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KBL 최초 500경기 출장한 류상호 심판
심판, 자신과 싸우는 고독한 직업
심판은 외로운 직업이다. 대중들의 시선도 차갑다. 무능하고, 소통이 불가한 존재로 보는 시선도 있다. 과거 일어난 일련의 사고 때문에 비리를 일삼는 직업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주위 불편한 시선에도 심판들은 그들이 가진 직업의 ‘특수성’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주위에서 어떤 말을 들어도 묵묵히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해야 한다.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심판들의 속내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주인공은 WKBL 최초 500경기 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류상호(42) 심판이다. 그는 심판에 대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고독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친구 따라 빠져든 심판의 세계
2000년 WKBL 전임심판이 된 류상호 심판은 올해로 15년째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12월 29일에는 WKBL 최초 5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는 등 꾸준히 코트를 지켜왔다. 또, 그는 2013년 최우수심판상이 신설된 이후 2회 연속 수상을 하는 등 WKBL을 대표하는 심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가 심판을 맡게 된 계기는 우연치 않게 찾아왔다고 한다.
Q. WKBL 최초 500경기 출장을 축하합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쁘죠.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는 건 의미가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15년 동안 심판을 하면서 500경기를 뛰었는데, 꾸준히 해왔다는 증거니까 영광스럽죠. 2000년에 심판을 처음 시작해서 큰 문제없이 해왔다는 것에 만족을 합니다. 제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Q. 심판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웃기게 들릴지 모르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KBL 장준혁 심판이 제 대학 2년 선배입니다. 대학 입학 예정자일 때 농구심판 강습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가게 됐습니다. 농구를 좋아했었으니까요. 그때는 규칙도 몰랐는데, 그렇게 강습을 받으면서 조금씩 심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Q. 여자농구로 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대학 졸업을 하고 27살 때였는데, KBL 심판은 만 30세 이상이 돼야 자격이 됐습니다. 반면 WKBL은 나이 제한이 없었어요. 당시 김동욱 전무님께서 “여자농구 심판을 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죠. 심판 1급 자격증도 있었고요. 나이가 어려도 키워주시겠다고 해서, 도전하게 됐습니다.
Q. 사실 프로스포츠에서 심판이란 직업이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잖아요. 팬들한테는 심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무능’으로 연관되기도 합니다. 주위 시선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텐데요.
많죠. 팬들은 한 쪽을 응원하잖아요. 우린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데, 진 팀 쪽에서 분명 탓을 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일방적인 경기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박빙의 경기에서 지면 심판 탓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항상 잘해야 본전이죠. NBA 같은 경우 부러운 게, 감독이나 선수가 심판에게 큰 어필을 하지 않습니다. 심판 때문에 졌다는 얘기를 잘 안 하죠. 생각하는 문화가 다른데, 미국의 스포츠가 부러운 부분이 이런 부분입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죠. 항상 존댓말로 대해야 하고, 웃으며 대응하라고 배웁니다. 저희는 매년 재계약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15년을 해왔다는 게 뿌듯하죠.
Q. 심판 입장에서 볼 때 남자농구와 여자농구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남자는 선수 출신이 많습니다. 여자도 선수출신이 있지만, 반 이상이 비선수 출신이죠. 심판을 볼 때 선수와 비선수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선수 때 가지고 있는 경험이 심판 생활을 할 때 있어서 불리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학연, 지연으로 연결돼 있다고 하는데, 그나마 덜 부각되기도 하고, 판정을 하는데 있어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부분도 덜 나올 수 있습니다.
Q. 최근 KBL에서는 비디오판독 확대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세요?
최근 모든 프로스포츠에서 비디오판독을 하는데, 움직이는 접촉을 판단해야 하는 농구경기에서 비디오판독으로 결정을 한다는 건 흥미를 떨어트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는 심판의 경우, 비디오로 잡지 못 하는 걸 잡아내는 경우도 있거든요. 라인크로스나 샷 클락 같은 건 비디오로 잡을 수 있지만…. 그런 면에서 나쁜 제도는 아니지만, 또 좋은 제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디오판독 때문에 승패가 뒤집히는 경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판의 판단을 믿어줘야 하는 풍토가 생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심판은 고독한 직업이잖아요. 선수 및 감독과 늘 얼굴을 마주치지만 친해질 수 없는 상황이 야속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농구인들과 원래 아는 사이였다면 불편하겠지만, 저와는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니까요.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 심판은 자기와의 싸움이죠. 누구한테 하소연을 못 하니까, 그런 부분은 힘듭니다. 경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가 없죠. 심판을 잘 본다고 “정말 잘 봤어”라고 칭찬해주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고,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외로운 것 같습니다.
Q. 말씀대로 스트레스가 정말 많을 것 같은데, 어떻게 푸시나요?
운동으로 풉니다. 배드민턴을 주로 치는데, 땀내는 방법밖에는 없더라고요. 예전엔 농구도 많이 했는데, 배드민턴을 하면서 안 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3대3 대회 나가서 우승도 하고, 유럽여행 티켓도 따곤 했죠. 이제는 일할 때 말고는 농구 관련 일은 하지 않습니다.
Q. 심판은 매 경기마다 전날에 배정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늘 준비해야 하는 것도 힘들 것 같습니다.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부분이 힘들죠. 시즌 중에는 가족들과 어디 여행을 가는 건 생각도 못 합니다. 제가 맡은 경기는 매번 녹화해서 다시 보곤 합니다. 집에 가서 녹화한 경기를 보고 리뷰를 하는데, 경기를 다 보고 나면 2~3시쯤 되죠. 매번 경기 다음 날 리뷰한 걸 발표하는데, 제대로 하지 못 하면 혼도 납니다.
Q. 심판들의 비시즌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계약을 하면 다가올 시즌의 규칙을 숙지합니다. 룰 공부를 해서 테스트를 하고, 연습경기 를 보면서 몸으로 익힙니다. 감독이나 선수가 질문을 하면 룰의 기준에 대해 설명을 해주죠. 제가 느낀 점이 연습경기 때 대충하는 팀은 그 시즌을 잘 못 합니다. 단순히 연습경기의 목적뿐만 아니라 룰에 대해 대비를 하는 겁니다. 심판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기간은 그 때밖에 없거든요. 그 때 심판들에게 많이 묻고 룰에 대해 정확히 인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체력테스트는 2번을 보는데, 통과하지 못 하면 다시 해야 합니다.
감독이 아닌 선수가 질의하는 게 정답
프로농구에서 가장 보기 싫은 장면 중 하나가 바로 감독과 심판의 설전이다. 하지만 최근 남녀프로농구 모두 FIBA룰을 시행하면서 이 장면이 사라졌다. 심판에 대한 질의는 각 팀 주장만이 할 수 있도록 바뀌었기 때문. 류상호 심판은 심판에 대한 질의는 선수가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Q. 지난 시즌부터 심판에 대한 질의는 주장만 할 수 있도록 룰이 바뀌었습니다. 이 룰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장한테 권한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만 감독이라는 게 있습니다. 감독은 모든 사람들 위에 있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외국에서는 헤드코치, 어시스턴트 코치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조언해주는 역할이죠.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거라고 봅니다. 가끔 선수들이 저희한테 “감독님이 시켜서 왔어요”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안다. 좀 있다 가라”라고 하기도 합니다.
Q. 여자선수들은 경기 중 잘 좀 봐달라고 하소연 하는 경우가 많죠?
남자선수들에 비해선 확실히 부드럽게 어필하는 편이죠.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하는 선수들도 있고,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Q. 심판 입장에서 가장 판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요즘 제가 고민에 빠진 게 슛 연결 동작입니다. 예전에는 첫 발을 들어 올릴 때부터 슛 동작으로 봤는데, 지금은 볼을 들어 올릴 때부터 슛 동작으로 간주합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심판은 체력관리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4쿼터 접전 상황에서 정확한 판정을 내리려면 집중력과 체력이 모두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일주일 내내 운동을 합니다.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러닝도 합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 뛸 때 힘도 생기고, 몸도 단단하게 만드는 효과를 주죠.
Q. 2008년 대학원 박사학위를 취득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겸임교수도 하셨다고요.
프로심판을 목표로 할 때 나이가 어리니까 시간이 비더군요. 놀 순 없어서 대학원 시험을 봤습니다. 석사 졸업을 할 때 교수님이 박사과정까지 하라고 하시더군요. 현직 심판이니까 박사과정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요. 모교인 동아대에서 강의를 한 적도 있습니다.
Q. 심판에 대한 처우는 어떤가요?
그렇게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 학교 선생님들이 많은데, 학교 선생님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선생님들은 기간이 보장돼 있는 반면, 저희는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합니다.
Q. 농구를 좋아해서 심판을 하셨을 것 같은데, 심판은 경기를 즐기지 못하잖아요.
지금은 애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프로심판이 된 다음에 농구를 하러가니까 주위에서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내가 좋아하지만 즐기면 안 되는 게 된 거죠. 사실 다른 농구경기는 잘 안 봅니다. NBA는 가끔 보는데, KBL은 안 봐요. 심판을 보는데 방해가 되거든요. 한 번은 KBL 경기를 보다가 “저런 게 있었나?”하는 게 나오더라고요. 안 좋은 습관이 생기게 되는 거죠. 챔프전 같은 열기도 느껴보고 싶고 한데, ‘백해무익’하다고 봅니다. 차라리 예전 여자농구 경기를 꺼내보곤 합니다. 남자농구와 여자농구는 리듬도 다르고 수비도 다릅니다. 심판이 봐야 할 세밀한 부분이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Q. 여자농구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저변 확대가 많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팀이 6개는 너무 적으니까요. 8개까지는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심판들에 대한 처우도 개선될 거라 봅니다. 아마농구가 저변확대가 되면 프로도 좋아질 거라고 하는데, 전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가 흥행해야 농구 저변이 확대된다고요.
Q. 심판으로서의 목표도 궁금합니다.
NBA는 78세 된 심판이 챔프전도 보더군요. 저도 제가 못 뛰는 날이 올 때까지 심판을 보고 싶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그럽니다. 언제까지 심판을 할 수 있겠느냐고요. 하지만 저는 WKBL에서 일하면서 가정을 꾸렸고, 제 삶의 터전이 됐습니다. 힘들다고 해도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뛰지 못 하고, 호각을 불지 못 할 때까지 심판을 하고 싶습니다.
류상호 심판은…
1973년생인 류상호 심판은 2000년부터 WKBL의 전임심판으로 활동해왔다. 2013년, 2014년 WKBL 최우수심판상을 수상했고, 2014년 12월에는 최초로 500경기에 출장한 심판이 됐다. 또, 류상호 심판은 1992년 동아대학교 체육대학에 입학하여 2008년 부산 동아대학교 일반대학권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공부하는 심판’로 불리며 후배 심판들에게 표본이 되었다.
# 사진_ 유용우 기자
#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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