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을 대표하는 그 숫자! WKBL 최고의 등번호 ⑥

진채림 기자 / 기사승인 : 2016-01-22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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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을 대표하는 그 숫자! WKBL 최고의 등번호는?

[점프볼=진채림 기자] 운동선수에게 이름만큼 중요하게 기억될 등번호. 지난 7월부터 한국 여자농구 선수들 중 어떤 선수의 등번호가 이름만큼 유명했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달에는 마지막 순서로 등번호 6번을 달고 뛰었던 선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와, 앞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선수들을 소개한다.

작은 만큼 더 단단했던 ‘작은 탱크’ 최경희


1980~90년대 김화순과 함께 최고의 슈터로 군림했던 선수가 있다. 166cm의 작은 키로 코트 이곳저곳을 누비며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슈팅을 자랑했던 최경희다. 최경희는 신장은 작았지만,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와 슈팅, 특히 먼 거리에서 던지는 3점슛으로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1984년 은광여고를 졸업하고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에 입단한 최경희는 성정아, 김화순 등과 함께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기록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느낄 수 있다. 팀에 농구대잔치 6번의 우승(1986, 1987, 1988, 1990, 1991, 1992)을 안겼고, 개인적으로는 농구대잔치 득점왕 4번, MVP에 3번 선정됐다.


최경희는 농구대잔치 여자부 최다 경기 출장인 209경기에 나서 최다득점인 3,939점을 기록했고, 자유투 549개, 5,033개의 3점슛, 어시스트 550개, 스틸 287개 등의 기록을 남기며 ‘무결점’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특히, 1985년 3점슛 제도가 도입되면서 더 빛이 난 최경희는 1989년 1월, 여자농구 최초로 2,000득점을 돌파한 데 이어 1991년 3월에는 또 다시 최초로 3,000점을 돌파했다. 국제대회에서도 명성이 대단했다. 1984년 LA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7위에 그쳤지만, 그해 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며 MVP로 선정됐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의 아쉬움을 다음 대회였던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털어내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본인의 피를 물려받은 세 아들을 훌륭한 아이스하키 선수로 키워내고 있다. 특히, 둘째 아들은 지난 2013년 국내 선수로는 처음으로 해외 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되기도 했다.


이번 시즌 6번을 달고 뛰는 선수를 보면 유독 젊은 선수들이 눈에 띈다. 유승희(삼성생명), 김아름(신한은행), 최은실(우리은행), 신지현(KEB하나은행)까지 프로 3, 4년차의 선수들이 등번호 6번을 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보여준 것 보다 보여줄 것이 많은 선수들이다. 지난 시즌 주전으로 도약한 신지현을 빼면 1군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이지만, 퓨처스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레전드의 뒤를 이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선수 중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있다. 바로 성정아다. 등번호 14번을 달고 뛰었던 성정아는 여자농구 최초의 억대 스카우트 주인공이다. 1985년 많은 기대 속에 동방생명에 입단했지만 무릎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1988년 재기에 성공한 성정아는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고, 1988-1989시즌에 압도적인 실력으로 삼성생명의 우승을 이끌고 MVP에 선정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성정아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4년 LA올림픽에서 스타 선배들과 함께 은메달을 따냈다. 이외에도 1982, 1986 아시안게임 은메달, 1990 아시안게임 금메달, 1984, 1988 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 등 국제대회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1992년 은퇴를 택한 성정아는 곧바로 숙명여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 졸업 직후, 고려대와 삼성전자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이윤환과 백년가약을 맺었고,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성정아와 라이벌로, 때론 동료로 함께 한 조문주도 기억에 남는 선수다. 조문주는 1984년 국민은행에 입단해 동방생명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181cm의 신장으로 골밑을 지켰던 조문주는 특히 리바운드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1987년 2월 5일, 농구대잔치 한 경기 최다 리바운드인 23개를 기록했고, 1991-1992 농구대잔치에서는 통산 1,500 리바운드를 돌파했다. 1989-1990 시즌에는 팀에 5년 만의 우승을 안기며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성정아와 동료로 함께 했다. 1986, 1988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비롯해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등에서 손발을 맞췄다. 1992년 은퇴 후에는 성신여대 체육학과에 입학해 플레잉코치로도 뛰었다. 이후 성신여대 감독, 2003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여자농구 감독, SBS스포츠 해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는 삼천포여고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현역 선수 중 15번하면 바로 떠오르는 신정자 또한 레전드의 길을 걷고 있다.

1999년 국민은행에 입단한 신정자는 2006년 금호생명(현 KDB생명)으로 둥지를 옮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은 2011-2012 시즌이다. 신정자는 이 시즌, 39경기에 출전해 평균 38분 43초를 뛰며 15.2점 12.5 리바운드, 4.2 어시스트, 1.4 블록을 기록했다. 독보적인 활약 덕에 정규리그 우승팀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MVP 수상의 영광을 누렸고, BEST5, 윤덕주상, 리바운드상, 우수수비선수상 등 5관왕에 올랐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는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를 누볐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아직까지 리그 우승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지난 1월, KDB생명에서 신한은행으로 깜짝 트레이드된 신정자는 지난 시즌 후 신한은행과 3년 재계약하며 우승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 사진_점프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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