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어릴 적 농구광들이 마침내 농구판에서 만났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전자랜드 변영재 통역과 신한은행 구나단 코치. 이들의 첫 만남은 머나먼 캐나다에서의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구’를 매개로 엮이게 된 이들의 인연은 성인이 되어 다시 맺어졌다. 그것도 인천을 연고로하는 남녀 프로팀에서 다시 만나게 됐으니 얼마나 기막힌가. 하지만 “식사 한 번 하시죠”라고 말을 했지만, 시즌 일정이 타이트했던 탓에 약속이 치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점프볼이 ‘친구 특집’을 핑계삼아 이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기자님, 신한은행에 구나단 코치 있죠? 그 친구가 저 캐나다 있을 때 알던 친구에요.” 인터뷰는 전자랜드의 ‘10년차 베테랑’ 변영재 통역의 이 한 마디에 주선됐다. 곧 맥주 한 잔 하면서 캐나다 썰을 풀자고 약속했지만, 남녀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즌이 한창이었던 탓에 시간이 되지 않았고 결국 ‘공적인’ 이유를 앞세워 올스타전 브레이크가 있던 어느 날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약속했던 맥주 한 잔은 없었지만, 캐나다에서 시작된 이 두 남자의 농구 스토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J. 두 분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구나단 제가 있었던 동네(해밀턴)가 한인들이 많이 없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제가 14살~15살 정도였죠. 형님이 고등학생이었고, 전 중학생이었어요. 거기서 농구를 하다가 인연이 닿았어요. YMCA에서 운동을 하다가 알게 됐죠.
변영재 워낙 동네가 작아서 사람도 많이 없었고, 한인들도 적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몇 사람만 거치면 알게 되는…. 저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거든요. 육상부에서도 러브콜이 오고, 높이뛰기 멀리 뛰기로 시 대표까지 했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반대해서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캐나다로)유학을 갔어요. 외국에 가니 너무 신세계더라고요. 수업은 1, 2시면 다 끝나고 다 과외활동을 가는데, 전 스포츠를 택했어요.
구나단 형님이 운동 신경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전 재미로 농구를 했어요. 보통 그땐 농구 아니면 하키를 했는데, 전 농구를 골랐어죠. 그땐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주니어 단계에서 시니어로, 그리고 엘리트 농구를 하게 됐죠.
J. 두 분의 농구 실력은 어땠나요.
변영재 솔직히 나단이가 훨씬 잘했죠.
구나단 나이차 때문에 그런거죠(웃음).
변영재 제 기억에는 나단이는 흑인 친구들도 인정했어요. 슛이 기가 막히게 좋았거든요. 근데 빠르진 않았던 것 같아요. 몸집도 지금이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스피드가 아니라 기술로 슛을 던지면 다 성공시켰어요. 독종이었어요. 연합 교회에 체육관이 있었는데, 나단이가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다가 잠들었다는 소문도 있었죠.
구나단 농구를 잘하고 싶은데, 벽이 높았다고 할까요. 지금 외국 선수들을 봐도 느껴지는 거지만, 피지컬에서 차이가 있잖아요. 쉽게 이길 수 없다 보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농구에 완전히 미쳐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형님은 운동 신경이 정말 타고나셨었어요. 제가 어렸을 땐 당연히 형들한테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데, 형님을 보면서 힘도 세고 빨라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약간 우리 이(휘걸)코치 느낌이었어요.
변영재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동네에서 농구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둘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웃음).
J. 그러다가 언제쯤 연락이 끊겼나요?
변영재 제가 토론토로 대학을 가면서 동네를 떠나게 되면서 부터요. 한 3~4년 정도 같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구나단 한국처럼 선후배 유대관계가 있는 게 아니고, 각자의 삶을 사는 스타일이잖아요. 형님이 대학에 가시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죠.
J. 그 인연이 지금 또 이렇게 닿았는데, 다시 만난 소감이 어떤가요?
구나단 전 형님이 농구 쪽에 계시다는 걸 오래전에 들었어요. 정말 어릴 때 작은 도시에서 만났다가 이렇게 여기서 다시 뵈니 신기한 걸 넘어서서 인연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형님이 또 제가 한국에 왔을 때 기사를 보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전화를 개통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형님이었죠. 한국말로 축하한다는 말을 형님에게 가장 먼저 들은 것 같아요.
변영재 그때 캐나다에 있는 친구가 나단이가 농구 쪽에서 일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 구나단이란 이름이 흔한 이름이 아니잖아요. 저희 (김성헌)국장님께 신한은행 구단에 제가 아는 그 친구가 맞나 확인을 부탁드렸죠.
J. 서로가 봤을 때 그때 그대로인가요?
구나단 신기할 정도로 똑같아요. 그때가 14살? 15살 때쯤이었는데, 눈 감고 생각해보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때 형님 체격이 지금보다는 말랐고, 정말 근육질에 딴딴했던 기억이 나요.
변영재 완전 똑같아요. 수염자국 생긴 게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때 당시에 제가 인상이 무섭게 생겨서 사람들이 저한테 말을 못 걸었어요. 동네에 사건, 사고가 생기면 절 찾는 정도(웃음)? 아무래도 유학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나라 친구들이랑 부딪히는 경우가 있잖아요.
구나단 솔직히 저희가 캐나다에 있을 때는 인종차별이 있었잖아요. 그게 베이스가 되다 보니 운동을 하면 깡다구가 없으면 쉽지 않았어요. 그걸 다 받아들이고 해야 하다 보니 악착같이 한 거죠.
변영재 체육관을 천막으로 나눠놔요. 한쪽은 중국, 아시아의 작은 친구들이 하면 다른 한 쪽은 흑인 친구들이 농구를 해요. 저는 잘하는 쪽에서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거기에서 같이 농구를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냐면 ‘한번만 기회가 와라’라는 마음이었어요. 선수가 모자라 머릿수를 맞춰야 하는 날이 오길 기다렸는데, 어느 날 한 (흑인)친구가 1대1을 하지 않겠냐라고 말을 걸었어요. 세상 못 들어 본 욕을 다 들었던 것 같은데, 그냥 내가 너한테 배우고 싶어서 그런다, 한 번 만 해달라고 그랬죠. 그리고는 7점 내기를 했는데, 7-0으로 이겼어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몰려오고, 나중에는 ‘한 번 같이 해 볼래?’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죽기 살기로 했어요. 그래야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같이 농구를 할 수 있잖아요. 인종 차별이 심할 때인데, 농구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그랬던 기억이 나요(웃음).

농구공 하나로 울고 웃었던 두 청년이 어느덧 사회생활 만랩 직장인이 됐다. 변영재 통역은 악기 수출 회사를 다니다가 LG를 거쳐, 전자랜드 국제업무 담당자로 어느덧 10년을 버텼고, 구나단 코치는 대학시절까지 농구 선수 생활을 하다가 일찍이 지도자로 전향, 캐나다, 중국 상해를 거쳐 정상일 감독이 이끄는 신한은행에 합류했다. 농구를 좋아하던 두 소년이 농구판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를 직업으로 삼게 된 것이다.
변영재 저 개인적으로 나단이한테 궁금한 게 있어요. 어렸을 때 내기를 했으면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농구를 했던 친군데, 지금 선수들이랑 훈련할 때도 그렇게 하나요? 아님 팔짱 끼고 선수들을 지켜보나요?
구나단 저 어제 트레이너한테 치료 받았어요(웃음). 나이가 들기도 했고, 또 남자들이랑 여자랑 하는 거랑 다르잖아요. 가끔은 제가 부딪히는 걸 조심할 때가 있는데, 그럼 정 감독님이 ‘야, 똑바로 안해!’하시죠. 제가 수비할 때 (김)단비를 막는데, 우리팀에서 제일 빠르고 힘이 세잖아요. 거의 힘이 남자에요. 가끔은 뛰다가 ‘어제 술 많이 드셨나봐요’하고 놀려요. 제대로 하라고, 연습이 안 된다며 장난도 치고요.
J. 그럼 구 코치님은 변 통역님께 궁금한 거 없으신가요?(웃음)
구나단 형님도 그럼 아직도 남자선수들이랑 몸 부딪히면서 뛰고 그러십니까. 하하.
변영재 저는 야간 훈련에 가끔 하는데, 제 입장에서는 선수들 훈련을 시켜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즐기려고 1대1을 하자고 하는 정도에요. 아직까지는 선수들이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고 하는데, 저는 보통 신인선수 담당이죠. 매년 신인 선수들이랑 붙는데, 저랑 붙어서 이기면 선수, 지면 바보라고 선수들이 농담을 해요. 그래서 제가 신인들이 올 때가 되면 한 달 정도 몸을 만들어요. 그러곤 1대1을 하죠. 제가 체격도 있고, 운동을 못할 것 같은데, 또 막상 부딪혀보면 선수들이 힘이 장난은 아니라고 하죠.
J. 만약 두 분이 한 팀에서 만난다면 어떨까요?
구나단 일단 1대1부터 해봐야죠(웃음). 솔직히 저는 형이 10년간 통역일을 한 게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는 아직 한국농구가 처음이라 한창 배우는 중이고, 조심스러운 게 많아요. 잘 모르기도 하고, 실수 하나로 감독님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잖아요. 사실 이번에 외국선수 엘레나 스미스를 뽑았는데, 경기 때 두 번 울고, 연습 때 울고, 힘들어했어요. 또 호주에 산불이 났는데, 근처에 가족이 있어서 엄청 힘들어했죠. 그 마음을 잘 아는데, 또 감독님 입장에서는 선수가 코트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되잖아요. 제가 중간에서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여자 선수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술 한 잔 사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변영재 선수단 생활을 하다 보면 농구와 관련되지 않은 변수들이 정말 많아요.
J.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구나단 형님이 처음 제게 전화를 주셨을 때 정말 감사했어요. 자주 보지 않더라도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느냐에 따라 인연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제가 한국에 와서 연락을 드리고 싶었지만 사실 뵙기가 어려웠어요. 여자 팀의 경우, 숙소 생활을 하다 보니 쉽게 외출을 나가지 못했거든요. 가끔 연락만 하고, 경기도 한 번 보러 왔었는데, 좀 더 좋은 형동생으로 지내면 좋지 않을까 해요. 먼저 연락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리스펙(respect)합니다 형님. 정말 대단하세요. 남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다 겪으셨을 테니.
변영재 그렇죠. 어마어마한 일들이 많았죠(웃음). 나중에 책을 내볼까 해요. 저는 하고 싶은 얘기가 하나 더 있는데, (김)단비 선수 사인 한 장만 받아줘. 농구 잘하잖아요.
J. 어떤 통역, 어떤 코치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구나단 열정을 가지고, 지도자로서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사실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처음 하고 있는데, 저를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절대로 누굴 낮게 보거나 틀리다고 보고 있지 않거든요. 가끔 기분 나쁘게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있겠지만. 예를 들어 코트에서는 잘 웃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를 할 때도 반듯하게 앉아야 하잖아요(웃음). 함께 일하는 지도자로서 잘 지내고 싶으니,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변영재 나단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물론 자신의 장점을 살려가고 있겠지만, 나단이의 장점이라고 하면 선수들과 몸을 부딪히면서 호흡하고, 대화하고, 친해지려고 하는 코치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지도자들이 안한다는 것이 아니라 저도 어느 순간 친해지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 대화를 하더라도 비즈니스가 될 때가 있어요. 저는 외국 선수랑 처음 만나면 굳이 말을 하고, 알아가기에 힘쓰는 것 보다 그냥 리바운드를 몇 개 잡아줘요. 대충이 아니라 선수들이 뿌려주듯이 패스로 뿌려주면서 땀을 흘리죠. 그럼 선수들이 먼저 말을 걸어와요.
구나단 여자 선수는 남자 선수들과 다른 점이 있어요. 프레임이 작다 보니 맞춰주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패스를 너무 세게 줘도 안 되고, 약하게 줘서도 안 돼요. 패스를 좀 떨어진 곳으로 날리면 남자 선수들의 경우는 사이드 스텝으로 잡고 하는데,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만큼 하진 못해요. 빠른 선수와 느린 선수도 알아서 맞춰줘야 하고요. 근데 또 여자 선수들이 좋은 게 그럼 또 끝나고 와서 고맙다고, 말도 한 마디 더 걸고 그래요.
변영재 아들이랑 딸 키우는 재미랑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하하. 많은 분들이 절 ‘열정적’으로 하는 통역으로 봐주시는데, 제가 이 일을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말이 퇴색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PROFILE | 변영재 통역은…
변영재 통역은 1979년생으로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2010년 창원 LG의 통역으로 두 시즌을 보내다가 2012-2013시즌 전자랜드 통역으로 합류했다. 현재는 전자랜드의 국제업무 팀장. SNS를 통해 스포츠 잉글리시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당시 ‘스테픈 커리 만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만남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2017년 MBC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커리를 초대했을 때 통역사로 출연하기도 했다.
| PROFILE | 구나단 코치는…
1982년생인 구나단 코치는 캐나다 출신으로, 그간 중국 상해에서 코치 생활을 해왔다. 정상일 감독, 이휘걸 코치와 인연이 닿은 것도 중국에서였다. 대학 때까지 농구 선수 생활을 해왔으며, 부상으로 일찍이 코치 생활을 시작해 중국 프로리그를 거친 후 2019년 신한은행 코치로 왔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 사진_ 홍기웅, 문복주 기자, WBL 제공
# 사진설명_ 좌 구나단 코치, 우 변영재 통역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