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길의 명장열전] 가장 저평가된 감독 '제리 슬로언'

최연길 / 기사승인 : 2016-04-14 0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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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연길 칼럼니스트] 제리 슬로언은 NBA 역대 최고 명장 중 한 명이지만 저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슬로언이 1,200승 이상을 거둬 NBA 역대 최다승 부문 3위에 올랐지만 단 한 번도 「올 해의 감독」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도 그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증거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유타 재즈는 1997년과 1998년 두 차례 파이널에 오르는 등 90년대의 강호로 군림했다. 비록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게 지면서 우승은 실패했지만, 시카고 왕조에 두 번이나 도전했던 팀은 유타가 유일하다. 그 유타의 수장이 바로 제리 슬로언이다


슬로언이 명장인 이유
제리 슬로언은 NBA에서 가장 작은 시장 중 하나인 유타의 감독으로 수많은 성과를 만들었다. 1997년과 1998년 2차례나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을 차지하며 2년 연속 파이널에 올랐고, 1989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1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성공했다. NBA 역사상 15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오른 감독은 그렉 포포비치(샌안토니오 스퍼스), 팻 라일리(LA 레이커스, 뉴욕 닉스, 마이애미 히트), 필 잭슨(시카고, LA 레이커스) 감독뿐이다. 물론, 이들 중 유일하게 챔피언십 반지가 없는 인물은 슬로언 뿐이라는 것이 다소 아쉽다.


슬로언은 NBA에서 통산 1,221승을 거둬 명장열전의 주인공이었던 돈 넬슨, 레니 윌킨스에 이어 최다승 부문 3위에 올라있다. 이중 우승을 한 감독은 윌킨스(1979년)뿐이다. NBA 역사상 1,00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은 넬슨과 윌킨스, 라일리 등 9명이 있지만, 한 팀에서 1,000승을 챙긴 지도자는 포포비치와 슬로언 밖에 없다. 1988년 유타의 감독으로 부임한 슬로언은 유타에서만 23년을 지내며 1,127승을 챙겼다. 이 역시 NBA 역대 최다기록이다.


그가 남긴 기록은 이게 끝이 아니다. 슬로언은 시카고에서 지낸 3시즌을 포함, NBA에서 26시즌간 감독을 지냈다. NBA 역사상 26시즌 이상 감독을 지낸 인물은 윌킨스(32시즌), 넬슨(31시즌), 조지 칼(27시즌) 뿐이다. 더 놀라운 건 기복이 없었다는 점이다. 유타에서 23시즌을 지내는 동안 승률이 5할 아래로 떨어진 시즌은 2004-2005시즌, 딱 한 번뿐이었다. 50승 이상을 기록한 시즌도 12번이나 되고, 그 중 3번은 60승 고지를 넘어섰다. 이렇듯 슬로언이 대단한 성과를 이뤘음에도 「올 해의 감독」에 오르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그가 저평가를 받는 이유
사실 필자와 점프볼 편집부도 반성을 해야 할 대목이다. 이런 인물이 이제야 소개가 되니 말이다. 필자와 손대범 편집장이 명장열전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조차 슬로언이 남아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인지했을 정도이니, 우리도 그를 저평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앞서 거론된 대부분의 감독들이 「올 해의 감독」이 됐지만, 슬로언은 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물론, 휴스턴 로케츠를 2번이나 우승시켰던 루디 탐자노비치 감독도 이 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올 해의 감독」상은 타이밍과 운이 잘 따라줘야 한다. 슬로언 감독에게는 아쉽게도 그 두 가지가 따르지 않았다.


처음 60승 고지에 올랐던 1994-1995시즌에는 LA 레이커스 델 해리스에게 밀렸다. 해리스는 매직 존슨 은퇴 후 휘청대던 레이커스를 다시 플레이오프 진출팀으로 만들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1996-1997시즌에 유타를 64승에 올렸을 때는 마이애미 히트의 팻 라일리에게 상을 뺏겼다. 라일리는 마이애미의 전면 체질개선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동부 컨퍼런스 강팀을 탄생시켰다. 1997-1998시즌에는 어땠나. 62승 20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래리 버드라는 신예에게 밀렸다. 버드는 감독으로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시카고에 필적할 만한 팀으로 올려놓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 뒤에도 슬로언은 지속적으로 상의 유력한 후보로 올랐다. 존 스탁턴이 떠난 뒤 유타를 성공적으로 리빌딩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슬로언이 저평가를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우승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슬로언은 1997년과 1998년 두 차례 파이널에 올랐지만, 하필 상대가 시카고 불스였다. 만일 유타가 시카고를 꺾었다면 그에 대한 평가도 당연히 지금보다 높아졌을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그가 NBA에서 가장 작은 시장의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슬로언이 뉴욕이나 LA, 시카고 같은 빅마켓에서 이런 성적을 거뒀다면 「올 해의 감독」에 뽑히거나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역시 작은 시장인 인디애나에서 「올 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래리 버드도 있고, 샌안토니오에서 상을 받은 포포비치도 있지 않느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버드는 슈퍼스타 출신이라는 이점이 있었고, 포포비치도 우승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다.


슬로언이 저평가를 받는 네 번째 이유는 칼 말론과 존 스탁턴이라는 당대 최고의 콤비 때문이란 말도 있다. 말론과 스탁턴의 픽앤롤 플레이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그 뒤에 슬로언이 있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말았다. 슬로언은 말론과 스탁턴이 떠난 후에도 데런 윌리엄스, 안드레이 키릴렌코, 카를로스 부저를 이끌고 2007년 서부 컨퍼런스 결승전까지 오르며 실력을 입증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꾸준함이 오히려 독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너무 꾸준하다보니 돈 넬슨이나 팻 라일리처럼 바닥권 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주목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슬로언의 농구철학
슬로언이 이끄는 유타의 대표 전술은 픽앤롤(Pick-and-Roll)일 것이다. ‘알고도 당한다’는 이 전술은 말론-스탁턴 시대를 거쳐 윌리엄스와 부저가 계승했다. 포스트업이 지배하던 1980년대 유타의 픽앤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 2010년대 NBA뿐 아니라 전 세계 농구의 주류가 픽앤롤이 되었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말론과 스탁턴 이전에도 픽앤롤은 존재했다. ABA의 래리 브라운과 덕 모 콤비의 주무기도 픽앤롤이었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픽앤롤은 중요한 전술 중 하나였다.


하지만, 픽앤롤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유행시킨 주역은 슬로언과 말론 그리고 스탁턴이었다. 당시 유타의 장내 아나운서 댄 로버츠의 멘트의 절반이 ‘우체부가 배달합니다!(The Mailman delivers!)’와 ‘스탁턴이 말론에게(Stockton to Malone)’였을 정도로 유타의 픽앤롤은 수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슬로언은 단순히 이 두 선수의 픽앤롤에만 의존하는 감독은 아니었다. 두 선수가 스트롱사이드에서 픽앤롤을 하는 동안에 준비된 위크사이드 플레이는 6개가 있었을 정도로 슬로언은 5명이 모두 함께 뛰는 플레이를 중시했다.


또, 많은 팬들은 유타가 2000년대 중반 보여주었던 모션 오펜스를 기억할 것이다. 슬로언은 플렉스 오펜스(Flex Offense)를 즐겨 사용했는데, 슬로언이 쓰던 1-4 플렉스 오펜스는 모션 오펜스의 일종으로, 베이스라인에서 스크린을 받아 페인트존을 가로질러 반대편 골밑으로 컷하는 플렉스 컷을 활용한 공격법으로 셔플오펜스처럼 반대편에서 다시 같은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컨티뉴이티 오펜스(Continuity Offense) 중 하나기도 한다. 또한 슬로언은 존 우든의 UCLA 컷 플레이도 즐겨 사용하곤 했다.


현역 시절 리그를 대표하는 수비수였던 슬로언은 감독이 되어서도 강력한 수비력을 발휘했다. 슬로언 재임 동안 유타는 득점뿐 아니라 실점 부문에서도 상위랭크될 정도로 공수 균형이 좋은 팀이었다. 이러한 슬로언의 영향으로 말론과 스탁턴은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면서도 올-NBA 디펜시브 팀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슬로언이 좋은 감독이라는 증거 중 하나는 무명의 선수들을 좋은 선수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유타가 큰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슈퍼스타들이 원하는 구단도 아니었고 재정적으로 슈퍼스타들을 영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슬로언은 마크 이튼, 하워드 아이즐리, 섄던 앤더슨, 브라이언 러셀, 폴 밀샙 등 무명이었던 선수들을 발굴해 스타로 만들었다.



오리지널 불(Original Bull)의 일원
1942년 일리노이 주(州) 맥클렌스보로에서 태어난 슬로언은 맥클렌스보로 고등학교를 나와 1962년 인디애나에 위치한 에반스빌 대학에 입학했다. 1965년 에반스빌 대학을 졸업한 슬로언은 1965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4번으로 볼티모어 불리츠에 지명을 받았다. 1965-1966시즌 볼티모어에서 59경기를 뛰며 5.7득점, 3.9리바운드, 1.9어시스트를 기록한 슬로언은 다음해 신생구단이자 고향팀인 시카고 불스에 확장 드래프트 지명을 받아 이적하게 되었다.


그렇게 슬로언은 시카고 불스의 창단 멤버가 됐고, 그렇기 때문에 ‘오리지널 불(The Original Bull)’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6cm, 88kg의 슬로언은 강력한 수비와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시카고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66-1967시즌 경기당 17.4득점, 9.1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한 슬로언은 1967년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팀을 창단 첫 해에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으며 영웅이 되었다. 또한 슬로언은 강력한 수비 덕분에 ‘스파이더(Spider)’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다. 1968-1969시즌을 포함 통산 4차례나 NBA - 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들었고, 세컨드 팀에도 2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슬로언은 시카고의 또 다른 스타였던 밥 러브와 시카고를 빠르게 강호로 변모시켰다. 1971-1972시즌 시카고는 57승 25패로 중서부 지구 2위에 올랐고 1973-1974시즌에는 처음으로 서부 컨퍼런스 결승전까지 올랐다. 또한 1974-1975시즌에는 47승 35패로 중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등 빠르게 리그의 강호로 성장해 나갔다.


그러나 1975-1976시즌 슬로언은 무릎 부상으로 22경기를 출장하는데 그쳤고, 결국 33살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해야 했다. 시카고에서 10시즌 동안 슬로언은 경기당 14.7득점, 7.7리바운드, 2.6어시스트, 2.2스틸을 기록했고 두 차례 올스타와 6차례 올-NBA 디펜시 브팀에 선정되며 시카고 불스 최초의 슈퍼스타로 기억되었다. 등번호 4번도 영구결번됐다.


은퇴 후 시카고 스카우트와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냈던 슬로언은 1979년에 감독으로 승진했다. 1980-1981시즌, 시카고를 45승 37패로 이끌며 중부 지구 2위로 견인한 슬로언은 시카고를 4년 만에 다시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으며 감독으로서도 능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1981-1982시즌 시카고가 19승 32패로 난조에 빠지자 시카고 구단은 슬로언을 해고했다.



시카고를 적으로 만나다
시카고에서 사임한 슬로언은 유타 재즈의 스카우트로 1년 동안 활동하다 1984년 CBA의 에반스빌 썬더의 감독을 지내다 다시 어시스턴트 코치로 유타로 돌아왔다. 당시 유타의 감독 겸 단장이던 프랭크 레이든 감독은 리그에서 많은 존경을 받던 지도자였는데, 말론과 스탁턴을 지명한 인물로도 유명했다. 레이든은 슬로언의 능력을 일찌감치 알아봤고 그에게 많은 것을 전수해주었다. 1988년 레이든이 유타 재즈 구단의 사장으로 부임하자 레이든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당연히 슬로언이었다.


슬로언은 레이든이 구성한 토대 위에서 팀을 빠르게 발전시켜나갔다. 스탁턴과 말론, 이튼은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었고 팀도 점점 강해졌다. 1991-1992시즌 유타는 55승 27패로 중서부 지구 1위를 차지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승승장구하며 LA 클리퍼스와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제압하고 서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올랐다. 비록 유타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게 2승 4패로 패했지만 자신들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 올랐던 유타는 1996-1997시즌 64승 18패로 구단 역대 최다승을 기록하며 서부 1위에 올랐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유타는 강했다. 1라운드에서 클리퍼스를 3전 전승으로 제압한 유타는 2라운드에서도 샤킬 오닐이 버틴 레이커스를 4승1패로 꺾었고 서부 결승에서는 찰스 바클리, 하킴 올라주원,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버틴 휴스턴 로케츠를 4승 2패로 제압하며 창단 이후 처음으로 NBA 파이널에 올랐다.


파이널에서 만난 상대는 슬로언의 친정 시카고였다. 당시 시카고는 마이클 조던, 데니스 로드맨, 스카티 피펜이 버티던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경험이 부족했던 유타는 홈에서 열린 3,4차전을 잡는 등 선전했지만 2승 4패로 패해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1997-1998시즌에도 유타는 여전히 강했다. 62승 20패로 서부 컨퍼런스 1위를 차지한 유타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다시 휴스턴을 3승 2패로 울렸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레이커스를 연파하며 2년 연속 파이널에 올랐다. 이번에도 파이널 상대는 시카고였다. 시카고도 유타와 같은 62승 20패를 기록했지만 상대전적에서 앞서는 유타가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졌다.


당시 NBC에서 중계를 맡았던 밥 코스타스의 ‘시카고가 최강의 적을 만났다’는 오프닝 멘트처럼 유타는 강했고 자신감도 넘쳤다. 유타는 정규시즌에 시카고는 두 번 모두 잡았고 홈코트 어드밴티지와 파이널의 경험까지 더해 이번만큼은 시카고를 잡고 창단 이후 첫 우승을 거두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유타는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시카고를 88-85로 잡고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하지만 2차전을 시카고가 93-88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3차전이 더욱 중요해졌다. 시카고의 필 잭슨 감독은 당시 변칙적인 수비를 들고 나와 존 스탁턴에서 시작되는 유타의 픽앤롤을 봉쇄했다. 스탁턴이 하프라인을 넘기 직전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이 더블팀을 준비하며 스탁턴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고, 스카티 피펜이 일리걸 디펜스가 불릴 수도 있는 위치에서 스탁턴을 견제하며 픽앤롤을 무력화시켰다. 경기 후 슬로언 감독은 심판들이 피펜의 수비를 일리걸 디펜스로 불지 않은 것에 공개적으로 비난을 했지만, 이미 시리즈 분위기는 시카고로 넘어간 후였다. 이후 슬로언 감독은 픽앤롤을 최소화시키고 말론의 포스트업을 적극 활용하는 전술 변화를 주면서 시리즈 전적 2승 3패까지 따라붙었지만, 6차전에서 다 잡았던 경기를 그 유명한 조던의 ‘더 샷’에 넘겨주며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말론과 스탁턴 시대 이후에도 슬로언은 리빌딩에 성공하며 유타를 강호로 유지시켰다. 하지만 데런 윌리엄스와의 불화로 2011년 중반 감독에서 사퇴했다. 비록 결별 과정은 잡음이 있었지만, 누구도 슬로언의 업적과 노력을 모른 채 하지 않았다. 유타는 슬로언이 기록한 1,223승(플레이오프 96승 포함)을 기리며 1,223번을 영구결번 시켰다.



제럴드 유진 슬로언 프로필
1942년3월28일 일리노이州 맥클렌스보로 출생
에반스빌 대학 졸업
1965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4번 볼티모어 블리츠 지
NBA 통산 10, 571득점, 5,615리바운드, 1,925어시스트
NBA 올스타 2회(1967, 1969)
올-NBA 디펜시브 퍼스트팀 4회, 세컨드팀 2회
등번호 4번 시카고 불스 영구결번
1223번 유타 재즈 영구결번
NBA 감독 통산 1,221승803패(승률 .603)
NBA 플레이오프 통산 98승104패(.485)


#사진_NBA 미디어센트럴, 일러스트_광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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