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프볼이 20년 동안 지켜본 최고의 남녀 프로선수는 누구?

김용호 / 기사승인 : 2020-01-28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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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손대범, 김용호 기자] 2000년 1월호에 창간한 농구전문잡지 점프볼은 20년간 프로농구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함께 상승곡선을 그리기도 하고, 농구에 악재가 겹칠 때면 함께 울기도 했다. 20년간 함께 해온 건 ‘농구’만이 아니다. 역사가 쌓이며 점프볼을 거친 기자들도 많았다. 점프볼은 20년 간 스포츠기자 및 스포츠 기관 및 구단 관계자들을 배출해왔다. 어느덧 20기에 이른 인터넷 기자 시스템을 통해서도 수많은 스포츠기자 지망생들이 현장을 배우고, 꿈을 키워갔다.

그런 의미에서 점프볼은 20년간 함께 해온 식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나 진행했다. 창간이래 20년간, 한국 프로농구를 빛낸 최고의 남녀농구선수는 누구일까. 전화를 받은 식구들은 ‘뜬금없는’ 연락에 먼저 놀라고, 쉬운 듯 어려운 질문의 난이도에 한 번 더 놀라워하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자신의 선택을 내놓았다. 그 결과를 공개한다.

※ 본 기사는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최고의 남자농구선수
‘국보센터’ 서장훈

편집부가 이 투표를 기획할 때부터 예상했던 인물은 2명이었다. 프로농구에서 ‘국보’라 불린 유일한 인물인 서장훈, 그리고 점프볼 창간이전부터 일찌감치 ‘농구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허재가 그 주인공. 실제로 투표인단이 대답을 쉽게 꺼내지 못한 이유도 둘 중 누구를 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국보센터’ 서장훈, 그가 1위를 차지한 이유
결국 1위를 차지한 선수는 바로 서장훈이었다. 대부분의 이유는 ‘지난 20년간’이라는 기준 때문이었다. 창간 후 점프볼이 다룬 첫 챔피언이 바로 서장훈의 서울 SK였고, 첫 시즌 MVP도 서장훈이었다. 서장훈은 KBL에서 15시즌을 뛰었다. 우승반지는 2개뿐이지만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 올스타 MVP에 정규리그 베스트5에도 8번이나 이름을 올렸다. 9시즌 연속 연봉 킹 자리 역시 서장훈의 것. 이러한 오랜 활약의 결실은 정규리그 통산 최다득점(13,231점)과 최다 리바운드(5,235개)로 연결됐다. 당분간은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뛰던 시절에 올린 기록이기에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현역시절 서장훈의 장점은 207cm의 장신을 앞세운 지배력에 있었다. 그러나 그 장점이 골밑에서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현대농구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장신들의 외곽슛 역시 서장훈의 강점이었다. 서2000년대만 해도 ‘센터라면 골밑’이라는 등식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어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는 자신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활용했던 선수였고 이를 이용해 삼성도 2005-2006시즌 플레이오프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서장훈의 3점슛 성공률은 무려 36.0%다. 1,216개를 던져 438개를 넣었는데 현재 KBL의 슈터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 서장훈을 보며 함께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김주성(DB 코치)조차 “나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레벨’의 선수였다”라고 돌아봤다.


허재의 짧지만 강한 임팩트
서장훈에 8표 차이로 밀린 2위는 바로 ‘농구대통령’ 허재였다. 허재의 하이라이트 영상은 지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회자될 정도로 그는 ‘지배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를 7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 것은 물론이고, 1997-19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MVP가 됐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챔피언 현대를 괴롭혔다. 당시 기아와 맞섰던 조성원(현 명지대 감독)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허재 형이 걱정됐다. 얼마나 더 잘 할지 두려웠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당시 시리즈에서 허재가 보인 투혼은 초창기 프로농구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또한 원주로 자리를 옮겨 2002-2003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갈비뼈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코트를 지키고자 했던 그 모습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그는 프로 8시즌 중 절반인 4시즌이나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았다. 흥미롭게도 두 인물은 2019년 현재, 대한민국 농구를 간접적으로 알리는 비공식 ‘홍보대사’ 역할도 해내고 있다. 각자 타고난 입담을 앞세워 예능계를 휩쓸고 있는 것. 코트에서나, 브라운관에서나 중심이 되어 있는 두 사람을 보면 ‘스타’는 타고난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현역 최고는 양동근
현역 선수 중에서는 현대모비스 양동근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그가 받은 표는 허재와 겨우 3표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양동근은 2000년대 KBL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2004-2005시즌 데뷔 후 우승만 여섯 번 차지했다. 특히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무대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2018-2019시즌에는 라건아, 함지훈, 이대성과 함께 또 한 번 잊지 못할 추억을 장식했다. 그러나 양동근이 3위에 오른 것은 단순히 우승횟수 때문만은 아니다. 프로 데뷔 후 그는 꾸준히 성장세를 그려왔다. 서장훈과 허재만큼 개인 기량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선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상민, 신기성, 김승현 등 프로에 남아있던 슈퍼스타 가드들과 비교되며 평가절하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매 시즌 실력을 갈고 닦아 지금은 대부분의 가드 유망주들이 닮고 싶어 하는 프로선수이자 리더다. 막강한 수비력, 클러치타임 해결 능력 등 양동근은 40대를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주전급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투표인단에게 선택을 받은 선수들은 모두 프로 무대에 자신의 확실한 이미지 하나씩을 남겨놓고 갔던 선수들이다. ‘에어 카리스마’ 김주성과 ‘컴퓨터 가드’ 이상민이 3표씩 얻으며 그 뒤를 이었고, ‘람보 슈터’ 문경은, ‘매직 핸드’ 김승현도 이름이 불렸다. 한국 최초의 NBA리거 하승진과 ‘플래시 썬’ 김선형도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역대 최고의 남자 프로선수로 자리하고 있었다.


최고의 여자농구선수
‘여제’ 정선민

시대를 풍미했던 ‘바스켓 퀸’
서장훈은 현역 마지막 경기였던 2013년 3월 19일, 전주 KCC와의 홈 경기에서 32분을 소화하며 33득점을 기록했다. 팀의 플레이오프 좌절로 승패가 순위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마지막 경기’를 위해 몸을 불살랐다. 서장훈처럼 정선민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레전드였다. 정선민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바로 챔피언결정전 무대였기 때문이다. 2011-2012시즌, 친정팀인 KB스타즈로 돌아온 그는 팀을 챔프전에 올려놓고 자신이 영예를 함께 누렸던 신한은행에 대항했다. 비록 우승은 거머쥐지 못했지만 마지막 경기까지도 주전으로 30분을 뛰며 상대를 긴장시켰다.

정선민은 시대를 지배한 인물이었다. 승부처를 책임지는 카리스마와 해결능력은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등을 포함, 총 13번의 트리플더블로 이 부분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2위는 6회의 신정자). 또 통산 득점 1위(8,140점), 통산 리바운드 2위(3,142개)에 통산 2,000개 이상의 자유투를 시도하고도 성공률 87.1%를 자랑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런 정선민이기에 ‘20년간 최고 선수’를 논할 때 대다수 투표인단이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언급했던 것이 아닐까. 이번 투표에서 정선민은 총 36표를 얻었다. 2위 변연하(19표)와 3위 전주원(16표)의 득표수를 합쳐도 정선민의 득표수를 넘지 못한다.

국제대회에서도 빛났다. 본지에서도 소개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멤버였으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은메달, 2007년 FIBA 아시어선수권대회 우승,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수많은 영예를 안았다. 또한 여자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WNBA 드래프트(2003년 1라운드 8순위, 시애틀 스톰)에 지명되기도 했다. 또한 미국서 돌아온 뒤에도 MVP를 4번이나 차지했으며, ‘신한 왕조’가 기틀을 잡는데 일조했다. 특히 2007-2008시즌에는 역대 최초로 만장일치 통합 MVP가 되기도 했다. 정선민이 ‘최초’로 기록한 이 기록은 10년이 지나 지난 시즌에 박지수가 역대 2번째로 올랐다.

또 다른 전설들
2~3위에 이름을 올린 변연하와 전주원도 한국 여자프로농구를 주름잡은 인물들이다. 삼성생명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변연하는 앞선 절반을 친정에서, 그리고 은퇴하기까지 남은 절반은 KB스타즈에서 보냈다. 두 개 팀에서 선수생활을 했음에도 은퇴할 시기에 청주체육관의 영원한 10번, 영구결번을 남겼다는 건 그가 얼마나 강한 임팩트를 남겼는지 알 수 있다. 특히 변연하를 논할 때마다 회자되는 ‘스텝백 3점슛’은 아직까지도 여자프로농구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가 WKBL 무대를 호령할 당시, NBA 슈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이름을 따와 ‘변코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변연하는 545경기에서 통산 1,014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다. 이는 역대 통산 1위에 해당하는 기록. 현역 1위(강아정)가 현재 645개를 기록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절대 깨질 수 없는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통산 득점도 정선민에 이어 2위(7,863개)에 올라있다.

우리은행의 코치로서 6년 연속 통합우승을 일군 전주원도 선수시절만 본다면 두 레전드 못지 않았다. 전주원은 포인트가드의 표본이었다. 경기운영에 있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었다. 동료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정확히 패스를 전달했으며, 필요할 때는 본인이 득점에 나서서 경기 흐름을 바꿔놓았다. 1972년생인 전주원은 2011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선수로서는 황혼기에 가까운 시점까지도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했다. 그 발판에는 근면함과 근성이 있었다. 이 부분은 전주원과 함께 뛴 동료뿐 아니라 상대편 지도자들도 인정하는 대목.

전주원은 WKBL 정규리그 330경기에서 통산 6.6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한 시즌 평균 어시스트 최다 부문 1~3위도 모두 전주원이 남겼다(역대 1위는 2005년 여름리그의 8.07개). 또한 한 경기 최다 어시스트 자리도 전주원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2003년 7월, 금호생명을 상대로 남긴 18개가 바로 전주원의 기록이다.


현역 1위는 박지수, 박혜진
정선민, 변연하, 전주원 등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이 국제무대를 주름잡던 시절의 이름들이 불리기도 했지만, 이번 투표에서는 최근까지 WKBL 무대에서 활약했던, 그리고 여전히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도 표를 얻어갔다. 은퇴 선수 중에는 정은순, 이미선, 하은주 등이 몇몇의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지난 시즌을 끝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임영희의 이름도 있었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박혜진(우리은행)과 박지수(KB스타즈)가 4표씩을 얻었다. 클러치타임에 가장 믿음이 가는 박혜진은 우리은행을 6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며 최고의 가드임을 입증했다. 박지수는 이제 겨우 4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임팩트는 그 어떤 선배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지난 시즌 KB스타즈를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던 박지수는 WNBA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에 진출, 두 시즌을 소화해낼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여자농구가 2020년 도쿄올림픽 최종예선 티켓을 거머쥐는데 있어서도 박지수의 공이 컸다.

한국여자농구는 점프볼이 창간했던 2000년 이래 지속적으로 ‘위기’라는 꼬리표와 함께 걸어왔다. 그래서인지 순위에 이름을 올린 대부분의 선수들이 1990년대 후반에 데뷔해 2000년대를 호령했던 ‘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 2000년대에 등장한 박혜진과 박지수가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만큼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뒤, 혹시나 다시 이 투표가 시행된다면 두 선수가 얻게 될 표도 분명 더 많아지지 않을까.


# 일러스트_ 김민석 작가
# 사진_ 문복주, 이청하 기자,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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