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최연길 칼럼니스트] 지역방어는 대인방어에 비해 소극적인 수비라 평가된다. 그래서 나온 수비가 대인방어의 장점과 지역방어의 장점을 합친 ‘매치업 존 디펜스(Match-up Zone Defense)’다. 그리고 매치업 존 디펜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이번 명장열전의 주인공 존 체이니(John Chaney)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템플 대학은 하드코어 NCAA 농구팬들이 아니라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경기를 펼치는 팀이라고 치부하기 쉬울 만큼 저득점 경기를 펼치는 팀이다. 하지만 농구의 수비를 제대로 알고 보는 팬들이라면, 템플 대학만큼 흥미로운 수비를 펼치는 팀도 드물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 템플 대학 출신 NBA 선수들 중에는 수비의 달인들이 많은데, 이는 모두 존 체이니 감독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체이니가 명장인 이유
NCAA 농구 골수팬이 아니라면 존 체이니 감독을 모르는 것도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농구 역사에 남긴 족적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체이니는 NCAA(디비전 I과 II) 무대에서 통산 741승 312패를 기록했다. 흑인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700승 고지를 밟은 감독이 바로 체이니다(클레어 ‘빅 하우스’ 게인스 감독은 800승이 넘었지만 디비전 I이 아닌 II에서만 기록했다). 또한 체이니는 템플 대학에서의 첫 시즌인 1982-1983시즌에 14승 15패를 기록한 이후 단 한 번도 승률 5할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첫 시즌을 제외하고 23년 연속 포스트시즌(NCAA 토너먼트 혹은 NIT)에 진출했다.
체이니는 NCAA 토너먼트에서 파이널 4(Final Four)에는 모르지 못했지만 엘리트 8(Elite Eight)에 5차례나 올랐고 NCAA 디비전 II 파이널 4에 2번 진출했다. 또, 1978년에는 NCAA 디비전 II 토너먼트 우승도 차지했다. 체이니는 NCAA 토너먼트에 모두 17차례 올라 23승 17패(승률 75.5%)를 기록했다. 그 기간 중 템플 대학이 속한 애틀랜틱 10 컨퍼런스에서 정규시즌 우승 8회, 컨퍼런스 토너먼트 우승 6회도 차지했다.
또한 체이니가 템플 대학에서 가르친 선수들은 대부분 NBA에서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선수는 에디 존스(전 LA 레이커스)와 애런 맥키(전 필라델피아 76ers)다. 두 선수는 체이니에게서 얻은 수비 철학을 십분발휘 하며 NBA를 대표하는 강력한 수비수로 성장했다. 또 다재다능한 팀플레이로 팬들뿐 아니라 감독들에게도 사랑받는 선수였다. 물론 이 두 선수 외에도 템플 대학 선수들은 슈퍼스타까지는 아니었어도, 감독들이 원하는 수비력을 갖춘 팀플레이어로 깨소금 같은 활약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존 체이니하면 생각나는 전술, 바로 매치업 존 디펜스야 말로 체이니를 명장 반열에 올려놓은 결정적인 이유다. 체이니 감독 재임 시절, 템플 대학 경기를 시청하다보면 현지 캐스터와 해설자들도 변화무쌍한 템플 대학의 매치업 존 디펜스를 헷갈려할 정도였다. “이번에는 2-1-2 지역방어네요” “다시 1-3-1입니다” “아, 제가 실수했네요. 3-2입니다”라는 말이 템플 대학이 수비하는 동안 자주 언급되었고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지역방어의 변화를 인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연히 상대 감독들도 템플대학을 만나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물론 혹자들은 ‘매치업 존만으로는 NCAA 우승을 할 수 없다’며 체이니를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템플 대학이 다시 엘리트 8에 올랐을 때 체이니는 자신의 매치업 존이 아직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해 기쁘다고 말했다. 또한 체이니보다 단순한 2-3 지역방어를 쓴 시라큐즈 대학의 짐 뵈하임 감독이 우승한 것만 봐도 매치업 존으로 우승할 수 없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매치업 존 디펜스란?
버랠 페이 감독이 쓴 「Complete Guide to Coaching Basketball’s Match-Up Zone」에서는 매치업 존 디펜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매치업은 맨투맨이 아니다. 존도 아니다. 하지만 둘 다다.’
그렇다. 매치업 존 디펜스는 맨투맨 디펜스와 존 디펜스가 혼용된 수비법이다. 페이는 ‘맨투맨에서 각 수비수는 자신이 맞는 공격수에 대한 책임이 있다. 지역방어에서는 각 수비수는 자신의 지역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매치업 존 디펜스에서는 각 수비수는 존 디펜스를 하면서 자신이 맞는 공격수에 대한 책임이 있다. 따라서 매치업 존은 맨투맨의 원칙을 가진 지역방어다’라고 좀 더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매치업 존 디펜스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KBL에서 유행했던 3-2 포인트 드랍존(Point Drop Zone, 혹은 Drop Point Zone이라고도 한다)도 매치업 존이다. 아메바 디펜스(The Amoeba Defense), 2-1-2 슬라이딩 존 디펜스(Sliding Zone) 등 수많은 매치업 존 디펜스로 새분화 할 수 있다. 이미 명장열전에서 소개했던 딘 스미스 감독가 같은 수많은 명장들이 매치업 존 디펜스를 통해 좋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농구전문가들에게 ‘매치업 존 디펜스’하면 열의 아홉은 템플 대학의 존 체이니라고 답할 것이다.
체이니 감독은 강력한 매치업 존 디펜스를 구사하며 템플 대학을 실점이 적은 팀으로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체이니의 템플 대학은 경기 중에서도 수시로 바뀌는 변화무쌍한 매치업 존 디펜스로 상대 공격을 꽁꽁 틀어막았고, 1984-1985시즌 56실점(전미 3위), 1993-1994 시즌 54.7실점(전미 2위), 1994-1995 시즌 59.7실점(전미 3위)으로 매 시즌 꾸준히 실점 부문에서 상위권에 들었다. 그 중 템플 대학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비벽을 쌓았던 때는 1993-1994 시즌이다. 당시 템플 대학에는 전미 최고 수비수 두 명이 윙에 포진하고 있었다. 바로 애런 맥키(196cm)와 에디 존스(198cm)였다. 두 선수는 좋은 신장과 뛰어난 운동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가드 릭 브런슨(194cm, 전 뉴욕 닉스)와 함께 강력한 앞선을 구축했다. 이들의 활발한 운동량과 빠른 손은 상대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체이니의 농구철학
체이니는 기본을 강조한 감독이다. 반복된 훈련은 좋은 성적의 토대였다. 종종 상대 감독을 공개적으로 비난해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선수들에게는 훈련 중 심한 꾸중을 하지 않았다. 체이니의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짐 말로니는 “그(체이니)가 지닌 가장 큰 자산은 제자들을 위한 사랑이다. 엄격한 훈련을 강조하는 사람이지만 엄청난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다. 선수들은 그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라며 체이니의 성공비결을 전해주었다. 체이니가 농구팬들에게는 강력한 수비로 성적을 낸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가 경기 전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턴오버를 하지 말라’였다. 그는 강력한 수비와 느린 템포의 농구를 구사했지만, 동시에 적은 공격권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턴오버를 범하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체이니의 농구 철학은 그가 강조한 ‘4가지 R’을 통해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R’은 역할(Role)이다. 팀내 모든 선수들은 자신의 역할이 있다. 감독이 각 선수들에게 역할을 정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선수들의 역할이 명확해지면 코트 위에서 혼란이 적어지고 결과적으로 턴오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R’은 규칙(Rule)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농구 규칙을 알려주어야 하고 모든 선수들은 규칙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많은 선수들, 아니 농구인들은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현재 한국 농구의 상황도 그렇다.
세 번째 ‘R’은 책임(Responsibility)다. 선수들과 감독, 코치들은 모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실수를 했을 때는 그 실수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 모두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고 실수에 대해 남 탓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R’은 존중 혹은 존경(Respect)이다. 그는 농구에 대한 존중, 감독에 대한 존경, 부모님에 대한 존경, 동료에 대한 존중, 자신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체이니가 수비와 공격에서 효율적인 농구를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각도에 대한 이해다. 그는 가드가 드리블로 돌파할 때는 골밑 깊숙이 들어가지 말고, 자유투라인 근처에서 윙쪽으로 패스하라고 가르쳤다. 만약 깊게 들어가서 윙쪽 선수들과 일직선이 되면 패스가 막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비에서는 각도를 역이용해 상대의 효과적인 공격 기회를 차단했다.
두 번째는 패스다. 그는 패싱은 슈팅, 드리블링, 리바운딩과 달리 팀의 기술이라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패스를 잘하도록 가르쳤을 뿐 아니라 좋은 패스를 받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공간을 활용해야 하는지도 가르쳤다. 또한 체스트 패스, 롭 패스, 바운스 패스 등 다양한 패스들을 상황에 맞게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 지도 가르쳤다.
세 번째는 플로어 밸런스(Floor Balance)다. 플로어 밸런스는 쉽게 말해 적절한 공간 활용 즉 ‘스페이싱(Spacing)’을 의미한다. 플로어 밸런스는 그의 농구 철학인 턴오버를 없애는 것에 가장 중요한 요소기도 했다. 또한 그는 “나는 언제나 내 제자들에게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오늘이다. 바로 지금이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내일은 내일 생각한다’라고 말한다.”라는 명언을 통해 현재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다.
고난을 넘어 명장으로
체이니는 전세계 경제가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였던 1932년 1월21일(이하 현지시간) 플로리다州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체이니의 가족은 흑인이라 더욱 힘든 시기를 보냈다. 홀어머니는 청소부일을 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았고, 결국 그의 가족은 더 나은 삶을 위해 필라델피아로 이사했다. 체이니는 필라델피아에서 농구를 통해 외로움과 허기짐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그 농구가 인생을 바꿔놓았다. 필라델피아 지역 대학에서 장학금 제의를 받지 못한 체이니는 플로리다에 위치안 베듄-쿡맨 대학에 입학해 농구선수로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당시 NBA 역시 인종의 벽은 높았고 체이니는 흑인 리그인 이스턴 리그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잠시 한 후 중학교 감독으로 부임해 일찌감치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1966년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사이먼 그래츠 고등학교 농구 감독으로 부임한 체이니는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1972년 다시 체이니 주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NCAA 디비전 II 소속이던 체이니 대학은 체이니가 부임하면서 강호로 부상했다. 첫 시즌에 23승 5패를 기록한 체이니 대학은 1978년 NCAA 디비전 II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고 다음해에는 다시 파이널 4에 올랐다.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명성을 쌓은 체이니는 템플 대학의 학장이던 피터 리아쿠라스의 감독 제의를 받아들여 1982년 템플 대학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빌라노바 대학, 세인트 조셉스 대학 등과 함께 필라델피아 지역내 ‘빅5 대학’ 중 하나였던 템플 대학은 체이니 부임이후 강호로 급부상한다. 1983-1984시즌 템플 대학은 전체 26승 5패, A-10 컨퍼런스에18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다. 덕분에 NCAA 토너먼트에도 진출했고 이후 체이니와 함께 승승장구를 이어나갔다.
파이널 4 문턱에서 좌절하다
체이니 감독의 이력에서 유일한 옥에 티는 NCAA 토너먼트 우승은커녕 단 한 번도 파이널 4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템플 대학은 모두 5차례 엘리트 8에 오르며 파이널 4 진출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체이니와 템플 대학은 파이널 4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1987-1988시즌 템플 대학은 32승 2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당시 템플 대학에는 마크 메이콘(193cm, 전 덴버 너게츠)이라는 득점기계, 팀 페리(206cm, 전 피닉스 선스)라는 좋은 센터와 벤치에는 미완의 기대주 213cm의 장신 센터 듀언 코스웰(전 새크라멘토 킹스)이 버티고 있었다. 템플 대학은 전미 랭킹 1위를 차지했고 동부 지역 1번 시드로 NCAA 토너먼트에 올랐다. 1라운드에서 리하이 대학을 87-73, 2라운드에서 조지타운 대학을 74-53으로 제압한 템플 대학은 16강에서 돌풍의 리치몬드 대학을 잡고 동부 지역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젊은 애송이였던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이 이끌던 2번 시드 듀크 대학이었다. 당시 듀크 대학은 대니 페리(전 애틀랜타 호크스 단장)라는 걸출한 슈퍼스타가 있었고 빌리 킹(전 필라델피아 76ers, 브루클린 네츠 단장), 퀸 스나이더(현 유타 재즈 감독), 알라 압델나비 등 스타들이 즐비한 팀이었다. 템플 대학은 전반을 28-25로 앞섰지만 페리와 케빈 스트릭랜드가 터진 듀크 대학에게 아쉽게 53-6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1991년 동부 컨퍼런스 10번 시드였던 템플은 이변을 일으키며 다시 엘리트 8에 올랐지만 1번 시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게 72-75로 석패해 또 한 번 파이널 4행이 좌절되었다. 2년 후인 1993년에도 애런 맥키, 에디 존스, 릭 브런슨을 이끌고 엘리트 8에 올랐지만 크리스 웨버(전 새크라멘토 킹스), 제일런 로즈(전 인디애나 페이서스), 주안 하워드(전 워싱턴 위저즈) 등 ‘팹 파이브(Fab 5)’가 버틴 1번 시드 미시건 대학에게 72-77로 졌다. 이 멤버는 한 시즌 더 대권에 도전해지만 2라운드에서 5번 시드 인디애나 대학을 만나 덜미(58-67)를 잡혔다.
이후에도 템플 대학은 린 그리어(전 밀워키 벅스), 케빈 라이드, 론 롤러슨 등을 앞세워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 더 엘리트 8에 올랐지만 끝끝내 파이널 4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5-2006시즌 템플 대학은 17승 16패에 A-10 컨퍼런스 공동 7위에 그쳤고, NIT 1라운드에서도 탈락했다. 이후 체이니는 “나는 내가 언제 물러나게 될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템플 대학과 팬들 그리고 지역사회에 제가 사랑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게 허락해준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에게 이 일은 단지 직업이 아닌 열정이었다”라며 템플 대학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템플 감독 재임 중이던 2001년, 네이스미스 기념 농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체이니는 2006년 NCAA 농구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으며 확실한 명장으로 인정을 받았다. 비록 기자회견 중 상대 감독을 맹비난하는 등 논란도 있었지만, 선수들에게만큼은 원칙과 소신을 바탕으로 팀 플레이를 지도했던 스승이었다.
존 체이니(John Chaney) 프로필
132년 1월21일 플로리다州 잭슨빌 출생
1982~2006년 템플 대학 감독NCAA 디비전 I 통산 516승2 53패(.671), 1978년 NCAA 디비전 II 토너먼트 우승, NCAA 토너먼트 엘리트 8 진출 5회(1988, 1991, 1993, 1999, 2001년)|A-10 우승 8회, A-10 토머너트 우승 6회1978년 NCAA 디비전 II 올해의 감독
1987, 1988년 헨리 아이바 상 수상1987 USBWA 올해의 감독1988년 NABC 올해의 감독, AP 올해의 감독, UPI 올해의 감독, USBWA 올해의 감독, A-10 올해의 감독 5회2001년 네이스미스 기념 농구명예의 전당 헌액2006년 대학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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