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진채림 인터넷기자] 운동선수에게 등번호의 의미는 남다르다. 등번호 자체가 그 선수의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농구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수들이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등번호로 기억되는지 알아봤다.
#5 가드하면 역시 ‘NO.5’?
전주원(현 우리은행 코치)은 이색 기록을 갖고 있다. 선수시절 달았던 등번호 ‘5번’과 ‘0번’이 모두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던 것이다. 전주원은 1991년 신한은행의 전신인 현대산업개발에 입단해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3년 첫 번째 은퇴 당시 현대건설은 그의 등번호 ‘5번’을 역사로 남겨뒀다. ‘5번’은 전주원이 농구를 시작한 선일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달았던 등번호였다.
이후 신한은행이 팀을 인수했고, 엄마가 된 전주원도 다시 유니폼을 입었다. 그 때의 등번호는 ‘0번’이었다. 전주원은 2007 겨울리그부터 2010-2011시즌까지 팀의 통합 5연패를 이끌었다.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였던 KDB생명과의 2010-2011시즌 챔프 3차전에서는 우승을 결정짓는 3점슛을 성공시켰고, 챔프전 MVP를 수상하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신한은행은 전주원의 등번호 ‘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고, 전주원은 여자프로농구 최초로 두 번의 등번호 영구결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자격은 충분했다. 전주원은 프로 출범 후 어시스트왕 10회를 달성하는 등 포인트가드로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국가대표로서도 마찬가지였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까지 3개 대회를 연속으로 출전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한국의 4강행을 이끌었다. 특히 쿠바와의 경기에서 한국 농구 최초로 올림픽에서 트리플더블(10점 10리바운드 11어시스트)을 기록한 모습은 잊혀 지지 않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다.
그러고 보면 등번호 ‘5번’의 주인공에는 걸출한 가드가 많다. ‘탱크 가드’라고 불렸던 김지윤(전 하나외환)의 현역 시절 등번호도 ‘5번’이었다. 김지윤이 남긴 프로 통산 2,733어시스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현재도 6개 구단 중 삼성의 이미선, KDB생명의 이경은, 우리은행의 이은혜 등 3명의 가드가 ‘5번’을 달고 코트를 누비고 있다.

#9 ‘NO.9’, 등번호 따라간 아홉 번의 우승
정선민(현 하나외환 코치)은 전주원, 박정은(현 삼성 코치) 등과 함께 이른바 한국여자농구의 ‘황금세대’라 불렸다. 특히 전주원과는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레알 신한’ 시절을 함께했다.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물론, 2000 시드니올림픽 4강을 논할 때도 그녀의 활약을 빼놓을 수는 없다.
1993년 데뷔한 정선민은 ‘바스켓 퀸’이라는 별명답게 한국여자프로농구에 숱한 기록을 세웠다. 자신의 등번호처럼 프로 통산 9회의 우승을 경험했다. 정선민은 정규리그 MVP 7회, 득점왕 7회, 트리플더블 13회 등의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정선민은 한국여자농구계에 새로운 길을 열기도 했다. 2003년, WNBA 드래프트에 참가해 시애틀 스톰에 지명됐다. 한국여자농구 최초로 미국 무대를 밟은 것이다. 또 한국여자농구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선민의 현역 시절 마지막 팀이었던 KB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치른 은퇴식의 주인공도 정선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9번’을 달았던 선수 중 팬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선수가 또 있다. 바로 정선민과 동갑내기인 양정옥(전 하나외환)이다. 여자농구를 대표했던 슈터 양정옥은 15년 간 정규리그에서 3,107점, 1,179리바운드, 79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3점슛은 총 595개를 꽂아 넣었다. 현재는 신한은행의 곽주영, KDB생명의 김소담, 하나외환의 백지은 등이 등번호 ‘9번’을 달고 정선민의 뒤를 잇기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다.

#14 전설 박신자를 대표하는 ‘NO.14’
WKBL은 지난 7월 강원도 속초에서 ‘박신자컵 서머리그’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이름을 딴 대회가 열릴 정도로 박신자는 한국여자농구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녀의 등번호 ‘14번’은 박신자를 대표하는 번호가 됐다.
그만큼 박신자의 업적은 화려하다. 1964년 제4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월드 베스트5’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1967년 제5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준우승과 함께 세계대회 첫 MVP의 영예도 안았다. 1999년 6월에는 세계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동양인 최초로 이름을 올리며 본인의 가치를 증명 받았다.
등번호는 다르지만, 이후 박찬숙이 그 바통을 받았고 이어 정은순이 등장했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강영숙과 김계령의 유니폼에도 ‘14’라는 숫자가 박혀 있었다. 강영숙은 선수로서 11번의 우승을 경험했고, 김계령은 정선민의 뒤를 이어 미국 무대를 밟기도 했다.
그리고 박신자의 조카 박정은이 그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박정은 역시 시드니올림픽 4강의 환희를 맛봤다. 프로에서도 박정은의 활약은 대단했다.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정규리그 베스트 5에만 9번 선정됐다. 은퇴를 앞둔 2013년 2월에는 여자농구 최초로 3점슛 1,000개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박정은은 프로 원년부터 15년간 삼성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삼성 구단은 박정은의 공로를 인정했고, 그는 여자프로농구 선수 중 가장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다. 삼성은 또 구단 사상 처음으로 박정은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 사진 문복주, 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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