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여자농구 스타’ 라무, WNBA서 덩크슛을 꽂다

박상혁 / 기사승인 : 2015-08-27 07: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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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박상혁 객원기자] 지난 6월 7일(한국 시각)은 일본여자농구의 기둥인 도카시키 라무(192cm, 23)가 WNBA(미국여자프로농구) 시애틀 스톰의 유니폼을 입고 처음 미국 무대를 밟은 날이다. 시애틀의 홈구장 키 아레나에서 열린 LA 스팍스와의 경기에 나선 데뷔전 기록은 20분 출장에 6득점 1리바운드 2블록, WNBA의 유일한 아시아 선수로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평소 농구에 대한 기사 한 줄도 나오지 않던 일본 언론이지만 이날만큼은 도카시키의 데뷔전 소식을 상세하게 다뤘다. 일본여자대표팀 부동의 센터이자 일본인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덩크슛을 기록한 도카시키는 이제 WNBA에서의 새로운 덩크슛에 도전하고 있다.

1쿼터에 교체 투입된 도카시키는 쿼터 종료 1분 14초를 남기고 첫 득점을 올렸다. 득점 이후에는 자신보다 키가 큰 상대 선수를 블록슛하며 홈팬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인재’, ‘일본 농구계를 바꿀 보석’이라는 수식어로 불리며 평소 기대주로 주목받던 도카시키의 성공적인 미국 데뷔에 일본여자농구계는 벌써부터 그의 성공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빠의 영향으로 농구 시작

도카시키는 타고난 신체조건을 물려받았다. 중학교 입학 때 이미 신장이 170cm였고, 졸업 즈음에는 185cm로 성장해 있었다. 고교 2년생 시절 지역 방송과의 인터뷰 때 이미 키가 190cm로 핸드볼 공으로 덩크슛을 성공할 정도로 좋은 신체조건과 탄력을 겸비했다. 단순히 키가 큰 것만은 아니었다. 코트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레이업으로 가는데 5초 정도 걸릴 정도로 스피드도 빨랐다.

과거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도카시키는 자신의 큰 키는 부친의 영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도카시키의 부친은 혼혈이다. 할아버지가 미국인이었고, 할머니는 오키나와현 출신 일본인이었다. 도카시키의 부친 역시 키가 196cm다. 식단도 비결이 있었다. “입이 짧아 생선구이는 절대 먹지 않았다. 대신 우유를 매일 마시고 충분한 수면을 취한 것이 키 크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카시키는 원래 농구가 아닌 육상선수(높이뛰기)였다. 미야카와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농구를 하던 오빠의 영향으로 종목을 바꿨다. 재밌는 것은 그가 농구공을 잡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오빠가 전 쟈니스 주니어 멤버였던 도카시키 겐이라는 점이다. (※ 필자 주- 쟈니스 주니어는 일본의 유명 연예기획사인 쟈니스의 연습생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가수로서 정식 데뷔는 하지 않았으나 선배 가수들의 백댄서나 뮤지컬 등을 통해 미리 얼굴을 알리기도 한다.)

중학교 때부터 농구공을 잡은 도카시키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가스카베히가시 중학교 3학년 때 팀을 전국대회 베스트 8에 진출시켰고 이런 가능성을 인정받아 일본여자농구의 명문인 오카가쿠엔 고등학교에 스카우트됐다. 오카가쿠엔고는 일본여고농구 부동의 1위팀. 일본 전국의 우수한 여자 선수들이 진학하는 곳으로 WJBL(일본여자농구리그)의 모든 팀들이 이 학교의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혈안이다. 이런 곳에서 도카시키는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며 인터하이, 윈터컵, 전국체육대회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전국대회 3관왕으로 이끌었다. 이는 학년이 올라가서도 이어져 도카시키가 있는 동안 오카가쿠엔은 3년 내내 인터하이와 윈터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런 활약 덕분에 16살이던 2008년에는 사상 최연소로 베이징 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기도 했다. 최종 선발 명단에 들지 못해 선수로 뛰지는 못했지만 이때부터 도카시키는 일본 농구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유망주로 꼽히게 된다. 이런 도카시키가 일본 최강팀인 JX-ENEOS에 입단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가사키에서의 시련, 그리고 슬럼프

고교 최대어인 도카시키를 잡기 위한 팀들의 스카우트 경쟁은 전쟁에 가까웠다. WJBL의 8팀 중 6개 구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은 도카시키는 결국 오카가쿠엔고 선배들이 많은 JX-ENEOS로 진로를 정했다. 당시 오가 유코와 요시다 아사미 등의 가드진에 한 해 선배인 마미야 유카 등이 있던 JX-ENEOS는 도카시키의 가세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센터로서 빠른 스피드와 점프력을 겸비한 도카시키의 가세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도카시키는 데뷔 시즌인 2010-2011시즌부터 리그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JX-ENEOS는 순풍에 돛단 듯 연전연승을 거듭하면서 결국 우승 횟수를 늘렸다. 도카시키 역시 입단 첫해에 리그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WJBL에서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받은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JX-ENEOS의 감독으로 도카시키를 지도했던 우츠미 도모히데 현 일본여자대표팀 감독은 도카시키에 대해 “이제까지 일본에 없던 높이와 스피드, 운동 능력을 갖춘 선수다. 일본의 보석으로 키워야 할 선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카시키의 농구인생이 순탄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에서의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마친 뒤인 2011년 8월 그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열린 제24회 FIBA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성인 대표선수로 첫 출전인 동시에 2012 런던올림픽 여자농구 아시아 지역 출전권이 걸린 중요한 대회였다.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어떻게든 한 장의 티켓을 따내 올림픽에 진출해야한다는 분위기가 강했고 실제로 자국 팬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 일본은 예선을 무난히 통과했다.

그러나 결승 토너먼트에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일본의 4강전 상대는 중국이었다. 언제나 중국의 높이에 무너졌던 일본이지만 개최국의 프리미엄에 도카시키의 높이가 중국전 승리의 해법이 될 것으로 믿었다. 실제로 당시 경기를 중계했던 NHK 해설진도 ‘도카시키가 해줄 부분이 상당하다. 그의 활약에 승리가 달려 있다’라는 멘트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비참했다. 전까지 자신보다 키가 크고 빠른 상대와 경기를 해본 적이 없는 도카시키에게 중국의 센터진은 넘기 힘든 벽이었다. 더구나 도카시키는 국제 무대 경험이 전혀 없었던 상황. 높이와 스피드, 여기에 노련미까지 겸비한 중국의 센터진에 도카시키와 일본의 골밑은 초토화됐다. 이제까지 거의 진 적이 없던 골밑의 1:1 승부에서 그는 완벽하게 패했다. 도카시키로서는 농구선수로서 한계를 처음 느낀 굴욕적인 경기였다. 경기 후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플레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게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는다”라고 말한 뒤 울먹이며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이후 일본은 한국에게마저 패하며 개최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한국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한다.

이 후유증은 도카시키에게 상당히 오래 남았다. 대회 종료 후 3개월 뒤인 9월초 도카시키의 소속팀 JX-ENEOS는 전지훈련 차 한국을 찾아 신한은행, 삼성생명 등과 연습경기를 가졌다. 문제는 나가사키 대회에서의 악몽을 잊지 못한 도카시키가 한국팀들과의 연습 경기에서도 아무런 활약을 하지 못한 채 실책만을 연발했다는 데 있다. 리바운드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가 뺏기고 골밑에서의 1:1 승부 찬스에서도 패스만을 하는 등 소극적인 플레이가 이어졌다. 참다못한 우츠미 감독이 화를 내며 지적했으나 나아진 것은 없었다. 이런 현상은 일본 복귀 후에도 이어졌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슬럼프였기에 좀처럼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이런 그를 끌어올린 것은 같은 팀 선배였던 오가 유코였다. 오가는 그를 따로 불러 숙소에서 도카시키의 데뷔 시즌 경기 영상을 같이 봤다. 침울해 있는 도카시키에게 오가는 ‘저기 적극적으로 골밑 공격을 하는 라무가 있다’ ‘볼을 받자마자 림을 향해 곧바로 돌진하는 모습도 좋다’라며 그의 사기를 북돋워줬다. 도카시키는 이때의 위로를 기점으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9월 30일 열린 도요타와의 W-리그 개막전에서 도카시키는 선취점을 비롯해 높이를 이용한 적극적인 공격으로 득점을 주도했고 블록슛까지 기록하며 예전의 그로 돌아왔다. 개막전에서 자신감을 찾은 그는 같은 해 10월 14일 열린 덴소와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컨디션을 되찾는다. 17점 이상 리드하던 점수가 9점차로 줄어든 4쿼터, JX-ENEOS로서는 덴소에게 넘어간 흐름을 가져올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이것을 도카시키가 해줬다. 막판까지 집중력을 발휘한 그는 순간적으로 골밑에서 덴소의 더블팀 수비를 제치고 득점을 성공하며 점수차를 다시 두 자릿수로 벌렸다. 이후 골밑에서 파상 공세를 벌인 도카시키의 활약으로 JX-ENEOS는 덴소에 69-61이라는 승리를 거둔다. 도카시키는 이날 팀 최다인 17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나가사키 대회 이후 길었던 슬럼프에서 탈출한 셈이다.

올림픽, 무슨 일 있어도 나간다!

이렇듯 슬럼프를 극복한 도카시키는 이후에도 WJBL에서 상대할 선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2014-2015시즌에는 경기당 평균 18득점 11.5리바운드, 2.13블록슛 필드골 성공률 59.8%라는 놀라운 기록을 보여주었다. 2014년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과 결승전에서 20득점을 올리며 일본의 65-43의 승리를 이끌면서 대회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활약이 WNBA 스카우트의 눈에 들며 결국 시애틀의 유니폼까지 입게 됐다. 초반이라 성급한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시애틀 및 WNBA에서 그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다. 서툰 영어 때문에 고생을 겪고 있긴 하지만 현지 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WNBA 개막전은 일본의 여러 방송사들이 직접 시애틀까지 찾아가 골밑이 아닌 중거리슛 훈련을 하는 도카시키를 취재하기도 하고, 수 버드를 비롯한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비교적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도카시키는 순조롭게 WNBA 적응을 하고 있다. 6월 27일 샌안토니오 전에서는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인 14점을 올렸고, 다음날 털사전에서는 개인 최다 21점 4블록슛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WNBA에서의 활약과 별개로 도카시키의 시선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때는 사상 최연소로 선발됐지만 마지막에 탈락의 고배를 맛봤고, 런던 올림픽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던 그로서는 이번 리우올림픽 진출에 대한 염원이 다른 어떤 때보다 간절할 수밖에 없다. 우츠미 감독을 비롯한 일본 농구계 역시 도카시키가 일본여자대표팀 리우 올림픽 진출의 키를 쥐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도카시키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리우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라는 강한 각오를 피력했다. 아시아를 평정하고 농구의 본고장 미국 진출에까지 성공한 도카시키 라무. 그의 존재는 2008년 이후 올림픽에 재도전하는 한국 여자대표팀에게 있어서도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프로필
이름 도카시키 라무
생년월일 1991년 6월 11일생
신체조건 192cm/85kg
출신 사이타마현
출신교 미야카와초-가스카베히가시중-오카가쿠엔고
포지션 센터/포워드

# 사진 문복주, 한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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