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 기자들이 꼽은 BEST TRADES EVER
트레이드 기안에 최종 결재를 하는 단장과 감독의 마음은 늘 한결 같다. 지금의 선택이 팀에게 최선이길 바란다. ‘1+1’이 ‘2’가 아닌 ‘5’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2’에서 그치지 않고 ‘5’를 얻었던 트레이드도 있다. 효과가 쏠쏠했다는 의미다. 반대로 그 어느 때보다 요란한 분위기 속에서 성사됐던 트레이드도 있었다. 점프볼 기자들이 그런 트레이드들을 기억해봤다. 구단 살림 밑천이 됐던 역대 최고의 트레이드를 정리했다.
농구대통령, 기아를 떠나다
곽현 기자의 선택 : 기아 ↔ 나래
· 일시_ 1998년 5월 29일
· 기아 got_ 정인교, 제이슨 윌리포드
· 나래 got_ 허재, 외국선수 지명권
영원히 기아의 간판스타로 남을 것만 같았던 허재(현 KCC 감독)의 트레이드가 기억에 남는다. 1997-1998시즌 기아와 현대의 챔프전은 지금도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다. 전무후무한 준우승팀 MVP를 차지한 허재는 시즌 종료 후 나래의 정인교와 트레이드돼 팀을 옮긴다. 프로농구 출범 당시부터 팀과 불화설이 있던 허재는 팀에 트레이드를 요구 해왔던 터였다. 기아는 이미 강동희 체제로 새로 팀을 꾸리던 상황이었고, 허재는 더 이상 팀에 미련이 없는 듯 했다.
허재의 트레이드 요구설이 퍼지자 PC 통신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시즌 종료 후 허재는 나래로 팀을 옮기게 됐고, 기아는 ‘사랑의 3점 슈터’ 정인교와 원년 외국선수 MVP 제이슨 윌리포드를 영입했다. 나래는 기아의 외국선수 지명권을 얻어와 장신의 데릭 존슨을 영입했다. 당시 허재는 한국나이 서른넷의 노장이었지만, 나래 이적 후에도 출중한 기량을 자랑했다. 1998-1999시즌 정규리그 45경기에 모두 출전해 17.1점 4.8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맹활약을 펼쳤다. 나래는 정규리그 4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기아는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나래는 허재 영입 후 첫 우승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허재는 2002-2003시즌에 전체 1순위로 지명한 ‘대형 신인’ 김주성을 도와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다시 뭉친 이-조-추 트리오
손대범 기자의 선택 : KCC ↔ SK
· 일시_2003년 12월 3일
· KCC got_ 조성원, 강준구
· SK got_ 전희철, 홍사붕
2002-2003시즌의 KCC는 실망, 그 자체였다. 드라마틱했던 2001-2002시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KCC는 2002년 비시즌 동안 오리온스로부터 전희철을 영입해 '토털 농구'의 정점을 찍는 듯 했지만 외국선수 농사에 실패한데 이어 추승균-이상민-전희철 트리오의 조화를 끌어내지 못하면서 20승 34패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2003-2004시즌도 시작은 불안정했다. 찰스 민렌드라는 특급 선수를 영입했으나 개막 후 한 달여 동안 11승 6패에 그치는 등 기대를 밑돌았다. 결국 2003년 12월 3일, KCC는 용단을 내린다.
전희철을 SK에 내주고 ‘캥거루 슈터’ 조성원을 다시 영입하기로 했던 것. 애초 조성원은 1999-2000시즌 직후 현대가(家)에서 LG로 트레이드 된 바 있었다. ‘토털 농구’를 구상하던 신선우 감독의 결정이었다.
조성원은 LG를 거쳐 SK에 가세했지만 MVP 시즌만큼의 기세는 보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조성원에게 친정팀 복귀는 침체에 빠졌던 그 자신에게도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상민, 추승균 덕분에 폭발적인 슈팅을 다시금 과시하게 됐던 것이다. 2003-2004시즌 SK에서 평균 12.0득점에 그쳤던 조성원의 개인 성적은 KCC에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뚝 떨어졌던 3점슛 성공률이 다시 40%대로 올라오면서 이상민, 추승균은 물론이고 민렌드도 더 여유있게 공격을 하게 됐다.
덕분에 KCC는 2004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재결성된 '이-조-추' 트리오는 2005년에도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아 준우승을 기록했다. 조성원은 3차전에서 27점차까지 리드당하던 KCC의 극적인 역전승(89-85)을 이끌기도 했다. 이날 조성원이 올린 점수는 27득점(후반 18점)이었다. 한편 SK로 팀을 옮긴 전희철도 커리어의 새 국면을 맞았다. SK에서 5시즌을 보낸 그는 은퇴 후 SK에서 2군 코치를 거쳐 1군 코치로 올라섰으며, 문경은 감독을 보좌하며 SK의 화려한 부활을 주도했다.
‘어음과 현찰’ 트레이드 시초
최창환 기자의 선택 : KCC ↔ 모비스
· 일시_2004년 1월 18일
· 모비스 got_ 무스타파 호프, 신인 드래프트 1~4순위 지명권
· KCC got_ R.F. 바셋, 신인 드래프트 5~8순위 지명권
당장의 우승과 미래.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모비스와 KCC가 드래프트 지명권을 포함해 단행한 트레이드는 참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모비스와 KCC는 2003-2004시즌 순위 경쟁이 한창인 2004년 1월 18일, R.F 바셋과 무스타파 호프를 맞트레이드했다. 2004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이 포함된 빅딜이었다. 플레이오프가 무산된 모비스는 미래에 팀의 중심이 될 유망주가 시급했고, KCC는 TG삼보의 높이에 맞설 카드가 필요했다. ‘편법’, ‘계열사 몰아주기’ 등 논란도 많았지만, 양 팀은 이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을 손에 넣었다. KCC는 TG삼보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4승 3패, 현대에서 KCC로 간판을 바꾼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모비스도 기대 이상의 수확을 얻었다. 2004 드래프트 추첨 결과 KCC의 지명권이 1순위가 된 것. 모비스는 한양대의 공격형 가드 양동근을 얻었다(KCC는 모비스로부터 받은 7순위 지명권으로 연세대 최승태를 지명했다). 양동근은 2004-2005시즌 신임 유재학 감독의 지휘 아래 무럭무럭 성장했다.
유재학 감독의 리더십, 양동근의 성실함은 예상보다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모비스는 양동근과 함께 4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고, 양동근이 고참이 된 지금도 강팀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KCC는 “눈앞의 우승을 위해 미래를 포기했다”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다. 양동근의 위력은 KCC가 계산했던 것 이상의 결과였지만, 양동근이 KCC에서도 이와 같은 성장세를 그릴 수 있었을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KCC도 우승 이후 침체기를 거치며 하승진을 영입, 두 차례 더 우승하며 왕조를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윈-윈 트레이드였던 것이다.
NBA 도전했던 방성윤, 국내로 유턴
김준우 기자의 선택 : SK ↔ KTF(현 케이티)
· 일시_ 2005년 11월 20일
· SK got_ 방성윤, 정락영, 김기만
· KTF got_ 조상현, 황진원, 이한권
SK는 김태환 감독 부임이후 공격적인 트레이드로 인기 구단의 명성을 이어갔다. 그러나 ‘스타군단’이라는 명성과 다르게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던 게 사실이다. SK의 1라운드 성적은 3승 6패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10월 30일 LG전에서는 왼쪽 무릎이 탈골되는 부상을 입어 잔여 시즌 출전이 어려워진 상황. 다급해진 SK는 NBA 도전을 위해 NBA D-리그에서 뛰고 있던 방성윤을 설득, KTF와의 논의 끝에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사실, 방성윤이 처음부터 SK에 올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방성윤은 KTF와의 계약협상 중 잡음이 발생하면서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게 된 상황이었고, 여러 팀들이 그의 영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SK도 그 중 하나로, KTF측에 원하는 선수 2명을 내줄 것이며, 방성윤에게도 훗날 미국 도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딜은 OK 됐고, 방성윤도 국내 프로무대에 데뷔하게 됐다. 방성윤은 과감한 3점슛과 돌파, 포스트 플레이 등 다양한 공격루트와 자신 있는 플레이로 외국선수와 맞섰다. 팬들은 NBA 슈퍼스타 카멜로 앤써니에 그를 비유했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는 성사 당시 불러 모은 관심과는 달리, 승자를 꼽기가 대단히 애매했다. SK는 방성윤의 가세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2007-2008시즌(29승 25패)을 제외하면 한 번도 방성윤과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부상이 잦았던 방성윤은 SK에서 겨우 131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KTF 역시 트레이드로 얻은 카드를 충분히 이용하지 못했다. 조상현이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LG로 떠났기 때문이다. 다만 황진원은 팀에 남아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도왔다. 한편, 정락영과 김기만에게 SK는 마지막 팀이 됐다. 김기만은 현재 SK의 2군 코치를 맡고 있다.
SK, 마당쇠를 얻다
하정서 기자의 선택 : SK ↔ 케이티
· 일시_ 2012년 5월 24일
· SK got_ 박상오+2라운드 지명권
· 케이티 got_ SK 1라운드 지명권
박상오는 2011-2012시즌 후 자유계약선수가 됐다. 하지만 원소속 구단이었던 케이티와의 연봉 협상에서 마찰이 생
겼고, 결국 결별 절차를 밟게 된다. 박상오의 행선지는 SK였다. 케이티와 SK는 싸인 앤 트레이드 방식을 빌려 딜을 단행했다. MVP의 씁쓸한(?) 이적이었다. 케이티는 박상오를 놓쳤지만, SK로부터 지명권을 받았다. 비록 에이스를 놓쳤으나, 케이티는 그 해 10월 8일, 이 지명권 덕분에 신인선수 드래프트 현장에서 쾌재를 불렀다.
SK가 1순위 지명권에 당첨됐던 것. 덕분에 케이티는 전체 1순위로 당시 중앙대 출신의 장재석을 지명했다. 그러나 SK도 아쉬울 건 없었다. SK 입장에서는 박상오와 같이 리더십이 있고, 코트 위에서 몸을 아끼지 않을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박상오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도 ‘부라더’였다. 문경은 감독의 요구대로 내외곽을 오가며 SK 장신라인업의 한 축을 잘 소화해냈다. 문경은 감독은 박상오에 대해 “없어서는 안 될 선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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