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인화 기자] 창원 LG 농구단 ‘주장’ 김영환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늘 한결 같았다. 본인이 들뜨거나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5-2016시즌은 지난 2년보다 더 변화가 많은 시즌이 될 것이다. 그만큼 ‘주장’으로서 어깨도 무거워졌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생애 첫 주장
2012년 5월 12일. 김영환이 창원 LG 선수가 된 날이다. 이날 그는 프로선수가 된 후 두 번째 트레이드를 경험했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상무 제대 후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팀을 옮기고 3개월 후 김진 감독은 김영환의 팔에 주장 완장을 채웠다. 평균 연령 26.3세의 젊은 선수들을 이끌고 가기에 제격이라 판단했기 때문. 아직 팀에 적응조차 안 된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초등학교 때 뭣 모르고 주장을 맡은 적이 있어요. 주장은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어요. 정말 부담됐고, 하고 싶지도 않았죠. 상무에서 제대하고 안 좋은 상황에서 트레이드 된 거였으니까요. 제 몸 만드는 것도 힘든데, 주장까지 하면 팀 전체를 신경 써야 하니까…. LG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감독님과 코치님 스타일도 모르고요. 굉장히 부담이 많이 돼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이적생 출신임에도 주장이 된 김영환은 가장 먼저 자신만의 기준을 정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신념대로, 기준을 벗어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준을 정했어요.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니 군대식으로 하면 잘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 해야 할 행동들을 정확하게 지키면 그 외의 시간에 대해서는 크게 터치 하지 않았어요. 쉴 때는 편하게 쉬어야 운동 효율도 높아지니까요. 운동을 할 때 마음가짐에 대해서 강조를 했고, 주장으로서 모범적인 행동을 해야 따라할 것 같아서 제가 모범을 보였죠.”
이적생 김영환의 주장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완장의 무게를 견뎌라
주장이 된 후 첫 시즌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팀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강팀만 골라잡는 ‘도깨비 팀’이라는 캐릭터를 확실히 구축했다. 젊은 선수들의 투지가 빛났고, 한번 분위기를 타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김영환의 컨디션도 최고였다. 가진 실력에 비해 늘 주목받지 못했던 그가 드디어 꽃을 피웠다. 평균 2.05개로 3점 슛 1위를, 12.95점으로 득점 평균도 국내 선수 중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수술대에 올랐다. 무릎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체중감량을 했지만, 다시 슬럼프에 빠졌다. 김영환의 장기인 포스트업과 돌파는 부상 위험으로 인해 주춤거렸다. 외곽을 노렸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하체 중심이 잡히지 않고 힘이 떨어지다 보니 슛 포물선과 거리도 낮아지고 짧아졌다. 후배들 볼 면목이 없었다. 덩달아 자신감도 바닥을 향했다.
“처음에 감독님이 주장을 시킬 때 ‘부담 갖지 말고,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하라’고 맡겨주셨어요. 첫 시즌엔 괜찮았는데 두 번째 시즌에는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하고 팀에 피해가 되다 보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의욕도 없어지고 부끄럽기도 하고요. 근데 저 말고도 경기를 못 뛰는 선수들이 많잖아요. 제가 시무룩 해있으면 팀 분위기를 망칠 거고, 다른 선수들한테까지 영향이 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티를 안내고 벤치에서도 선수들한테 이야기를 많이 해주려 했어요. 경기를 뛰지 못한 날은 후배들 데리고 체육관에 가서 따로 운동을 하기도 했죠. 우리 팀 선수들은 다 착해서 그런지 몰라도 선수들 때문에 힘든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제 상황이 힘들었을 뿐이죠.”
김영환이 중심을 잡으니 나머지 선수들도 ‘으쌰으쌰’ 했다. 정규리그 막판 13연승을 내달리며 팀 창단 17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팀의 영광 뒤에 김영환은 자유계약선수가 됐지만, 평균 3.47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만 남겼다. 하지만 LG는 팀을 제대로 이끈 주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결국 김영환은 3억 5천만 원에 LG에 남게 됐다.
아찔했던 제퍼슨 사태
우승 후 돌아오는 2014-2015시즌. LG는 여전히 우승 후보였다. 플레이오프 6강에서 고양 오리온스를 맞아 다소 고전했지만, 울산 모비스와의 4강전을 앞두고 자신이 있었다. 붙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팀의 주축 외국선수 데이본 제퍼슨이 돌출 행동을 저질러 퇴출 된 것. 남은 경기를 39세의 크리스 메시 혼자 치러야 했다. 전쟁을 앞두고 총이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퍼슨이 나가고 선수들이 많이 당황했어요. 힘들게 4강까지 왔는데, 사건 이후에 다들 집중을 못하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지쳤죠. 평소에도 제퍼슨 비중이 크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제퍼슨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는 소리를 듣게 되잖아요. 우리도 정말 열심히 했는데 지금껏 해온 것들이 다 날아갈 것 같았어요.”
김영환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선수들을 소집했다. “선수들을 불러놓고 얘기했어요. ‘제퍼슨이 나갔다고 해서 무너지면 우리는 제퍼슨 팀이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비시즌에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여기서 마무리를 잘해야 열심히 한 것들을 보상 받고, 우리 가치를 올릴 수 있다. 절대 무너지지 말고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선수들도 자극받고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보니 쉽게 무너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LG는 5차전까지 모비스를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모비스의 벽은 높았다. 4강에서 시즌을 마무리 했지만, LG가 보여준 투혼은 모든 구단에 귀감이 됐고, 박수 받기에 충분했다.
Captain, Oh My Captain
김영환은 FM 그 자체다. 어긋난 행동은 절대 그냥 지켜보는 법이 없다. 팀의 스타플레이어도, 에이스도 예외는 없었다. 슈퍼 루키 김종규가 LG에 합류한 후 룸메이트가 된 김영환은 막내를 끔찍이 챙겼다. 행여 경기력에 영향을 줄까 사소한 것부터 조심했다. 하지만 잘 못된 행동을 할 때는 가차 없이 꾸짖었다. 덕분에 김종규는 본인이 프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형이 늘 훌륭한 선수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형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김영환은 김종규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통과의례 같은 거예요. 신인들이 팀에 합류하면 한 번씩은 혼나요. 제 성격이 워낙 FM이다보니 잘못된 행동은 절대 봐주지 않거든요. 괜한 걸로 혼내는 게 아니라 우리 팀이 모두 지키고 있는 것들을 어기면 고칠 때까지 혼내죠. 평소에는 편하게 생활하는데 어긋난 행동을 할 때는 많이 혼내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불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악역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욕먹어도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거죠.”
비록 주장은 아니었지만, 김영환의 마음속에도 최고의 선배가 있다. 부산 케이티의 조동현 감독이다. 선배의 발자취를 그대로 쫓아가고 싶은 마음이 지금의 주장 김영환을 있게 했다.
“조동현 감독님은 안 좋은 상황에서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보고 있으면 놀라울 정도였어요. 선배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요령 피울 수 없잖아요. 하기 싫어도 저절로 따라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본보기가 됐죠. 직접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면 반항심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그 때 생각했죠. ‘행동이 중요한 거구나’, ‘나도 저런 선배가, 저런 주장이 돼야 겠다’고 말이죠.”
물론 김영환도 ‘성실’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휴가 가면서도 운동 기구를 가방 가득 챙겨가는 건 물론이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도저히 농구를 계속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지금까지 건재하니 말이다.
“에이~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죠. 많이 배우고 싶은데 점수로 따지면 5-6점? 중간정도만 하는 주장이에요. 올 시즌 우리 팀이 (김)시래(상무 입대)나 (문)태종이 형(오리온스 이적)이 나가면서 공백이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개인플레이보다 팀플레이 위주로 비시즌에 많이 맞출 겁니다. (문)태종이형이 나가면서 우리 포지션에 저랑 (기)승호, (이)지운이가 남았는데, 약해졌다는 소리를 듣긴 싫어요. 정말 열심히 해서 누가 나가도 공백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서 캡틴은 제자들에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고 보든 나쁘다고 생각하든.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믿어야한다”고 말했다. 팀을 위해 자신의 신념대로 악역을 자처한 김영환. 팀의 화려한 전성기를 이끈 주장으로 LG 역사에 남은 그의 농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사진 - LG 농구단 제공,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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