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 편집부] 구본근(41) 울산 모비스 과장. 그는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농구선수였다.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연세대 농구부원이었고, CF도 수차례 찍었다. 선수생활을 접은 지 어느덧 햇수로 15년. 그 사이 명함도 여러 번 바뀌었다. KBL 최연소 코치, 매니저…. 이제는 어엿한 사무국의 베테랑 일원으로 모비스의 명가재건을 함께하고 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오해의 시선
1998 신인 드래프트 전체 10순위로 대전 현대에 입단한 구본근 과장은 계약기간인 5년 중 4년만 선수로 뛴 후 은퇴했다. 전주 KCC 소속으로 19경기 평균 2분 40초를 소화한 2001-2002시즌 기록이 선수로서 마지막 발자취다. 부상 때문에 은퇴가 빨랐던 것은 맞다. 다만, 구본근 과장은 여전히 남아있는 오해를 풀어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지금도 대학 때 입은 부상 때문에 일찍 은퇴한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는 영화감독님도 ‘네 얘기를 영화로 하면 재밌을 것 같다’라고 하실 정도였죠. 실은 무릎을 다쳐서 2번이나 수술했어요. 프로에서 외국선수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기도 했고요.” 구본근 과장의 말이다.
구본근 과장은 연세대 재학시절이던 1994-1995시즌 농구대잔치 삼성전자와의 8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인생경기’를 펼쳤다. 생애 첫 덩크슛 포함 19득점 9리바운드, 이름을 알린 것. 하지만 경기에서 온 힘을 쏟아 부은 데다 석연치 않은 패배를 당한 탓일까. 구본근 과장은 경기종료 후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구본근 과장을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로 보도했고, 한 번 새겨진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농구대잔치 세대를 기억하는 분들은 요새도 ‘몸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봐요. 지금은 아픈 곳 하나 없죠. 살 쪄서 후덕해지기 했지만…(웃음).”
KBL 최연소 코치…그 뒤의 오묘한 감정
2002년, 구본근 과장의 인생이 바뀌었다. 구본근 과장은 KCC와 모비스의 3대3 트레이드에 의해 연세대 은사 최희암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모비스로 이적했다. FA(자유계약) 취득을 1년 앞두고 시즌을 준비할 때쯤, 구본근 과장에게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박승일 코치의 뒤를 이어 코치를 맡아달라는 게 최희암 감독의 요청이었다. 그렇게 구본근 과장은 KBL 역대 최연소인 만 27세에 코치가 됐다. 다만, 빼앗은 자리는 아니지만 박승일 전 코치에 대한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은 계속해서 남아있단다. “아직까지도 (박)승일이 형에게 미안해요. 제 중·고·대학 선배거든요. 승일이 형이 그렇게 된 것도, 연락 자주 못 드리는 것도…. 전부 다 미안하죠.”
사실 계약기간이 1년뿐이었던 구본근 과장으로선 선택의 폭도 넓지 않았다. 무릎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남들보다 빨리 지도자 경험을 쌓는 것도 혜안이 될 수 있었다. 전력분석원이 없던 시절 새벽 3시까지 서장훈의 공격 유형을 담은 비디오를 만든 것도 지금은 웃으며 말하는 추억이다. 선수 가운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가 7명에 달했지만, 이로 인한 고충은 크지 않았다. “(오)성식이 형이 선수들을 불러 모아 ‘사석에서는 편하게 대해도 코트에서는 전부 코치님이라고 불러’라며 교통정리를 해주셨죠. 그래도 성식이 형이랑 (정)인교 형은 끝까지 반말로 부르더라고요(웃음).”
구본근 과장이 말하는 양동근
구본근 과장에게 코치 시절을 묻자 그는 “감독님 밑에서 농구를 배우는 게 재밌더라고요. 매력적인 직업이죠”라고 추억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1년 만에 매니저로 바뀌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코치를 맡게 된 것에 대해 주위에서 말도 많았다. 당시 모비스는 리그 최하위로 추락했지만, 이후 두 가지 ‘큰 변화’를 통해 명가재건의 초석을 다졌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양동근을 지명했고, 2003-2004시즌 종료 후에는 전자랜드를 이끌던 유재학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구본근 과장은 양동근은 신인시절부터 범상치 않은 선수였다고 돌아봤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양)동근이는 감독님의 충고를 포스트잇에 적어 화장실, 천장, 벽 등 자신의 시야가 닿는 곳곳에 붙였어요. 단순히 메모만 있는 게 아니라 공 투입할 때 궤적을 점선으로 그려 넣을 정도였죠. 몸 관리 때문에 피자도 안 먹어요. 회사에 동근이를 주제로 발표를 하기도 했죠. 이런 선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게 지금도 (가슴이)벅찹니다. 처음 봤을 때는 ‘얘가 진짜 1순위 맞나?’ 싶기도 했지만…(웃음).”
유재학 감독 부임 이후, 모비스는 KBL을 대표하는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끈끈한 조직력이 팀 컬러로 자리 잡은 가운데 유재학 감독의 장악력, 양동근의 활약까지 더해 2006-2007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원년시즌 이후 정확히 10년 만에 달성한 V2였다. “감독님 공이 가장 크죠. 감독님은 외국선수라고 관대하게 대하질 않아요. 약속시간에 1분만 늦어도 바로 구단버스를 출발시켜요. 사소해보이지만, 팀 기강을 잡는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동기 이동남의 조언(?)
모비스는 함지훈이 군 제대한 2009-2010시즌, 통산 3번째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쯤 구본근 과장은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었다. 매니저 이외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 일을 더 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죠. 매니저라는 게 선수들 챙겨주는 역할을 하는 건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막내 선수들에게 일을 시키더라고요. 그만둘 생각을 하고, 고향(대전)에 농구교실을 차리고 2년 동안 운영했어요. 지도자에 대한 욕심도 있던 때라 진로를 이쪽으로 바꾸려 했죠.”
구본근 과장의 인생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온 건 2009-2010시즌 우승 직후 가진 축승회 현장이었다. 유재학 감독이 직접 부회장에게 구본근 과장의 사무국 발령을 부탁한 것. 이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구본근 과장은 농구단 예산 및 티켓판매를 담당하는 대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너무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민도 많이 됐죠. 지도자라는 분명한 목표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마음을 잡았냐고요? 대학동기 (이)동남이한데 한 마디 들은 게 컸죠. ‘야 이 미친 X아. 무조건 들어가야지’라고 했어요(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감독님은 제가 사무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오래 전부터 생각을 하고 계셨더라고요.”
선수 출신 편견 지우고파
20년 동안 숙소생활만 해오던 구본근 과장에게 본사 발령 후 며칠간의 일상은 천국이었다. “사무실 분위기 파악하라면서 한동안 일을 안 시켰어요. 그러면서 저녁 7시면 퇴근, 주말은 휴무. ‘이런 세상도 다 있구나’ 싶었죠.” 환상은 일주일 만에 깨졌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품의서를 작성하고, 평생 사용한 적 없던 엑셀로 작업해야 하는 건 고역이었으리라. “책 보면서 공부 엄청 했죠. ‘일은 못하더라도 지각은 하지 말자’라며 출근도 빨리 했고요.” 구본근 과장은 기왕 사무국 일원이 된 만큼, 선수 출신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시선을 없애고 싶었다. “기아 시절에도 선수-매니저 출신이 본사로 들어갔는데, 사고를 많이 쳤다고 하더군요. 그때 이후 ‘선수 출신은 안 받는다’라는 방침이 내려졌고요. 저는 그 방침을 깬 첫 사례잖아요. 언젠가 저처럼 사무국이 되고 싶어 하는 선수 출신도 있을 텐데, ‘구본근이나 너나 똑같네’라는 소리 듣게 하긴 싫더라고요. 선수 출신도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티켓판매 임무를 집중적으로 맡고 있는 구본근 과장은 팬 확보를 위한 노하우도 점점 쌓아가고 있다. SNS를 통해 팬들에게 직접 다가갔고, 언제든 전화를 통해 민원을 해결했다. 현장에서 볼멘소리를 하는 관중들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도 구본근 과장의 몫이었다. 덕분에 구본근 과장이 티켓판매를 맡은 이후 지난 시즌까지 모비스의 시즌회원은 계속해서 증가추세를 보였다.
“‘맨땅에 헤딩’이죠.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요”라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구본근 과장의 포부는 원대하다. “지인들이 ‘코치까지 하고 감독은 못했으니, 사무국에선 사무국장 해봐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해요. 실제로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말이죠. 무엇보다 저희 팀이 세대교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어요. 저희 팀에서 지명된 선수들의 평균 순위가 13순위예요. 그걸로 ‘일’을 냈죠. 저희 팀이 명가로 꼽히는데, 저도 초석을 다진 멤버라 생각해요. 모비스에 소속되어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갖고 있습니다. 자부심을 심어준 팀의 기강이 흔들리지 않게 앞으로도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잘 지원하고 싶어요.”
BONUS ONE SHOT_못 다한 이야기
Q. 과장으로 승진은 언제 된 건가요? 승진시험은 잘 봤나요?
2014년 1월 1일이요. 토익점수가 잘 나와야 승진에 가산점이 붙는데, 신발 사이즈가 나오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다른 부분에서 반영을 잘해주셨는지 승진이 됐죠.
Q. 선수시절 포함 우승반지가 총 6개잖아요. 10개를 채우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운 게, 하나 더 챙길 기회가 있었어요. 드래프트 지명 직후 합류한 현대가 1997-1998시즌 우승을 차지했죠. 그때 (박)영진이(현 구리 KDB생명 코치)랑 반지 케이스까지 받았는데, 실제 반지는 못 받았어요. 섭섭해 하니까 당시 선배였던 유도훈(전자랜드) 감독님이 너 가지라고 반지를 주시더라고요. 물론 실제로 가져가진 않았죠.
Q. 챔프전 우승할 때 직접 선수단에 우승 모자, 티셔츠를 전달하잖아요. 함께 기뻐할 법도 한데, 노점 상인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눠주는 게 인상 깊더라고요.
우승한 건 물론 좋죠. 하지만 그 자리에서 모든 이들이 어울려서 즐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 것이니까요. 그것 때문에 임상욱 매니저를 혼낸 적도 있어요(웃음). 저는 첫 우승 때 모든 행사 끝나고 체육관 밖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Q. 연세대 선배 서장훈이 예능인으로 맹활약 중입니다. 방송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장훈이 형은 현역 때 광고나 방송에 나오는 농구인들 보고 “저길 왜 나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젠 본인이 출연하고 있네요. 연예대상에서 신인상도 받고요. 워낙 입담이 좋은 선배여서 방송하면 잘할 것이라 예상은 했죠.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장훈이 형 방송 다 챙겨보고 있습니다.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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