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선아 기자] 삼성과 박정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여자프로농구 출범 후 박정은은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적이 없었다.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수차례. 용인체육관에 걸린 11번 유니폼은 그 오랜 활약에 따른 보상이자 존경의 표시였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녀’에서 어느덧 ‘레전드’ 반열에 오른 박정은 코치가 그 중 한 이야기를 꺼냈다. 본인의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다득점 뒤 숨은 이야기
2010년 3월 24일 KB인재개발원. 삼성생명은 천안 KB국민은행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 경기에서 68-63으로 역전승했다. 이 경기는 박정은 코치 본인이 꼽은 ‘인생 경기’이기도 했다. 양 팀 최다인 36득점을 올리며 자신의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득점력이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 팀에 득점할 수 있는 선수가 많아 리바운드와 수비부터 했었다.”
그렇지만 박정은 코치가 이 경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지 득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시리즈에서 그녀는 ‘옛 동료’와 챔피언결정전이 걸린 사투를 펼쳐야 했다. 바로 변연하다. 변연하는 2008년 자유계약선수로 KB국민은행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박정은과 한솥밥을 먹었다. 소속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둘의 하모니는 늘 빛났고, 코트 밖에서도 깊은 우애를 과시해왔다. 그런 둘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시리즈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또 있었다. 당시 KB국민은행 사령탑은 ‘옛 은사’ 정덕화 감독이 맡고 있었다. 은사와 동료를 이겨야만 했던 박정은 코치의 당시 심정은 어땠을까? “감독님을 만나 반갑긴 했지만 경기에 지기 싫은 마음은 분명했다. 상대팀 감독님이 됐지만, 우리가 잘해야 감독님도 더 좋아하실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정말 속을 내놓고 하는 경기였다. 어설프게 하면 심리적으로 위축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슛 기회를 내기 위해 한 발 더 뛰려고 했다.”
사실, 박정은 코치는 시리즈 내내 종아리 부상을 달고 뛰고 있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위축되지 않기 위해 더 이를 악물었고, 더 집중했다. 그 노력은 승리로 이어졌다. 슛이 잘 들어갔다. 1쿼터 5개, 2쿼터 3개. 전반에만 8개의 3점슛이 터졌다. “슛을 던질 때는 ‘무조건 들어간다’ 생각하고 던진다. 이날은 첫 슛부터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다. 림이 커 보이는 느낌이었다.”
박정은 코치는 정신력이 승리를 만들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는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까지 그녀가 잃지 않았던 자세이기도 하다. “특별히 몸이 가볍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항상 경기에 들어갈 때 ‘뭐든지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3차전 승리 덕분에 삼성생명은 KB국민은행을 누르고 5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위기에서 찾은 전환점
돌이켜 보면 2009-2010시즌은 박정은 코치가 다시 도약한 시즌이었다. 변연하 이적 후 바뀐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며 팀을 이끌었다. 그 배경에는 ‘질 수 없다’, ‘팀을 살려야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이 있었다.
“팬들은 나를 두고 ‘서른 살이 되면서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변)연하가 이적하며 팀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은 코치는 이 시즌에 데뷔 후 평균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정규리그 평균 17.4득점, 5.7리바운드, 4.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33세에 이룬 커리어하이 기록이었다.
박정은 코치는 “2009-2010시즌부터 득점하는 것을 배웠던 것 같다. 뒤에서 지원하던 역할이 아니라, 직접 칼을 들고 나가 싸우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좀 더 책임감이 생겼다. 득점도 재밌었다”라고 기억했다. 수비에서의 원래 역할도 잊지 않았다. 이 역시 그녀에겐 힘이었다. “내가 수비를 하면서 상대를 잘 막아냈기에, 공격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몸도 가볍고 뭔가 탁 터진 기분이었다”라고 표현했다.
박정은 코치는 당시 얻은 교훈을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다. “기본기에 충실하고, 궂은일이 습관화된 뒤에도 충분히 화려한 농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화려한 농구만 하면 궂은일을 못한다. 금방 떠나게 된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공을 튕기며 얻은 메시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구를 좋아하고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을 즐기면서 하는 것은 어렵다. 나도 많이 싸웠다. 스스로 즐기면서 해야 자신이 하려고 하는 플레이가 나온다.”
사진 문복주,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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