 반대 서명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인원으로 인해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라고 돌아봤다.


하지만 원주에서의 시련의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동부가 인수한 뒤 초반에는 팬이 줄었다. 선수와 콘텐츠가 모두 같고, 간판만 바뀌었는데 관중이 줄었다. 팬들의 열기로 구단이 인수를 잘했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공교롭게 농구가 내림세를 그린 때다”라고 기억했다. 그러나 이 하향 곡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상승세를 보인다. 동부의 농구가 살아났고 팬들도 응답했다. 2007-2008시즌 ‘동부’란 이름으로 거둔 첫 우승이 시발점이 됐다.


이때 이 차장은 누구보다 기뻤다고 한다. “팬들의 인정도 받아야 하지만. 운영하는 모기업에서 인수를 잘했다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이후에도 우리에게 안 좋은 시즌도 있었지만, 새로운 체육관 시대를 여는 것을 계기로 관심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원주의 별이 되다


동부는(전신 포함) 3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한 명문 구단이다. 준우승 횟수도 5회로 챔피언결정전에서만 무려 8번이나 올랐다. 통합 우승도 2차례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최다 진출 기록도 동부가 가지고 있다.


나래, TG로 이어진 역사는 2005년 동부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이미 동부의 역사는 10주년에 접어들었다. 이때 행사를 이흥섭 차장이 담당하게 된다. 원주종합체육관에는 동부의 우승, 준우승 트로피들이 나열됐고, 이 역사를 만든 선수들의 사진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이흥섭 차장은 “우승. 준우승 트로피 전시는 아무 구단이나 할 수 없다. 휴대전화기에 이런 것을 원래 안 넣어두는 데 찍어 놨다”라고 전시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동부를 지켜온 선수들에 고마움을 전했다. “우리 동부의 10년은 김주성이 끌어왔다. 또 윤호영이 입단해 2010-2011시즌부터 중심을 잡았다. 동부의 10년에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정말 성적이 나야 10주년 행사 아이템이 나오는 것인데 이런 선수들과 함께해서 고맙다.”


구단의 역사에 관해 큰 자부심을 보였지만, 농구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농구’ 그 자체다.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인정받았으면 한다. 경기 외적인 부분은 결과적으로는 양념이다. 농구라는 본질이 정확하게 되어야 하는 게 맞다. 기업도 농구라는 종목이 왜 필요한지 왜 하는지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도 제시했다. “스포츠단은 일반 회사와 다르다. 일반 회사는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잘못되면, 다른 프로젝트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만 한다. 농구에 매니아 팬들도 필요하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종목이 되길 바란다. 농구만이 가진 분명 종목의 특성으로 인기를 많이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할 수 있는 종목이 되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 차장의 바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선수단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는 선수단의 노력과 팬들의 열정을 이어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 강조했다. “그 연결고리들을 잘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때는 ‘농구만 잘하면 된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농구 잘하는 것은 기본이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게 무엇이 있을까 선수들이 생각해야한다 구단도 맞춰 줘야 한다. 경기장 안에 음악이나 장내아나운서의 멘트가 아니라 농구로 정말 정신없는 함성이 가득 차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사진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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