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수학능력시험이 있었던 2019년 11월 14일, 한 청년을 만나기 위해 서울대학교를 찾았습니다. 엘리트 농구선수 출신의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18학번 이준호 학생입니다. 고3 여름에 정강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후 서울대 입학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뤘습니다. 운동선수 출신으로 서울대에 입성한 이준호는 화제의 인물이 됐습니다. 반면, 학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2018년에 입학했으니 어느덧 대학생활의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대학생활이 충분히 익숙한 시기입니다. 대학 이후의 미래가 보다 진지하게 다가오는 시기입니다. 그의 지난 대학생활은 어땠을까요? 어떤 미래를 설계하고 있을까요? “최초의 서울대 출신 프로선수가 되는” 꿈을 이루고 싶다는 인터뷰를 작년에 했습니다. 그 꿈은 현재진행형일까요? 혹시 학업이 힘겨워 다시 농구선수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요? 그의 대학생활, 그리고 대학 생활 이후의 계획을 듣고 싶었습니다.
※ 본 기사는 점프볼 1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점프볼 독자들을 위해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준호입니다. 광신중학교와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농구를 했고, 지금은 서울대학교에서 농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학내 여자농구 동아리 코치도 하고 있습니다.
Q. 바쁘게 지내고 있네요(웃음). 중고등학교를 농구선수로 보냈습니다. 언제 엘리트 농구를 시작했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를 따라 삼성 썬더스 유소년 농구클럽에 가입했습니다. 6학년 겨울에 광신중학교 하상윤 코치님이 찾아오셨어요. 저와 친구 둘에게 본격적으로 농구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권유하셨습니다. 부모님과 상의했는데 처음에는 반대하셨죠. 농구와 공부를 같이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농구가 너무 좋았던 소년
Q. 초등학교 때 영재 교육원을 수료할 정도로 영특했다고 들었습니다. 공부가 아닌 농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공부를 좋아했습니다. 좋아서 열심히 했고요. 좋아하는 것은 열심히 하는 스타일입니다. 농구도 같은 이유입니다. 너무 좋아했어요. 부모님도 말리지 못하셨습니다. 축구도 좋아하지만 농구에 비해 템포가 느리고 골을 넣기도 힘들어요. 농구는 빠르고 공격할 수 있는 기회도 많습니다. (초등학교 때에) 저는 키가 커서 골도 쉽게 넣을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좋아했던 만큼 재능도 있었나요?
제가 빠른 편도 아니고 팔다리가 긴 편도 아닙니다. 신체조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죠. 그런데 하상윤 코치님이 독기를 심어주셨습니다. 1학년 때부터 경기를 못 뛰면 분했어요. 경기에 나간 시간이 적으면 더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Q.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습니다.
캐치 앤 슛에 자신이 있었고, 수비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신장도 맨발로 190cm라 작은 편이 아니고요. 무엇보다 코트에서 정말 성실하게 뛰어다녔습니다. 수비와 3점이 되는 3&D 스타일에 노력파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봐주셨던 것 같아요.
Q. 고등학교 시절 꿈은 경희대 진학이라고 들었습니다.
경희대를 너무 가고 싶었습니다. 코치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상윤 코치님이 경희대 출신이셨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농구리그 챔피언결정전입니다. 중학교 때 보러 갔는데 당시 경희대에 유명한 3인방(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이 있었고, 압박과 속공의 경희대 농구에 매료됐어요. 부상이 아니었다면 지금 경희대 선수로 뛰고 있겠죠.
Q. 그런데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잔부상은 많았지만, 재활병원을 다닐 정도의 부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6월에 수술을 해야 하는 큰 부상을 당했어요. 처음에는 막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기들은 성장하는 것이 보이는데 저는 재활만 하고 있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사실 처음 서울대 입학을 추천받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교장선생님이 제 가능성을 높게 봐주셨죠. 당시에는 먼 얘기로만 들렸는데 부상을 당하고 감독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차피 운동을 못하니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Q. 농구선수의 길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서울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합격자 발표가 나고 선수로서의 비전과 다른 비전의 차이를 고민했습니다.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공부 쪽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라는 무대가 들어가기 힘든 무대잖아요. 4학년까지 생존해도 프로에서 선택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절반 정도입니다. 운동선수가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면 갈 길이 막막한데, 서울대에 오면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것 같았어요.
Q. 수능 준비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서울대도 특기생 전형이 있습니다. 일단 내신이 좋아야 하고요, 수능에서 네 과목 시험을 보는데 최소 두 과목은 4등급 이상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두 과목에만 집중했습니다. 부상 이후로 공부에만 매진했어요.
Q. 고등학교 3년 내내 전교 일등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네요.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을까요?
선생님들의 배려가 없으면 불가능했습니다. 1학기 중간고사는 대회와 겹치기도 했어요. 코치님이 새벽과 오후에 운동을 많이 하고 야간에는 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농구라는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좋았어요. 그런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공부의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농구를 그만두면 대학에 가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공부를 놓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Q. 지금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후배들에게 공부의 팁을 알려준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라고 생각해요.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죠. 농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시간 활용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농구와 공부만 했어요.
농구와 공부만 했어요
이준호의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예기치 못했던 부상입니다. 중요한 시기에 처음 경험한 큰 부상은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농구공을 잡을 수 없었던 긴 시간에 대한 불안감. 혹여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했을 경우에 대한 막막함입니다. 주목할 점은 그 준비가 부상 이후에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농구에 뜻을 두었지만, 지학**의 시기에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던 힘이 됐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난관을 넘었지만 또 다른 걱정이 있었습니다. 학업에 대한 부담입니다.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대입니다. 입학 초기에는 “내가 이 친구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라고 했습니다.
** 지학(志學) : 15세 나이를 일컫는 한자용어
Q. 학교생활은 재미있나요? 학업에 대한 부담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재미있습니다. 생각이 독특한 분들이 참 많아요(웃음). 학업은…. 운동선수 출신이라 뒤처진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수업을 빠지지 않고 들어갔어요. 제가 빠른 연생입니다. 1학년 때 술을 제대로 못 마셨어요. 술집을 못 갔거든요. 술자리에 빠지면서 과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1학년 1학기 때 학점이 4.3점 만점에 4.0입니다. 2학기 때 조금 떨어졌는데 지난 학기에 회복했어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성적이 상위 열 명 안에는 들어갈 것 같습니다.
Q. 운동선수였다면 대학생활이 지금과 차이가 있겠죠?
아주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 같아요. 운동선수라면 제지를 당하는 대학생활이 많았겠죠. 예를 들어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동아리 활동하는 것들이죠. 운동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니까요. 평범한 생활을 많이 즐기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Q. 2부 리그에서 농구를 하고 있어요. 엘리트 체육계에서는 팀 성적만큼이나 개인의 성적이 중요한데, 서울대 농구부는 정말 오로지 팀의 승리만을 위해 뛴다는 과거 인터뷰를 봤습니다.
저희에게는 항상 1승이 소중합니다. 엘리트보다 승부욕이 강해요. 연습 상대가 별로 없다 보니 동아리 팀을 불러서 하기도 하는데 어느 팀이 와도 무조건 최선을 다합니다. 다른 학교는 2부 대학도 선수 출신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는 저만 선수 출신이에요. 1승이 소중하다 보니 해야 할 역할도 많습니다. 제가 3&D 스타일이지 플레이를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나머지 부분들을 채워주기 위해 형들이 정말 많이 뜁니다.
Q. 입학 이후 성적은 어때요? 과거보다 좋아졌나요?
작년 MBC배에서 2승을 했어요. 2010년인가 2011년에 2승을 한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선배님들에게 이쁨 많이 받았어요(웃음).
Q. 평소 팀 훈련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와 비교하면 훈련량은 절반 정도입니다. 일단 일주일에 6번이 3번으로 줄었고 훈련의 강도도 고등학교 때와 비교하면 많이 약해요. 지도 방법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감독님은 성적보다 팀에서 리더의 역할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씀을 해주세요. 성적보다 농구를 통해 배워야 하는 다른 것들에 대해 더 많이 말씀하십니다. 성적보다 인성을 강조하세요.
Q. 팀에 전임 지도자가 있나요?
감독님과 코치님이 계십니다. 감독님은 사업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경복고에서 운동을 하셨고,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하셨다고 해요. 재능기부로 저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저희를 많이 존중해주는 분이세요. 너희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희에게 전술을 만들어 오라고 미션을 주실 때도 있어요. 뛰는 선수들이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너희들 스스로 만든 전술이 가장 좋은 전술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코치는 조교님이 하고 계십니다.
Q. 서울대 농구선수로서 목표가 있다면?
항상 목표는 2부 리그 우승입니다. 초당대가 잘하다가 지금은 목포대가 가장 강해요. 아직 목포대를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습니다. 2쿼터까지 이기다가 역전 당한 적은 있었는데, 목포대를 이기고 우승하고 싶어요.
Q. 여자 농구 코치도 하고 있어요.
선배 중에 여자 농구 동아리를 도와주는 형이 있습니다. 그 형이 제안을 했어요. 2학년 2학기는 취업을 준비하기 전 마지막 학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제가 농구를 가르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도 농구와 공부만 하고 있네요(웃음).
Q. 농구가 학업에 부담을 주지는 않나요?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은 훈련을 하고 화요일, 목요일은 코치를 합니다.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인데,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습니다. 훈련이 끝나면 시간이 있고, 주말에 또 시간이 있으니까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됩니다. 운동선수를 하면서 계속 공부를 했어요. 그 생활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Q. 과거 인터뷰에서 공부보다 농구가 쉽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농구가 더 쉬운가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 농구는 투자한 만큼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대회전에 열심히 하면 컨디션이 좋고 경기도 잘 풀렸어요. 공부는 단기간에 성과를 확인할 수 없어서 아직은 더 어렵습니다. 물론 농구도 긴 시간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결과물을 보다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농구가 더 쉽게 느껴집니다.
Q. 대학생활의 로망 중에 ‘정말 예쁜 연애’가 있었어요. 예쁜 연애도 했었나요?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코치를 하고 있는 여자 농구부의 주장이에요. 외국인 특별 전형으로 들어온 친구인데 같이 있으면 좋고, 제 자존감을 올려주는 친구예요. 농구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더 좋습니다.
농구는 어떠한 형태로든 즐길 것 같습니다
Q. 프로농구 드래프트에 참가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요?
지금은 1% 정도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은 인생을 걸고 드래프트에 참가합니다. 저는 그쪽의 꿈을 거의 접었다고 볼 수도 있고요. 그래서 나가는 것이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진짜 나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중고등학교 때 못 다한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도 있고, 드래프트 참가 자체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Q. 광신정산고에서 함께 운동했던 김종호(동국대), 표광일(단국대)이 저학년인데 팀에서 이미 자리를 잡았어요. 동기들의 활약을 보면서 나도 뛰고 싶다는 마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들입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 연락을 해요. MBC배에 가면 얼굴을 보고요. 친구들이 잘해서 너무 좋아요. 2부 리그에서 뛰는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가끔 아쉬움은 있는데…. 아니,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제가 저기서 뛰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맞겠네요. 그 정도입니다.

Q. 드래프트 참가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네요. 학교에서의 훈련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나요?
사실 드래프트를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실례라는 생각이 더 크고요. 중학교 코치님은 드래프트에 나갈 생각이 있으면 학교에 와서 같이 운동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드래프트 참가를 결정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네요.
Q. 프로에 진출하면 어떤 선수가 되고 싶어요?
운동선수 출신이라 공부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반대로 프로에 가면 2부 리그 출신이라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요. 오래 뛰었고, 많이 뛰었던 선수는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운동했던 선수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Q. 농구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면 어떻게 그 끈을 이어갈 생각인가요?
농구는 어떠한 형태로든 즐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돼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있고, 차재영 선배님처럼 3x3 농구를 할 수도 있겠죠. 아직 꿈이 확실히 정리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대학원에서 스포츠 심리나 경영, 미디어 등의 분야를 공부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요. 말씀드렸던 분야에 종사하는 것도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그러면 다른 형태의 끈을 찾을 수도 있겠죠.
Q. 직업인 이준호의 미래는 아직 미정이네요. 그래도 삶의 목표는 있을 것 같아요.
거창하게 얘기하면, 남들에게 인정받는 리더가 되고 싶어요.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실력과 인성,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흠이 별로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열심히 해서 저 위치에 갔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지금도 어리지만(웃음), 더 어린 나이에 굴곡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렛대로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Q.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인생에 굴곡이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리지만(웃음), 중고등학교에서 농구를 하는 후배들에게 진로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거나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진로를 설계한다면 책임감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진로는 인생의 목표점을 찾는 것이잖아요. 열심히 하는 것는 기본이고 꾸준함을 더해야죠. 꾸준함을 더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
지난 6월,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는 학교스포츠 정상화를 위한 2차 권고문을 발표했습니다. 권고문의 핵심은 ‘공부하지 않는 학생선수’와 ‘운동하지 않는 일반학생’의 이분법을 불식시키기 위한 학교스포츠 시스템의 전면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준호는 ‘공부하는 학생선수’에서 ‘운동하는 일반학생’이 됐습니다. 아울러 진로에 대한 더 많은 선택지를 받았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인생을 걸고 드래프트에 참가합니다. 저는 그쪽의 꿈을 거의 접었다고 볼 수도 있고요. 그래서 나가는 것이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직업 선택은 예의로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드래프트에 참가해도 선택은 구단의 몫입니다.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면 실례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준호의 무의식 안에 여전히 공부와 운동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 둘은 양립하지 못했으니까요. 스포츠와 학업, 진로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지한 열정이 있다면, 모든 꿈은 소중합니다.
#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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