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선아 기자] 농구 없는 농구선수 이야기 ‘NO’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 김선형의 입에서는 항상 ‘YES’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가 이렇게 외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농구 실력까지 갖춘 우리가 원하고 바라던 김선형.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선형의 탄생기랄까
‘YES맨’ 김선형의 이야기를 영웅기처럼 소개하면 어떨까 잠시 생각했다. 어쨌든 김선형은 현재 농구 무대를 주름잡는 슈퍼스타니까. 주눅이 드는 법이 없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슈퍼맨’의 모습에 농구팬들의 사랑도 따른다. 어릴 때 김선형은 작은 슈퍼맨이었을까? 아니면…
Q.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
아기 때 기어 다니는 게 상당히 빨랐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어릴 때 실종 신고를 2번이나 할 정도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부모님께서 하루 종일 찾아다닌 뒤 놀이터 구석에서 찾을 정도로 개구쟁이기도 했다.
Q. 그렇다면 장난기도 많았을 것 같다.
증조할머니께서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어릴 때 라이터 켜는 법을 알게 됐는데, 할머니가 앉은 자세일 때 뒤에서 불을 붙여, 할머니 옷을 구멍 나게도 했다더라. 또 계단으로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구르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했다. 계단에서 굴렀을 때는 젖도 못 먹고 죽을 뻔했다고 하더라. 머리에 짱구가 있는데, 그때 영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없고, 모두 부모님께 전해들은 이야기다.
Q. 머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관련된 이야기도 묻겠다. 머리가 굉장히 작다. 여기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없는가?
모자를 사러 가서 제일 작은 것을 썼는데도 사이즈가 남았다. 그래서 직원이 ‘키즈쪽 매장에 가라’고 하더라. 프로에 오기 전까지는 머리가 작은지 몰랐다. 이런 것을 언급하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확실히 프로에 오니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제는 사진 찍을 때도 습관이 생겼다. 팬들과 사진을 찍을 때는 약간 앞으로 간다.
Q. 학창시절도 돌아가자. 개구쟁이 모습이 학창시절 내내 이어졌는가?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엄청나게 내성적이었다. 낯을 정말 많이 가렸다. 사람 만나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다. 성격은 운동하면서 달라졌다. 나중에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Q. 개구쟁이 아들에 내성적인 아들. 부모님께서 고생하셨을 것 같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가?
아버지는 목사님이다. 엄격하시다. 인성교육도 많이 받았고, 사춘기 때 삐뚤어질 수도 있었는데, 바로 잡아주셨다. 남자인데도 고등학교 때까지 통금 시간이 밤 11시였다. 고등학교 1,2학년 때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사람이 먼저 되어야지’라고 하시며 농구를 그만두라고 하셨다. 핸드폰도 빼앗기고 말이다. (우리가 농구계의 큰 별을 놓칠 뻔했다)
Q. 그렇다면 중간에서 어머니의 중재자 역할이 중요했을 것 같다.
중재를 많이 하셨다. 그때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어머니께 이야기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저 죄송스럽다.
Q.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보수적이신가? 사실 김선형 선수는 그런 느낌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보수적이시다. 내가 29살이지만, 운동선수인데 ‘싸움이 날까?’ 등 걱정이 많으시다. 외박하는 것도 정말 싫어하신다. (오)세근이 형(KGC인삼공사)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께서 비슷하다. 대학교 때도 이상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냥 YES는 NO! 노력으로 이룬 YES!
“잡기에 능하다.” 김선형이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다. 농구만이 아니라, 춤, 노래까지 재주가 많다. 그런데 이 실력이 타고난 게 아니라고 한다. 스스로 알을 깨고 ‘YES맨’이 된 김선형이다.
Q. 김선형 하면 춤이 떠오른다. 원래부터 소질이 있었는가?
대학교 때까지 내가 몸치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여학생 총회에서 농구부 공연을 부탁해서 춤을 추게 됐다. 1학년 중 춤을 잘 추는 친구가 있었고 부탁해서 2PM의 ‘AGAIN&AGAIN’을 연습했다. 그때 내가 만들어 추는 것은 안되지만, 따라 하는 것은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양지바른 송년회 때도 춤을 부탁했다.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를 부탁했는데, 나도 기억이 잘 안 나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엑소의 ‘으르렁’을 동영상을 보며 연습했다. 운동 마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했는데 2주 정도 하니까 1절 정도는 하더라. 공연 때 반응이 좋았다. 나 스스로 100점 만점은 아니지만, 혼자 한 것을 감안하면 80점은 될 것 같다.
Q. 소화하는 곡이 많다. 올스타전에서 EXID의 ‘위아래’에 맞춰 춤을 췄고, SK 홈 경기장에서 ‘나팔바지’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도 봤다.
가르쳐 주시는 치어리더분께 ‘왜 어려운 것을 시키느냐’라고 했는데,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하더라. ‘위아래’는 (이)현석이가 배우는 게 신기해서 알려주다가 알았다. 그래서 올스타전 때 ‘위아래’ 노래에 맞춰 춤추라고 할 때 출 수 있었다. 더 완벽하게 했어야 했는데 준비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Q. 끼로 뭉친 김선형 선수가 보는 올스타전 공연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신인들이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준비 시간이 너무 짧지 않았나 생각했다. 이틀 동안 연습했다고 하던데, 더 연습을 시키던지 본인이 더 노력해야 멋있는 공연이 나올텐데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내가 올스타전 공연을 준비할 때는 댄스 아카데미에서 일주일 동안 연습했다. 그래서 완성도가 높았던 것 같다(웃음).
Q, 이번 올스타전 행사에서는 어떤 게 제일 맘에 들었는가?
셔틀버스를 탄 게 제일 좋았다. 선수들이 버스틀 타고 안내원처럼 팬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팬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팬 분 중 한 명이 ‘우리 애를 농구 시킬 생각인데 키는 어떻게 해야 클 수 있나’라고 물으셨다. 그때 키는 ‘80% 이상이 유전이다’라고 말했다. (냉정한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무작정 꿈만 좇으라고 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이야기해줘야 한다.
+여기 농구 잇슈! 올스타전에 관한 김선형의 생각
“예전처럼 중부와 남부로 나눠서 경기하면 좋겠다. 또 이번 올스타전처럼 경기가 치열했으면 한다. 덩크슛과 3점슛 콘테스트에서는 선수들에게 몸을 풀 충분한 시간을 줬으면 한다. 너무 앉아 있다가 하면 몸이 안 풀린 상태다. 콘테스트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충분히 몸 풀 시간을 주고, 준비한 다음에 콘테스트를 했으면 한다.”

Q. 뭐든 하면 제대로 하는 성격인 것 같다.
어설프게 하는 것은 싫다. 빼는 것도 싫다. ‘나 못해요’ 이런 것을 싫어하고, 빼는 사람도 싫다. 나는 빼는 것을 못해서 항상 준비한다.
Q. 다재다능한데 준비도 철저하다.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영이다. 나는 육지 체질이다.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답답하다. 뜨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정식 수영은 못한다. 나는 그저 잡기에 능한 사람이다. 이것저것 조금씩 잘한다.
Q. 재능 중에 빠뜨린 게 아직도 많다. 게임도 잘한다고 들었다.
휴대전화 게임을 좋아한다. 너무 중독성이 강한 게임은 안 하고, 휴대전화 게임은 심심할 때 잠깐하고 그만할 수 있어서 한다. 그런데 승부욕이 강해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 집중하면 잘하게 된다. 내가 하나의 게임을 시작한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접는다. 나는 내가 잘할만한 게임만 한다. 모든 게임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흡수력이 좋은 것 같다. 뭐든 알려주면 포인트를 잡는다.
Q. 노래도 빠질 수 없지 않은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 예전보다 노래가 늘었다. 비강(*코의 등쪽에 있는 코 안의 빈곳)을 써야 한다. 이걸 쓰면 그냥 노래하는 것보다 성량이 훨씬 좋게 나온다. 배운 것은 아니고, 예전에 강의를 찾아봤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강좌 같은 것을 몇 번 봤다. 예전에는 이해가 안 갔는데, 노래가 늘다 보니 이해가 되고 더 연습도 한다. 나는 노을 노래를 좋아해서 많이 부르는데, 노래 부를 분위기가 어떤지에 따라 바로바로 곡을 선곡한다. 농구장에는 힙합이 어울리는데, 나는 랩 발음을 소화하기 힘들다. 엉키고 엉켜서 하하. 나는 발라드를 해야 한다.
Q. 선정까지 고려한다면, 점프볼 독자들을 위해 추천곡 하나를 부탁한다. 어떤 자리든 사랑받을 수 있는 노래가 있을까.
너무 식상하지 않은데 괜찮은 노래가 있다. (이후 한참 고민)비트가 약간 있어야 한다. 노래가 너무 처지면 안 된다. ‘모나리자’ 이런 것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무반주로 불러도 박수가 나올 것이다. 이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른들이 있는 자리든 어느 자리에서나 통할 것이다.
+ +여기 농구 잇슈! 김선형의 가무에는 룰이 있다!
“인터뷰 할 때 계속 노래를 시키더라. 처음에는 계속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매일 노래만 하면 식상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하는구나. 다른 모습이 있네’라고 하지만, 다음에도 다 다음에도 계속 보여주면 ‘제는 매번 똑같다’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김선형의 진짜 YES
수없이 YES를 외치는 김선형. 그의 진짜 YES는 어디에 있을까. 김선형이 좋아하는 그것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찾아든 보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이것도 그의 진짜 YES가 됐다.
Q. 휴식할 때는 무엇을 하는가?
방 탈출 카페에 빠졌다. 방 안에 들어가서 60분 안에 힌트를 풀면 자물쇠가 나온다. 숫자, 알파벳, 방향키 등 버튼을 하나씩 풀 때마다 새로운 단서가 나와서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는 카페다. 마지막 자물쇠를 열면 방을 나가면 되는 것이다. 못 깨면 60분 뒤에 사람이 와서 문을 열어주는 데 정말 굴욕적이다. 여기에 빠져서 외박만 나가면 방 탈출 카페에 간다. 서울에 30개 정도가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도 자주 간다. 5명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데, 결국 푸는 사람만 푼다. 농구하는 친구들과도 가려고 하는데 브레인이 없다(웃음). 나는 직감으로 하는 스타일이다. 수학에 약해서 가끔 수학 문제가 나오면 막힌다. 분야마다 특화된 사람이 따로 있다. 3명이 가면 딱 좋다.
Q. 그럼 학창 시절에 흥미를 가졌던 과목은 무엇인가?
없었던 것 같다. 흥미가 있었으면 그것을 했을 것이다. 체육 시간을 기다렸다. 쉬는 시간이 10분인데 나가서 뭐라고 하고 들어왔다.
Q. 그럼 농구가 아니었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은가?
축수 선수?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YMCA에서 축구를 했다. 클럽 팀이었는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지금 내가 춤과 노래에 흥이 많지만, 어릴 때 그런 쪽으로 배웠다고 해도 얼굴이 안 된다. 방송에 맞는 얼굴부터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다른 것을 하지 못한 것에 후회는 없다. 농구할 때가 제일 즐겁다.
Q.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들었다.
항상 생각은 있었는데, 생각만 해서 문제였다. 구단에서 진행하는 봉사만 다녔다. 그러나 이번에 양지바른에서 봉사활동 하게 되며 뿌듯함을 크게 느꼈다. 처음에는 장애인과 일반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가면서 부담도 되고 나를 어떻게 볼까도 걱정했다. 하지만 내 진심을 알아줄 것으로 생각했다. 첫날부터 몸에 알이 배길 때까지 땅을 파고, 창문을 닦고, 식자재를 손질했다. 워낙 많은 봉사자들이 다녀갔기에, ‘얘도 시간 때우러 왔구나’라고 생각하시고 관심도 없으셨다. 그러다가 봉사활동 한 지 일주일이 지난 뒤부터 달라지셨고, 아이들과 문경새재에 여행을 다녀오면서 서로 간의 벽을 깨버렸다. 지금은 정말도 새로운 식구를 얻은 것 같다. 코치님과도 양지에는 내 숙소가 2개라고 한다. 양지바른과 양지 SK 숙소다. 정말 가족 같다. 5분 거리라서 애들 얼굴 보고,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러 자주 간다. 예전에는 항상 낮잠을 많이 잤는데 지금은 낮잠도 안 잔다. 처음에는 내 바이오리듬이 있어 피곤했는데, 적응이 되다보니 안자도 운동할 수 있다. 좀 더 힘들다고 하더라도 값진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
Q. 농구를 잠시 쉬는 일도 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봉사활동을 하게 됐고 인생 전체로 볼 때는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일 것 같다.
터닝포인트다. 전화위복이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일이 없었다면 내가 한 단계 성숙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농구의 소중함,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법, 양지바른 식구들도 못 만났을 것이다. 그 세 가지만 해도 나에게 엄청난 의미가 된다.
Q. 시즌을 일찍 마무리하게 된다. 휴식이 주어질 때 하고 싶은 게 있는가?
많이 힘들지만, 먼저 시즌을 잘 마무리하겠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처음인데 재미있을 것 같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이 기대되고 걱정되고 부담도 된다. 이번에 프로에 데뷔한 뒤 처음으로 2달 정도 쉬어봤다. 개인 운동은 했지만, 두 달 정도 쉬고 시즌을 치르니 밸런스나 체력적으로는 정말 좋았다. 쉬는 게 왜 중요한지도 느꼈다. 몸 관리나 식습관도 많이 바뀌었다.
Q. 몸관리에 소홀했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바뀌었다는 말인가?
예전에는 음식도 나한테 맛있는 것, 떡볶이 이런 분식류를 즐겨 먹었다. 요즘은 전복, 장어, 삼계탕을 먹는다. 그전에는 안 좋아했다. 그런 게 요즘 이런 것을 먹으니 몸이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든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다. 신기하다. 몸 관리를 미리미리 해놔야 한다. 나중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신기하다.
Q. 앞으로 김선형의 인생은 어떻게 설계하고 싶은가? 전보다 단단한 설계를 했을 것 같다.
특별한 삶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공인이라서 그간 너무 보여주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번에 많이 느꼈다. 남들 시선보다는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 떳떳한 삶을 살면 알아서 인정해줄 거라 본다. 내가 오히려 ‘인정해주세요’라는 것보다도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면 인정해준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DATA 생년월일 1988년 7월 1일, 신장 187cm, 출신교 중앙대, 소속 서울 SK 나이츠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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