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곳은 없다! 최종전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23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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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 편집부] 벼랑 끝에 선 자들의 기분은 어떨까? 마지막 남은 40분의 경기. 이 경기를 지면 이대로 1년 농사는 끝이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작은 것 하나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래서 최종전에 지도자들은 ‘배수의 진’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배수의 진’을 치고 나온 그들은 그때 과연 무슨 생각, 어떤 기분으로 최종전에 임했을까?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4월호에 실린 기사임을 밝힙니다.

최인선 | 스카이 스포츠 해설위원
일희일비하지 말라
그의 최종전_1998년, 2002년(기아, SK)

최인선 스카이 스포츠 해설위원은 2차례 챔프 7차전을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었다. 2번 모두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에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1997-1998시즌 ‘디펜딩 챔피언’ 부산 기아(현 울산 모비스)를 챔프전으로 이끈 최인선 감독은 대전 현대(현 전주 KCC)라는 마지막 관문만 남겨두고 있었다. 2차전까지 내리 이기며 순항하던 기아가 흔들린 건 3차전이었다. 접전 끝에 2점차로 패한 여파는 4차전까지 이어졌고, 이후 1승씩 주고받으며 7차전에 돌입하게 된 것. 사실 당시 기아의 전력은 정상이 아니었다. 특히 허재는 손등이 골절되고, 눈 밑이 찍어지는 등 온갖 악재 속에 연일 고득점을 퍼부었다. 최인선 해설위원은 “허재는 당시 팀을 떠나기로 결심을 내린 상태였다. 이적하기 전 우승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 이 악물고 뛰었던 것”이라며 회상했다.


또한 저스틴 피닉스의 태업이라는 예기치 않은 변수도 있었다. 플레이오프까지 말썽 없이 뛰던 피닉스는 돌연 챔프전을 앞두고 “종아리가 아프다”라며 출전을 거부했다. 최인선 해설위원은 “갑자기 재계약을 보장해달라더라.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태업을 해서 속 썩었다. 피닉스가 5분만 더 뛰었으면 이기는 시리즈였다”라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피닉스는 챔프전 7경기 가운데 5경기만 나왔고, 그마저도 평균 12분 5초만 뛰었다. 조기에 시리즈를 마무리 짓지 못한 기아는 결국 7차전에서 90-101로 패했다.


최인선 해설위원은 그로부터 4년 뒤인 2001-2002시즌에도 챔프 7차전을 경험했다. 이번에는 서울 SK를 이끌고 대구 동양(현 오리온스)과 맞붙었다. SK는 5차전을 이기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6~7차전을 내리 패해 V2에 실패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내선수보다 못했던 찰스 존스, 조상현과 임재현의 부상 등이었지만 최인선 해설위원이 꼽은 아쉬운 점은 따로 있었다. “마약복용혐의를 받은 에릭 마틴이 새벽 4시에도 조사를 받았다. 챔프전 내내 마틴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컨디션이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최인선 해설위원의 말이다.


비록 7차전까지 간 챔프전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최인선 해설위원은 이를 통해 깨달은 바가 크다고 회고했다. “기아나 SK 모두 전력에 비하면 선전한 것이다. 7차전까지 간 것만 해도 대단한 투혼이었다”라고 운을 뗀 최인선 해설위원은 “그래도 운영의 묘를 조금만 살렸으면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싶다. 가용할 수 있는 선수에 한계가 있을 땐 1경기 정도 포기하며 다음 경기를 대비했어야 한다. 기아가 3차전을 기점으로 무너진 건, 피닉스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끝까지 이기려고 무리수를 두다 패한 여파가 컸기 때문”이라고 돌아봤다. “챔프전은 1경기에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 멀리 내다보고 시리즈를 운영해야 한다”라는 부연설명과 함께 말이다.

조성원 | KBS 해설위원
“즐기자” 이 메시지 기억해야

그의 최종전_1998년(현대)



조성원, 이상민, 추승균이 이끄는 현대가 기아 왕조에 도전장을 냈다. 상대는 프로 원년 우승을 차지한 기아였다. 막강한 상대에 불안했던 현대. 여기에 1, 2차전 패까지 떠안으며 우승반지를 내주는 듯했다. 조성원 위원도 그렇게 기억했다. 조 위원은 “1, 2차전에서 우리 홈인 대전에서 졌다. 기아한테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3차전부터 달랐다. 조성원 위원의 4쿼터 3점슛으로 경기의 전세를 뒤집었다. 조성원 위원은 “3차전을 하니 해볼 만하더라. 다시 즐겼다. 챔프전에 처음 나선 것인데, 이때가 터닝포인트다”라고 말했다. 현대가 귀중한 1승으로 힘을 찾은 것이다. 이어 4차전도 승리했다. 뒤에는 1승 1패를 주고받으면서 7차전에서 모든 게 갈리게 됐다. 조성원 위원은 “개인적으로 7차전은 전체적인 (경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뒤였다. 7차전이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결국 7차전 승리는 경기에 즐겁게 임한 현대의 차지였다. 이번에도 조성원 위원이 이끌었다. 조 위원은 4쿼터 72-72로 동점이던 상황에 3점포 2개를 터트리며 팀을 우승으로 안내했다. 즐기자는 각오가 만들어낸 승리인 것. 조 위원은 17년 전 7차전 준비에서 가장 중요했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초반에 결정 났다고 보이는 승부도 뒤집을 수 있다. 미리 단념하면 안 된다. 7차전까지 치르며 느꼈다.” 한편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 시리즈 챔프전 MVP는 2위 팀에서 나왔다. 허재 전 KCC 감독이다. 조성원 위원은 “그때는 오히려 고맙더라. 허재 형이 머리도 다치고, 손가락도 다친 상황이었다. 상대가 무서웠다. 선배들이 7차전까지 오는 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성원 위원은 다음 시즌에 챔프전 MVP 등극했다. 다시 챔프전에서 기아를 만나 4승 1패로 제압하고, MVP를 따냈다. 앞서 치른 챔프전 교훈이 밑거름됐다.

추승균 | KCC 감독대행
무조건 편하게, 져도 된다고!
그의 최종전_1998년, 2004년, 2009년 챔프전(현대, KCC)

추승균만큼 챔프전 7차전 시리즈를 많이 경험한 이도 없을 것이다. 현대와 KCC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3차례나 챔프전 7차전을 경험했다. 그리고 3번의 7차전 모두 승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쯤 되면 ‘7차전 마스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7차전을 임하는 그의 마음 자세는 어땠을까?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하다. 5, 6차전 할 때보다 부담이 덜 하다. 그래서 선수들한테 편하게 하라고 한다. 져도 된다고 하고. 애들은 젊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추승균 대행은 2008-2009시즌 챔프전 7차전을 회상하며 얘기를 꺼냈다. 당시 추 대행은 KCC 선수였다. KCC는 삼성과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98-82로 승리하며 통산 4번째 우승반지를 얻었다. 당시 KCC는 하승진, 강병현이라는 겁 없는 신인 듀오와 추승균 대행이 팀의 주축이었다. 추 대행은 마지막 7차전에서 팀 최다인 24점을 성공시키며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챔프전 MVP도 그의 몫이었다. 추 대행은 “그땐 젊은 선수들이 많이 뛰었다. 승진이나 병현이가 신인이었지만, 오히려 더 잘 했다. 6강과 4강 플레이오프도 모두 5차전까지 치르고 와서 그런지 경험이 많이 붙었고, 자신감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KCC는 프로농구 최초로 6강 플레이오프부터 챔프전까지 최종전을 치르는 5-5-7시리즈를 경험한바 있다. 그런 힘든 과정을 딛고 해낸 우승이기에 감격이 더 컸다.

상대팀 삼성은 KCC의 간판스타였던 이상민(삼성 감독)을 보유하고 있었고, KCC의 전신인 현대와 삼성은 전통의 라이벌이었다. 여러모로 이들의 대결은 라이벌 매치라고 봐도 무방했다. 추 대행은 “힘들기는 저쪽이 더 힘들었을 거다. 주축들이 30대가 넘었으니까. 7차전 전반까지는 시소게임을 하다가 3쿼터부터 점수를 벌려서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추 대행은 1998년과 2004년 챔프전 7차전도 비슷했다며 “7차전을 많이 해봤는데, 아까 말한 대로 오히려 더 편하다. 조급한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치열한 경기를 치르면서 7차전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긴장감에 무감각해진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경기에 들어서면 다시 긴장을 하고, 분위기를 다잡기 마련이다. 체력적인 부분도 모두 소진이 된다. 그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 좀 더 참고 인내하는 쪽에게 승리의 여신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규섭 | 삼성 코치
준비는 이미 끝났다
그의 최종전_2009년(삼성)

삼성 이규섭 코치는 선수 시절 챔피언결정전에 3번 진출했다. 이중 2005-2006시즌은 챔피언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2007-2008, 2008-2009시즌에는 두 시즌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특히 2008-2009시즌에는 KCC와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펼쳤지만, 마지막 주인공이 되진 못했다. 7차전에 임했던 날을 이규섭 코치가 떠올렸다. 삼성은 챔프전에서 1승 뒤 3패로 패색이 짙었지만, 다시 2연승을 거두며 KCC에 3승 3패로 팽팽히 맞섰다. 그리고 7차전을 맞이했다.

이규섭 코치는 “사실 준비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먼저 입을 뗐다. 12일간 6경기. 퐁당퐁당 챔프전을 치른 선수들의 체력은 체력대로 지쳤고, 상대에 대한 파악도 이미 끝난 상태기 때문이다. 이규섭 코치는 “7차전은 준비보다 분위기가 중요하다. 준비는 이미 모두 끝난 상태다. (안준호)감독님도 경기의 맥만 짚어주셨다”라고 돌아봤다. 특히 선수단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경기 전에는 선수들이 서로 스트레스를 안 주려고 했다. 심적으로 편한 게 정말 중요하다. 승부는 하늘만이 알 수 있는 경기였다”라고 7차전에 임했던 마음을 전했다.


이동훈 | 모비스 사무국장
완벽한 플랜…의심은 없었다

그의 최종전_2007년(모비스)

모비스의 압도적인 우위가 점쳐진 2006-2007시즌 챔프전. 모비스는 KTF와 예상치 못한 7차전을 치르게 됐다. 3승 1패로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5~6차전을 연달아 패했던 탓이다. 시리즈는 동률이 됐지만, 모비스는 유재학 감독과 선수단, 사무국 모두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기획팀장을 맡고 있던 이동훈 사무국장은 “필립 리치의 골텐딩 판정에 의해 분위기가 넘어간 경기가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경기를 치르게 됐지만, 전체적인 경기력은 차이가 컸다. 일찌감치 우승을 확신했다”라고 2006-2007시즌을 돌아봤다.

실제 유재학 감독은 7차전을 앞두고 노림수가 있었고, 선수들이 긴장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정도만 변수로 내다봤다. 7차전을 하루 앞두고 단체로 맥주를 마시며 긴장감을 해소시켜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동훈 사무국장은 “7차전에서 이병석이 신기성의 전담 수비를 맡으며 양동근의 체력부담을 덜어줬다. 덕분에 양동근이 활발한 공격력을 보여줬고, 비교적 쉽게 7차전을 끝냈다”라고 회상했다.

또한 이동훈 사무국장은 코칭스태프가 전술적인 변화를 줄 순 있겠지만, 구단 입장에서 7차전이라고 갑자기 큐시트가 바뀌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 팀은 비시즌에 시즌과 관련된 모든 준비를 끝마친다. 눈앞에 닥쳐서 무언가를 준비하면, 구멍이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규리그가 3~4라운드 정도 흐르면 윤곽이 나오는데, 비시즌에 준비한 그림이 아니면 그때 플랜B를 가동하면 된다.” 이동훈 사무국장의 말이다. 이전 시즌 서울 삼성과의 챔프전에서 무승에 그쳤던 모비스는 당시 열세라고 판단한 높이를 크리스 버지스로 메웠고, 우승을 기대하며 시즌에 돌입한 터였다. 물론 모비스에게 따랐던 행운도 있었다. 이동훈 사무국장은 “당시 전력은 오히려 창원 LG가 더 버거웠다. 하지만 LG가 불미스러운 일(퍼비스 파스코 퇴장) 때문에 4강에서 탈락했고, 덕분에 수월하게 챔프전을 치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준비가 철저한 만큼, 모비스는 그간 정규리그 또는 챔프전 우승에 대비해 만든 모자와 기념 티셔츠를 착오 없이 선수단에 전달해왔다. 삼성과의 전력 차가 컸던 2005-2006시즌에는 이를 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4패로 무너졌다. 완벽한 플랜으로 우승을 장식해왔던 모비스지만, 2013-2014시즌은 ‘옥에 티’로 남았다. 정규리그 막바지 LG와의 ‘1위 결정전’에서 패, 모자와 티셔츠를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동훈 사무국장은 “우승하지 못한 기념품은 선수든 누구에게든 절대 나눠주지 말아야 한다. 폐기를 해서라도 공개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위성우 | 우리은행 감독
남녀 모두 중요한 건 똑같다

그의 최종전_2007년 겨울리그(신한은행)

3전 2선승제로 챔프전을 치르던 여자프로농구는 2001겨울리그부터 5전 3선승제로 바뀌었다. 이후 최종 5차전에 가서야 승부가 갈린 적은 총 4차례다. 이중 가장 최근 기록은 2007년 겨울리그 신한은행과 삼성생명의 챔프전이었다. 당시 챔프전에서는 신한은행이 3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신한은행은 이 우승을 시작으로 통합 6연패라는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겼다. 현재 우리은행 사령탑인 위성우 감독은 당시 신한은행의 코치였다. 감독은 이영주 감독이었다. 위 감독은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 팀에 (정)선민이, (하)은주가 들어오면서 전력이 강해졌다. 특히 골밑이 좋아졌다. 삼성생명도 만만치 않은 팀이었다. 박정은, 이미선, 변연하, 이종애에 로렌 잭슨도 있었다. 그 때 로렌 잭슨 막는 게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위 감독의 말대로 로렌 잭슨은 세계최고 수준의 선수로 정규리그에서 경기당 평균 30점 이상씩을 득점하던 선수였다.

뿐만 아니라 국내선수 4명이 국가대표였기 때문에 매 경기 치열한 승부가 계속됐다. 신한은행 역시 기존 전주원, 진미정, 강영숙, 최윤아에 FA로 정선민, 하은주를 영입하며 초호화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었다. 신한은행은 첫 경기였던 1차전을 내주며 기선제압을 당했지만, 2, 3차전을 꺾으며 전세를 뒤집었고, 4차전 패배 뒤 5차전에서 승리에 성공했다. 위 감독은 “챔프전 때 선민이가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은주가 많은 시간을 뛰었는데, 이종애보다 높이가 좋다 보니 골밑 싸움을 우세하게 가져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마지막 5차전을 남겨놓고서는 어떤 준비를 했을까? 여자선수들이기 때문에 특별한 점은 없었을까? “당시 나는 코치였기 때문에 선수들의 세세한 부분을 신경 쓰려 했다. 사실 여자선수들이라고 남자와 크게 다른 건 없다. 다만 여자선수들이다 보니 작은 것 하나하나에 민감한 건 있다. 그런 부분에서 크게 신경 쓰지 말고 경기, 자신의 맡은 임무에 집중하라고 조언을 해줬다”고 전했다. 신한은행은 대망의 5차전에서 맥 윌리엄스(37점 18리바운드)의 골밑 공략과 전주원(10점), 하은주(10점)의 활약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신한 왕조의 출발을 알리는 우승이었다. 챔프전 MVP는 시리즈 내내 골밑을 성실히 지킨 맥 윌리엄스에게 돌아갔다.

#사진 -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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