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곽현 기자] 전주남중 김학섭(33) 코치는 전주고 시절 천재가드로 농구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동기였던 조성민(부산 케이티)도 그 때는 ‘김학섭의 동료’로 불렸던 시절이다. 하지만 한양대 입학 후 농구인생이 순탄치 않았다. 포인트가드로서의 자질은 뛰어났지만 프로에서도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진 못했다.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았던 그는 그 아쉬움을 지도자로서 해소하고자 하고 있다. 스스로 말하길 농구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전주에서 말이다. 그가 이끄는 전주남중은 올해 4관왕에 오르며 중등부 최고의 팀으로 올라섰다. 한 편의 영화 같은 그의 농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프로필 | 1982년 11월 29일생, 182cm, 전주남중-전주고-한양대, 2006년 KBL 데뷔, 2012년 전주남중 코치 부임
13년 만에 돌아온 모교 전주남중
Q. 올 해 전주남중을 4관왕으로 이끌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우승한 멤버들을 데리고 왔어요. 3년 동안 호흡을 맞춘 친구들이고, 이번 겨울에도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수들 부상이 많아 힘들었죠. 어려운 과정 속에서 우승을 해서 보람을 느낍니다. 3학년 중에서 최성현, 김영준, 신동현이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장도 좋고, 각 포지션에 맞는 능력이 있어요. 이 친구들은 이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고등학교에서도 좋은 기량을 보여줄 거라 믿습니다. 내년에는 이두원, 박지환, 소철연을 중심으로 팀을 꾸릴 생각입니다.
Q. 4번의 우승 중 어느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전주남중을 맡은 지 3년이 됐는데, 협회장기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전주남중에 다니던 17년 전에 우승을 했던 대회예요. 그때 최우수상도 받았죠. 17년 동안 협회장기에서 우승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지도자로 다시 와서 우승을 했고, 지도자상도 받아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Q. 단기간에 이렇게 팀 전력을 끌어올린 노-하우가 있나요?
저희 팀 강점이 5명이 고르게 득점을 한다는 점입니다. 전 선수 한 명으로 인해 승패가 좌우되는 걸 싫어해요. 코트 위에 뛰는 5명이 고르게 득점을 할 수 있도록 팀워크를 많이 강조합니다. 자기보다 좋은 찬스가 있는 동료에 패스를 줘야 하고, 받은 선수는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슛을 던져야 해요. 그런 부분에 지시도 많이 내리는 편이죠.
Q. 아무래도 프로 출신이라 아마농구 무대에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텐데요.
오리온에서 은퇴를 하자마자 바로 전주남중에서 러브콜이 왔어요. 늘 지도자에 대한 생각이 있어서 오게 됐죠. 처음엔 정말 정신없이 열심히만 한 것 같아요. 한 해를 지나고 보니 어떻게 훈련을 시켜야 하는지 정립이 됐습니다. 선배님들에게 훈련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고요.
Q. 어느 정도 수준으로 훈련을 시켜야 하는 지 헷갈렸을 것 같아요.
전 중학교 때 농구했던 게 가장 행복했어요. 제 중, 고등학교 시절 기억을 많이 떠올렸죠. 당시 선생님들이 지도하셨던 게 생생히 기억나거든요. 대학, 프로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얘기해줬는데,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전 중학교라고 중학교 수준의 기술만 알려주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기술들을 다 알려주죠. 만약 제가 나가고 다른 코치가 왔을 때 그 기술을 알려준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중학생 선수들에게 안 맞는 부분도 있을 텐데, 일단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중에 신체조건이 좋아지고 힘이 붙으면 그 기술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올 테니까요.
Q. 프로 출신 지도자들의 강점이 그런 것 같습니다. 프로에서 보고 배운 수준 높은 기술, 그리고 훈련, 상대팀 분석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을 테니 말이죠. 그렇다면 전주남중의 팀 색깔은 뭔가요?
제 모토가 수비 70에 공격 30입니다. 속공플레이를 위주로 하려고 하죠. 속공 때는 과감하고 자신 있게, 상대 수비를 붙이고도 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공격에선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수비적인 부분은 제가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연속 우승을 한다는 건 그만큼 꾸준히 경기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데,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소년체전을 남겨두고 정신교육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동기부여도 많이 주려고 했죠. 왕중왕전을 치를 땐 선수들이 다소 느슨해진 부분도 있었는데, 그래서 훈련을 더 강하게 가져갔습니다. 때로는 즐겁게 하려고 해요. 저희는 축구도 하고 발야구도 하거든요. 전 아이들과 비디오게임도 같이 해요. 훈련할 땐 무섭지만, 밖에선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교감을 하고 신뢰를 쌓으려고 하죠.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아이들도 편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Q. 학교는 예전과 비교해 많이 변했나요?
처음 학교 왔을 때 슬펐어요. 너무 똑같아서요. 저 다닐 때랑 체육관도 그대로에요. 그래서 아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조금씩 손을 봤습니다. 계단이 위험해서 난간도 만들고, 선풍기 밑에 바퀴도 설치했죠. 학교에선 이런 일들을 다 제가 해야 하죠.
그 시절의 추억, 그리고 방황
Q. 선수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 프로에서 많은 시즌을 뛰지 못 했는데요. 아쉬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모비스에서는 나름대로 행복하게 농구를 했고, SK에서는 많이 힘들었어요.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오고 오리온에 갔는데, 와이프한테 그랬어요.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겠다고요. 지도자나 심판을 할 생각이었죠. 그래서 오리온에서 마지막 1년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럽진 못 했는데, 후회하지는 않아요.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제가 못 다한 걸 제자들이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Q. 프로에서보다 고등학교 시절이 더 주목을 받았잖아요. ‘천재가드’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사실 대학 때(한양대)는 좋은 기억이 없어요. 구타도 많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죠. 적응을 못 해서 4년 동안 죽어지냈어요. 방황을 많이 했죠. 사실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기술로 프로를 갔어요. 대학시절을 좀 더 잘 보냈다면, 제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죠. 어릴 때부터 외로움이 많았어요. 집안 사정 때문에 부모님이랑 따로 지냈거든요. 10살 때 절 가엾게 여기신 후배 어머님 덕분에 후배 집에 들어가서 같이 살았죠. 외로움이 많았죠. 눈칫밥도 먹고, 많이 힘들었어요. 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어요. 초등학교 때 키가 178cm였는데, 처음에 센터를 보고 그 다음에 포워드, 고등학교 때 가드를 맡았어요. 모든 포지션을 다 경험해봐서 그런지, 각 포지션 선수들에게 지도를 하기가 좋은 것 같아요.
Q. 조성민 선수와 한양대 동기잖아요. 지금은 조성민 선수하면 프로 최고의 슈터인데, 부러운 마음은 없나요?
성민이랑은 초-중-고-대학교 동기에요. 반면 저는 고등학교 때까진 늘 랭킹 1위라고 하다가 대학부터 삐걱 댔는데…. 지금은 그런 부러운 마음도 사라졌어요. 동기가 대한민국 최고의 슈터가 됐다는 것이 자랑스럽죠. 저희 애들 격려하러 학교나 한 번 왔으면 좋겠어요(웃음).
Q. 전 개인적으로 모비스에서 뛰던 시절이 많이 기억에 남아요. 그 때 항상 해설위원들이 고등학교 시절을 언급하면서 ‘천재가드’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그 때 많은 농구인들이 절 불쌍하게 여기셨어요. 환경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늘 악으로 농구를 했죠.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 한 부분은 좀 아쉽죠. 지금은 제가 못 이룬 꿈을 전주남중에서 펼치려고 해요. 팀 창단 이후에 4관왕이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중고농구에 한 역사를 남겼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기억나는 지도자가 있나요?
프로에서 배운 모비스 유재학 감독님과 오리온 추일승 감독님이 기억나요. 두 분 밑에서 제가 농구를 잘 배운 것 같아요. 제가 지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죠. 유재학 감독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에요. 카리스마가 대단하신데, 선수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팀을 이끄시죠. 추 감독님은 저에게 인간적으로 정말 잘 대해주신 분이에요. 추 감독님께 배웠던 걸 휴대폰에 저장해놓기도 했어요. 두 분에게 배운 건 지금도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프로의 경험을 시켜주곤 하죠. 훈련 방식이나 수비 로테이션에 대해서요.
Q. 중학교에서는 스카우트나 학부모들과의 관계가 매우 어렵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처음 학교에 왔을 때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부모님들의 지지가 굉장히 컸어요. 그래서 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길 수 있었죠. 또, 학교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고요. 분위기도 좋고, 남부럽지 않습니다. 지금 팀원이 20명이나 돼요.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얘기합니다.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을요. 목표를 잡고 달리라고 조언해주죠.
Q. 가드는 타고난다고 생각하나요?
네. 타고난다고 생각해요. 시각적인 면이 좀 달라요. 가드는 재치가 있어야 해요. 사실, 가드들이 사고도 많이 쳐요. 끼가 좀 있다고 할까요(웃음). 놀기도 좋아하고…. 좀 여우같은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반면 센터들은 좀 착하죠. 포워드는 중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지도자로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큰 것보단 제가 가지고 있는 걸 아이들에게 다 주고 싶어요. 제가 학창시절 기억했던 즐거운 추억들을 아이들도 느꼈으면 좋겠어요. 제자들이 졸업한 후에도 가끔 찾아오게끔 만들고 싶어요. 저하고 술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됐으면 합니다.

BONUS ONE SHOT_ 방황하던 나를 잡아준 당신, 고맙고 사랑합니다
와이프를 20살 때부터 만났어요. 대학 때 누나, 동생으로 지내다가 점점 좋아하는 감정이 커져서 교제를 하게 됐죠. 대학 때 한창 외로움을 탔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그때 와이프가 절 사람으로 만들어줬어요. 격려를 많이 해줬고, 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끔 잡아줬죠. 와이프가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지금 아내와 유찬이, 유빈이랑 함께 하는 제 인생은 정말 행복해요. 고맙고, 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여보. 20살 때부터 나를 잡아줘서 정말 고맙고, 당신을 정말 사랑해.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할게.
#사진 - 한필상 기자, KBL,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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