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지용 기자] 입스(Yips) : 부상 및 실패에 대한 불안감, 주위 시선에 대한 지나친 의식 등이 원인이 되어 손 · 손목 근육의 가벼운 경련, 발한 등의 신체적인 문제가 일어나는 것. 야구, 골프, 농구 등 구기 종목 운동선수들이나 특정 근육을 반복해 사용하는 직군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불안 증세. ‘입스’라고 불리는 이 증세는 강박관념이 심한 운동선수들에게 찾아오는 심리적 장애다.
오랜 기간 숙련도를 높여가며 한 우물을 판 운동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큰 이유도 없이 매일 하던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면 어떨까. 10년 넘게 해왔던 행동이 막연한 불안감에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때 그 선수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많은 선수들이 이 증세가 찾아왔을 때 포지션을 바꾸거나 심하면 은퇴까지 하게 된다. 노승준도 그랬다.
※ 본 인터뷰는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 결국에는 은퇴로 이끈 입스
계성고, 고려대 출신으로 2012년 전주 KCC에 입단해 순탄한 길을 걷던 노승준은 2013년 슛 자세에 변화를 주며 입스가 찾아왔다.
“2013년 초, KCC에 있을 때 입스가 왔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원래 슛이 장점이었는데 프로에 입단해 자세에 변화를 줬다. 잘하고 싶은 욕심에 변화를 줬는데 프로 2년차까지 슛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폼이 망가지고 있다고만 느꼈지 내가 ‘입스’에 걸렸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프로 입단 후 슛에 어려움을 겪던 노승준은 2014년 상무에 입대한다. 이때만 해도 그는 상무에서 자신의 슛을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절치부심하고 상무에 입대한 노승준.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상무 생활은 노승준을 더 궁지로 몰아넣었다.
“상무에 입대해서 정말 연습을 엄청 했다. 이건 주위 동료들도 인정한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 불안해졌다. 기대했던 변화가 없으니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도 입스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동료가 ‘이거 만화책에 나오는 그거 아니냐’고 말해서 생각해보니깐 내가 입스에 걸렸던 것이다. 그게 2014년 여름쯤이었는데 그때부터 입스를 인지한 것 같다.”
자신의 불안감이 병으로 발전했다는 걸 인정한 노승준은 상무에서 심리치료와 최면치료를 받았다. 주사치료까지 받으며 입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노승준. 하지만 치료 초기 잠시 호전되는 듯했던 증세는 상무 시절 내내 노승준을 괴롭혔고, 오히려 프로시절보다 더 증세가 악화되고 말았다. 2016년 1월 상무에서 전역한 노승준은 2017년 원주 DB로 트레이드 됐고, 프로 생활 막바지까지도 입스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채 2019년 5월 은퇴했다.

#모든 걸 포기하자 찾아온 기회
프로에서 은퇴한 노승준은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농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노승준은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농구를 그만두게 되니 다시는 농구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은퇴 후의 삶은 농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쪽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실제 노승준은 2019년 하반기 공채 시즌에 대기업 취업을 준비했고, 공부 시작 3개월 만에 토익 805점이란 고득점을 얻기도 했다. 비록, 준비했던 대기업 취업에는 실패했지만 가능성을 본 노승준은 계속해서 취업에 매달렸다. 그러던 중 평소 친분이 있던 장동영으로부터 3x3 국가대표로 차출된 이승준의 공백을 잠깐만 메워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019년 여름쯤이었다. (이)승준이 형이 국가대표로 차출되는 바람에 팀에 선수가 부족하다고 (장)동영이한테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잠깐 도와주러 갔었다. 그때만 해도 농구는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3x3에 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잠깐 도와주고 취업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발을 뺄 수 없게 됐다(웃음).”
노승준의 등장은 한국 3x3의 파장을 일으켰다. 5대5 농구에선 약점으로 지적받던 노승준의 슛은 3x3 코트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을 내려놓자 슈팅은 조금씩 회복됐고, 탁월한 몸싸움 능력을 지닌 노승준의 장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5대5 경기 때는 내가 뛰면 5대4 경기가 됐다. 내가 슛이 없으니깐 상대가 나를 버리고 다른 선수를 더블팀으로 막았다. 나는 민폐였다. 하지만 3x3는 나를 버리는 순간 돌파할 공간이 많아 오히려 나에게 잘 맞는다고 느꼈다. 밖에서 3x3를 봤을 땐 다재다능하고, 슛은 필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전해보니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렇게 3x3 코트에 적응한 노승준은 2019년 소속팀에게 리그 우승을 안기더니 2020년 3x3 국가대표 트라이아웃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020 도쿄올림픽 3x3 남자농구 1차 예선 및 FIBA 3x3 아시아컵 2020’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불과 1년 만에 삶의 방향이 180도 바뀐 노승준은 “입스에 걸렸던 프로에 있을 때도 연습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프로를 떠날 때도 아쉬움은 있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구를 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취업 준비도 한 거였다. 하지만 3x3를 접한 뒤 다시 땀 흘리고, 경쟁을 즐기는 내 모습이 참 신기하기도 했고, 즐거웠다. 분명 농구가 싫어서 떠났는데 3x3가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6개월 넘게 3x3를 하다 보니 이제는 요령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언감생심 국가대표는 꿈도 못 꿨는데 3x3를 통해 태극마크를 달게 돼 감개무량하다. 국제무대 경험이 부족하긴 하지만 지난해 챌린저를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다. 그때 유럽 선수들과 붙어봤는데, 높이의 열세는 느꼈지만 몸싸움은 충분히 해 볼 만 하다고 느꼈다. 앞으로 있을 올림픽 예선과 아시아컵에서 투지 있게 골밑 싸움을 이어가면 좋은 경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국제대회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살려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설명했다.
2020년 누구보다 극적인 인생 반전에 성공한 노승준은 잊고 지내려고 했던 농구에 다시 한번 인생을 걸어보기로 했다. 3x3를 통한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는 노승준은 “3x3를 하면서 ‘내가 다시 운동선수가 된 건가’ 싶었다. 어떻게 보면 진짜 신기하다. 다시 농구를 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프로시절 때처럼 100%의 노력과 열정을 다 쏟아부어 3x3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볼 생각이다”며 2020년의 각오를 전했다.
*노승준 프로필*
1988년 10월7일생, 포워드, 196cm, 99kg, 경산중->계성고->KCC->DB(2019년 은퇴)
#사진_점프볼DB(김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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