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팬들도 이해 못했던 황당 트레이드

하정서 기자 / 기사승인 : 2015-05-11 02: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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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걸 왜!?!?


아니 이걸 왜!?!?
NBA 팬들도 이해 못했던 황당 트레이드

트레이드가 활발하기로는 NBA만한 리그도 없을 것이다. 매년 드래프트 당일을 시작으로 마감기한인 2월 말까지 수많은 트레이드가 이뤄지며,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울고 웃는다. 그런데 모든 트레이드가 다 납득할 만한 배경과 결과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현지 팬들 및 전문가들에게 수많은 질타를 받은 트레이드도 많았다.

# 사진_ 아디다스, 나이키 제공

# 본 기사는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는 최악의 트레이드
밀워키 벅스 ↔ LA 레이커스

· 일시_ 1975년 6월 16일
· 레이커스 got_ 카림 압둘-자바, 월트 웨슬리
· 벅스 got_ 주니어 브릿지맨, 데이브 마이어스, 앨모어 스미스, 브라이언 윈터스

정확히 40년 전에 일어난 일로, 레이커스는 이 트레이드 덕분에 황금기의 초석을 닦았고, 벅스는 암흑기 직행 티켓을 끊었다. 카림 압둘-자바는 1970-1971 시즌을 시작으로 밀워키에서만 3차례의 정규시즌 MVP와 1971년 우승을 해낸, 말 그대로 그 당시 최고의 센터였다. 그러나 1973-1974시즌 우승에 실패하고 팀 성적이 지지부진하자 1974년 가을부터 뉴욕이나 LA 등 빅 마켓으로 트레이드되기를 원했고, 밀워키는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압둘-자바와 백업 센터 월트 웨슬리가 레이커스로, 1975년 드래프트 2순위 데이브 마이어스와 8순위 주니어 브릿지맨, 두 명의 유망주와 센터 앨모어 스미스, 그리고 가드 브라이언 윈터스가 밀워키 유니폼을 입었다. 당대 최고의 센터를 내준 것 치고 대가가 너무도 적었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이 트레이드 이후 밀워키는 2년 연속 승률 5할을 넘지 못했다. ‘NBA 역대 최악의 트레이드’를 꼽을 때, 항상 빠지지 않는 트레이드 중 하나다.

파우 가솔을 내주고 겨우?
LA 레이커스 ↔ 멤피스 그리즐리스

· 일시_ 2008년 2월 1일
· 레이커스 got_ 파우 가솔+멤피스 2라운드 지명권
· 그리즐리스 got_ 자바리스 크리텐튼+콰미 브라운+애런 맥키+마크 가솔의 권리+2008년과 2010년 LA 레이커스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파우 가솔은 2001년 드래프트에서 멤피스 그리즐리스에 전체 3순위로 입단, 2001-2002시즌 신인왕과 함께 2006년 올스타에도 뽑힌 멤피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1명으로 꼽힌다. 트레이드 당시에도 멤피스 구단 역사상 최장시간 경기 출전 기록과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 등의 기록을 모두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2008년 2월 1일 트레이드 되었다. 멤피스는 파우 가솔과 2라운드 지명권 한 장을 레이커스로 보내고, 자바리스 크리텐튼과 콰미 브라운 등 3명의 선수와 2007년 2라운드 48순위로 뽑힌 마크 가솔의 권리, 그리고 레이커스의 1라운드 지명권 2장을 얻었다.
숫자로만 보자면 6대 2 트레이드로 당연히 멤피스가 많이 챙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멤피스가 얻어온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 당시의 반응이었다. 자바리스 크리텐튼은 트레이드 당시 불과 평균 3.3득점에 그친 신인이었다. 또, 콰미 브라운은 비록 전체 드래프트 1순위에 뽑힌 선수이기는 하지만, 역시 2007-2008시즌 평균 5.7득점 5.7리바운드밖에 기록하지 못한 선수였다. 애런 맥키는 사실상 은퇴를 앞둔 선수였다.


그나마 마크 가솔을 얻은 것은 수확이었다. 현재 마크 가솔의 위치는 그 당시 파우 가솔과 거의 상응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마크 가솔이 그 당시 NBA에 단 1번도 뛰지 않았었고, 2라운드 48순위 선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크 가솔이 이렇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트레이드로 파우 가솔을 얻은 LA 레이커스는 2번의 NBA 우승과 1번의 NBA 준우승을 일궈냈다. 반면 멤피스는 2년간 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눈물을 삼켰다. LA 레이커스 입장에서는 최고의 선택이었으나, 멤피스 팬들에게는 많은 상처가 남은 트레이드였다. 미국의 온라인 웹진 complex.com은 이 트레이드를 ‘트레이드 데드라인 직전에 일어난 역대 최악의 트레이드’ 1위에 꼽았을 정도였다.

댈러스 팬들, “밀워키에 항상 땡큐!”
밀워키 벅스 ↔ 댈러스 매버릭스

· 일시_ 1998년 6월 24일
· 벅스 got_ 1라운드 6순위
· 매버릭스 got_ 1라운드 9순위, 1라운드 24순위

정보부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주는 트레이드였다. 밀워키와 댈러스는 1998년 드래프트 당일 이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밀워키는 당시 센터 로버트 트레일러를 영입하길 희망했고, 행여 다른 구단이 트레일러를 먼저 데려갈 것이 걱정되어 댈러스와 입을 맞추었다. 댈러스 측에 1라운드 9순위, 24순위 지명선수를 내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받은 선수가 바로 덕 노비츠키와 팻 개러티였다. 노비츠키는 당시만 해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돈 넬슨 전 감독이 그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단순히 백인 빅맨 한 명이 가세했다고 보는 시각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선수의 명암이 엇갈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트레일러는 7년간 4.8득점 3.7리바운드로 초라한 성적을 남겼고 자기관리에서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NBA에서는 못 본 지 오래 됐다. 반면 노비츠키는 2015년에도 NBA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꾸준함을 과시 중이다. 2011년에는 소속팀을 NBA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한 팀에서 통산 27,000득점을 돌파한 역대 4명(마이클 조던, 칼 말론, 코비 브라이언트) 중 한 명이다.

클리퍼스의 실수, 카이리 어빙이 올 수 있었는데…
LA 클리퍼스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 일시_ 2011년 2월 24일
· 클리퍼스 got_ 모 윌리엄스, 자마리오 문
· 캐벌리어스 got_배런 데이비스, LA 클리퍼스 1라운드 지명권

2010-2011시즌 트레이드 마감일 직전에 일어난 트레이드다. 모 윌리엄스와 자마리오 문이 클리퍼스로 가고, 배런 데이비스와 함께 클리퍼스의 1라운드 지명권이 클리블랜드로 넘어갔다. 당시 클리퍼스의 목적은 단 하나. 샐러리캡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었다. 배런 데이비스는 당시 계약 기간 2년에 2,800만 달러의 거대 계약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비용에 비해 활약이 저조했던 것이 사실. 결국 클리퍼스는 데이비스의 계약을 덜고 샐러리를 비웠다. 클리블랜드는 데이비스보다는 1라운드 지명권이 목적이었다. 르브론 제임스 이적 후 리빌딩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클리퍼스가 이 1라운드 지명권에 아무런 옵션을 걸지 않고 그대로 클리블랜드에 보낸 것이 문제였다. 이 클리퍼스의 지명권은 공교롭게도 전체 1순위에 당첨, 결과적으로 클리블랜드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그것도 2.8%의 확률을 뚫고 1순위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놀라웠다. 결국 클리블랜드는 클리퍼스한테 얻은 지명권으로 카이리 어빙을 얻을 수 있었고, 어빙은 신인왕과 올스타전 MVP, 농구월드컵 MVP 등을 수상하며 화려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클리퍼스는 지명권에 제약을 걸었다면 아마 어빙은 지금 클리퍼스의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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